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7월 18일

109. 미국은 헤게모니라는 잘못된 꿈에 사로잡혀 있다





기고: 앤드류 J. 바세비치(ANDREW J. BACEVICH)는 보스턴 대학의 국제관계 및 역사분야 명예교수이자 그가 공동 설립한 Quincy Institute for Responsible Statecraft의 이사회 의장입니다
출처: 포린-어페어즈, 2023년 2/3월


1945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의 힘들게 얻은 승리는 어떤 합법칙적 확인도, 미래의 전조도 아닙니다. 대신 불행하게도 그것은 미국에게 환상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1960년대에 비용이 많이 들고 분열을 초래한 베트남 전쟁의 경험은 잘못된 환상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980년대 말 소련의 붕괴는 이를 잠시 부활시켰습니다만, 9/11 이후 워싱턴이 세계적 "테러와의 전쟁"을 추구하기 위해 착수한 불행은 다시 한번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라는 눈가림을 폭로했습니다. 미국의 외교정책 기구는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의 더욱 강력한 군사력이라는 신화에 집착해 왔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장기간에 걸친 전쟁의 실망스러운 결과는 영국이 수에즈에서 경험한 것과 유사한 경종을 울렸어야 했습니다. 1956년 영국 정부가 실책을 범한 것은 수에즈 운하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고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을 그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개입한 후였습니다. 계속되는 파국은 앤서니 이든(Eden) 영국 총리의 직책을 앗아간 굴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든의 경쟁자인 영국 노동당 대표 가이츠켈(Hugh Gaitskell)은 수에즈 작전을 "우리나라의 위신과 명성에 돌이킬 수 없는 해를 끼친 참담한 어리석음"이라고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판단에 이의를 제기한 관찰자는 거의 없었습니다. 위기는 영국으로 하여금 그들의 제국 프로젝트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약한 국가들을 일렬로 세우는 강대국의 예전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년의 세월은 미국에게 확대된 "수에즈의 패착"으로 기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대외정책 기득권층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것은 미국의 강력한 군사력’이라는 신화에 여전히 매달리며 반성과 성찰을 거부했습니다.

이라크에서의 실패는 워싱턴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선한? 전쟁"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는 2021년 혼란스럽고 굴욕적인 철수로 절정에 달한 경솔한 행동이었습니다. 아프칸의 철수 광경은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그리고 그들이 품은 염원으로 정의되는 시대의 종말을 선언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푸틴 러시아 대통령 덕분에 이러한 순간은 곧바로 사라졌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은 미국의 근력 강화라는 전통을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치른 아프간 전쟁은 20년 전 워싱턴이 이라크에서 시작한 비참한 선택과 마찬가지로 기억에서 거의 사라졌습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이러한 파국을 초래한 동일한 실수를 계속해서 벌릴 태세로 보이며, 이를 모두 글로벌 리더십의 표면적 의무로 정당화됩니다.


한편, 우크라 전쟁은 워싱턴이 수에즈 경험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크라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실용적이고 제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과 그의 팀은 미국의 힘에 대한 시대에 뒤떨어지고 도덕적이며 무모하고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지속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자신이 ‘우크라와 관련된 실제적 이해 관계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수사적 입장’을 취하면 미패권이라는 헤게모니에 대한 집착과 기득권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읽어주는 동화(도덕 교과서)처럼 미국의 역할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추가적인 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위험은 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군사 지원을 제공하며 미국 지배의 새로운 시대라는 식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을 접근하고 프레이밍을 한다면, 바이든 자신이 새로운 굴레에 갇힐 수 있으며 미행정부의 신중하게 조정된 정책도 그의 곧잘 흥분하는 그릇된 수사를 닮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점차적으로 비참한 계산과 결과로 이어질 것입니다.

미국과 함께 하느냐 반대하느냐

전후 세계관의 가장 권위있는 표현이자 냉전 이후 미국정의 방향은 NSC-68로 알려진 당시 폴 니츠가 이끌었던 미 국무부 정책기획 참모부가 1950년 초안을 작성한 고도의 기밀 문서에 담겨 있습니다.

"놀라운 다양성, 깊은 관용, 자유 사회의 합법성"을 증언하는 이데올로기적 문서는 냉전 기간 동안 미국정책의 기준을 확립했습니다. 서구의 자유사회에 대항하여 소련의 "노예 사회"가 병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소련의 사회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국가 내의 모든 사람에 대한 총화"과 함께 "모든 공산당과 소련이 지배하는 모든 국가에 대한 총화"을 요구했습니다.

설득력있는 명료함으로 NSC-68은 미국이 세계경찰임을 주장했습니다. 모호함을 제거하고 명료한 정책을 제시했습니다. 문서는 "축소하는 세계에서 국가 간의 질서 부재가 점점 참을 수 없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수단으로 질서와 정의를 가져올" 의무와 함께 "세계 리더십의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단순히 소련의 위협을 억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굶주린 자들을 먹이거나 고통 당하는 자들을 구하는 일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있습니다. 미국이 필요로 했던 것은 ‘세계를 강제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였습니다. 이를 염두에 두고 워싱턴은 글로벌 경찰력으로 구성된 지배적인 군대를 설립하기로 결정했습니다. Statecraft(국가기구)는 군사력의 부속물이 되었습니다.

NSC-68에 담긴 마니교적(선과 악의 대결) 전망은 시간이 흘러도 줄어들지 않고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운명이 민주주의와 전제정치 사이의 세계사적 투쟁의 결과에 달려 있다는 바이든의 반복적인 주장은 상기 니츠의 핵심주제를 업데이트합니다.

국방예산지출, 해외기지의 증강 또는 무력사용성향으로 측정할 때 미군 패권의 필요성은 신념이 되었습니다. 세계화와 기술진보로 인해 세계가 계속 "협소화"됨에 따라 (또한 우주와 사이버 공간으로 확장됨) 미군의 범위가 비례적으로 증가하며 이는 논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자동적 묵인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미국 헤게모니의 목적이 하드파워의 신중한 사용을 통해 세계질서와 정의를 확립하는 것이라면 현재까지 그의 결과는 매우 부정적이거나 기껏해야 엇갈렸습니다. 1950년 이래로 영어권 사람들과 파리와 도쿄 등 어느 정도 미국과 가까운 국가들 시민들은 비교적 잘 지냈습니다. 이에 비해 남반구에 살고 있는 수십억 명이 누리는 혜택은 매우 빈약합니다. 극히 소수에게만 행운처럼 개인의 자유와 안전이 보장되는 건강한 삶을 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개인의 권리에 대한 정부의 존중과 법치 준수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단지 ‘희망사항’으로 남겨졌습니다.

물론 상황이 더욱 나빴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냉전 기간 동안 미국이 막대한 비용을 들여 획득한 수천 개의 핵무기 중 하나를 사용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럼에도 세계 도처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충분히 나빴습니다. 1950년 이후 미국의 전쟁(및 잡다하고 은밀한 개입)행위와 결과를 살펴보면 무모함, 불법 행위 및 낭비의 끔찍한 기록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20년 전에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베트남 전쟁에 이은 미국의 군사적 어리석음의 극치입니다. 중동을 변화시킬 해방의 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기대로 시작된 ‘이라크 자유’ 작전은 오히려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든 죽음과 파괴라는 슬픈 유산만을 낳았습니다. 한동안 전쟁 지지자들은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권좌에서 물러난 것이 세상을 나은 곳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만, 오늘날 어떤 궤변도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치른 모든 희생이 헛수고였다고 선언하는 것은 일반 미국인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의 결과는 예외라기보다는 일상적 규칙에 가까웠다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1950년 트루먼 대통령이 38도선 넘어 북한지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기로 한 결정은 비록 15년 후 린든 존슨 대통령이 미군 전투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퇴색되어지긴 했지만 엄청난 실수였습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수렁"이라는 용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이라크에 관해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반박하는 것은 오늘까지 여전히 불가능합니다. 2002년 그가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이었을 때 "주말의 전사들"이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의제를 우리 목구멍에 밀어 넣으려는" "멍청한", "경솔한", "냉소적인 시도"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침공이 다가오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행해진 선택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그 순간에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NSC-68에 내포된 논리에 따르면, 남북한을 해방·통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간과하거나 베트남 공화국을 공산국가로 내버려두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라는 것이었습니다. 탈레반이 카불에서 권력을 유지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는 식입니다.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고(더 많은 무기를 개발할 의도가 있었다) 그의 제거는 정치적, 도덕적 의무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드립니다.


그러나 각각의 경우에 터무니없이 잘못된 판단으로 엄청난 미국 재원과 수천 명의 미국인 생명(미국인이 아닌 수백 만 명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고)을 낭비했습니다. 브라운 대학의 전쟁 비용 프로젝트는 9/11 공격 이후 미국의 군사 행동에 약 8조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 것으로 추산했으며,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떠벌리는 "더 나은 미국 건설(Build Back Better)" 인프라 이니셔티브에 대해 승인된 금액보다 수십 배 많은 금액입니다. 그러한 군사 작전의 이점이 비용보다 얼마나 큰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경우에 개입을 선호하는 기본(패권) 논리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부통령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대규모 증원에 반대하고 대통령으로서 궁극적으로 군대를 철수시킨 바이든 조차도 미군의 지속적인 효과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패배에 대한 그의 반응은 펜타곤 지출의 증액을 제안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연방의회는 이에 동의했을 뿐만 아니라 보너스까지 제공했습니다.

어떤 아이크를 좋아합니까?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미국 국가안보 조직이 휘두르는 영향력은 이러한 사고방식이 지속된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런 점에서 1961년 1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고별 연설에서 전해진 유명한 훈계는 중요성을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연설에서 아이젠하워는"군산복합체"의 손아귀에서 "잘못 배치된 권력의 처참한 폐해"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그는 또한 "안보와 자유가 함께 번영할 수 있도록" 국가의 "거대한 산업 및 군사 방어 기계"를 견제할 수 있는 "경각심있고 박식한 시민"이라는 해결책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희망은 빗나갔습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미국인들은 주의를 기울이기보다는 무관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아이젠하워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억하는 아이크의 모습은 1961년의 대통령이 아니라 제3제국의 무조건 항복을 쟁취한 1945년의 장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미국정책에 새로운 목적의식(세계지배)을 부여했으며, 이후 NSC-68에 체계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구속의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학자 David Bromwich가 최근에 쓴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은 우리를 사로잡은 그림(족쇄)입니다. ”중요한 점에서 지난 70년 동안의 미국 국가안보 정책의 이야기는 그림을 보존하고 업데이트하려는 노력에 중점을 둡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또 다른 승리를 설계하며 안보, 번영, 존중 및 특권을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소련이 붕괴되고 1990-91년 걸프전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잠시 동안 세계가 미국의 손에 장악되는 것 같았습니다. 종합하면1945년과 대충 범위가 비교될 수 있는 승리들이 존재했습니다. "역사의 종말"이라는 주장으로 유일한 초강대국이 세계의 "필수국가"로 등장하는 단극의 질서를 초래했습니다.

오늘날 이러한 표현은 "백인의 짐(white man’s burden)" 및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 "과 같은 범주에 속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모순되게 사용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슬로건은 1989년 이후 정치 엘리트들을 압도적으로 도취시킵니다. 숭고한 대의에 헌신한다고 맹신하는 국가로서 냉전 이후의 미국은 악인을 처벌한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대혼란과 파괴를 일삼아 왔습니다.


워싱턴의 이데올로기에 휘둘린 흥청거림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정치를 뒤집은 2016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트럼프는 "미국을 최우선(MAGA)"으로 하는 진로를 계획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온화해 보이는 이 문구는 폭발적인 의미를 내포했으며, 영국이 나치의 침략에 저항하면서 영국을 대신하여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반대를 상기시킵니다. 트럼프는 단순히 덜 호전적인 외교 정책을 약속한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인지했던 아니던, 그는 전후 미국국정 운영의 도덕적 토대를 바꾸겠다고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유세 동안에 특유의 폭언을 하면서 나토 국가들이 "공정한 몫을 지불하지 않고" "미국을 바가지 씌우고 있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아십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동맹은 자신들의 부족함을 보상하거나 아니면 동맹 자체를 해체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NATO도 해체해야 합니다.”

그는 취임 연설을 포함하여 계속해서 상기의 주제를 반복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기반시설이 황폐해지고 쇠퇴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국경방어를 거부하면서 다른 나라의 국경을 방어했고 해외에서 수조 달러를 지출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재원과 힘, 자신감이 국경 너머로 흩어지는 동안 우리는 다른 나라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은 안됩니다: 그는 "오늘부터 미국의 이익만이 우선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이러한 이단적 선언은 미국의 대외정책 체제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신경쇠약을 촉발시켰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거짓말과 역사적 문맹은 자신이 "미국 우선"이라는 문구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했는지조차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가 상기의 주장을 되풀이 하더라도 자신의 무능력과 집중력의 부재로 미국의 세계지배라는 신념 현상은 그대로 존속되었습니다. 트럼프 재임 중에도 9·11 테러 이후 시작된 ‘영구 전쟁’은 지속되었고 기존의 동맹 역시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약간의 조정으로 해외에서 국가의 군사적 발자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면에 국내에서는 군산복합체가 더욱 번성했습니다.

비용이 많이 드는 미국 핵공격 능력의 현대화(Smart-Nuke)는 계속되었고 최소한의 관심만 끌었습니다. 대체로 NSC-68 패러다임의 핵심요소는 살아 남았고, 제2차 세계대전이 정책의 시금석으로서 중요성을 유지했습니다. "고립주의자"는 세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해외에서 미국의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별칭(야유)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주장하는 기득권층이 과거의 자폐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세계 자체는 심오한 변화를 겪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적 역설이 있습니다. 전후 패러다임을 포기하겠다는 트럼프의 맹세는 오히려 기득권층이 진지를 강화하고 NSC-68 체제를 강력하게 방어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반면에 기존 프레임워크의 내용에는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

세계변화의 목록은 깁니다: 중국의 부상, 심화되는 기후위기, 미국 남부국경에 대한 통제력 상실, 노동계급의 약화, 치솟는 마약관련 사망자, 잔인한 전염병, 인종적/민족적/사회경제적/당파적/종교적 노선에 따른 양극화로 인한 국내 격변. 이러한 분열은 2016년 트럼프의 선거에 기름을 부었고, 패배한 재선 캠페인에서 많은 표를 얻을 수 있게 했으며, 패배 후 평화적인 권력이양을 막고 헌법질서를 전복하려는 그의 노력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신화를 조작하는 사람들

이러한 일련의 실패와 결점,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전후 미국 비전의 무능력은 영국이 저질은 수에즈 패착의 순간을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역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는 고집의 확고한 기준점을 제시합니다. 바이든 임기 중반에 미국의 전략은 인정되지 않은 모순의 얽힘에 빠져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국 모델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이를 추구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고 국제 질서에서 국가의 특권적인 위치를 보존할 전망이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 성스러운 군사화된 글로벌 리더십 모델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워싱턴의 주장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NSC-68의 핵심을 재확인합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적군이 아닙니다. 미국의 적에 가깝지도 않습니다. 푸틴이 핵무기의 사용을 선택하지 않는 한, 러시아는 미국의 안보와 안녕에 무시할 만한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키예프까지 접근도 못하는 러시아군은 베를린, 런던, 파리는 물론이고 뉴욕에 더더욱 위험하지 않습니다. 러시아 군대가 보여주는 무능함은 유럽 민주주의가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들 자신의 안보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 이상이라는 주장을 강화합니다.

요컨대 워싱턴의 경우, 우크라 전쟁은 러시아를 다른 국가의 일반적 문제로 분류하는 사례를 강화했어야 했습니다. 미국이 500억 달러 이상의 여유가 있다면(의회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2022년 2월부터 2022년 11월 간 할당한 금액, 이후에도 수백억 달러가 추가) 그 재정을 기후변화의 대응, 국경위기의 해결 또는 미국인 노동자 계층의 고통완화 등에 사용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바이든은 이전 시대의 수사를 반영하는 광범위한 용어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는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를 침공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전달된 연두교서에서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미국이 개입할)”.

그러한 순간과 그러한 과업은 헌신과 결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희생과 어려운 선택을 수반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크라에 대한 미국의 노력은 그러한 것들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대리 전쟁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실존에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바이든은 어떤 미군도 우크라를 대신하여 싸우지 않을 것이라고 현명하게 약속했습니다만, NSC-68, 행정부의 수사학, 미디어 논평의 끝없는 흐름에 의해 합성된 것으로 되돌아가서 우크라 전쟁이 다시 한 번 역사의 경운기를 잡고 인류를 의도한 목적지로 인도하도록 미국을 소환했다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히 국가를 몇 번이고 잘못된 길로 이끈 일종의 자만심입니다.


이런 자기기만적인 자세를 넘어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해하는 보다 책임감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나은 기회를 상상하기는 어렵지만, 바이든은 중요한 기회를 놓치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미행정부의 2022년 국가안보전략에서 다음 구절을 고려해 봅시다.

“전 세계적으로 미국 리더십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우리는 국제 질서의 미래를 형성하기 위한 전략적 경쟁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한편,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도전 과제는 글로벌 협력 증대를 요구하며,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 시점에서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우리의 가치를 앞장서고 우리의 동맹국 및 파트너, 그리고 우리의 이익을 공유하는 모든 사람들과 발맞추어 협력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번영하고 안전한 세계에 대한 우리의 비전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변덕에 우리의 미래를 취약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뒤범벅으로 사용된 상기의 단어들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려 하지만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일관된 정책의 기반이 없습니다. 판매용으로 사용된 전략 선언문은 역으로 전략의 부재를 증언합니다.

케넌의 방식

오늘날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것은 한물간 NSC-68 패러다임을 대체할 전략적 목적에 대한 명확한 진술입니다.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그러한 대안을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승리한 후 난감한 시절부터 계속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1948년 냉전 초기에 니츠(Nitze)의 전임 정책기획 책임자인 케넌은 ‘이데올로기적 환상이 없는 미국의 성공을 측정하는 접근방식’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당시 미국이 "세계 부의 약 50%를 소유하고 있지만 인구의 6.3%만" 소유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앞으로의 과제는 "미국의 국가안보에 긍정적인 해를 끼치지 않고. 우리가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관계의 패턴을 고안하는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목표는 미국을 세계의 부러움으로 만든 물질적 풍요를 보존하고 강화하는 동시에 미국인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케넌에 따르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미국이 "모든 감정과 백일몽을 버리고 당면한 국가적 목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는 미국이 향후 "이타주의(세계경찰)와 세계적 혜택이라는 사치를 감당할 수 없다”고 썼습니다.

케넌의 긴 메모는 미국이 전후 세계의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주목을 끄는 것은 케넌 분석의 세부 사항이 아니라 그것을 일깨우는 그의 정신입니다. 목적성, 규율 및 케넌이 "노력의 경제"라고 부른 것에 대한 강조와 함께 사실주의, 절제, 한계에 대한 인식입니다.

1948년에 케넌은 미국인들이 최근 전쟁 중에 싹튼 "낭만적이고 보편주의적(이념적)인 개념"에 굴복할지 모른다고 우려했습니다. 그의 염려는 옳았습니다.


1948년 이후 케넌이 언급한 국가 간 경제적 격차는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줄어들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인구의 4% 이상을 차지하지만 여전히 세계 부의 약 30%(역자: PPP기준으로는 18%이하)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부의 분배는 극적으로 악화되었습니다. 1950년에는 미국인 중 가장 부유한 0.1%가 국가 부의 약 10%를 장악했습니다. 오늘날 그들은 거의 20%를 통제합니다. 더구나, 미국의 재정 건전성은 매우 약화되었습니다. 미국 총 국가 부채는 현재 31조 달러를 초과했으며 연방 적자는 2010년 이후 매년 평균 1조 달러 이상이었습니다.

그로테스크한 불평등과 무자비한 방탕의 조합은 그토록 거대하고 부유한 국가가 국내의 역기능과 해외의 위기에 대처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군대는 내부 결속력과 정부의 자제력 부재를 보상할 수 없습니다. 미국이 질서를 바로잡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전제정치에 맞서는 가상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는 훨씬 더 어렵습니다.

워싱턴은 케넌이 1948년에 제안했지만 정책입안자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무시해 온 조언, 즉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고 건국 문서의 약속을 이행하며 일반시민들에게 품위 있는 삶의 전망을 제공하는 조언을 시급히 따라야 합니다. 시작점은 미군을 글로벌 권력(패권)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는 미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군대로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미국은 국방부에 전쟁보다는 국내의 안전과 개발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실제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핵확산 금지조약에 포함된 핵무기 제거의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 중부사령부를 도마 위에 놓고 다양한 지역군사 본부 폐쇄, 해외에 주둔하는 미군의 규모를 줄이는 것, 비용 초과에 대해 군사계약자에게 지급하는 것을 금지해야 합니다. 군산복합체를 지탱하는 회전문에 자물쇠를 걸고, 미국 헌법에 명시된 대로 의회의 전쟁권한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전포고를 하지 않는 한 군사비 지출을 GDP의2%로 제한함으로써 국방부는 여전히 군사비 지출에서 세계 선두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947년 아마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에 실린 가장 유명한 에세이에서 케넌은 "X"라는 제목을 사용하여 "파괴를 피하기 위해 위대한 국가로서 미국은 자신의 최고의 전통을 측정하고 보존할 가치가 있음을 증명하기만 하면 됩니다..”오늘날 이러한 전통은 누더기가 되었지만 케넌의 조언은 중요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정의로운 군사적 승리라는 키메라(신화)는 망가지는 미국을 고칠 수 없습니다.

아이젠하워가 요구한 "경각심 있고 박식한 시민"만이 이 시대의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의 특징이 된 미국 권력(패권)의 추가 오용과 군사력의 확대를 용납하지 않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이래경다른백년 명예 이사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며,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제3섹타 경제론], [격동세계] 등의 기고를 통하여 인간의 자유와 해방의 논리를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