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양애진의 커뮤니티 3.0

2023년 4월 3일

2. 커뮤니티 변천사: 1.0부터 3.0까지




(사진 출처: https://www.pinterest.co.kr/pin/601230619024798430/)



커뮤니티 1.0 vs 커뮤니티 2.0 vs 커뮤니티 3.0

“도시의 삶과 시골의 삶은 얼마나 차이가 있나요?” 책 출간 이후 북토크에서 종종 만나는 질문이다. 나는 확실히 다르다고 답한다. 도시 청년들로 이루어진 팜프라촌은 시골의 문법과 도시의 문법이 충돌하는 접점이었다. 두 커뮤니티는 확연히 달랐다. 커뮤니티 1.0과 커뮤니티 2.0의 공존이랄까. 내가 넥스트 커뮤니티를 3.0이라고 말하게 된 이유다. 일단 도시의 질서는 명확하다. 대부분 명문화되어 있다. 반면 시골의 질서는 불분명하다. 존재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암묵적이라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자세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각 커뮤니티의 구성요소를 먼저 살펴보겠다.

커뮤니티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앞서 커뮤니티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했다. 이를 기준으로 7가지 구성요소를 추려 보았다. 첫째는 구성원이다. 구성원이 누구인가에 따라 커뮤니티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두 번째는 구성원 간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세 번째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방식으로는 언어, 공유 기호 등이 있다.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구성원 간의 협력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네 번째는 규범과 규칙이다. 수용 가능한 행동을 규정하는 것은 구성원들이 안전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 다섯 번째는 자원이다. 커뮤니티가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자금, 기술과 같은 자원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이런 공동 자원을 관리하기 위한 리더십과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거버넌스(governance)는 풀어말하자면 ‘다스리기’다. 구성원 공동의 목표를 위한 의사결정, 내외 갈등 조정, 인프라 관리 등의 역할을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자 기준이 되는 가치관이다. 구성원은 공통의 가치나 믿음에 기초하여 정체성을 형성한다.공유된 정체성은 연대감을 조성하고 결속력을 촉진한다.

커뮤니티 1.0 (마을) – 두모마을

두모마을은 집성촌이다. 여기는 손촌 저기는 박촌이라 부른다. 수십 년, 수백 년을 조상들과 공유해 온 공간이다. 공간을 이루는사람만 계속 달라진다. 이들을 마을 사람, 마을 주민이라고 부른다. 주민(resident, 住民)은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을 뜻한다. ‘산다’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 말인 즉, 마을을 떠나면 마을 주민이 아니다. 사람보다 공간의 위상이 높다. 항시 마을이 우선이다. 이장님은 항시 개인의 존속보다는 마을의 존속을 먼저 고민했다. “두모마을만 유지되면 돼”라고 했다.

두모마을 초입에는 230살이 넘은 당산나무 할아버지가 있다.(다른 마을에는 당산나무 할머니도 있다고 한다) 나이가 지긋하신마을 어르신들 조차 이 할아버지에게는 깍듯하다. 항상 큰 산처럼 듬직하게 마을의 중심을 잡아준다. 매년 동제에는 할아버지에게 제사를 지낸다. 제를 올리는 이장님은 일주일 동안 사람 만나는 것을 삼간다. 당산나무 할아버지 근처에서 소란을 피워도 안된다. 대대손손 내려온 오랜 풍습이자 신앙이다. 덩달아 가부장 문화도 공고하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여행을 갔을 때였다. 식당에 들어서자 남녀가 쫙 갈라지더니 남자상 여자상이 생겼다. 남녀칠세부동석도 여전하다. 실제로 두모마을의 남성 어른은 대부분 두모마을에서 태어난 토박이다. 반면 여성 어른은 옆마을, 혹은 타 지역에서 시집 ‘온’ 이주민이다. 지명 이름을 앞에 붙여소위 ‘OO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마을에는 공동 재산 개념이 있다. 금산 자락에서 두모마을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양아분교가 있다. 한 번은 양아분교 매각 이슈가있었다. 법적 소유자는 교육청이었다. 하지만 매각에 앞서 교육청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민 설명회를 여는 것이었다. 어르신들의 의사를 여쭙기 위해서였다. 양아분교는 오래전 양아리의 네 개의 마을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함께 지은 학교였기 때문이다. 주민 설명회 날 두모마을회관에는 교육청 사람들이 모두 찾아왔다. 네 마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역사 앞에서는 법과 행정도 고개를 숙였다.

커뮤니티 2.0 (대도시) – 서울특별시

규모화를 이룬 도시에서는 ‘마을’의 개념이 흐려진다. 주민 대신 시민이라고 한다. 시민(citizen, 市民)은 거주와 동시에 정치적권리와 사회적 의무를 가졌음을 의미한다. 주체적으로 의사결정하는 능동적 존재다. 농촌은 정착의 상징이라면, 도시는 다시 유목의 상징이다. 이사와 상경이 쉽다. 대도시 서울이야말로 뜨내기들이 부유하는 곳이다. 더 이상 생활 터전을 공유하는 것 만으로는 공동의 의식이 생기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 흐려지면서 개인이 중요해졌다. 위계와 질서 대신 자유와 평등이 최상위의 가치가 됐다.

거대한 사회에서는 전체 시스템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무엇이 어디에 쓰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어렵다. 익명성이생기는 만큼 문제의 책임 소재를 찾기도 어렵다. 규모화될수록 이를 통제하는 주체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중앙 집중화된 권력즉, 공권력이 강해졌다. 덩달아 대량생산, 대중교육, 대중미디어는 규모화된 삶에 질서를 부여했다. 공동의 이상을 설정했다. 삶은 획일화되고 비교가 일상이 됐다. 인터넷 등장 이후엔 익명의 사람과도 비교하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건강을 위해 타인과 구별되는 나만의 ‘자아’를 형성하는 일이 점점 중요해졌다. 나를 찾는 수업, 나를 찾는 여행, 소위 ‘나를 찾는’ 일이 필수이자 새로운신앙이 됐다.

동시에 21세기에는 지구 공동체 개념이 보편화됐다. 93년생인 나는 어릴 적에는 동요 ‘앞으로’를 불렀다. 부제는 ‘지구는 둥그니까’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지구촌’이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기술의 발달로 지구가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피부색, 옷차림이 각기 다른 아이들이 손을 잡고 지구를 두른 그림이 기억난다. 먼 나라도 이웃나라였다. 지구촌 감수성을 품고 다시 공동체를 꿈꿨다.

커뮤니티 2.5 (청년마을) – 팜프라촌

팜프라촌은 마을 주민이 고작 열명 남짓한 작은 마을이었다. 이 새로운 공동체는 개인보다 우선되는 마을이 아니라, 개인 ‘있는’ 마을을 지향했다. 팜프라촌에는 전국의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고향 없는 세대였다. 태어난 곳과 자란 곳이 달랐다. 마을에서 태어나도 도시에서 자랐다. 팜프라촌에 사는 촌민은 엄밀히 말하자면 주민도 시민도 아니었다. 주민이라기엔 행정적 주소가 팜프라촌이 아니었고, 시민이라기엔 가진 권리와 의무도 제한적이었다. 구태여 말하자면 정부 지원 사업의 ‘프로그램 운영자와 참여자’였다. 그래서 고향 대신 ‘마음의 고향’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중 출생지가 남해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버려진 고향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됐다.

규모가 작은 공간에서 살다 보니 작은 행동들이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잘 드러났다. 그러자 자치가 다시 부활했다. 규격화, 시스템화된 거대 도시에서는 익숙했던 것들에 대해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야 했다. 시시 때때로 ‘자치 회의’가 열렸다. 촌장(리더십)이 필요한가부터 회의(거버넌스) 횟수와 방식, 생활비(자금) 관리 규칙 등 커뮤니티를 이루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논의했다. 그과정에서 이의 제기, 대안 제시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규모가 작아지자 바꿀 여백이 생겼다.

현재 전국 각지에 생겨난 청년마을은 도시와 지역을 잇고 있다. 그들은 지명 대신 그들만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낸 명칭을 스스로부여했다. 지리적 요건이 아닌 가치관과 취향으로 발생한 커뮤니티다. 행정 구역으로 분류되지 않은 곳.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마을의 태동이다. 온라인에 능통한 다수의 작은 마을로 인해 소수의 고속도로로 분절된 국토가 다시 연결되고 있다. 혼란스러울지언정 교류를 만들어낸다. 지금은 과도기다. 지형을 바라보는 사고관의 변화가 필요할 때다. 변화는 불변의 ‘상수’를 ‘변수‘로 재설정하면서 시작된다.


커뮤니티 변천사: 커뮤니티 1.0 vs 커뮤니티 2.0 vs 커뮤니티 3.0 (ⓒ양애진)

지금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변천사를 구분해 봤다. 각 커뮤니티 유형 간의 경계가 모호한 만큼 최대한 거시적으로 구분했다. 어쩔 수 없이 일반화된 점도 있다. 하나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풀어내려다 보니 환원적인 측면도 있다. 변천사라고 했지만 단선적인진보의 개념은 아니다. 두모마을과 팜프라촌이 공존하듯이 한 시대에도 여러 커뮤니티 유형은 공존한다. 

과연 커뮤니티 3.0은 어떤 모습일까? 전통적으로 커뮤니티는 마을이 존재한 이후 생겨났다. 마을은 ‘지리적’으로 발생한 인류 최초의 커뮤니티였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인해 장소에 한계 없이 교류가 가능해진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지역 단위가 아닌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으로 묶이고 모이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지역과 경계를 넘나 들며 만들어진 새로운 커뮤니티가 새로운 마을을 만들고 있다. 

앞으로는 고향이 온라인 세상이 될지도 모른다. 지난해 경주의 바다 마을 고등학교에서 강연했을 때다. 아이들에게 고향을 물으니 대답 대신 난감한 표정이 돌아왔다.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고향이 아닌 탓이다. 가장 마음을 쓰고 서로 정을 나누는 곳은 소셜미디어라서다. 몸은 마을에 살고 있지만 마음은 마을에 있지 않았다. 같은 오프라인 땅을 공유하지만 온라인 땅에서는 각기 다른 가치관으로 분열되고 있다. 물리적 전쟁은 눈에 띄게 감소했지만 눈에 띄지 않는 소셜 전쟁은 급증했다. 커뮤니티에 있어 물리적, 지리적 구분은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 흐름을 추동하고 있다. 공간은 유니버스와 메타버스로 확장됐다. 구성원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도 포함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연결된 만큼 다시 소규모로 돌아가게 될까? 기술로 연결된 소규모 집단과 이를 중재하는 세계조직이 생길까? 아니면 애초에 관리하는 리더십조차 필요 없어질까? 하나의 거대한 집단 형성보다 작은 집단들의 활발한 네트워크가 중요해지지는 않을까? 디지털 세계의 증폭과 맞물릴 수 있는 새로운 커뮤니티는 어떤 모습일까? 이어서는 몇 차례에 걸쳐 커뮤니티 3.0를 각 구성 요소별로 자세히 다뤄보겠다. 그런 다음 커뮤니티 3.0을 기반으로 한 미래 디지털 도시(혹은 마을)를 구체적으로 구상해 볼 계획이다.





양애진경계 없는 세계를 꿈꾸는 프리워커.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을 찾아 세계 각지의 공동체를 다녔다. 미래형 촌을 꿈꾸며 팜프라를 공동 창업하고 도시 청년들이 촌 라이프를 실험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를 공저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여러 지역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도시와 촌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 로컬과 글로벌, 무브먼트와 비즈니스, 생태와 기술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며 통합된 미래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