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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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진의 커뮤니티 3.0

2023년 5월 8일

4. 세 암호화 도시 이야기

- 시티다오, 비트코인시티, 야마코시촌




(사진: 양애진 x DALL·E)

도시의 힘은 사람으로부터 나온다. 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의 승리>에서 도시의 핵심을 ‘인적 자본’이라고 했다. 높은 인구 밀집도가 협력을 만들고, 협력은 혁신을 만든다. 도시의 혼잡성은 곧 도시의 역동성이자 원동력인 셈이다. 나아가 물리적 제약을 넘어선 지금, 지구적 협력이 가능해졌다. 새로운 협력 방식은 새로운 도시 형태를 만든다. 암호화 도시다.

암호화 도시란, 다양한 암호화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현실 세계의 도시를 말한다. 투표 결과, 세금 납부, 자금 흐름, 정부 증명서 등 각종 도시 데이터가 블록체인 기반에 형성된다. 투명성과 신뢰가 확실하게 보장된 도시는 더욱 개방적이고 참여 지향적인 형태가 될 수 있다.

1) 토지 암호화


(사진: ⓒ City DAO)



불모지에 신도시 깃발을 꽂은, 시티다오

대표적인 크립토 시티 프로젝트인 시티다오(CityDAO)는 미래 도시 건설을 목표로 한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만 개의 ‘시민권 NFT’를 발행했다. NFT 소유자에게는 투표권을 비롯한 거버넌스 참여권 및 추후 토지 정착 권한을 제공했다. 그 결과, 6000명의 투자자가 모여 약 700만 달러의 자금 모금에 성공했다. 이후 커뮤니티는 논의 끝에, 와이오밍주 북서부에 40 에이커(약 5만 평)의 토지를 구매했다. 일종의 시민자산화다. 이 땅을 Parcel 0이라고 명명했다. 이로써 물리적 영토가 블록체인 네트워크 위에 명시됐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다오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덕분이다. 2021년 7월, 와이오밍 주의회는 세계 최초로 다오를 유한책임회사(LLC)로 승인하는 법안을 등록했다. 시티라고 불리지만 시장은 없다. 법인의 성격을 띠지만 임원은 없다. 시티다오는 소수의 운영자가 아닌 다수의 주주(NFT 소유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시민들은 온라인 플랫폼인 디스코드에서 소통하고, 탈중앙화 투표 시스템인 스냅샷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투표가 진행된다. 시민 범위가 광범위한 만큼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체 미디어 채널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팟캐스트를 제작하고,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아직은 명백히 초기 단계다. 시티다오 부지는 교통이 편리한 것도 아니고, 자연 자원이 풍부한 곳도 아니다. 물을 기를 수 있는 우물과 건축을 올릴 수 있는 평평한 땅이 전부다. 공식 트위터 계정에 올라온 사진에는 척박한 땅에 깃발 하나만 달랑 꽂혀 있다. 다오 자체의 법적 지위는 인정받았지만, 세금 및 와이오밍주 외부에서의 법적 지위 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당찬 대담함과 묘한 허무함이 공존한다. 불모지를 개척하는 모습은 마치 빛바랜 서부 프런티어 정신을 연상케 한다.

2) 화폐 암호화


(사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채택한, 엘살바도르
ⓒ BBC)

정부 주도로 블록체인 기반 도시로 전환하려는 사례도 있다. 2021년, 엘살바도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화폐로 채택했다. 자국의 경제 시스템이 붕괴한 이후, 미국 달러를 법정 화폐로 사용한 지 20년 만의 일이다. 엘살바도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국 통화를 포기했었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에도 자체적인 통화 정책을 펼칠 수 없었다. 환율 리스크를 줄이고, 달러 영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고로, 비트코인 법정화는 잃어버린 경제 주권을 되찾고자 함이었다.

새로운 화폐를 위한 새로운 인프라도 구축했다. 전 국민에게 디지털 지갑 앱인 치보(Chivo)를 적극 배포했다. 전국에 비트코인 ATM 기기도 설치했다. 화폐 혁신과 더불어 암호화폐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비트코인 시티(Bitcoin city) 건설 계획도 선포했다. 인근 화산에서 나오는 지열 에너지를 사용해 저렴한 가격으로 비트코인을 채굴한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부가 가치세를 제외한 모든 세금도 면제한다. 도시 인프라 구축을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채권 발행도 계획 중이다. 파격 실험의 연속이다. 공개된 도시 조감도 한가운데에는 비트코인 심볼 형상을 한 중앙 광장이 자리한다.

그러나 고작 지난 1년 반 동안에도 암호화폐는 급등하고 침체했다. 가격 변동성은 비트코인 사용을 제한했고 여전히 법정화폐 자리를 대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비트코인 사용 위험성을 강조하며 엘살바도르를 향해 지속적인 경고장을 날리고 있다. 부켈레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와 비트코인 시티의 실현가능성에 대해 의구심과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3) 구성원 암호화

(사진: NFT로 글로벌 디지털 주민을 모은, 야마코시촌.
ⓒ Yamakoshi)

신도시를 건설하는 방식 외에도 기존의 마을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프로젝트도 있다. 일본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인구 800명의 작은 마을 야마코시(Yamakoshi)는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웹3 타운 설립을 선포했다. 웹3 타운 설립의 목표는 크게 네 가지다. 지역 과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다오 설립, 웹3 기술을 활용한 지역 화폐 발행, 고향세 환급을 위한 디지털 아트 NFT화, 웹3 기술 기업 지역 유치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인재를 마을 구성원으로 포함시키기 위한 시도다. 이를 위해 마을 대대로 내려온 문화유산인 비단잉어를 디지털 아트로 제작하여 1만 개의 NFT로 발행했다. 글로벌 디지털 관계인구를 늘림으로써 마을의 유산을 공동 유산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NFT는 마을의 디지털 거주 증명서 역할도 한다. 나가오카시의 공식 승인도 받았다. 비슷한 사례로는 북유럽 에스토니아의 전자 거주권인 E-레지던시가 있다. NFT 판매 수익금은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 자금으로 사용된다.

프로젝트 진행 1년 후, 실제로 디지털 세계 주민 수는 실제 야마코시에 거주하는 주민 수를 초과했다. 일본의 작은 산간마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이들이 1000명이나 더 생긴 것이다. 무엇보다 기존 법인 체계를 활용하면서 다오를 구현하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다만 NFT 판매가 지역 경제의 주수익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경제적 지속가능을 확립하기 위한 추가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세 도시에서 암호화 기술은 각각 도시의 토지, 화폐, 시민권과 결합했다. 이로써 디지털 네트워크 참여자들은 도시를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국경과 국적에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지구적 소유권과 민주적 거버넌스의 결합이다. 역동하는 도시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로 들끓는다. 전에 없던 역동성을 가진 새로운 도시들이 번영을 향해 꿈틀거리고 있다.






양애진경계 없는 세계를 꿈꾸는 프리워커.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을 찾아 세계 각지의 공동체를 다녔다. 미래형 촌을 꿈꾸며 팜프라를 공동 창업하고 도시 청년들이 촌 라이프를 실험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를 공저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여러 지역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도시와 촌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 로컬과 글로벌, 무브먼트와 비즈니스, 생태와 기술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며 통합된 미래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