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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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진의 커뮤니티 3.0

2023년 5월 30일

5. 지방 살림 위기와 자산 명시화




(사진: 양애진 x DALL·E)

지방 살림 위기

지방 살림이 위기다.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를 ‘재정자립도’라고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5월 기준 전국 지방자치단체 재정자립도는 45%에 불과하다. 부족한 재정은 중앙 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과 교부세로 채워진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방 재정의 중앙 의존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재정자립도의 감소는 지방소멸과 직결된다. 악순환이다. 국가 재정에 있어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는 제로섬 게임이다. 중앙은 지방의 돈줄이 되고 있다. 덩달아 지방에 대한 중앙의 입김이 강해진다. 지방 분권의 취지와 점점 어긋난다.

지방에 기반을 둔 기업과 프로젝트도 예외는 아니다. 청년마을 팜프라촌은 남해에 있었지만 남해군이 아닌 서울시의 ‘청년 지역교류 지원사업’으로 운영됐다. 현재 전국의 청년마을들도 대부분 중앙부처의 지원사업에 의존한다. 행안부의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 경쟁률은 2021년 10대 1에서 2023년 13대 1이 됐다. 지방소멸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 경쟁률은 점점 증가한다. 일견 지원사업이 유효해 보인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지원사업은 영원히 지원해주지 않는다. 지원사업을 받는 기간 동안 재정 자립을 해야 한다. 자체 수익 모델을 마련해두지 못하면 지원 기간이 종료되는 순간 동력을 잃게 된다.

재정 자립을 고민하다 보면 결국 ‘공공성이 먼저냐, 수익성이 먼저냐’ 하는 딜레마로 귀결된다. 청년마을 조성 사업은 애초에 공공성을 우선에 둔 지원사업이기 때문이다. 청년마을이라는 포지션이 비즈니스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는 것이다. 혹자는 지역 내 기업가 정신의 부재를 문제 삼는다. 비즈니스 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지방에 자산이 부족하다는 것은 착각이다.

죽은 자본을 살리는 ‘명시화’

자본은 명시화 기술로 만들어낸 발명품이다. 페루 출신 경제학자 에르난도 데스토는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간의 불균형에 기여하는 요인을 탐구했다. <자본의 미스터리>에서 그는 제3세계 경제 성장의 주요 장애물이 ‘소유권을 명시하는 시스템의 부재’라고 말했다. 빈곤국에서는 토지의 소유권이 불분명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고, 허가되지 않는 비즈니스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해 투자를 받기 어렵다. 재산권을 인정하고 보호해 주는 합법적인 재산 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그 결과, 자산을 소유하면서도 이를 경제활동에 활용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자산이 ‘죽은 자본’으로 존재한다.

자본은 단순히 축적된 자산 그 이상이다. 자본은 새로운 생산, 즉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의 잠재력’을 포함한다. 대표적으로 아파트를 떠올리면 쉽다. 아파트에는 물질적인 자질 외에도 사회적, 경제적 자질이 담겨있다. 개인은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부동산을 통해 손쉽게 거래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가치가 정보처럼 교환되기 위해서는 산업화된 표준이 필요하다. 아파트는 지역과 브랜드에 상관없이 대부분 몇 개의 유형으로 규격화, 표준화되어 있다. 덕분에 쉽게 조합하고 분할해 활용 가치를 증대할 수 있다.  

‘통합적인’ 소유권 기록 체계

자본은 인류의 추상력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자산이 자본이 되기 위해서는 자산의 잠재력이 ‘고정’ 되어야 한다. 시골에서는 주거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등기 없는 지어지는 건물이 지어지거나, 등기가 안 된 채 명의가 바뀐 집들도 많기 때문이다. 땅 주인과 건물 주인이 다른 경우도 있다. 명시되지 않은 불안전한 자산은 거래되지 못한다. 자본이 되지 못한 빈집은 자산의 물질적 가치를 다하면 결국 폐허가 된다.

산재한 정보는 하나의 체제로 통합될 때 누구나 접근 가능해진다. 시골에서 각 마을의 부동산 정보가 각 마을의 이장님들에게 흩어져있다. 부동산에 올라와 있는 매물은 한정적이다. 집주인은 대개 집을 부동산이 아닌 이장님에게 내놓는다. 결국 동네 이장님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한 다리 건너 대부분의 지역민을 알 수 있는 군 단위의 소규모 생활권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외지인의 시골 진입 장벽이 높은 이유이기도 하다. 생활권이 지구단위로 확장되는 오늘날에는 적합하지 않다.

디지털 시대 ‘데이터’ 소유권

이제 가상세계도 자본이 되고 있다. 메타버스가 화두에 오르기 훨씬 전부터 블로그를 사고팔고, 게임 아이템을 사고팔고, 인스타 계정을 사고팔았다.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으로 디지털 데이터에도 소유권을 명시할 수 있게 됐다. 소유권을 극소 단위로 분할해서 국경을 넘나드는 거래와 통합적 관리도 가능하다. 대표적인 예가 우크라이나 다오(DAO)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 금융 인프라가 막힌 극환의 상황에서도 블록체인 네트워크는 원활하게 작동했다. 서로를 신뢰하기 어려워질수록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장부의 중요성이 커진다. 블록체인은 전지구적인 공공 장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데소토는 초기부터 블록체인을 지지했다. 그는 제3세계에 일방적인 자선사업보다 자본화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 권리 설정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글과 전자화폐, 사이버 기호와 재산문서를 아무리 비난하고 혹평한다고 해도 결코 그것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명시화 체제를 더욱 단순하고 보다 투명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 에르난도 데소토 -

지방살림을 위하여

지방에 부족한 것은 보이지 않는 자산이 아니다. ‘자산을 추상화하는 능력’이다. 자산에서 자본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새로운 재산 메커니즘’이다. 오늘날 지방세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취득세(주택, 토지를 취득하는 경우 내는 세금)다. 그러나 과연 지방이 가진 자본이 ‘부동산’ 뿐인지는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당연시 여겼던 자원의 잠재적 가치를 포착하고 이를 명시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를 자산으로 인지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양애진경계 없는 세계를 꿈꾸는 프리워커.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을 찾아 세계 각지의 공동체를 다녔다. 미래형 촌을 꿈꾸며 팜프라를 공동 창업하고 도시 청년들이 촌 라이프를 실험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를 공저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여러 지역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도시와 촌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 로컬과 글로벌, 무브먼트와 비즈니스, 생태와 기술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며 통합된 미래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