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양애진의 커뮤니티 3.0

2023년 7월 11일

8. 새마을, NEW COMMUNITY

- 초기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과 전환의 길




(사진: 양애진)



농촌에서 종종 새마을 깃발을 만날 때면 묘한 이질감을 느끼곤 했다. 노란색과 초록색 보색 대비의 강렬한 새싹. 빛바랜 근대화의 상징이자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새마을운동이 시행된 지도 어느덧 50년이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새마을 깃발은 드높이 휘날리고 있었다. 심지어 산골 마을에도 새마을 지도자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새마을’은 영어로 ‘New Community’ 즉 새로운 커뮤니티다. 다가올 미래의 커뮤니티를 구상하고 있는 지금, 문득 반세기 전에 구상된 새로운 커뮤니티가 궁금해졌다.  

70년대판 뉴커뮤니티

대뜸 아빠에게 연락했다. 아빠는 광주 대문산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은 아파트가 즐비해져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에는 산자락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아빠가 국민학교에 들어갈 즈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빠가 기억하는그때의 모습은 이러하다. 매일 아침마다 “아침종이 울렸네~” 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일요일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거리를 청소하고 마을을 다듬었다. 매년 지붕을 갈이를 해야 했던 초가지붕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 무너져가는 돌담길은 반듯한 벽돌담으로 바뀌었고 길은 넓어졌다. 악취가 나던 하수도는 지하에 매설됐다. 구불구불하던 논은 바둑판 모양으로 바뀌었다. 모범 마을에는 표창을 수여했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는 다른 지역 사례가 방영됐다. 이를 보며 마을 사람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자극을 받았다. 아빠는 “단순히 돈만 준 것이 아니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크지.”라고 말하며 회상을 마쳤다. 의외였다. 새마을운동이 더욱 궁금해졌다.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 

초기 새마을운동의 성공요인

새마을운동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되었다.

  • 기반조성단계(1971~73): 생각(새마을 정신) 점화 & 생활 기반 구축
  • 자조발전단계(1974~76): 표준 환경 정비 & 생산 기반 확충
  • 자립완성단계(1977~81): 소득 기반의 완비 & 농가 소득원 확대

특히 인상 깊은 것은 새마을운동 정책이 시행된 배경이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도시는 산업화가 진행되고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반면, 농촌은 빈곤하고 뒤쳐져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도시로 떠났다. 도시와 농촌의 격차, 이농현상. 낯설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문제와 다름없었다. 초기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➊  인센티브와 등급제

(사진: 새마을운동 아카이브)

정부 주도형 새마을운동이 가장 먼저 집중한 부분은 주거 환경 개선이었다. 현대 낭만과는 달리 초가집은 가난의 상징이었다. 흙과 목재로 지은 초가집은 빗물에 쉽게 썩고 벌레가 알을 낳았다. 반면 시멘트는 근대화의 상징이었다. 마침 정부는 과잉 생산된 시멘트를 소비할 방법을 찾던 중이었다. 전국 34,000여 개의 농촌 마을에 시멘트 포대를 ‘균등하게 무상으로’ 배포했다. 단 사용 조건을 명시했다. 첫째, 마을의 공동사업에 사용할 것. (10가지 새마을 사업 프로젝트가 적힌 리플렛도 동봉했다) 둘째, 마을주민이 서로 합의하여 사업을 선정하고 자율적으로 추진할 것. 

이후 다음 해, 성과가 좋은 마을에는 시멘트와 현금 지원을 늘렸다. 참여도가 낮은 기초 마을은 지원을 중단했다. 경제학자 좌승희는 <새마을운동 왜 노벨상감인가>에서 이와 같은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차별화’가 새마을운동의 성공 요인이라고 강조한다.열심히 하면 상을 준다는 ‘획득 프레이밍’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약속한 보상도 빼앗는다는 ‘손실 프레이밍’이 모두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을유형을 기초마을, 자조마을, 자립마을의 3단계로 구분했다. 수능 마을 버전인가 싶었는데 차이가 있었다. 상대적 기준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에 따라 판단했다. 승급 기준은 구체적이었다. 등급에 따라 인센티브를 달리했다.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카너만의 ‘전망 이론’에 따르면 불확실한 이익보다 확실한 손실이 더 강력한 동기부여의 수단이 된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며 시큰둥하던 마을도 다른 마을이 발전하는 것을 보고 질세라 동참했다. 그 결과, 1977년에 이르러 모두가 자조·자립마을이 되었고, 기초마을은 사라졌다. 

➋ 새마을 지도자와 새마을교육

리더의 중요성은 특별히 더 강조됐다. 새마을 지도자는 마을 내 구심점이자, 마을 간의 네트워크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민간내 리더 TV도 라디오도 귀했던 시기에 새마을 지도자는 실질적으로 마을에 정보를 전해주는 창구였다. 교육 대상자는 새마을남녀 지도자, 말단공무원, 교수, 대기업 회장까지 각계각층인사로 구성되었다. 실제 성공 사례 발표자가 주인공이 됐다.

➌ 새마을 부녀회

새마을운동은 그동안 배제되었던 당대 여성들을 사회에 동참시켰다. 새마을 부녀회장이 되면 면사무소를 나가고, 해외 연수를 다녀왔다. 새마을 부녀회를 통해 여성은 담장과 마을을 넘어 중앙정치와 연결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새마을 지도자가 새싹의 중심 뼈대였다면, 새마을 부녀회는 새싹의 뿌리이자 근간이었다. 여성들이 밥을 지을 때마다 쌀을 한 줌씩 저축하던 ‘절미 운동’은 ‘절미 통장’이 되어 돌아왔고 부녀회와 마을 공동기금이 되었다. 우수마을로 선정되는 데 있어 가장 우선 조건은 마을공동기금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여성은 집안 살림을 넘어 마을 살림의 주역이 됐다.  

새마을운동의 한계

새마을운동은 ‘잘살기’라는 목표 아래 농촌 환경을 개선하고, 농민 의식을 개혁하고, 농업 소득을 개발했다. 생활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생산을 바꾼 통합 전략이었다. 농촌 생활환경이 개선되고, 농가 소득에 있어서도 소기의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지나친 성과주의로 인한 부작용도 피할 수 없었다. 목표치 달성에만 혈안 되어 강제로 주민들을 동원하고 사업을 이행하는 무리한 실적 쌓기가 감행됐다. ‘자조’를 강조했으나 자원을 무상 제공받는 기간이 늘어날수록 되려 농촌 공동체의 외부 의존성은 높아졌다.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농촌 마을 단위에서 소기의 성공을 거둔 새마을운동은 도시와 공장으로 확산됐다. 도시와 농촌 간의 격차 완화,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애초의 목적은 사라지고 기존 문제는 되풀이 됐다. 

무엇보다 새마을운동은 농촌근대화 운동이었다. 서구적 근대화의 가치는 농촌의 일상과 생활세계에도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농촌 공동체 내에서도 효율성과 합리성이 최우선의 가치가 됐다. 서낭당, 당산나무 같은 마을의 오랜 전통과 풍습은 비효율, 비합리적이라는 이유로 악습 취급 당했다. 굿은 금지당하고, 서낭당은 불태워졌다. 남은 것은 영성과 공동 가치관의 부재, 생활 경제가 무너지고 무한 자산 증식 시스템에 귀속된 농촌과 도시, 그리고 파괴된 생태계다.

방향 전환 : 새마을운동에서 생명평화운동으로

방향을 전환할 때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앞으로의 새마을운동은 어떠해야 할까? 1970년 경제개발 시대의 적은 ‘절대적 빈곤’이었다. 2023년 기후위기 시대의 적은 ‘우리 자신’이다. 정성헌 전 새마을운동중앙회 회장은 2018년 새마을운동을 생명평화운동으로 전환했다. 기존의 근면·자조·협동을 자세로 삼아 생명·평화·공경의 가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잘살기’의 정의도 바꿔야 한다. 경제 발전의 ‘경제’는 돈벌이 경제가 아닌 살림살이 경제로 정의되어야 한다. 생태적 한계선도 고려해야 한다. 마을공동체를 넘어 지구적 공생을 꿈꿔야 한다.

방법 전환 : 경쟁에서 협력 메커니즘으로

방법도 전환해야 한다. 초기 새마을운동은 잘한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자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따랐다. 흡사 ‘잘살기 경쟁’을 치르는 전국 체전이었다. 스포츠 게임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위한 엄정한 규율 준수가 필수다. 하지만 공동체는 스포츠팀이 아니다. 실제 사회는 완벽하게 공정하지 않다. 더는 경쟁할 자원도 남아있지 않다. 유한한 자원 앞에서 모든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다. 진정 잘 살기 위해서는 경쟁 대신 협력을 유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절실한 것은 경쟁력과 개별성이 아닌 ‘협력과 사회성’이다. 

1970년대는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의 시대였다. 싹을 하나라도 더 틔워내기에 급급했다. 씨앗을 왕창 뿌려두고 가능성이 있는 싹에게 비료를 더 주는 식이었다. 이제는 네이션(Nation) 이후의 네트워크(Network) 시대다. 너무 빽빽하게 심은 나무는 오히려 잘 자라지 않는다. 나무들은 햇빛과 영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기보다 뿌리와 균근 연결망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돕는다. 싹 틔우기는 이만하면 충분하다. 대신 시선을 아래로 돌리자. 새싹의 뿌리와 지구를 보자. 







양애진경계 없는 세계를 꿈꾸는 프리워커.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을 찾아 세계 각지의 공동체를 다녔다. 미래형 촌을 꿈꾸며 팜프라를 공동 창업하고 도시 청년들이 촌 라이프를 실험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를 공저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여러 지역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도시와 촌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 로컬과 글로벌, 무브먼트와 비즈니스, 생태와 기술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며 통합된 미래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