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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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애진의 커뮤니티 3.0

2023년 7월 25일

9. 기독교와 비트코인

- 초기 기독교운동의 급성장 요인과 비트코인 커뮤니티




(사진: 양애진 x DALL·E)



오늘날 세계 최대의 종교는 기독교다. 기독교인 수는 26억 명에 육박한다.(2023년 기준) 자그마치 전 세계 인구의 33%다. 3명중 1명은 기독교인인 셈이다. 예수의 출생지였던 갈릴리 나사렛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외진 시골 마을이다.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며 이방 지역으로 인식했다. 변방의 소규모 네트워크로 시작한 기독교는 어떻게 세계 최대의 종교가 될 수 있었을까?

1세기 발흥 : 기독교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발흥>에서 초기 기독교의 급성장 요인을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했다. 먼저 그는 기독교가 첫 5세기 동안 10년마다 40%씩 성장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3세기 후반이 되자 성장 속도는 급격히 가속됐다. 250년 로마인구의 2%에 불과했던 기독교 신자는 350년이 되자 50%가 됐다. 380년에 이르러 기독교는 로마 제국의 공식 종교가 되었다. 신자 수가 급등했던 100년의 역사를 두고, 기적 같은 대규모 집단 개종의 결과라는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네트워크의 결과임을 주장했다.  

➊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반

기독교가 하층민을 중심으로 성장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초기 기독교는 사회적 지위와 특권을 가진 중상류층을 대상으로 성장했다. 종교는 세계관이자 문화다.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이는 일은 일정한 교육 수준을 필요로 한다. 기성사회의 빈틈을 발견할 수 있어야 결핍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대안 교육에 열성적인 학부모들은 대개 높은학력의 소지자였다) 현대 미국 신종교 집단에서도 고학력자 비중이 타 종교에 비해 월등히 높다. 로마 시대에 물질적 안정과 풍요를 누리지만, 자유의 제약이 존재했던 이들이 초기 기독교 운동의 중심이 됐다. 대표적으로 귀한 신분의 여성이었다. 초창기부터 기득권층이 포진해 있었던 덕에 기독교의 탄압은 쉽지 않았다.  

❷ 수평적인 애착관계 네트워크

그렇다고 초기 기독교가 엘리트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상층부의 소수 지도자가 아닌, 개개인이 주체가 되는 일종의 대중운동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전도를 하며 네트워크를 넓혀갔다. 개종에 있어 교리 설파보다 앞선 것은 친목 형성이다. 우리는 똑똑한 사람 보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따르고 싶어 한다. 좋아하는 상대방과 더 일치되고자 하는 마음이 개종이라는 행동으로이어지는 것이다. 사상에 대한 애착은 그 이후의 일이다. 더군다나 지인의 추천만큼 상품 혹은 종교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는 장치도 없다. 입소문으로 형성된 구매력은 쉽게 죽지도 않는다. 기독교는 애착 관계를 통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통로는 좁을지언정, 지속적으로 단단하게 외부 사회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❸ 디아스포라가 선호한 ‘문화적 연속성’

첫 개종 대상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다. 기독교는 초기부터 유대교와 독립적인 노선을 걸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주류 유대인을 포섭하면서 성장했다. 민족적 정체성이 끊어진 디아스포라 지역사회에서 유대교와 유사한 기독교는 기존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절충형 선택지가 됐다. 개종은 비용은 최소화하면서 최대한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합리적인결정이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의 주요 거주지였던 소아시아와 북아프리카 도시는 첫 4세기 동안 기독교 운동이 가장 활발했던 곳임이 증명됐다.

❹ 무너진 사회 속 ‘새로운 안전망’

두 번의 대규모 전염병이 로마 제국을 강타했다. 사회적 위기는 신앙의 위기로 발전했다. 사람들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하면, 그동안 당연시 여겨왔던 모든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종교에서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는다. 기독교는 역병은 삶에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시련과 유혹’으로 여겼다.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2-12)고 말했다. 대신 시험을 통과하면 내세의 ‘천국’이 약속됐다. 기독교의 사랑과 선행의 가치관은 사회봉사라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옮겨졌다. 역병이 들끓은 도시에서 사람들은 병든 가족조차 버리고 떠났다. 기독교인들은 병든 이를 간호하며 스스로 사회적 안전망이되었다. 덕분에 기독교인의 생존율은 이교도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기독교를 선택하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기도 했다. 역병으로무너진 인적 네트워크는 기독교 네트워크로 대체됐다.

❺ 여성 계급 해방과 높은 출산율

당시 이교도는 결혼을 폄하하는 여성 학대적인 문화였다. 남성은 결혼 후에도 혼외정사를 즐겼고, 여성은 남성의 법적 소유물이었다. 영아 살해는 합법적이었고 낙태는 여성 사망의 주요 원인이었다. 반면, 기독교는 결혼을 신성시하며 여성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높였다. 영아 살해와 낙태를 금지했다. 이혼과 일부다처제를 죄악시 함으로써 집단 내 성비 균형을 이뤘다. 많은 여성의 기독교로의 개종이 이뤄졌고, 기독교 내 여성 비중이 높았다. 이는 족외혼을 통한 2차 개종자(남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가족지향적이며 출산장려적인 기독교의 관점은 출산율을 높였고 자연스레 기독교 신자는 점차 증가했다.  

❻ ‘고비용’ 기여와 높은 보상감

로마 제국은 다원성 과잉의 시대였다. 수많은 종교가 난무한 나머지, 사람들은 특정 종교에 큰 기여하기를 꺼렸다. 문어발식 기여는 각각의 종교 자원을 축소시켰다. (소속된 온라인 커뮤니티가 늘어난 만큼 관계의 층은 얄팍해져 가는 우리 사회 모습이 겹쳐진다) 커뮤니티의 지나친 증가는 커뮤니티의 해체와 다름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는 신도들의 무임승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집단 활동 참여를 구했다. 종교는 다수의 믿음으로 만들어지는 집단 생산재다. 집단 활동은 구성원에게종교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소속감을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고비용 기여는 보상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1세기 발흥: 비트코인

서기 1세기 기독교는 21세기 비트코인으로 이어진다.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의 신흥종교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이라는 화폐현상, 그 위에는 종교현상이 자리한다. 오태민 교수는 비트코인 커뮤니티의 성장이 신흥종교의 발흥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먼저, 비트코인은 탄생 10년 만에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걸쳐 1억 명의 유저를 보유한 국제적인 커뮤니티다. 기독교가 첫100년 동안 이룬 성장을 비트코인은 10년 만에 이룬 셈이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비트코인의 폭발적 성장을 예견하지 못했다. 다음으로, 비트코인은 탈중앙 이념을 바탕으로 한 수평적 네트워크다. 인터넷에 연결된 기기만 있으면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 비트코이너들은 비트코인을 ‘메시아’로 여기며 ‘포교’ 활동에 나선다. 높은 채굴 비용에 따른 보상이 주어진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종말이 다가올 때, 비트코인 보유자들은 더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각종 이단들(알트코인)이 존재한다.

눈여겨봐야 할 차이도 있다. 2015년 코인데스크에서 진행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비트코인 보유자 중 90% 이상이 남성이고, 65.8%가 백인이다. 또한 상당 비율로 학사 학위 이상을 가지고 있으며, 소득 수준도 높다. 정리하자면, 비트코이너들은 젊고 기술에 정통한 백인 남성이다. 여성이 높은 비중을 이뤘던 초기 기독교와 달리 비트코인 커뮤니티 내 여성 비중은 10%도 되지 않는다. 로마는 극심한 성비 불균형으로 인해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저출산 이전에 불평등한 성관념이 있었다. 반면 초기 기독교 운동과 앞선 칼럼에서 살펴봤던 초기 새마을 운동 모두 소외됐던 여성의 능력을 사회로 확산했다.

연결의 역설: 연결될수록 분절된다

혹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네트워크의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네트워크 연구자 매슈 잭슨은 <휴먼 네트워크>에서 이상과는 반대로 네트워크는 세습보다 강력한 불평등 기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술의 진보는관계 형성 유인을 변화시킨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범지구적인 연결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네트워크는 더 분열되기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사람들과 모이기를 선호하는 ‘동종 선호’ 때문이다. 또한 중심성은 중심성을 낳는다. 많이 연결된 사람일수록 더 많은 연결이 보장된다. 네트워크 복리 효과다. SNS 팔로워 수가 많은 사람이 팔로워 수가 적은 사람보다 증가율이 더 높은 이유다. 네트워크라는 사회적 자본은 다른 자본(금융, 문화 등) 획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플루언서일수록 광고, 취업 기회, 협찬 등이 많아진다. 양극화가 심화된다. 결과적으로, 비트코인의 탈중앙 이념은 신화가된다. 초기 여성 계급 ‘제한된’ 해방을 주도했던 기독교는 아이러니하게도 현대 가부장제의 원천이 된 것을 떠올려보자. 기술적대안이 기존 질서의 문제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심화하는 것은 아닌지 고심해 볼 필요가 있다.  

통합의 인내: 사랑과 자비

초기 기독교 성공의 핵심 요소는 교리였다. 1세기 로마는 죽임이 유희로 전락한 시대였다. 관습적인 이교도의 잔인성을 지양하는 기독교의 미덕은 그 자체로 대체 불가한 보상이 되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레 19:18)고 말하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다. 21세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점차 파편화되고 있다. 지나친 다원화는 사회 해체의 원인이 된다. 나와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애정이 필요하다. 끊어져가는 연결망회복에 힘써야 한다. 통합의 인내가 절실히 요구된다.







양애진경계 없는 세계를 꿈꾸는 프리워커. 대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삶의 방식을 찾아 세계 각지의 공동체를 다녔다. 미래형 촌을 꿈꾸며 팜프라를 공동 창업하고 도시 청년들이 촌 라이프를 실험하는 마을을 만들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판타지 촌 라이프』 를 공저했다. 이후 서울로 돌아와 여러 지역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도시와 촌을 잇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자연과 문명, 로컬과 글로벌, 무브먼트와 비즈니스, 생태와 기술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며 통합된 미래를 모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