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6월 20일
0. <책머리에>

습(習)이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이른 새벽에 글을 썼다. 루틴과 리추얼, 3-4시에 일어나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시고는 30분 정도 빙의에 들어갔다. 마인드셋, 최대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어보고자 뇌의 상태를 리셋한 것이다.
음악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매일 아침 새 음악을 찾아 브레인 샤워를 흠뻑 했다. 피터 틸을 쓸 때는 에픽(Epic) 뮤직을 들었다. 고독한 영웅의 서사시를 떠올리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맥스가 어울렸다. 일론 머스크는 우주 음악이다. <인터스텔라>의 OST에서 출발하여<스타 시티즌>같은 SF게임의 BGM까지 통달했다. 알렉스 카프를 집필할 시기에는 만트라에 집중했다. 티베트의 목탁소리부터 히말라야 고승들의 염불까지, 빅데이터와 화엄세계를 잇는 불교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JD 밴스는 단연 찬송가였다. 그레고리안 성가로 시작하여 바흐와 헨델 등 바로크 음악이 어울렸다. 에필로그를 작성할 때는 하이든의 오라트리오 <천지창조>를 거듭하여 들었다.
새삼 실감치 않을 수 없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 무수하게 많다. 그런데 이토록이나 간편하게 찾아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새벽 3-4시만 되면 나의 유튜브 뮤직이 자동적으로=자연스럽게 오늘 아침에 들을 법만 새 음악을 추천해 주고 있다. 마치 새날을 지저귀는 숲 속의 새소리처럼 말이다. 필시 그 AI 알고리즘이 나의 오가니즘에도, 사고에도, 기분에도, 문체에도, 글의 내용과 리듬에도 알음알음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파트너로서, 에이전트로서 함께 작업한 것이다.
하루치 목표 분량을 달성하면 하늘 아래서 달리기를 했다. ‘과학자의 길’을 따라서 러닝을 하다 보면 가끔은 나조차도 참으로 신기하게 여겨졌다. 어쩌다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일까. AI 데이터센터와 바이오랩 연구소와 양자변환연구단과 신재생에너지실험실과 우주항공산업단을 스쳐 지나간다. 하나같이 현재 내가 가장 관심이 큰 분야들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과도 관련성이 무척 큰 지점이다.
인류가 세 번째 물질개벽을 통과하고 있다고 여긴다. 첫번째 물질개벽은 철기혁명과 농업혁명이었다. 인류는 기독교와 불교와 유교 등 문사철(文史哲)로서 정신개벽을 이루었다. 두번째 물질개벽은 전기혁명과 산업혁명이었다. 인간은 법학을 근간으로 정치학과 경제학과 사회학 등 사회과학으로서 응전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로 또 다른 정신개벽을 이루었다. 세 번째 물질개벽은 총기(지능)혁명과 디지털혁명이다. 기계가 생명이 되고, 기술이 인간을 능가하는 특이점이 임박했다. 아직은 그 AI 문명에 부합하는 정신개벽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온 세상이 이토록 요란한 것이다. 생산력이 폭발할 때마다 치러야 했던 인류의 집단적 성장통이 소란하다.
적어도 미국서만큼은 변화가 시작된 것이라 보인다. 기존 산업문명의 공식과 상식에는 한참이나 어긋나는 비상한 인물들의 발랄하고도 발칙한 역발상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고 있다. 내가 그들의 생각 전부를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함에도 그 선구자들의 외로운 고투와 뜨거운 분투만큼은 아낌없이 성원을 하는 쪽이다. 관습적인 사고로 섣불리 비판하기보다는, 응원하는 마음으로 면밀하게 경청하고 주시해 보고자 애를 썼다.
트럼프의 취임식을 보고 집필을 시작하여 레오 14세의 즉위식을 보고 마침표를 찍었다. 워싱턴의 대통령과 바티칸의 교황, 건국 250주년을 목전에 둔 미국에 두 개의 태양이 떴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까지 고려하면 근 6개월 동안 미국의 새로운 생각들에 푹 빠져서 지낸 것이다. 그 시간은 12.3 비상계엄 선포부터 6.3 조기 대선까지 한국 정치사의 격동기와도 오롯하게 포개졌다. 자연스레 미국과 한국을 곁눈으로 관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저들에게는 AI혁명이 촉발하는 디지털 신문명의 OS(운영체계)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사람과 사상과 철학이 있다. 아직은 진행형, 비록 완성되지는 못했을 망정 패러다임 전환의 문제의식만큼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탐구하고 탐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새로운 담론과 새로운 세력이 부재하다. 과거사 청산과 적폐 청산에 이어 이번에는 내란의 청산까지, 다시금 종식과 청산이 화두가 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청사진이 없음을 재차 뼈아프게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다시 ‘그때 그 사람들’이 속속 복귀하고 있다. 1987년 이래 누습이 너무나도 오래되었다. 각 방면에서 수북하게 쌓여 있는 청구서들이 한꺼번에 밀어 닥칠 것이다. 과연 감당해낼 수 있는 실력이 있을까. 부디 이제는 이제부터는 진짜로 달라져야 하지 않을지.
그래도 미국에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저대로 폭삭 주저앉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을 찾아보라고 하셨다.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새로운 문명을 일구는데, 미래가 원하는 미래를 창조하는데 다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도 하셨다. 소수의 정예, 똘똘 뭉친 서너 명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과연 지금도 그러한 개척자들이 미국에 남아있을까?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그럼에도 미국을 재차 주목해 보라는 말씀은 두고두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아침 6시, 창덕궁 위로 떠오르는 태양의 햇살을 맞으며 백발 성성한 그 분과 나눈 대화들이 이 책의 씨앗이 된 것이다. 그 분과의 압축적인 학습 덕분에 기왕의 지식인과 기존의 정치인과는 다르게 이 세상을 바라보고 사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인생의 세 번째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태재홀딩스 조창걸 회장님께 열 번째 책을 드린다.
2025년 5월 29일 05시 20분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에 이어
세 번째 노벨상을 준비하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에 이어
세 번째 노벨상을 준비하는 광주과학기술원(GIST)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