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7월 7일

1. 나는 나를 심화한다

- 연재를 시작하며






지구하러 가는 길

매주 수요일 대학 강의가 끝나면 나는 강을 건넜다. 한강을 건너 광화문을 지나 북한산 부근에서 어스십(인간이 지구와 갖는 관계성)[1]을 배웠다. 처음에는 북악 터널 지나 부암동이었다. 자연으로부터 태어나 자유로워진 인간들이, 자율화한 기계를 마주하여 자각하기를 꿈꾸는,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개벽’청년들을 기른다는 곳이었다. 개벽’학당’은 내가 군대에 있는 사이 ‘Earth+’라는 이름을 거치더니 ‘지구대학’ 타이틀을 달고 문을 열었다. 평창동과 삼청동에서.

나에게도 문이 열렸다. 부대에서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될까 싶어 취득한 한자, 영어, 엑셀, 한국사 아닌 지구를 배우는 것이 그리웠다. 지구대학 커리큘럼은 지구학, 미래학, 개벽학 이렇게 세 분야로 나눠서 전개되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개벽학 수업이 진행되었다. 이번부터 총 12번 연재되는 글은 다른백년의 대표이자 지구대학의 수장인 로샤(이병한)의 선정도서로 쓴 서평들이다. 매주 한 권씩 읽은 책들을 한 편마다 순서대로 다룬다. 책과 주제, 둘 다 그에게서 왔으니 나는 ‘로샤 키즈’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오히려 그렇게 불러주시면 감사하다고 할 수 밖에.



어스십 키즈의 도전 열 편

그래도 마냥 강의에서 나온 이야기를 옮겨 적는 글은 아닐 것이다. 나에게도 ‘생각’이 있다. 우선 이번 학기는 여러모로 나에게 최적화된 주제라는 생각이 있다. 첫모임 날 앞으로 읽어갈 책 목록을 보며 의외인 점이 있었다. 이름은 개벽학인데 ‘개벽학당’할 때 배웠던 개벽학 도서 혹은 개벽사상서가 한 권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 오히려 ‘자연과학’ 경계 안으로 분류될 수 있는 책들 밖에 없었다. (그래서 학교 도서관 맨 꼭대기에 있는 자연과학 자료실만 매주 들렸다.) 그것들은 아주 실용적이고 또 매혹적이었다.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내 삶에 변화가 한 개씩 일어났다. 나는 명상을 하거나, 채식을 하는 이유를 질문 받을 때마다, ‘안 할 이유가 없어서 한다’고 답한다. 이번에는 책을 읽고 예를 들어 감자칩을 끊었고 ‘서서 일하기’로 정착했다. 라이프스타일 계의 ‘얼리어답터(early adopter)’라고 스스로를 내세우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엄청난 체험이나 지난한 여정이 없어도,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내면에 우물을 깊게 파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서평에는 한편으로 먼저 독자였던 나의 변화 일지도 함께 담길 것이다.

심화하는 자기

여기까지만 보면 책 읽고 토론하며 자기계발하는 집단으로 지구대학이 비춰질 수 있을 것 같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머리에 지식만 가득 차서 떵떵거리는 것보다는, 몸과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어제보다 더 나은 한 사람이 되는 게 나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많아지면 더 나은 만남을 가질 수 있고, 그러면 더 나은 사회 그리고 더 나은 지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옛 유교 경전인 『대학(大學)』에서도 몸을 닦는 것과 세상을 평화롭게 하는 것을 연속된 흐름으로 보지 않았는가···. 명상과 채식이 사회적이고 지구적인 행동인 것처럼.

개벽학의 자아는 이 같은 관계망을 인식하고 존재적 ‘중첩’[2]을 이루고자 한다. 그리고 현대의 최신과학은 이것이 물리적으로 가능하다고 뒷받침한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뇌 안에는 세계를 자타가 없는 에너지장으로 파악하는 모듈이 있고, 장 안에는 신체의 물질 흐름을 파악해서 특정한 심리 상태를 창출하는 생체들이 있다. 생명의 역사로부터 우리 인간은 자아를 얻었다. 이 자아는 많이 배워서 성장할 수도 있고, 크게 행해서 성공할 수도 있다. 또한 세계에 깊게 뿌리 내려서 자기를 심화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심화하는 자아’(deep Self)가 주인공이다.



[1] 김현아, 어스십(Earth-ship) – 생명의 얼굴, 한겨레,, 2022.5.4.

[2] 양자물리학의 용어. 중첩이란 단어를 쓴 이유는, ‘초월’, ‘도약’과 같은 말이 이전에 놓인 영역을 부정하는 뉘앙스를 갖기 때문이다. ‘자아의 심화’는 특정한 상태에 도달하면 종료되는 목표가 아닌 개체와 전체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두 상태에 접속하고 연결됨으로써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상태’를 지향한다.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263812490664269511/







배선우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