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2월 3일

1. MAGA 2.0 : 뉴아메리카가 온다






(사진 출처: New York Times)

1. 정치전쟁 : 문화대혁명

TRUMP IS BACK.

트럼프가 돌아왔다. 2016년에는 겨우겨우 이겼다. 2020년에는 아슬아슬 패했다. 하지만 2024년 이번에는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백악관 탈환은 물론, 상원과 하원까지 모두 석권하며 조야(朝野)를 완전히 평정한 것이다. 신승과 석패에서 압승으로, 삼세판을 종결지으며 트럼프는 미국의 12년을 지배하는 시대정신이 되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MAGA의 복음이 온누리에 드높게 울려 퍼진다.    

미국인들의 절망과 좌절이 간절하고 간곡하게 복음을 구했다. 수십년 고삐 풀린 세계화와 탈산업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학력과 지역간 격차는 나날이 확대되었고, 미래세대가 부모세대보다 잘 살 수 있다는 희망도 사라져버렸다. 계급사회를 넘어 ‘봉건사회’로 전락했다는 자조마저 만연했다. 자살과 마약중독과 과음에 의한 간질환 등 ‘절망사’가 전염병처럼 번져갔다. 고졸 백인 노동자의 사망률마저 올라가는 ‘선진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퇴행마저 일어났다. 아메리칸 드림이 꿈 같은 소리가 된 것이다. 미국이 더 이상 미국이 아니게 되었다.

21세기의 미국이 ‘실패국가’가 된 것은 워싱턴을 장악한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공모한 결과이다. 네오콘의 보수도, 네오리버럴의 진보도 내부보다는 외부에 더 가까웠다.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글로벌 엘리트들이 본토의 풀뿌리와 토박이들을 착취한다. 기업의 경영자들은 공장을 중국과 아시아로 이전해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었고, 국가의 경영자들은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끝없는 전쟁에 세금을 퍼부었다. 그 대가를 오롯이 내륙에 살고 있는 평범한 백인들이 감내해 왔던 것이다. 월스트리트의 경제엘리트와 워싱턴의 정치엘리트들이라면 지긋지긋 넌덜머리를 내었다. 어차피 파워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빌어먹을 세상, 자신들의 목소리는 정치에 도통 반영되지 않았다. 딥스테이트(Deep State), 이 나라의 실제 권력은 보이지 않은 곳에 숨겨져 있다는 음침한 음모론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바로 그때 그가 임재하신 것이다. 그는 동부와 서부의 대도시에 살아가고 있는 중산층 교양계급처럼 고상하고 세련되게 말을 하지 않는다. 거칠고 투박하며 직설적이다. 그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종족이다. 비록 수많은 사법 리스크가 있고, 도덕적 흠결과 인격적 결함도 있는 인물이지만, 그간의 정치 엘리트들과는 달리 위선적이지는 않았다. 그 친근하고 유명한 셀렙이 AMERICA FIRST!를 외치며 기성의 기득권을 정확하게 비난해준 것이다. 정당과 언론과 대학 등 현재의 모든 정치, 경제, 문화적 문제들을 야기한 미국의 주류 세력들을 세차고 대차게 때려주자 도파민이 폭발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랬던 그가 평생토록 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계급의 화신, 바이든에 도저히 질 수가 없었다. 선거는 다시 한번 조작된 것이다. 부정선거이자 국정농단이다. 딥스테이트와 파워엘리트가 개입한 거대한 페이크이다. 2021년 1월 6일, 강경한 지지자들은 지도자의 지침에 따라 내란을 일으켰다. 연방의회를 점거하여 전 세계를 아연실색 경악케 하였다. 그러나 팩트와 페이크의 경계는 갈수록 흐릿해지고 있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다수가 믿으면 ‘대안적인 진실’이 된다. 포스트-트루스(Post-Truth), 디지털 시대의 신민주주의이다. 구독과 좋아요, 조회수와 리트윗이 관건이다. 응당 정치 또한 달라져야만 한다. 모름지기 정치인이라면 팩트와 페이크 너머 판타지를 제공해야 한다. 리더라면 국민들에게 미래의 꿈을 선사해 주어야 한다. 그분이야말로 미국인들에게 다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게 해주셨다. FIGHT! FIGHT! FIGHT! 귓가에 총알이 스쳐도 피를 흘려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승리를 다짐하는 불굴의 지도자에게 더욱 열광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웃사이더 트럼프는 새천년 신민주의 아이콘이자 밈(meme)으로 승화하셨다.   

2025년 1월 20일, 불사조 트럼프의 재림과 함께 의사당을 점거한 모든 이들도 죄를 사하노라, 사면을 받았다.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반란에는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중앙이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다면 지방이 조반해서 중앙으로 진공해야 한다. 각지에서 수많은 손오공을 보내어 천궁을 소란하게 해야 한다.” 반세기 전 마오쩌둥이 홍위병들에게 지시했던 어록이 아메리카에서 현실로 재연되었다. 미국판 문화대혁명이 승리한 것이다. 농촌이 도시를 포위했다. 변방이 중앙을 장악했다. 내륙의 지방이 동해와 서해의 대도시를 이겼다. 대륙의 심장부가 해양의 껍데기를 몰아내었다. 기득권 사법 카르텔의 법치주의를 누르고 보통사람들의 다수결 민주주의가 승리하였다. 업사이드 다운, 민중이 엘리트를 압도한 것이다. 흑백의 계급전쟁에서 땀냄새 폴폴 풍기는 아랫사람들이 고상한척 먹물들을 전복시켰다. 시민이 아니라 인민이 승리하였다.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인민민주주의가, 민중민주가 PD(프롤레타리아 데모크라시)가 불현듯 미국에서 구현된 것이다.

(사진 출처: BBC)

즉 트럼프가 개조한 공화당은 더 이상 과거의 엘리트연합 시민정당이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반세계화를 부르짖는 인민정당이다. 그 인민정당이 낡아빠진 기성 정당을 죄다 무찌르고, 늙어버린 레거시 미디어의 편파방송과 여론조작을 무릅쓰고 마침내 새로운 미국, 인민공화국을 이루어 낸 것이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이로써 미국은 더 이상 저 멀리 대서양 건너 서구형 시민민주 국가가 아니다. 가까운 파나마 운하 주변 중남미형 인민민주국가, 바나나 공화국에 방불하다.

2. 문화전쟁 : 위정척사

인민만이 아니었다. 지식인도 거들었다. 인민들이 계급전쟁을 수행했다면, 민중의 전위인 지식인들은 문화전쟁에 앞장섰다.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다문화주의와 PC(정치적 올바름)주의를 집중적으로 타격했다. 꼿꼿하고 꼬장꼬장한 선비정신으로 내로남불 리버럴과 깨어 있는 좌파(woke left)들을 타도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에 나선 것이다.

MAGA 복음 제1장은 민족주의이다. 글로벌리즘을 척결하고 내셔널리즘을 내세운다. 2016년 2월 돌연 등장하여 125편의 짧은 글을 올리고 6월 하순에 홀연히 사라진 온라인 저널이 하나 있었다. Journal of American Greatness, 일명 JAG이다. 모든 글에는 라틴어 필명을 사용하였는데, 트럼프 현상에 대하여 사상적인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당시에는 네오콘 등 공화당의 보수파 지식인들도 트럼프를 멀리할 때이다. 리버럴 미디어들은 반지성주의나 포퓰리즘으로 트럼프를 난타하던 무렵이다. 일군의 지식인들이 게릴라처럼 등장하여 사상투쟁에 나선 것이다. 중구난방 갈피를 잡기 어려운 트럼프의 비전을 세 가지로 간명하게 요약해 주었다. 국경을 강화한다. 자국의 산업을 보호한다. 외교도 미국이 우선이다. 자유주의 패권국가 노릇을 하느라 골병이 들어가는 이 나라를 되살려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자는 것이다. 즉 트럼피즘의 핵심은 ‘세계시민의 자유’가 아니라 ‘미국인민의 안전’이다. 강성대국의 주권과 주체가 요체이다. 트럼프는 그 미국판 NL, 민족해방의 수령이 되셨다.  

MAGA 복음 제2장은 반자유주의이다. 민주당이 주도하는 ‘정체성 정치’가 공동체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탈냉전으로 이념적 대결이 사라진 공간에 좌파들은 진보적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했다. 환경보호, 젠더 감수성, 인종간 평등, LGBTQ(성적 소수자)의 권리 등에 대한 의식이 높아졌다. 동성혼과 성전환 권리와 이민자 권리 등 마이너리티의 위세가 드세졌다.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정책으로 종교와 문화에서 관용도가 올라가면서 자유와 인권의 폭이 크게 신장된 것이다. 이러한 진보적 가치관의 대약진에 고령층, 특히 이제까지 문화적 다수파로서 특권을 향유하던 신앙심 두터운 백인들은 커다란 위협을 느꼈다. 전통적 가치관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부정당한 것이다. 어느새 자신들의 모국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낯선 감정마저 싹터 올랐다. 이게 나라냐? 이것이 미국이냐? 토착적인 것의 대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가정에서는 가장과 부모의 권리를 옹호하고, 학교에서는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는 전통적 가치를 옹립했다. 그래야 진보의 진군으로 무너진 가족을 복원하고, 무질서한 교실을 복구할 수 있었다. 사회질서의 재정립을 역설하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문화적 반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자유주의 기치 아래 승승장구하던 엘리트와 마이너리티는 반국가세력의 표적이 되었다.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했다. 

MAGA 복음 제3장은 다문화주의를 겨냥한다. 탈냉전기 다문화주의는 경제적 세계화를 지탱하는 주류세력의 문화 전략이었다. 냉전에서 승리하여 압도적 패권국이 된 미국을 진정으로 다인종 민주주의 제국으로 건설코자 한 것이다. 다종교, 다민족, 다문화를 품는 세계제국으로 진화하고자 했다. 그 시대정신의 상징이 바로 검은 피부의 버락 오바마였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인도네시아)에 뿌리를 둔 흑인 소수자이며, 이름마저 어쩐지 이슬람 냄새가 슬쩍 풍기는 ‘오바마’였다. 그러한 코스모폴리탄 마이너리티가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오바마 정권 8년은 탈인종 시대가 아니라 가장 인종화된 시기로 변질된다. ‘오바마는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가짜뉴스가 알고리즘을 타고 퍼져 나가며 백인들의 공포를 극도로 자극해갔다. 오바마가 역설했던 만인들의 <약속의 땅>에 트럼프는 우리가 남이가, America First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질적인 것의 융합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의 수호를 앞세웠다. 어디까지나 미국의 근간은 백인이며, 미국의 근본은 기독교이다. 다시 법과 질서를 바로 세우고 미국적인 것, 미국다움을 회복해야 한다. 남부 국경에는 만리장성을 높이 세우고 오랑캐 불법 이민자들은 몽땅 추방하여 미국을 미국답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자는 것이다.     

즉 어느덧 미국 정치의 핵심은 미국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정체성 다툼이 되었다. 그래서 MAGA복음 신도들만큼이나 그 반대편도 절실하고 간절하다. 2019년 바이든의 대선 출마 선언부터가 그러했다. 트럼프가 연임하여 백안관에서 8년을 지내게 된다면 우리가 누구인지를 영원히 바꿔버릴 것이라고 격정적으로 걱정했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핵심 가치, 자유주의의 이상향이라는 미국의 정체성 등, 그간 이 나라를 만들어온 보편적인 이념들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염려했다. 2020년 10월 6일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행한 연설이 가장 인상적이다. 남북전쟁기와 현재의 유사성을 상기시킨 것이다. 바이든은 링컨이 대표하는 자유주의 미국의 신조와 통합의 메시지를 간곡하게 발신했다. 그래서 트럼프를 누르고 백악관에 입성한 바이든이 ‘America is Back’을 강조하며 안도했던 것이고, 4년 후 해리스를 이긴 트럼프가 재차 ‘America is Back’을 내세우며 응전했던 것이다. 무엇이 진짜 미국인가? 양 진영이 말하는 미국이 이토록 멀어진 적은 없었다. 미국의 기원, 18세기의 건국사 논쟁까지 거슬러 올라가 양보와 타협이 없는 정치적 내전이 일상화된 것이다. 이제 워싱턴의 정치는 정당 간 조율과 협상이라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틀을 벗어나게 되었다. 전심전력으로 피아를 식별하고 적군과 아군이, 선과 악이 다투는 영혼을 둘러싼 투쟁이 된 것이다.     

그 유사 종교전쟁, 미국 내부의 문명의 충돌에서 MAGA 복음이 끝내 완승한 것이다. 세계주의, 자유주의, 개인주의, 다문화주의, 보편주의가 완패한 것이다. 트럼프는 힐러리와 바이든과 해리스 등 자유주의의 챔피언들을 연달아 모두 넉아웃시켜며 뉴아메리카의 최종 승리를 확증한 것이다. 바야흐로 미국도 비자유주의 국가(Illiberal Democracy)의 일원이 된 것이다. 실은 그것이 이미 21세기의 대세, 메가트렌드였다. 시발은 러시아이다.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이 된 40대 정치인 푸틴은 21세기 사반세기의 표상이 되었다. 동방정교회에 기초한 강대한 러시아의 재건을 표방하며 신유라시아주의를 국시로 삼았다. 후발은 터키였다. 에르도안은 2003년부터 총리와 대통령을 번갈아 20년 넘게 지배하며 신오스만주의를 국정지침으로 삼았다. 이 이슬람 재건의 물결은 인도네시아로 아프가니스탄으로 사우디아라비아로 우즈베키스탄으로 에디오피아로 사방팔방 이슬람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다음이 중국이다. 2012년 시진핑의 등장으로 공산당국가는 공자당국가로 변모해갔다. 일대일로를 통해 새로운 천하질서를 주조하고 중화문명의 위대한 부흥을 내세우며 장기집권의 초석을 다진 것이다. 마지막이 인도이다. 힌두문명 재건, 힌두뜨와를 내세우는 모디 총리가 2014년부터 정권을 거듭 재창출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으로 식민 모국 영국을 앞지른지 오래이다. 이제 누구도 영국의 총리를 기억하지 못하지만 인도의 총리는 필히 외워야 하는 뉴노멀의 신시대이다. 

그 새 시대의 새 물결이 마침내 미국에까지 당도한 것이다. 모더니즘의 수도이자 자유주의의 보루이며 민주주의의 본진인 미국마저 새 천년의 시대정신에 합류한 것이다. 중화중흥과 힌두뜨와와 신오스만주의와 신유라시아주의의 미국판 신조어가 바로 MAGA, Make Amercia Great Again이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역설하는 MAGA 복음의 3대 강령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면 몹시도 흥미롭다. 반자유주의에 입각해 도덕적 보수와 주권주의를 내세우는 푸틴의 이데올로기와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Copy & Paste 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즉 미국 정계에서 돌출적인 스트롱맨 트럼프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전임 대통령들보다는 푸틴과 에르도안, 시진핑과 모디에 훨씬 더 가까운 인물이다. 진정 구시대의 막내가 아닌 새 시대의 맏형, 뉴아메리카의 창업군주, 태조(太祖)이다.

3.  패권전쟁 : 테크노-유신

여기까지 만이었다면 새로이 연재를 시작하고 새 책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트럼피즘이 미국의 계급혁명과 민족혁명의 결합, NL과 PD의 합작이라는 것은 2016년에도 알고 있던 바이다. 그러나 트럼프 1기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소란스러웠을 뿐이다. 더군다나 4년 만에 딥스테이트의 정수인 바이든으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시쿤둥하게 팔짱을 끼고 그러면 그렇지, 끌끌끌 혀를 찼다. 내가 캘리포니아에서 살던 2011년부터 2013년을 거치며 미국은 참으로 변화하기 힘든 나라임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2011년 그 유명한 아큐파이 운동(Occupy Wall Street)이 일어난다. 나도 동참했다. LA 시내의 뱅크오브아메리카를 점령했을 때의 쾌감이 지금껏 생생하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CHANGE를 이야기하던 오바마 시절이었음에도 그러했다. 그는 세계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전혀 개혁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마불사, 사태의 원흉인 월가의 금융 대기업들을 구제해주고 부패한 체제에 산소호흡기를 달아주었다. 그럼에도 그 화려한 언사로 대중을 현혹하며 재선에 성공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씁쓸하게 지켜보았던 것이다.

미국시민은 아니었건만 나 또한 깊은 배신감이 일었다. 과연 선거는 인민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렇게 99% 운동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지리멸렬 소멸되어갔다. 아메리카에 대한 판타지를 차갑게 지우고, 유라시아의 유구한 것을 깊이 천착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과연 그 후 미국은 바이든과 트럼프 등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과거를 향수하는 경쟁에 몰두하는 늙은 나라처럼 보였다. 그나마 트럼프의 발언이 푸틴과 갈수록 유사해지는 것을 보면서는 내심으로 흡족했다. 거봐라, 이제는 아메리카도 유라시아처럼 되어간다. 신대륙과 구대륙이 반전하다. 구대륙이 신대륙을 선도한다. 유라시아가 앞장서서 뒤쳐진 아메리카를 견인한다. 반전의 시대가 더욱더 심화되고 확장되어 대반전의 시대가 온 것이다. 10여년 전 관측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조용히 자축하고 자족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압도적인 승리 이후로 돌아가는 판이 영 심상치가 않았다. 트럼프 1기는 여전히 공화당 주류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부통령 마이크 팬스, 국방장관 제임스 메티스,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튼,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등등 공화당 실세들이 이단아를 꽁꽁 봉쇄하고 있었다. 반면에 트럼프 2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세력교체가 완연하고 세대교체가 확연하다. 더군다나 이 새로운 세력은 기존의 고인물, 워싱턴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아니었다. 싱싱한 젊은 피, 실리콘벨리의 테크노 세력이었다. 그들이 일사천리로 일사분란하게 워싱턴 권력을 접수해갔다. 취임식 장면이 상징적이다. 지난 30년을 지배한 쌍적폐들, 민주당의 클린턴 부부와 오바마-바이든-해리스, 공화당의 부시 왕조를 앞에다 두고 뉴아메리카의 도래를 선포했다. 기왕의 정치 엘리트들은 모두 뒷자리로 물렸다. 전진 배치시킨 것이 테크기업의 CEO들이다. META, APPLE, GOOGLE, AMAZON의 머릿글자를 딴 새로운 MAGA 2.0을 연출한 것이다. 그 정점에 정부효율부(DOGE)의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가 있었다. 암호화폐와 인공지능 부서를 이끌 데이비드 삭스에게는 ‘차르’라는 호칭마저 부여되었다. 마침내 미국의 적폐를 청산하고 재조산하를 완수할 주역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사진 출처: 세계일보)

고로 이것은 일종의 소프트 쿠데타이다. 비유컨대 ‘TECH COUP’이다. 과연 혁명은 변방에서 출발한다. 에도막부를 타도한 메이지유신은 네덜란드와 연결된 난학의 거점 큐슈와 조슈번/사쓰마번에서 비롯하였다. 신해혁명은 세계무역과 연동된 광동에서 시작되어 대청제국을 와해시켰다. MAGA 2.0, 미국의 디지털 유신체제는 아시아-태평양과 맞닿은 캘리포니아에서 발기한다. 그 디지털 영주들이 산업문명의 정점인 미국을 디지털문명의 첨단국가로 진화시키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태는 단순히 정권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메이지유신에 못지않은 레짐체인지요, 신해혁명에 버금가는 패러다임 쉬프트이다. 즉 트럼프 2.0은 트럼프 2기가 아니다. 아메리카 2.0, 뉴아메리카의 태동이다.

테크노 쿠데타의 동기가 무엇인가? 국가비상사태이다. 일백 년 만에 처음으로 패권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절실함과 절박함이다. 다시금 지리와 장소가 관건이다. 구체제의 보루 워싱턴과 뉴욕은 대서양에 면한다. 자중지란에 침몰하고 있는 유럽을 마주하고 있다. 반면 실리콘벨리는 태평양을 접한다. 태평양을 반으로 접으면 샌프란시스코와 포개지는 도시가 바로 베이징이다. 전속력으로 테크노-차이나를 완성해가고 있는 중국과 부상하는 아시아를 지켜보고 있다. 마침 올해가 2025년이다. 10년 전 중국정부가 발표한 <중국제조2025>가 완료되는 해이다. 인공지능, 로봇,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양자컴퓨터, 우주기술 등등 미래산업에 대한 10개년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2025년에 독일과 일본을 능가하고 2035년에는 미국도 앞질러서 2049년 건국 백주년에는 재차 세계 1위 국가가 되겠다는 중국공산당의 장기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본디 계획보다 속도가 더 붙어서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코로나 팬데믹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강제하였고, 미국의 기술전쟁 발동과 반도체칩 통제는 내부 혁신을 촉발하여 자립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와신상담, 자력갱생에 성공한 것이다.

본디 중국공산당은 지구전의 명수이다. 압도적인 실력의 국민당을 대만으로 몰아냈고, 일본의 군국주의도 물리쳤으며, 소련의 압력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적이 공격해 오면 싸움을 피하며 힘을 빼는 전략적 방어에 주력하라,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면 전략적 대치로 전환하라, 모든 조건을 아군에게 유리하게 바꾼 연후에야 전략적 반격에 나서라’, 고 했던 마오쩌둥의 방침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 10년의 절치부심이 성과를 내고 있다. 태양광은 세계를 제패했다. 드론도 DJI 등 중국산이 압도한다. 전기차기업 BYD는 테슬라를 앞질렀다. 옵티머스보다 유니트리 로봇이 더 화려하게 움직인다. 연초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ES 2025도 중국기업들이 1/3를 차지했다.

그리고 화룡점정, 트럼프의 취임에 맞춤하여 축포처럼 딥시크(Deep Seek)가 출격했다. 골리앗 미국의 빅테크에 중국의 스타트업 딥시크가 강력한 어퍼컷을 날린 것이다. AI 경쟁에서도 중국이 미국에 못지않음을 만천하에 과시한 것이다. 올해 CES의 화두가 물리(Physical) AI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지난 2년 대규모 언어모델(LLM)에 기초한 생성형 AI 경쟁은 미국이 앞서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LLM은 어디까지나 텍스트만 학습할 뿐이다. 오감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물리AI는 또 다른 차원이다. 시각, 청각, 촉각 등 전 감각이 동원되어 세계를 실감하고 인지한다. 말의 세계에서 사물의 세계로 이행하는 것이다. 이 피지컬 AI의 매개체가 될 자율차와 로봇과 드론 등등에서 중국이 초가속으로 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인공물들에 딥시크(深度求索)의 인공지능이 장착되면 딥쇼크가 일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미국 빅테크들의 봉건적 독점체제를 붕괴시키는 오픈소스 AI의 민주화 혁명이 중국의 기술생태계를 통하여 구현되는 것이다. 특이점(Singularity)을 향한 AGI 경쟁에서도 중국의 하방 전략이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월하는 아편전쟁 이후 세계사의 가장 중차대한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정녕 ‘딥시크 모먼트’, 언더독의 역대급 업셋에 미국 또한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하면 살 것이라. 죽기 살기로 미국을 개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디지털 총력전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그 대오각성 끝에 탄생한 조직이 바로 디지털 총독부, DOGE(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이다. 일론 머스크는 상하이의 기가팩토리를 비롯하여 중국에서 오래 사업을 해온 사람이다. 누구보다 ‘중국제조 2025’의 진척을 피부로 느끼며 관찰해왔을 것이다. 미국이 4년마다 정권과 정책이 바뀌며 변죽을 울리고 있을 때, 중국은 변함없이 일관되게 디지털 대장정을 수행해갔다. DOGE가 언뜻 중국의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발개위로도 보이는 까닭이다. 순전히 억측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트위터를 인수하여 개편한 X가 롤모델로 삼은 것도 중국의 슈퍼앱 위챗이었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중국이 미국을 모방하며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미국이 중국을 모델로 삼아 ‘자본주의 계획경제’를 실험하려고 한다. 즉 테크노 유신은 미국판 흑묘백묘론, 뉴아메리카의 개혁개방이라고 할만하다. 

그렇다면 누가 이 새 판을 짠 것인가? 작년 11월 미 대선 이후로 나는 이 주제에 깊이 빠져들었다. 트럼프는 아니다. 부동산 사업으로 부를 일구고 미디어에 노출되어 유명세를 얻은 그는 대중을 만족시키는 퍼포먼스 실력은 있지만, 미국을 개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코딩할 역량은 없다. 그저 무대 위의 광대, 플레이어일 뿐이다. 얼굴마담이고 간판이다. 장기판의 말인 것이다. 물론 킹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불과 4년짜리 왕이다. 중요한 것은 제왕의 책사, 킹 메이커를 찾는 것이다. 누가 설계한 것인가? 워싱턴 언저리의 정치 컨설턴트 일리가 없다. 선거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혁명을 모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노회한 모략꾼의 작업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가의 작전이다. 가로늦게 미국에 대한 공부가 이토록 흥미진진할지는 꿈에도 몰랐다. 꿈에서까지 그들을 추론하고 추적하며 뉴아메리칸 드림에 스며들어갔다.

그 심문과 탐문의 바닥에서 서서히 부상하는 4명의 인물이 있었다. 이들은 4년을 준비해온 것이 아니었다. 사반세기를 기다렸다. 4년 후에 물러날 트럼프가 아니라 이 4인방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미국의 다음 40년과 50년, 2076년 건국 300주년을 디자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네 명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피터 틸이 첫번째요, 스페이스X와 X코퍼레이션과 xAI의 일론 머스크가 두번째이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의 알렉스 카프가 세번째라면, 부통령이 된 1984년생 JD 밴스가 그 마지막이다. 이제야 <힐빌리의 노래>의 저자인 밴스가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었던 저간의 사정도 선연하게 드러났다. 우리는 이 4인조에 대하여, 디지털 유신을 작당한 이 테크노-하나회에 대하여 딥러닝과 딥시크, 깊이 학습하고 깊숙하게 탐구해야 한다. 그제야 비로소 MAGA 2.0, 뉴아메리카의 행로를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언뜻 떠오르고 있는 뉴아메리카는 무척이나 기괴하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자유민주공화국, 올드아메리카와는 확연하게 다르다. 더 이상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제공하지도 않고, 민주주의 혁명을 수출하지도 않는다. 마치 일백 년 전 공산주의 세계혁명을 포기하고 일국사회주의로 후퇴한 스탈린처럼, 트럼프는 오직 미국만을 강철 같은 디지털제국으로 변모시키는 데 전력을 투구한다. 그 방편으로 푸틴의 신전통주의 이념에 시진핑의 디지털 신체제를 접합시키고자 함은 더욱 더 그로테스크하다. 러시아의 이데올로기와 중국의 시스템을 미국의 용광로(Melting Pot) 안에 녹여내려는 것이다. 이 예측불가한 키메라를 막후에서 은밀하게 주조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명 뿐이다. 범인들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대범하게 생각하고 비범하게 실행할 수 있는 특출난 인물이다. 돌아보면 그가 일생동안 해왔던 모든 일들이 미국의 개조로 수렴이 되었다. 그만의 유니크한 방식으로 평생토록 정치혁명을 준비해온 것이다. 그 창조적 역발상의 투자자, 피터 틸부터 파헤쳐본다.






이병한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