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7월 6일

10. 수(隨)䷐ / 고(蠱)䷑ 회심과 회개

- 지금까지 산 것처럼 살지 않겠다. 새 길을 걷겠다.






예괘(豫卦)의 미래를 통찰하는 예술가들은 그들이 상상하고 꿈꾸는 일을 현실화시키지 못합니다. 예술적 성공은 소수의 몇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입니다.
예(豫)의 꿈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장을 마련하지 못하고 병들고 어둠의 나락 속에서 타락(墮落)하게 됩니다.

수괘(隨卦)는 예괘 6번 명예(冥豫)의 어둠 속에서 시작합니다.
그의 삶은 지금 한치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새 삶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다시 겸괘(謙卦)의 자기 억압으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어둠에서 길을 잃은 그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 비쳐옵니다.
그 빛의 힘이 얼마나 강했던지 그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고 연못 깊은 곳에서 우레 같은 진동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마음은 뒤집어질 것처럼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내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새로운 세계가 보이고 새로운 의식과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종교적 각성, 회심의 시간에 경험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수괘는 종교적 회심의 경험을 하는 사람들, 새로운 깨달음 속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수 많은 종교적 깨달음의 성인들이 수괘의 이 경험을 합니다.
성경의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독교 박해자 사울의 회심 장면을 보면 다마서커스로 가던 길에 강한 빛의 체험을 합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오히려 자기 의지에 반해서 일어난 이 경험은 그를 기독교 박해자에서 기독교 전도자로 전환시킵니다.
인간 삶의 어제와 다른 오늘 이라는 현상입니다.
수운 선생님의 하늘님 만남도 같은 형식입니다.
수련을 하던 어느 날 하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첫 번째 이 만남 이후 수운은 이 만남의 의미를 자기 안에서 묻고 묻고 또 묻습니다.
그 오랜 질문과 대화 속에서 하늘님과 수운 사이에서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일치감을 느끼게 됩니다.

수괘는 빛을 만난 사람이 자기 안으로 들어가서 그 의미를 내면화하는 과정을 ‘향회입연식(嚮晦入宴息)’ 이라고 했습니다.
명상 속에서 깊이 호흡하며 ‘내 안의 나’를 만나는 시간입니다.
이런 내면화를 거친 이후에 수괘는 우리가 아는 무수한 신앙의 영웅들이 걸었던 삶을 삽니다.
그는 과거의 모습을 넘어 새로운 삶의 길을 따라 높은 의식 세계 속으로 걸어갑니다.
그 길에서 수 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그는 늘 하늘님의 은혜 속에서 감사하며 살아 갑니다.

고괘(蠱卦)는 수괘(隨卦)가 살아간 길을 조금 더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새로운 의식과 접속된 사람에게 하늘은 여러 가지 눈을 열어 줍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명에 눈뜨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처음 보이는 과제는 자기를 둘러싼 현실입니다. 무엇보다 지금 내가 누리는 것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부유한 상인의 아들이었던 프란치스코는 향락과 방탕 속에서 살았지만 예수를 통해 삶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고 난 이후에 자기가 가진 모든 것과 삶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게 됩니다.
새로운 눈이 열리고 나면 내 삶이 ‘벌레가 가득한 그릇 속에 담긴 음식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런 음식을 먹으며 살았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고(蠱)라는 글자에 담긴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맛있게 먹었고, 좋고 행복했던 것들이 모두 벌레가 가득하고,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을 내가 딛고 서 있었다는 것이 보이게 됩니다.
고(蠱)는 이런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내 선에서 이제는 끝을 내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결단 속에서 길을 걷는 그를 고괘는 ‘이섭대천利涉大川. 선갑삼일先甲三日 후갑삼일後甲三日. 종즉유시終則有始’ 라고 표현합니다.
큰 강을 건너는 사람, 그는 그의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더러움을 끝을 내고, 그의 삶에서부터 새 삶을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잘못, 몇 세대를 걸쳐 대물림되어 온 트라우마와 삶의 폐단, 숨겨진 죄, 잘못된 결정이 중첩된 결과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단절의 시간을 가져야 그는 자기로서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蠱)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저는 지금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제 삶을 살겠습니다. 남아 있는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에게 맡깁니다. 저의 길을 축복해 주십시오.’



17. ☱☳ 隨


隨 元亨利貞 无咎.
수 원형이정 무구

나에게 찾아온 은혜의 선물을 받아 새로운 삶의 질서를 이해하고 그 길을 따른다.

彖曰 隨 剛來而下柔 動而說 隨. 大亨 貞 无咎 而天下隨時. 隨時之義 大矣哉.
단왈 수 강래이하유 동이열 수.  대형 정 무구 이천하수시. 수시지의 대의재.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강(剛)한 힘이 나의 깊은 곳을 건드려 새로운 감각 유(柔)가 움직인다. 새로운 마음이 움직이며 기쁨이 솟아난다. 나에게 새 마음이 자라나 새 길을 따른다.
지금은 새 마음을 따라 새 길을 걸어야 할 시간. 수(隨)의 시간은 얼마나 중요한가!

象曰 澤中有雷 隨 君子以 嚮晦入宴息.
상왈 택중유뢰 수 군자이 향회입연식

연못 깊은 곳에서 우레가 울리는 것처럼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기쁨과 환희가 솟아난다.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느낌이다.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어둠 속으로 들어가 깊이 호흡하며 나를 만난다.

1.
初九 官有渝 貞吉 出門交 有功.
초구 관유유 정길 출문교 유공
象曰 官有渝 從正 吉也. 出門交有功 不失也.
상왈 관유유 종정 길야. 출문교유공 불실야.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의 방식에서 마음의 변화가 일어난다. 더 이상 지금처럼 살 수가 없다.
내가 살던 집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2.
六二 係小子 失丈夫.
육이 계소자 실장부
象曰 係小子 弗兼與也.
상왈 계소자 불겸여야.

낮은 의식 수준의 아이를 따르면 새롭고 성숙한 가치를 가진 어른을 잃는다.
둘을 함께 모실 수는 없다.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한 부분을 잃는 일이다.

3.
六三 係丈夫 失小子 隨有求得 利居貞.
육삼 계장부 실소자 수유구득 이거정
象曰 係丈夫 志舍下也.
상왈 계장부 지사하야.

어른을 따르고 아이를 잃는다. 어른을 따른다는 것은 낮은 의식을 버리고, 정말 내가 따라야 할 마음 안에 머무는 것이다.

4.
九四 隨有獲 貞凶. 有孚在道 以明 何咎.
구사 수유획 정흉. 유부재도 이명 하구.
象曰 隨有獲 其義凶也. 有孚在道 明功也.
상왈 수유획 기의흉야. 유부재도 명공야.

믿음을 가지고 살았기에 내 삶은 아름답고 풍요로웠다. 그러나, 동시에 낮은 가치를 따르지 않고 높은 곳에 마음을 두고 사는 일은 오해받고 미움 받는 일이기도 했다. 믿음의 길을 걷다  일어난 이 일들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나를 밝게 하는 일이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문제될 일이 있을 수 있나!

5.
九五 孚于嘉 吉.
구오 부우가 길
象曰 孚于嘉吉 位正中也.
상왈 부우가길 위중정야.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하늘님을 모시고 살았다.
나는 그 길을 걸을 때 정말 행복했다.

6.
上六 拘係之 乃從維之 王用亨于西山.
상육 구계지 내종유지 왕용향우서산
象曰 拘係之 上窮也.
상왈 구계지 상궁야.

나에게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잡혀서 끌려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마음이 변하고 믿음의 길을 함께 걸었다.
우리는 서산에 올라 함께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



18. ☶☴ 蠱


蠱 元亨 利涉大川. 先甲三日 後甲三日.
고 원형 이섭대천. 선갑삼일 후갑삼일.

몇 세대에 걸친 오래된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앞뒤를 잘 살펴서 끝내야 할 것과 새로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해 멀리 보고 큰 강을 건넌다.

彖曰 蠱 剛上而柔下 巽而止 蠱. 元亨 而天下也. 利涉大川 往有也.
단왈 고 강상이유하 선이지 고.  고원형 이천하치야. 이섭대천 왕유사야.
先甲三日後甲三日 終則有始 天行也.
선갑삼일후갑삼일 종즉유시 천행야.

위에 있는 산은 강하고 굳세고, 바람은 산 아래에서 분다.
산 아래에서 부는 바람은 어지럽게 흩어진 것들을 날려버린다.
오래된 폐단과 모순이 정리되고 세상은 질서를 회복한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큰 강을 건너듯이 모험하고 도전하며 일을 해 나갔다.
무슨 일이든 끝날 때가 있고 다시 시작할 때가 있다.
우리는 끝내야 할 일을 끝내고 시작해야 할 일은 다시 시작한다.
하늘도 이렇게 일한다.

象曰 山下有風 蠱 君子以 振民育德.
상왈 산하유풍 고 군자이 진민육덕

산 아래로 부는 바람처럼 오래된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 괴로움 속에 있는 민중을 건져내고 새로운 삶을 위한 도덕성을 회복한다.

1.
初六 幹父之蠱 有子 考无咎 厲 終吉.
초육 간부지고 유자 고무구 려 종길
象曰 幹父之蠱 意承考也.
상왈 간부지고 의승고야.

나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그분의 삶을 모두 인정할 수는 없었다.
따라야 할 것은 따르지만 끊어야 할 것은 끊어야 했다.

2.
九二 幹母之蠱 不可貞.
구이 간모지고 불가정
象曰 幹母之蠱 得中道也.
상왈 간모지고 득중도야.

어머니의 잘못이 있다. 아버지만큼 큰 허물이 아니어서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 잘 살펴서 적절한 길을 찾아낸다.

3.
九三 幹父之蠱 小有悔 无大咎.
구삼 간부지고 소유회 무대구.
象曰 幹父之蠱 无咎也.
상왈 간부지고 종무구야.

아버지의 잘못을 고친다는 것, 몇 세대를 걸쳐 대물림되어 온 트라우마와 삶의 폐단, 잘못된 결정이 중첩된 결과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이걸 끊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일이 더 이상 계속되게 놔둘 수 없다.

4.
六四 裕父之蠱 往 見吝.
육사 유부지고 왕 견린
象曰 裕父之蠱 往 未得也.
상왈 유부지고 왕 미득야.

아버지의 허물을 너그럽게 대한다. 끊어야 할 것과 새로 시작해야 할 일에 대해 명확하지 않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5.
六五 幹父之蠱 用譽.
육오 간부지고 용예.
象曰 幹父用譽 承以德也.
상왈 간부용예 승이덕야.

아버지의 잘못을 고쳤다. 더 이상 이런 삶을 대물림하며 살 수는 없다. 감사할 것에 대해 감사하고 나는 나의 삶을 산다. 그렇게 할 때 오히려 나는 아버지를 이어갈 수 있다. 이것이 우리 가족의 명예이다.

6.
上九 不事王侯 高尙其事.
상구 불사왕후 고상기사.
象曰 不事王侯 志可則也.
상왈 불사왕후 지가칙야.

아버지의 일을 바로 잡은 것으로 인해 명예를 얻고 지지를 받아 왕이나 제후가 될 수 있지만 하지 않는다. 나는 세찬 바람이 불어 사회의 오래된 폐습을 정화하고 새로운 질서가 자리잡길 바랐던 것 뿐이다. 나는 더 높은 영성을 추구하며 살겠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