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김혜정의 마음놓고 마음챙김

2024년 2월 16일

10. 세 종류의 사랑







사랑이라는 실체 없는 마음작용을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겠지만, 사랑을 조건에 구속되는 정도를 기준으로 세 종류로 분류해보자.

첫 번째 사랑은 대중가요의 흔한 주제인 성애적인 사랑이다. 세 종류의 사랑 중에 가장 조건적인 사랑이다. 여러 조건에 의해 구속된 사랑이기에, 사랑의 감정을 지탱해주던 환경 조건이 변화하면 사랑은 고통으로 변한다. 아름다운 외모라는 조건에 반해 누군가를 좋아하다가 나이가 들며 외모가 변해가면 사랑이 식는 경우라던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좋아하다가 사업이 망해 재산을 모두 잃으면 마음이 식는 경우 등이 이에 속한다.

두 번째 사랑은 가족 간의 사랑이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은 성애적인 사랑보다는 조건들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여전히 다양한 조건에 의해 구속되어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가면 기뻐하나, 학교에서 나쁜 성적을 받아오면 실망한다. 자식들을 차별대우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세 번째 사랑은 불교에서 말하는 자애심이다. 세 종류의 사랑 중에 가장 조건에 걸림이 없는 사랑이다. 명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애명상을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와 타인에게 자애의 마음을 보내는 명상이다. 이 자애의 마음은 크게 네 종류로 나뉘며 사무량심이라 한다. 남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자비로운 마음, 고통을 받는 이를 보면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연민의 마음, 남이 잘되는 모습을 시기 질투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 마지막으로 남을 차별없이 대하는 평정한 마음이다.

앞서 사랑에는 세 종류가 있다고 이야기를 했고, 이 세 종류의 사랑을 얼마나 조건에 의해 구속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분류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자애의 마음 또한 완전히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보긴 어렵다. 다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성애적인 사랑과 가족 간의 사랑보다는 조건으로부터 자유롭지만, 만약 내가 행복하길 바랐던 그 상대가 불행에 처한다면 나의 마음은 불만족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자애심이 다른 사랑보단 탐욕이 빛바랜 마음 상태라고 볼 수 있어도, 여전히 약간의 탐욕이 남아있다. 불교에선 미래에 고통을 유발할만한 원인을 짓는 마음을 어리석은 마음이라고 한다. 지혜로운 마음, 선한 마음이란 고통이라는 결과를 불러일으킬 만한 원인을 짓지 않는 마음이다. 자애심이 다른 사랑보단 고통이라는 부작용이 덜 하다고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완전하지 않다.

사무량심 중에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사랑은 평정심 하나다. 타인에 대한 자비심과 연민, 그리고 함께 기뻐하는 마음에 아직도 약간의 탐욕이 깃들어 있다면, 평정심에는 아무런 탐욕이 없다. 그런데 평정심도 사랑의 일종이라니 의아할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오랫동안 타인에 대한 강한 소유욕이나 집착을 사랑이라고 혼동해온 데서 비롯한다. 그리고 이 오랜 혼동 때문에 우리는 사랑을 비극적인 드라마와 결부시킨다. 하지만 탐욕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사랑은 사람을 오직 성장하게 하고 자유롭게 하지, 결코 슬프게 하지 않는다. 순수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상대방의 자유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상대에게서 어떠한 모습을 만나도 늘 평정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마음에나 사랑받는 이의 마음에 어떠한 고통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평정심은 가장 지혜로운 마음 상태이다.

부처님을 깨달음으로 인도했던 위빠사나 명상의 가장 강력한 도구이자, 궁긍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마음의 자질 또한 평정심이다. 이는 동어반복적이고, 모순적으로 들릴 수 있다. 깊은 평정심은 명상의 결과로서 얻어지는 지혜인데, 그 명상을 하기 위한 도구 역시도 평정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다. 마음이라는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무상함이라는 본질을 꿰뚫어 보는 위빠사나 명상을 시작하려면, 아직 완벽하게 계발되진 않았더라도 평정심이 있어야 한다. 평정한 마음으로 마음의 변화하는 속성을 관찰하다 보면 평정심은 점점 깊어진다.

사실 마음을 관찰하는 일은 대체로 고통스럽다. 그래서 평정한 마음을 유지하며 관찰하기가 쉽지 않다. 명상을 하다가 평정심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을 때, 사무량심 중 평정심을 제외한 세 가지 선한 마음의 자질인 자비, 기쁨, 연민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키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평정한 마음을 되찾는데 큰 도움이 된다. 특히 평소에 화가 많이 나고, 쉽게 사람이 미워지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명상하다 보면 표층 의식이 고요해져서, 심층에 잠재되어 있던 부정적인 정서들이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필자 또한 명상하다 화가 나서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자애 명상을 하면 효과적이다. 자애 명상에는 순서가 있다. 우선 나 자신에게 자애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롭지 못한 이가 타인에게 자비롭기는 어렵다. 스스로에 대한 깊은 연민과 자비의 마음을 계발한 후, 미워하는 이에게 같은 자애의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자애 명상은 필자도 매일 하는, 아주 훌륭한 명상법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조건적인, 미래에 강한 고통을 유발할 사랑만을 사랑이라 믿으며, 그런 사랑만을 하며 살아간다. 자애심을 계발하는 명상은 탐욕을 완전히 빛바래게 하진 못하지만, 적어도 조건에 구속되어 고통스러운 사랑을 덜 조건적으로 고양해준다.

분노와 적개심은 타인과 깊이 교류하고 싶은 마음이 좌절되면서 오는 감정이다. 따라서 분노보다는 욕망이 고통의 근원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욕망하고 있는 동안에 자신이 고통의 씨앗을 심고 있다는 사실을 통찰할 만큼 지혜로운 이는 드물다. 자신이 현재 사랑하고 있다면, 이 사랑이 어떤 조건들에 의해 형성되었는지 검토해 보길 바란다. 미래에 다가올 고통의 결과를 보다 평정한 마음으로 수용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보탬이 될 것이다.






김혜정차와 명상을 좋아하는 김혜정입니다. 수행자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제가 행복해지고자 걸어온 수행 여정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10년차 요가강사이며, 미얀마 쉐우민에서 처음 위빠사나 명상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로는 주로 고엔카의 수행법을 따라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