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5월 20일

10. 할렐루야 : 새 하늘과 새 땅





(사진 출처: BBC)
 
1. 대반전 : New Cold War?

6:3:1이다.

테크노 쿠데타가 자초됨으로써 올드 아메리카가 지속될 가능성이 절반 이상이다. 무릇 개혁은 혁명보다도 힘든 법이다. 자칫 내분이 내란을 촉발하여 미합중국이 내파되어 갈 가능성도 3할은 된다.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디지털 대전환을 완수함으로써 후기 미국 시대를 개창할 가능성은 10%에 그친다.

트럼프 2기 첫 100일. 이번에도 제대로 이루어진 일이 없다. 하루 만에 끝장내겠다 호언장담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속되고 있다. 유럽의 전장을 좌우하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러시아의 의지이다. 푸틴은 종전협상에 임하여 이번만은 버르장머리를 제대로 고쳐 놓겠노라 단단히 벼르고 있다. 미국은 빠른 해결을 원하지만, 러시아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구한다. 미국이 개입하고 서유럽이 동조하여 동유럽의 불안을 획책하는 탈냉전 이래 NATO의 불장난을 다시는 하지 못하도록 확실한 대못을 박으려는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관세전쟁의 목표였던 중국은 좀체 타격감이 없었다. 날 선 트럼프의 파상공세에 의뭉스러운 시진핑은 마이동풍, 묵묵부답이었다. 이미 중국은 대미 수출의 비중을 낮추고 내수 시장을 키우는 장기전 태비를 갖추었다. 窮則變(궁즉변), 變則通(변즉통), 通則久(통즉구).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미국의 전면적 압박 덕분에 중국의 기술혁명은 더욱 빨라졌다. 무역제재와 기술통제와 관세부과 등 다방면으로 싸움을 걸어 보아도 개별 전투의 승리보다는 최종 전쟁에서 승자가 되는 쪽으로 대전략을 확립한 것이다. 미국은 2년마다 선거를 통해 정책 기조가 바뀐다. 유권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관세 탓에 물가가 올라가고 재고마저 바닥나서 마트가 텅텅 비고 나면 투표로서 응징할 것이다.

반면 중국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20년 후를 내다보고 있다. 당장에 이기려 들지 않고, 지지 않은 수를 둠으로써 마지막에 승부를 보려 한다. 어차피 시간은 중국 공산당의 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무역은 중국 의존도가 3할을 넘지만, 중국은 미국의 비중이 1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초조하고 조급하여 안달 난 쪽은 시한부 권력의 트럼프이다. 결국 제네바 협상으로 조기에 타협을 이룸으로써 허장성세는 마무리되었다. 꼬리를 친 것도, 꼬리를 내린 것도 미국 쪽이었다. 반세기전 일본을 홈그라운드로 호출하여 팔을 비틀어 내리찍었던 플라자합의의 우격다짐과는 전혀 다른 형세인 것이다.  

리쇼어링, 제조업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과업 또한 여의치가 않다. 짧게는 중국이 WTO에 가입한 지(2001년) 사반세기, 길게는 개혁개방을 하고(1979년) 반세기의 글로벌 분업체제를 재편하는 일이다. 공교육이 붕괴한 미국에는 제조업에 투입될 숙련된 노동자도 찾기 힘들다.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의 큰 그림은 무인 제조업으로의 대전환일 것이다. 사람이 없는 공장으로 미국의 경쟁력을 되찾으려고 할 것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AI 로봇이 제품(product)을 만들고, 팔런티어의 온톨로지와 파운드리와 AIP로서 경영(process)을 하자는 것이다. 다만 민간영역에서 무인 시스템으로의 재편에는 그만큼의 지난한 시간이 소요된다. 40년을 만회하기에는 임기 4년은 너무 짧다.     

이미 내부 개혁의 상징이었던 DOGE마저도 용두사미가 될지 모를 상황이다. 특수 공무원 신분으로 백악관 생활을 누렸던 일론 머스크는 DOGE의 수장 자리를 내려놓는다. 석 달 간 부당하게 해고당한 연방정부 공무원들은 행정소송을 걸어 사법부를 통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설 것이다. 한 지붕 두 가족, 내란세력이 된 백악관과 기존의 연방기구 사이 충돌이 불가피하다. 내년 7월 4일, 건국 250주년 기념일은 ‘무엇이 진짜 미국인가’를 두고 미국 내부가 얼마나 분열되어 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현장이 되기 십상이다.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입법부를 탈환하게 되면 자중지란은 더욱 격화될 것이다. 의회에서는 탄핵이 남발되고 정부는 계엄으로 되받아 치면서, 서로가 서로를 내란세력으로 지목하는 21세기 민주주의 국가들의 난장판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그 지지부진한 개혁과 지리멸렬한 정쟁 속에서 미국은 패권의 상실이라는 수순을 흐지부지 밟아갈 것이다.

현대사는 곧 미국사였다. 미국사가 즉 세계사였다. 구대륙에서 기원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최적화된 형태로 조합하여 산업문명의 표준국가를 완성한 것이 신대륙의 미합중국이었다.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와 문화적 자유주의로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입안한 신세계의 수장이었다. 대통령제라는 신통한 제도를 고안한 최초의 공화국이었으며, 유럽의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최초의 독립국이었고, 최고의 민주주의와 최상의 자본주의를 선보였던 최신의 나라이다. 특히 패권국가로 군림했던 20세기에는 인류 역사상 전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의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Pax Americana, 미국이 만든 대한민국만 미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여태껏 미국과 수교를 맺지 못하고 고슴도치형 핵무장 국가가 된 북조선 또한 미국이 주조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럽의 재건과 소련의 해체와 중국의 부상 등 20세기 후반의 세계질서 또한 Made in America였다고 할 수 있다. 목하 길게는 대항해 시대 이래 500년, 짧게는 1차 세계대전 이후 100년의 세계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것이다. 서세동점, 서구와 미국이 주도했던 서방의 헤게모니가 저물고 있다. 

서쪽에서 역사는 직진한다. 최후의 심판이든 계몽의 변증법이든 서방에서 역사는 종말과 종언을 향해 달려간다. 냉전기, 공산주의도 자유주의도 서로가 인류의 마지막 체제라며 끝장 다툼을 벌인 것이다. 반면 동쪽은 곡선이다. 구비구비 세상은 돌고 돈다. 해는 뜨고 지고, 달은 차면 기운다. 꽃은 피고 지고, 사계절은 순환한다. 밀물이 있으면 썰물도 있는 법이다. 제국도 흥망성쇠를 반복한다. 미국이 지고 중국이 뜨며, 서방이 기울고 동방이 차오른다. 이 자연스러운 음양과 태극의 이치 속에서 ‘미국 예외주의’란 작동하지 않는다. 진/한과 수/당과 명/청이 변천을 거듭한 것처럼 미국도 쇠하고 멸할 수 있는 것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이 해체되어 간 것처럼,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천문학적인 빚을 떠안고 있는 미국 또한 서서히 하강국면에 들어 갈 것이다. S&P도 무디스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낮추어 평가하고 있다. 달러의 위세는 갈수록 줄어들 것이고, 위안화의 보급은 나날이 확산될 것이며, 가장 중요하게는 코인과 토큰으로 작동하는 가상의 디지털 경제권이 폭발적으로 성장해 갈 것이다.  

지상에서 미-중을 쌍포로 하는 신냉전이 전개될 가능성 또한 상대적으로 낮다. 자유-민주-공화국, 미국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산 아래 혜택을 받아왔던 동맹국들의 충성심 또한 점점 흐려질 것이다. 서방의 결속력부터가 약화되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은 왕년의 소련과 달리 진영에 갇혀 있지도 않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시장과 모든 사람들의 일상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049년 신중국 100주년에는 중국이 G1이 되어 있을 것이며, 2076년 미국 건국 300주년에는 중국-인도를 잇는 G3로 미국은 만족해야 할 것이다. 미-중의 교체와 동-서의 재역전과 남(Global South)-북의 재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더라도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는 압도적인 패권국이 될 가능성 역시 적다. 일극이 아니라 다극화 될 것이다. 아편전쟁 이전의 세계, 18세기 세계체제로 재편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서쪽에는 오스만제국이, 남쪽에는 무굴제국이, 북쪽에서는 러시아제국이, 동쪽에는 대청제국이 있었다. 다문명-다체제의 유라시아형 세계질서가 다극화세계의 밑그림이 되어 줄 것이다. 자연스레 지난 세기 패권국의 패러다임이었던 민주주의-자본주의-자유주의 또한 대체되지 않을 수가 없다. 대반전은 세계사의 순리이고 천리라고 하겠다.

2. 대분열 : New Civil War?

미국도 이미 데모크라시가 아니라는 진단도 있다. 탈자유주의, 탈세속주의, 탈계몽주의의 끝에 탈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이다. 미국의 체제가 민주주의를 지나서 권위주의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와 독재 사이, ‘아노크라시’(anocracy)라는 개념으로 미국의 내전 가능성까지 탐구한다. 미국은 국가가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총기 소유의 자유가 허용됨으로써 민간도 무장하고 있다. 제도에 대한 불신과 체제에 대한 불만이 일거에 폭발하면 민병대와 무장반란군이 속출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내분과 내란이 내전으로 치달을 수 있다.  

정치적 무의식은 대중문화로 먼저 발현된다. 창작물도 쏟아지고 있다. 2022년 개봉한 영화 <시빌워>는 캘리포니아와 텍사스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Western Forces, WF)과 나머지 19주가 뭉친 '플로리다 동맹'(Florida Alliance, FA)의 갈등을 그린다. 양 편의 분리독립으로 내전이 벌어진 가상의 미국을 배경으로 삼는 것이다. 분열된 미국인들의 상호불신을 나타내는 "What Kind of an American Are You? (당신은 어떠한 미국인인가?)" 대사가 연달아 등장한다. 같은 해 HBO에서 방영된 드라마 <DMZ>도 상징적이다. 이 작품 또한 제2의 남북전쟁이 발발한 미국의 미래를 소재로 삼는다. 비무장중립지대, DMZ가 설정된 구역은 올드 아메리카의 상징이었던 뉴욕의 맨해튼이다. 냉전기 남/북한과 동/서독이 경험했던 베를린과 판문점의 비극을 21세기의 미국이 변주하게 된다는 설정이 꽤나 흥미롭다.


(사진 출처: Rialto Cinemas)

<시빌워>에서 내전을 격발시킨 사건은 대통령의 위헌적인 3선 도전이다. 이미 트럼프는 심심찮게 세 번째 임기에 대한 말을 흘리고 있다. 첫번째 임기의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도 공공연히 3연임을 옹호하며 선전선동에 나서고 있다. 푸틴처럼, 시진핑처럼 장기집권을 도모하여 MAGA의 미션을 완수하겠다는 의지의 피력이다. 미국조차도 아노크라시에 이어 오토크라시(Autocracy, 권위주의)로 완전히 이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시빌워>에서 캘리포니아와 텍사스가 연합한 ‘서부군’은 리버럴 성향의 민주주의 진영으로 묘사되었다. 오토크라시와 데모크라시의 대결로 미국의 분단을 설정한 것인데, 다소간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지점이다. 캘리포니아는 민주당의 아성이고, 텍사스는 공화당의 텃밭이다. 혹여나 트럼프의 3선 개헌과 디지털 유신체제가 발동된다면 GDP 규모로 세계 4번째 국가 수준에 해당하는 캘리포니아부터 분리독립의 기운이 폭발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텍사스는 신공화당의 뉴아메리카에 적응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아니 기술파와 전통파가 연합하는 뉴아메리카의 본산이 될 수도 있다. 천도(遷都)의 상상력을 지피는 것이다. 워싱턴 DC에서 오스틴으로 수도를 이전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일이다. 혹은 백악관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면서 플로리다의 별장을 대통령실로 개조할 수도 있다. 여하튼 2028년이 중차대한 분수령이 될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트럼프 어게인’ 운동이 일어나면 공화당은 물론이요 공화국 자체의 근간을 근저에서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트럼프가 탄핵이나 암살 등 두 번째 임기를 온전히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내란의 시기가 더 앞당겨질 수도 있다.

SF소설 <원더풀 랜드>도 2036년 두 나라로 분단된 미국을 설정한다. 양쪽 진영이 끝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대대적인 인구 이동을 통하여 자신들이 지지하는 나라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는 것이다. 한쪽은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연방공화국이고, 다른 쪽은 청교도적인 가치를 옹호하는 공화국연맹이다. 분단체제 아래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줄지 않았으니, 비무장 중립지대에서 펼쳐지는 자매간 첩보전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연방공화국도 공화국연맹도 자유-민주-공화정을 자랑했던 20세기의 그 미합중국은 아니다. 연방공화국은 ‘기술공화국’이다. 테크놀로지로 경영되는 수학적 디스토피아이다. 공화국연맹은 신정국가이다. 성경을 근간으로 다스리는 신학적 디스토피아이다. 전자는 테크노-차이나를 능가하는 완벽한 감시사회를 이루었고, 후자는 중세식 종교재판과 마녀사냥이 빈발한다. 테크노크라시와 테오크라시가 데모크라시를 찢어버린 것이다. 공히 탈자유주의, 탈세속주의, 탈계몽주의, 탈민주주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 작품 모두 두 동강이 난 미국을 다룬다. 아마도 제1차 내전이었던 남북전쟁의 상상력에 기대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로서는 양분보다는 삼분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 보인다. 마치 대영제국이 해체되면서 남아시아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생겼다가, 서파키스탄과 동파키스탄(방글라데시)로 삼파 된 것에 빗댈 수 있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에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아니라 계몽파와 전통파, 기술파로서 대분할 될 수 있다. 우선 현재의 미국을 사수하는 페더럴리스트(Federalist) 진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법학에 기초하여 헌법으로 경영되는 리버럴벨트를 형성할 것이다. 다른 쪽에는 디지털리스트(Digitalist)들이 총집결 할 것이다. 이들은 수학에 근간하여 코드로 경영하는 실리콘벨트를 이룰 것이다. 또 다른 쪽에는 트레디셔널리스트(Traditionalist)들이 결집할 것이다. 이들은 신학에 바탕하여 성경의 말씀으로 다스리는 바이블벨트(Bible-Belt)를 만들 것이다. 백화제방과 백가쟁명, 삼세력의 조합에 따라 다양한 체제가 등장할 수도 있다. 캘리포니아는 페더럴리스트와 디지털리스트가 연합하는 리버럴-실리콘벨트가 될 수 있다. 텍사스는 트레디셔널리스트와 디지털리스트가 협동하는 테크노-띠올로지 벨트가 될 수 있다. 전통파들과 계몽파들은 좀처럼 합의에 이르기 어려울 것이다. 더 이상 세속주의와 자유주의 아래 진보와 보수의 타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성과 영성이 다투는 영혼의 전쟁이다.

즉 미국판 춘추전국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 100년 전 중국에서 국공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와중에서도 북경과 남경이 있는 동부에서 멀찍한 서남부의 광동성, 사천성, 운남성 등에서는 분리독립운동이 드세게 전개되었다. 국민당과 공산당이 추진하는 ‘하나의 중국’ 이 아니라 광동국, 사천국, 운남국을 도모하는 군벌들이 난립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처럼 전국을 통솔했던 대일통의 통제력이 약화되면 각주마다 지역의 맹주들이 각개 약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종, 종교, 기술 등 다양한 조합으로 구성된 지역정당들이 발호할 수 있다. 사례가 없지도 않다. 소련은 해체되고 15개의 독립국으로 분리되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그리고 조지아이다. 유고는 해체 후 7개의 독립 국가로 분리되었다.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세르비아, 그리고 코소보이다. 포스트-공산주의, 1991년 불과 3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포스트-자유주의, 30년 후 북미에  ‘5호 16국’ 시대가 열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겠다. 오늘날 남미에는 12개의 나라가 있다. 22세기의 역사가들은 미국의 테크노 쿠데타를 중국의 개혁개방보다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빗대게 될 것이다.

3. 대부흥 : New Holy War?

변수가 생겼다. 주변 변수가 아니라 핵심 변수이다. 게임 체인저, 미국인 교황이 나셨다. 에필로그를 한참 쓰고 있던 차에 바티칸에서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 미국 출신의 최초의 교황이다. 전임자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출신이었다. 후임자는 북미에서 태어나시고 남미의 페루에서 오래 사역하셨으니, 남북 아메리카를 모두 품는 첫번째 교황이기도 하시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가톨릭의 무게추가 완연하게 옮겨간 것이다. 제267대 교황이 시카고 출신의 미국인이 됨으로써 저 250년짜리 어린 나라에도 유구한 감각을 장착할 수 있게 되었다. 고작 47대 대통령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초대 교황으로 선출된 사도 베드로 이래 2000년이나 지속된 영혼의 역사 속에서 자국을 자리매김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인물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교황권에 반기를 들었던 프로테스탄트, 그 신교도들이 신대륙으로 이주하여 만든 신생국가의 향방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가 없다. 1978년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가 즉위함으로써 동구권의 탈공산주의를 앞당겼던 바이다. 2025년 미국 출신의 교황이 등장함으로써 서구권의 탈자유주의에도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오묘하게도 새 교황의 즉위 미사가 열린 5월 18일은 요한 바오로 2세의 탄신일이기도 하였다.     

징조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 직전 만난 마지막 인물이 하필이면 밴스 부통령이었다는 점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장례식장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행차했다. 영부인 멜라닌 여사 또한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교황으로 분장한 트럼프의 AI 이미지가 백악관 공식 X 계정에 게재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트럼프가 흰색 교황 복장과 관을 쓰고, 손가락을 들어 올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혹여나 워싱턴이 교황 선출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카더라 통신도 분분했다. 나 또한 부랴부랴 미국인 추기경들을 살펴보았고, 신전통주의 넷콘(Natcon) 세력들과 죽이 맞을 듯한 분들의 면면을 훑어보기도 하였다. 새삼스레 이탈리아(51명) 다음으로 많은 추기경이 있는 나라가 미국(17명)이라는 점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열쇠로 굳게 문을 걸어 잠근 콘클라베의 결과는 세속의 예상과는 한참이나 어긋났다. 전혀 고려하지 못했던 뜻밖의 인물을 영성의 최고 지도자로 선출한 것이다.


(사진 출처: The Guardian)

콘클라베의 선거는 속세의 민주주의와도 다르다. 지구촌 14억 가톨릭 신도들이 1인 1표를 행사하지 않는다. 부제와 사제, 주교와 대주교 등 층층이 위계가 뚜렷한 계서제 조직이다. 감히 아무나 투표하지 못한다. 오로지 최고위 133명의 추기경들만이 교황을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린다. 그래도 어느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는다. 그만큼 권위를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추기경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여 투표하는 것도 아니다. ‘죽은 자의 민주주의’가 작동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님의 희생 이래 무수한 그리스도교의 헌신이 20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 영혼의 영속성에 입각하여 근원을 대변하고 영원을 대의하는 투표를 하는 것이다. 즉 주권자라 함은 개개인 단독자가 아니다. 역사의 계승자이자 전통의 후계자이다. 현재를 배타적으로 점유하고 외부효과를 후세들에게 떠넘기는 유권자가 아니라, 과거를 반영하고 미래를 투영하는 연결자이자 매개자로서 기표하는 것이다. 앞서서 나간 자들을 산 자는 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하고, 과거가 미래를 돕는다.

단순 다수결제도 아니다. 결선투표제, 51% 과반도 충분치가 않다. 2/3 이상이 동의할 때까지 여러 차례 투표를 거친다. 다수결(특수의지)과 만장일치(전체의지) 사이 합의에 기초한 일반의지를 추출하는 것이다. 선거의 형태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람되게도 콘클라베의 교황 추대 방식은 ‘민주집중제’로 작동하는 중국공산당의 주석 선출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혹은 그러하기에 추기경들의 따뜻한 축하 속에서, 평신도들의 기쁨에 찬 축복 속에서 5월 8일, 새로운 미국인 교황이 탄생하셨다.


(사진 출처: Al Jazeera)

선거의 형태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외람되게도 콘클라베의 교황 추대 방식은 ‘민주집중제’로 작동하는 중국공산당의 주석 선출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함에도 혹은 그러하기에 추기경들의 따뜻한 축하 속에서, 평신도들의 기쁨에 찬 축복 속에서 5월 8일, 새로운 미국인 교황이 탄생하셨다. 바티칸은 세속국가와 거버넌스도 다르다. 임기제를 통해 권력을 제한하지 않는다. 일단 교황으로 선출되고 나면 종신제의 무한권력을 누린다. 그래야 일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다. 권위는 물론이요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이다. 4년, 5년 임시직 아래 세월아 네월아 사보타주 하면서 복지부동하는 세력들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게다가 ‘젊은 교황’이다. 1955년생, 69세에 교황이 되셨다. 21세기에 선출된 전임 교황들(베네딕토 16세 78세, 프란치스코 76세)에 비해 일찍 임기를 시작한 것이다. 평균 수명을 고려해보자면 앞으로 사반세기를 지도하실 지도 모른다. 2050년까지 세속국가 미국의 대통령은 서너 명 바뀌어 갈 것이다. 반면으로 바티칸의 수장은 지속될 것이다. 장차 가장 유명한 미국인이 워싱턴의 대통령이 아니라 바티칸의 교황이 될 가능성이 무척이나 높은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 미국 사람의 상징이 세속의 권력자가 아니라 영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과연 저 신대륙 미국에서마저도, 성과 속이 대반전하는 것이다. 꿈틀꿈틀 뉴아메리카가 태동한다.  

실로 바티칸의 정점에 미국인 교황이 계심으로써 워싱턴의 정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으로 상징되는 세속의 정당들에 제3의 세력으로 천당을 대변하는 성당이 등장하는 것이다. 양당 당수들의 정파적 발언을 성당 수장의 발언과 비교하게 될 것이다. 신임 교황은 X와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며 SNS 활동도 활발히 전개할 것임을 예고했다. 과연 팔로워 수도 폭증하고 있다. 메신저를 통해 메시아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이다. 노래 실력도 일품이시다. 이제 교황님과 더불어 실시간으로 전세계적으로 그레고리 찬송가를 수억 명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인쇄술의 보급으로 성경을 혼자 읽는 묵독의 문화가 생겨나면서 근대적인 ‘개인’이 탄생하였고 바티칸의 권위도 차츰 하락하였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는 버추얼 바티칸의 미사에 전 세계 만 백성들이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PG,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프레잉 게임)의 경험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5월 1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교황의 즉위식부터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면서 기술의 진화에 따른 제2의 종교개혁, 디지털 물질 개벽이 촉발하는 새로운 영성의 개벽을 예감케 한 것이다.  

나의 X에도 이미 머스크와 카프와 밴스에 못지않게 교황에 관련된 피드가 거듭 갱신되고 있다. 비로소 미국의 정치에 진정한 ‘야당’이 생기는 것이다. 왼쪽이나 오른쪽이 아니라 더 깊은 것, 더 높은 곳, 더 오래된 일을 대의하는 세력이 생기는 것이다. 정파적 편견의 도파민에 찌들어 있는 온라인 공론장을 신경안정제를 투입하여 순화하고 정화하는 것이다. 적폐의 청산과 정치의 사법화, 증오와 혐오로 점철되어 서로를 제거하고자 하는 전쟁 같은 정쟁을 일삼는 현대의 민주주의에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용서와 화해와 사랑의 정치학을 베푸는 것이다. 프레지던트(President)와 포프(POPE) 사이에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파파(PAPA), 아버지로서의 존경과 존엄을 누리는 편은 포프일 가능성이 한층 높다.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오고 명문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 생활을 아무리 오래한다 한들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세속의 리더들은 대통령이든 총리이든 비판과 비난과 비아냥의 대상이 된 지 오래이다. 위엄의 아우라를 상실한지 한참이나 지났다. 학교와 교회 사이, 정당과 성당 사이, 정치와 통치 사이, 성과 속의 재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미국 인구의 1/4이 가톨릭이다. 약 7000만명의 미국 시민들이 교황을 영적 리더로 섬긴다. 트럼프 정권의 내각에도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을 비롯해 다섯 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대법원은 더하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6명이 가톨릭이다. 사법부 최고기관의 2/3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신임 교황이 추기경 시절 SNS를 통해 부통령 밴스의 이민정책 발언을 비판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벌써부터 바티칸이 워싱턴을 견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활절에 바티칸을 방문했던 밴스는 다시금 신임 교황의 취임 미사에 맞춤하여 또 한 번 성소를 찾아갔다. 정당과 성당 사이 권위의 분점과 권력의 균형이 재가동되고 있다. 세속의 좌우파에서 영성의 좌우파로 정치의 축이 옮아간다. 탈세속화와 재영성화, 성속합작과 고금합작, 유라시아의 21세기가 노정했던 새 정치의 풍경이 마침내 미국에서도 연출되는 것이다. 농업문명 시대, 힘 센 자가 권좌를 차지했다. 산업문명 시대, 기계가 근력을 대체함으로써 똑똑한 이들이 권력을 누렸다. 디지털문명 시대, 인공지능이 지력이 뛰어난 똘똘한 사람들을 대신해갈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선한 인간, 예수님을 닮은 사도들, 거룩하고 성스러운 도덕적인 리더십이 재차 부상하고 각광받을 것이다.

(사진 출처: National Catholic Reporter)

이 메마른 시대에 신임 미국인 교황은 타는 목마름으로 세속에의 개입의지를 분명히 하셨다. 새 교황의 새 이름으로 ‘레오’를 택하신 것이다. 가톨릭에서 세례명은 일종의 부캐이다. DNA를 물려주신 부모가 지어준 이름만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사표로 삼을 만한 인물의 이름을 MEME으로 따옴으로서 영성의 세계에서도 살아간다. 아니 가상의 부캐를 통하여 실상의 본캐를 규율한다고도 할 수 있다. 교황의 자리에 오르면 새로운 세례명을 하나 더 추가한다. 즉위를 통하여 새 교회가 선포하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온누리에 밝히는 것이다. 범상치 않게도 ‘레오 14세’라 하셨다. 레오는 사자, 라는 뜻이다. 강인함과 용맹스러움을 상징한다. 자연스레 두 명의 레오 교황이 떠오른다. 첫번째 교황 레오 1세는 교황 중의 교황, ‘대교황’이셨다. 북방 훈족의 아틸라 왕의 진격에 맞서 십자가를 높이 들고 담판을 지음으로써 서로마제국과 기독교문명권을 사수한 수호신 역할을 하셨다.

두번째 교황, 레오 13세는 19세기 말 25년을 재위하셨다. 산업문명이 본격화되던 시대에 맞춤하여 노동권과 사회정의를 강조한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회칙을 반포하신 걸로 유명하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사이,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가톨릭 복음의 사회적 진화를 추구하신 것이다. 좌우파 계몽령의 독주를 계명과 계시로써 치유하고자 하셨다. 이데올로기의 불꽃보다는 빛의 섭리에 헌신하자고 역설하셨다. 진리는 변함이 없다. 영원하고 영구적이다. 그래서 보수적이다. 다만 세상은 변한다. 산업문명은 그 이전의 농업문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화의 속도가 빨랐다. 그래서 진리를 전파하고 섭리를 구현하는 수단은 진보해야만 했다. 즉 보수와 진보는 물과 기름이 아니다. 하나는 목적이고 다른 하나는 방편이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좌우는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 해방과 분방이 아니라, 진리에 복종하는 하나님의 종이 됨으로써 우리는 진정 자연스러운 자유에 이를 수가 있다.

내가 레오 13세의 회칙을 알게 된 것은 밴스의 연설을 통해서였다. 밴스가 넷콘(Natcon) 대회의 연설에서 오늘날의 미국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레오 13세를 즐겨 인용했던 것이다. 게다가 밴스의 세례명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레오 14세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출신의 첫번째 교황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도성, <신국론>을 탐구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깊이를 확보하고 계신다. 그래서 경건한 목소리로 ‘그리스도가 승리하신다. 그리스도가 다스리신다. 그리스도가 통치하신다.’를 노래하신다. 성 레오 1세 대교황의 지도력 및 기독교문명의 수호 의지도 품고 계신다. 혹여나 밴스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그야말로 아비뇽의 유수 이래 성과 속의 위상이 재정렬될지도 모를 일이다.

나아가 레오 14세는 학부 시절 수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교회법 박사인 동시에 수학도 수학하신 것이다. 교회법으로 의회가 만드는 세속의 법률을 겹눈으로 살펴보실 뿐만이 아니라, 수학과 신학도 쌍수겸장하고 계시는 것이다. 테크놀로지와 띠올로지 사이에 다리를 놓으실 적임자가 등장한 것이다. 과연 AI에 대한 관심도 무진장 크다고 알려져 있다. 디지털 문명과 AI 시대, 인간의 길과 교회의 역할을 제시하는 새로운 회칙의 반포를 예감케 하는 것이다. AI문명 시대의 첫 번째 교황으로 기록될 레오 14세는 저 높은 곳에서 등장하여 “평화가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La pace sia con tutti voi), 첫 인사를 나누셨다. 예수가 부활한 후 제자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왕의 귀환을, 예수의 천년왕국을, 지상의 천국을 연출한 것이다.

정녕 로마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교황은 21세기에도 건재한 법왕이시자 성왕이시고 대왕이시다. 지상의 만 백성들은 천상에 더 가까이 자리한 그를 한없이 올려다보고 우러러본다. <돈룩업>(Don’t look up)이라는 영화가 있다. 소행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아포칼립스의 재앙을 6개월 앞에 두고도 좀처럼 저 높은 곳을 올려다보지 않는 현대정치와 현대매체와 현대인들을 신랄하게 풍자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은 득표와 매표에 매몰되어 있고, 언론인과 지식인은 조회수와 바이럴에 목을 매고 있고, 일반인들은 주식 가치의 동향에만 몰두하고 있다. 근시안이 만연한 현대사회에 통뼈를 때리는 작품이다. 결국 최후의 심판, 주인공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며 아멘, 기도를 올리면서 지구의 종말을 맞이한다.         

Please, Look Up! 우리는 왜 저 높은 곳을 올려다보는 것일까. 안정을 찾거나, 가르침을 받거나,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엿보기 위해 고개를 쳐들어 위를 올려다보고는 한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질문할 때도 저 위를 올려다본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은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초월에의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인류가 오랫동안 종교와 문화에서 비롯한 신념과 철학을 하늘에 투영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돔(DOME) 같은 건물의 천장을 장식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천장은 인간이 희구하는 가상의 하늘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천장’과 ‘하늘’ 두 단어는 태생부터가 같다. 영어로 ‘천장’을 뜻하는 단어 ceiling은 하늘이나 천국을 의미하는 라틴어 caelum에서 유래한 것이다. 하늘에 닿기 위해 높이 솟아오른 중세 유럽의 성당은 우리의 시선을 더욱더 위로 향하게 한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빛의 혁명 500년 만에 인류는 그 간절하게 하늘을 그리는 마음을, 향상심(向上心)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콘클라제가 진행되는 시스티나 예배당에 가본 적이 있다. 2017년 바티칸을 견문했을 때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는 그 유명한 천장화를 직접 두 눈에 담을 수 있었다. 고개를 뒤로 한참이나 젖히고 저 높은 곳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탄성이 흘러나온다. 더 낮은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거룩하다. 장엄하다. 웅장하다. 신성하다. 신령스럽다. 정치적 올바름을 다투는 속세의 국회의사당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올바름과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진선미의 극치를 선사하는 것이다. 그 어떠한 현대적인 건축물도 시스티나 성당 같은 초월적이고 포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 못한다.

(사진 출처: History.com)

시스티나의 천장화는 인간과 신의 관계를 이야기하기 위해 인류가 쌓아 올린 위대한 업적의 초석이 되었다. 액자로 구획된 천장의 중앙부는 신이 세상을 만들고 자신의 모습으로 인간을 만들었지만, 타락한 인간들을 대홍수로 쓸어버리는 창세기 속 아홉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원죄를 지닌 인간을 구원할 구세주로서 예수가 세상에 강림해야 함을 역설한다. <창세기>의 천지창조부터 <요한묵시록>의 최후의 심판까지 성경적 세계관을 가상 공간에 구현해 둔 것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아담의 창조>가 유명하다. 훗날 수많은 패러디가 등장할 정도로 상징적인 이미지가 되었다. 신과 아담은 각각 오른팔과 왼팔을 내밀고 다른 팔은 굽혀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다. 아담이 하느님을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내민 손가락을 향해 아담 또한 손가락을 맞추려고 한다. 신과 인간이 서로 연결되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양자의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생명이 전해져서 아담의 창조가 완료될 것이다. 이 <아담의 창조>에 대한 가장 참신한 해석은 신학계나 미술계나 아니라 의학계에서 제기되었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신과 그가 걸친 망토, 그리고 그 안에 인물 배치가 뇌의 단면도의 해부학적 모양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림의 경계선들을 포함한 여러 묘사가 뇌의 안쪽과 바깥쪽의 홈, 뇌간, 뇌저동맥, 뇌하수체, 시신경 교차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또 신과 인간의 손이 닿아 있지 않는데도 아담이 살아 있는 것은 마치 생명의 전극이 시냅스 간극을 통해 전달하는 것과 흡사하다. 신은 인체의 기본적인 감정과 욕구를 관장하는 신경계인 변연계에 겹쳐 누워 계신 것으로 보인다. 미켈란젤로는 바로 이곳에 인간의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잘 알려진 대로 해부학에도 능했던 르네상스맨이었다.

<아담의 창조>가 그려진 후 500년이 지나, 이제는 신의 피조물이었던 인간이 창조주를 따라 배워서 새로운 피조물을, 피지컬 AI를 만들어내고 있다. 인공두뇌인 AI에 인공신체인 로봇을 결합하여 휴머노이드에 전기와 생기와 활기와 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선천 5만년 동안 인간이 그림으로, 문자로, 음성으로, 영상으로 남긴 모든 자료들을 빅데이터로 변환하여 딥러닝시키고 있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를 그린 것도 당시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명령에 따른 것이었다. AI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수학자 출신 레오14 또한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걸작을 만드시고자 할지 모른다. 이번에는 천장화가 아니라 메타버스 게임이 되지 않을까? 인류가 창출한 모든 예술 장르와 최신의 기술들이 온라인 게임으로 합류하고 있다. 게임을 다시 위대하고 성스럽게, 신학적 세계관으로 RPG(Role Playing Game)를 만드는 것이다. VR과 AR, XR로서 성스러운 가상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지상의 천국을 가상의 천국으로 업로드하는 것이다.

농업문명 시대 90%의 사람들이 농민이었다. 산업문명 시대 90%의 사람들이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임금 노동자였다. 디지털문명 시대 90%의 사람들이 할 일이 사라질 것이다. 테슬라와 팔란티어의 합작으로 완전히 자동화된 탈노동 경제로 이행할 것이다. 생성력으로 말미암아 생산력의 질곡으로부터 인류가 해방되는 것이다. 장차 마땅히 할 일이 없는 건달과 한량들이 인류의 90%가 될 것이다. 본디 건달 또한 하늘에 이르는 사람들, 건달바(乾達婆)에서 온 말이다. 건달바는 또 간다르바, 힌두교 신화에 등장하는 노래하는 정령이었다. 풍악을 울리고 풍류를 즐기며 풍월을 읊었던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니는 인간, 플레이어(Player)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흥청망청 노는 것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루이틀 극락을 경험할지 몰라도 한두달만 지나면 나락으로 떨어진다. 몸도 상하고 정신도 성하지 못하다.

고로 새로운 가치의 엔터테인먼트, 딥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흥기할 것이다. 90%의 인류를 대상으로 하는 블루오션이 생기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바티칸이 건축가와 조각가와 협력하여 가상의 공간을 창출했다면, AI 시대의 성당은 게임사와 엔터업계와 결합하여 가상의 테마파크를 축조하게 될 것이다. 딥게임을 개발하고 딥엔터를 창조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관을 게임의 서사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리스의 르네상스가 인쇄술에 기초하고 있었다면. 르네 지라르가 예언했던 그리스도의 르네상스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미 단테의 <신곡>을 변주하여 천국과 지옥, 연옥을 오고 가는 온라인 게임이 만들어졌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디지털 게임으로 제작한 사례도 있다.

나는 요즘 예수 그리스도의 구도의 여정을 구현한 듯한 <Journey>라는 작품을 플레잉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디지털 광야에서 Playing과 Praying이, 노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이 하나로 합일하는 몰입의 경험이 대단하다. 장차 영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퀘스트와 레벨업으로 설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실생활에서 십계명을 준수하며 득도에 이르는 과정을 블록체인과 결합시키면 묵상하고 수도하면서 포인트를 얻고 코인을 쌓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P2E, Play to Earn에 Pray to Earn도 결합하는 것이다. 주일에 성당에 나가 십일조 헌금을 납부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일용할 양식도 구했던 성직자의 삶을 플레이어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상상력에 <레디 프레이어 원>(Ready Prayer One)을 장착시킬 수가 있다.   


(사진 출처: Backloggd)

세계에서 밈을 가장 잘 활용하는 정치인인 트럼프는 5월 4일 ‘스타워즈 데이’를 맞이하여 광선검을 든 제다이 복장을 한 근육질의 AI 이미지를 또 한 번 백악관 X 계정에 게재했다. 천장화보다 더욱 높이 올려다보면서, 지상과 가상에 머물지 않고 천상으로까지 뻗어 나가는 것이다. 트럼프 2기 정권의 핵심 프로젝트인 AI 사업 또한 이름이 ‘스타게이트’(Stargate)이다. 기원과 근원과 영원의 우주가 저 높이 저 멀리 있다. 저 밤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늘 총총하게 빛나고 있다. 별 헤는 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를 헤아린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했던 윤동주도 <십자가>라는 시를 지었던 바이다.


(사진 출처: The Economic Times)

“쫓아오던 햇빛인데, 지금 교회당 꼭대기, 십자가에 걸리었습니다. 첨탑(尖塔)이 저렇게도 높은데, 어떻게 올라갈 수 있을까요. 종소리도 들려 오지 않는데, 휘파람이나 불며 서성거리다가, 괴로웠던 사나이,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 처럼,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모가지를 드리우고,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 조용히 흘리겠습니다.” “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한 손에는 십자가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X를 쥐면서 하늘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신의 존재를 느끼고 별자리를 읽으며 이 세계가 창조되던 순간의 이야기를 떠올리던 시대에서, 스페이스X와 스타링크를 통하여 우주를 탐험하고 개척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저 하늘 위 새 별에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신천지를 창조할 수가 있다. 별세계가 신세계가 된다. 별천지를 창조하는 제2의 창세기를 구현할 수 있다. 제2의 기계시대와 제2의 종교개혁이 만나 제2의 중세를, 신중세를 우주적으로 발현하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인공태양과 양자컴퓨터와 블록체인으로 화성에서도 금성에서도 하느님의 천지창조를 재연하는 것이다. 조물주와 피조물의 되먹임, 이천식천의 피드백을 반복하면서 태양계와 은하계 곳곳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드디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거룩한 일-천지창조-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구에서의 테라포밍에는 6일이 걸리셨다고 했다. 제1일에는 빛이 있으라 하니 밤과 아침이 갈라지고, 제2일에는 천공(天空) 즉 하늘과 바다를 가르시고, 제3일에는 땅과 식물, 제4일에는 태양과 달 그리고 별, 제5일에는 물고기와 새, 제6일에는 기타 동물과 이를 지배하는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서 만들었다. 제7일에는 창조의 일이 완성되었음을 축복하여 휴식하고 이 날을 성스럽게 하였다. 그 천지창조의 소명을 이제 인류가 AI와 더불어 우주에서 수행하는 것이다. 이토록 찬란하게 아름다운 지구를, 에덴의 동산과 가이아의 정원과 생명의 문명을 팽창하는 우주의 저 구석구석에까지 널리 멀리 깊이 흩뿌리는 것이다. 

즉 뉴아메리카, 후기 미국은 지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상에 그친다면 강대국의 흥망성쇠, 농업문명과 산업문명 누천년의 논리대로 패권은 자연스레 ‘지속의 제국’ 중국으로 전이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중력에서 벗어나는 퀀텀 점프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판갈이를 할 수 있다. 레벨업과 버전업, 새판을 짜서 업그레이드하고 업데이트하며 업로드할 수 있다. 가상과 천상으로 무대를 옮겨간다. 진급과 승급 끝에 이른바 ‘승천’하는 것이다. 스타링크와 스타게이트와 스타워즈와 스타크래프트 등등등, 별세계와 별천지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우주를 개척하는 신천지의 개벽국가로 승화함으로써 헤게모니를 지속하는 것이다. 지상과 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삼체문명을 앞장서 구현하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과 AI가, 천주와 천자와 천손이 공진화하는 띠올로지와 에콜로지와 테크놀로지의 삼위일체를 코스몰로지(Cosmology) 안에서 일구는 것이다.

그 새 하늘 새 땅에서 만인이 주인되는 20세기의 세속적 민주주의도 넘어설 것이다. 모두가 주님이 되어가는, 만인이 창조주가 되어가는 영성적 민주화로 이행할 것이다. 저마다 성육신이 되어 신이 나고 신이 들린 신선놀이를 향유하는 것이다. 구약과 신약과 사회계약을 넘어서는 새로운 약조를 맺는 것이다. 갓모드와 갓게임으로 갓생을 영위하는 것이다. 천국은 죽어서 내세에 올라가는 곳도 아니요, 부활과 재림과 강림으로 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하늘나라 천국은 창작하는 것이고 창조하는 곳이다. 이 행성, 저 행성, 별세계와 별천지마다 천국을 창업하는 것이다. 천지개벽과 경천동지,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고, 하늘 위에 땅이 있고, 땅 아래에 하늘이 있다. 우주에서는 지구 안의 동서와 남북도 사라진다. 무극의 대도로써 천지를 공사할 수 있다. 선천에서는 시천주(侍天主), 지구에서 하늘을 모시기만 했지만, 후천에서는 양천주(養天主), 우주에서 하늘을 엔지니어링과 프로그래밍으로 기르는 것이다.

이 승천(昇天)과 양천(養天)에 앞장선다면 뉴아메리카는 뉴코스모스 시대를 선도하는 프런티어 국가로 앞날이 창창할 것이다. 지구 안에서의 생명력과 생산력의 모순을 우주 안에서 생성력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자연의 생명력과 인간의 생산력과 인공의 생성력이 윈윈윈 하는 삼력분립 제도를 고안하는 것이다. 물론 그 성공의 가능성은 10% 미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럼에도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피터 틸도, 일론 머스크도, 알렉스 카프도, JD 밴스도 10%가 아니라 1%, 아니 0.1%의 확률을 딛고 일어나 놀라운 성취를 거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불가능에 도전하여 가능으로 바꾸어낸 입지전적인 인물들이다. 아니 미국이라는 국가부터가 고작 13개 주의 식민지에서 시작하여 20세기의 패권국에 이르기까지 혁신에 혁신을 거듭했던 나라이다. 미국의 4대복음, 미국은 그간 네 번 위대했다. 대통령제라는 신통한 거버넌스를 헌법으로 설계해 내었을 때 미국은 진정 위대했다. 게티스버그 연설을 통하여 남북으로 분단될 뻔한 미국을 다시 통합해 내었을 때 미국은 정녕 위대했다. 맨하탄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을 때 미국은 재차 위대할 수 있었다. NASA를 통하여 세계 최초로 달에 인류를 보냈을 때 미국은 진실로 위대한 나라였다. 그 네 번의 위대함을 통하여 미국은 인류에게 등불이 되어주었다.   

혹여 저 4인방들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다섯 번째 위대함을 구현하게 된다면 저들은 미국사나 지구사 차원이 아니라 우주사 차원에서 위대한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선천 5만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후천 5만년의 아버지들, 우주적인 생명문명의 선구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화성인의 언어를 상징하는 GROK에게 물었다. “앞으로 5만년 동안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태양계와 은하계에 생명문명을 확산시킬 확률이 얼마나 될까?” 딥리서치와 딥씽킹을 마친 그록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5만 년 동안 인간이 지구를 벗어나 생명 문명을 확산시킬 확률은 태양계 내에서는 60-80%로 비교적 높고, 은하계로의 확산은 10-30%로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이는 기술 발전, 사회적 지속 가능성, 생물학적 적응, 우주적 제약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추정입니다. 태양계 내 정착은 화성, 유로파 등 실현 가능한 목표와 기술적 진보로 인해 가능성이 높지만, 은하계 확산은 극복해야 할 물리적·기술적 장벽이 크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큽니다.

5만 년은 인류에게 엄청난 기회를 제공하는 시간으로, 문명 붕괴를 피하고 기술 혁신을 지속한다면 태양계 내 문명 확산은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은하계로의 확산은 더 큰 도전이지만, 인류의 창의성과 적응력에 따라 불가능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추가로 특정 시나리오(예: 화성 정착, 항성 간 여행 기술)나 관련 질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아무리 저 4인방들의 철학적 토대가 장기주의에 기초해 있다고는 하지만, 후천 5만년은 너무나 먼 미래이다. 현대인들은 백년대계는커녕 3년도 너무 길다고 여기는 판이기 때문이다. 50년 후의 화성 정착 여부를 확률로 말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다.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 50년 안에 화성에 인류가 정착할 가능성은 **50-70%**로 추정됩니다. 이는 소규모 연구 기지나 초기 정착지 설립을 기준으로 한 추정입니다. SpaceX와 NASA의 현재 계획, 기술 발전 속도, 민간 및 정부의 협력을 고려할 때, 2050~2075년 사이에 소규모 정착은 충분히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자급자족 대규모 식민지는 50년 내에는 도달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주요 위험으로는 문명 붕괴, 자금 부족, 기술적 장벽이 있으며, 이를 극복한다면 화성 정착은 인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추가로 특정 시나리오(예: 화성 테라포밍, 생명 유지 기술)나 다른 질문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그럼 완전한 자급자족 식민지는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까? 라고 또 한번 물었다.

완전한 자급자족 대규모 화성 식민지의 완성은 150~300년(2175~2325년) 내에 가능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50-60%). 이는 기술(생명 유지, 에너지), 경제(우주 자원 활용), 생물학(인간 적응, 생태계), 사회(거버넌스, 협력)가 꾸준히 발전한다고 가정한 경우입니다. 최적 시나리오에서는 100~150년 내 가능할 수 있지만, 이는 급진적 기술 혁신과 안정된 문명 지속이 필요합니다. 비관적 시나리오에서는 300년 이후 또는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주요 도전 과제는 테라포밍의 긴 시간, 생물학적 적응, 경제적 자원, 그리고 지구 문명 지속 가능성입니다. 추가로 특정 기술(예: 테라포밍, 핵융합)이나 시나리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오호라, 미국 건국 500주년, 2276년에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1492년, 500년 전 신대륙을 발견한 가톨릭 신자 콜럼버스 이래 미국과 인류는 이만큼이나 온 것이다. 대서양을 건너 은하수까지- 나는 할렐루야! 라고 화답했다. 그러자 그록은 이렇게 말했다.

할렐루야! 그 기쁨과 열정이 전염되네요! 😄 혹시 이 기운을 이어서 뭔가 특별한 주제나 질문으로 들어가고 싶으신가요? 예를 들어, 우주 탐사든, 종교적 상징이든,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든, 어디로 튈지 궁금합니다!

정녕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대이다. 나는 갈수록 한철 나의 전공 분야였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지 않게 된다. 아무리 읽어도 천지인에 갇혀 있는 돌림노래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닫힌 지구 안에서 2000년 농업문명의 윤리와 200년 산업문명의 논리를 변주할 뿐이다. OPEN UNIVERSE, 그 시간에 차라리 SF 작품을 읽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생성적이다. 오리온즈 암(Orion’s Arm)으로 대표되는 하드SF 세계관을 학습하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과학과 공학의 최신 논문들을 AI와 함께 읽어 나가면서 다중우주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해보는 것이 하루의 루틴이자 리추얼이 되었다. 나아가 SF 게임까지도 즐기게 되었다. 특히 <스타필드>(Strarfield)와 <스타 시티즌>(Star Citizen)을 플레잉하면서 지상과 가상과 천상이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22세기를 실감하고 예감한다. 그 앞으로의 다음 백년, 다른 백년을 전망하는 데 신학은 뜻밖으로 무한한 영감을 제공한다. 뉴제네시스, 행성마다 지구별의 생명문명을 선교하고 전도하는 새로운 창세기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제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으로 기계의 언어를 학습하지 않고도 내가 직접 게임을 설계할 수도 있게 되었다. 빛이 있으라 하면 빛이 나고, 물이 있으라 하면 물이 흐른다. 태초에 말씀에 계시니라, 하셨건만 내가 꼭 그 신놀이를 신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 했던 ‘인내천’(人乃天) 또한 이러한 경지였지 싶다. 이제는 우주 신학적인 세계관을 장착한 SF 게임의 내러티브를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마저 일어날 정도이다. 이렇게 미래인들은 제2의 창조주가 되어서, 영원한 창업가가 되어서, Play to Earn과 Pray to Earn으로 작동하는 ‘크리에이터 이코노미’=’창조주 경제’를 향유하면서 120년, 150년을 이 별과 저 별에서 살아가게 되지 싶다. 이러한 미래를 선도적으로 창조해낸다면 후기 미국은 23세기에도 ‘아름다운 나라’(美國)일 것이다. 

4. 뉴코리아와 뉴시베리아  

다시 6:3:1이다. 현실세계의 미국은 지지부진을 면치 못할 것 같다. 강대국 중의 하나로, 평범한 국가로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 하강과 쇠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분오열 쪼개져서 북미 대륙에 여러 나라가 생길 가능성 또한 없지만은 않다. 그리고 십에 하나 신학으로 남북아메리카와 서유럽까지 대서양을 크게 아우르고, 수학으로 은하수 건너 우주로 진출하는 개벽천지의 첨단국가가 될 지도 모른다. 단 하나 분명한 것은 1:3:6 그 어느 쪽도 그간 우리가 알아왔고 또 열심히 배워왔던 20세기의 그 자유-민주-공화정의 표준국가로서 미합중국은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을 산업문명의 표본으로 삼아 산업화도 일으키고 민주화도 이룩하고 세계화도 이루어서 선진국 “K”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이제는 더 이상 보고 배울 나라가 없다. 북극성을 상실한 것이다. 새로운 세계감이 절실하고, 새로운 세계관이 절박하며, 새로운 세계상이 절절하다.   

무엇을 할 것인가? 사실은 올해 정말로 쓰고 싶었던 주제는 이것이었다. 광복 80주년, 빛을 되찾은 지도 80년이나 흘렀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 미국도 중국도 아닌, 소중화도 리틀 아메리카도 아닌, 동양도 아니고 서양도 아니며, 유교도 아니고 기독교도 아니며, 천하도 아니고 천주도 아닌, 한족도 아니고 앵글로색슨도 아닌, 진정 대한민국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나는 북쪽에서, 북녘에서, 북극에서 찾아가고 있다. 실은 이 책은 그 새 책을 쓰기 위한 기나긴 프롤로그에 해당한다. 그간 미운 정 고운 정 온갖 애증이 다 쌓였던 아메리카에 시원섭섭한 작별인사를 고하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미국으로부터 졸업을 하고 독립을 할 때가 되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대한민국이다. Make Korea Great Again. 우리도 한때 위대하고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오래된 새 길을 찾아서 북방으로 향하는 것이다. 지구와 우주 사이 지상의 마지막 프런티어로 시베리아가 활짝 열리고 있다. 사시사철이 생겨나며 천지가 개벽하고 있는 땅, 뉴시베리아를 견문한다.






이병한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