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4년 2월 26일

10. 당신의 초상들 (2) - 멧돼지에게






‘땡-’
1월 말쯤이었을까. 핸드폰 알람이 울렸어.



긴급 재난 안전 안내 문자

동래구 명륜동 문화회관 주변에 멧돼지가 출몰하여 마안산 북문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인근 주민께서는 안전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동래구청]



3년 전의 나였으면 이 문자를 대수로이 보았겠지. 살면서 대도시에 사는 내가 집 앞에서 널 볼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내가 널 처음 본 순간은 자정의 아파트 앞 놀이터에 담배를 피러 나왔을 때였어. 

늦은 밤 간접조명등 아래서 거무스레한 동물이 휘적휘적 가고 있더라. 난시가 심한 나는 안경을 쓰고 있지도 않았고, 친구와 전화 중이었기도 해서 유심히 보진 않았지. 그저 같은 아파트 윗층에 사는 검은 래브라도가 신나게 밤산책을 나온 줄 알았어. 그이는 점점 가까워졌어. 1m도 되지 않던 거리에서 서로를 곁눈질로 바라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난 다가오던 존재가 너였다는 걸 알 수 있었어. 숨이 멎을 것만 같았어. 자세를 세우고 가만히 너를 흘깃흘깃 쳐다보았지. 발굽이 있는 네 걸음걸이를, 옆집 개가 휘적휘적 걷는 거라고 난 생각했던 거야.

“잠시만…. 멧돼지.. 멧돼지. 잠시만,”
“어??”

잠깐 목소리를 죽이고 그 자리에 얼어 붙어버렸어. 중·대형견 크기의, 생각보다 왜소한 몸짓과 나 못지않게 불안해 보이던 눈빛. 넌 어려 보였지. 갑자기 며칠 전 흘려들었던 경비원 아저씨의 안내 방송이 떠올랐어. 옆 아파트 단지에서 멧돼지 5마리가 기근으로 내려왔으니 주의하란 내용이었어. 우린 무당벌레 모양의 스프링 라이더를 사이에 끼고 긴장한 채 있었지. 본능적으로 너를 안심시켜야겠단 생각이 들었어. 우리 사이에 놀이 기구가 있어 천만다행이었지. 너는 이내 단지 내 풀이 많은 정원으로 비껴갔어.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네가 작은 덤불에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또 마주칠까봐 집으로 후다닥 들어왔었어. 곧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더라.

“아아-. 며칠 전 옆 아파트에 출몰했던 멧돼지 5마리 중 4마리는 잡았지만(사살했지만), 한 마리는 지금 우리 아파트에서 돌아다니는 중입니다. 분리수거함을 잠시 닫아두고 포획단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집 밖에 나오시지 말고, 발견 시 신고 바랍니다.”

“아니, 밖에 멧돼지가 돌아다니는데 나가서 전화도 안 받고… 뭐 했어?”

가족의 걱정을 뒤로 한 채 방문을 닫았어. ‘신고할까?’ 몇 번을 고민했어. 아파트 현관에 들어가던 길, 총과 손전등을 가지고 돌아다니던 경비들의 모습을 보니 차마 제보를 못 하겠더라. 그저 사람과 최대한 마주치지 않고 네가 다시 산으로 돌아갈 수 있길 속으로 기도했어.

멧돼지야. 난 얼마 전 고라니에게 편지를 쓰며 기억에 한 켠 묻어두었던 네 눈빛이 생생하게 떠올랐어. 최근 네 개체수가 급격히 많아지며 등산로, 농가, 아파트 단지 등 곳곳에서 너에 대한 우려의 말들을 일상에서도 쉽게 볼 수 있게 됐어. 야생동물 중 특히 너를 집중해 관찰하는 연구자의 얘기가 인상 깊었어.

“야생동물 중 이렇게 많은 감정이 드는 동물은 드물 거에요.”

난 사람들이 너를 보는 시선과, 네가 도시에 내려올 때의 시야가 궁금해졌어. 찾아보기 시작했지.

“산에서 멧돼지 흔적은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진흙 목욕을 좋아해서 나무 밑동 한 면에 유독 진흙이 많이 묻어있는, 비빔목들이 모여 있다면 멧돼지 서식지에요. 나무에 있는 털을 종종 관찰해보면 항상 끝이 갈라져있어요. 비빔목은 대부분 송진이 있는 나무들이죠. 송진이 있나 확인하기 위해 엄니로 나무를 갈아봐요.”

“멧돼지가 털로 옮기는 씨앗들이 600종이 넘어요. 엄연히 씨앗 매개자인데 그냥 잡는 게 방법은 아니죠…. 한 마리 당 나오는 씨앗이 300종, 400종도 되었어요.”

“웬만한 야생동물들은 사람을 경계해요. 공격하기보단 도망가길 선택하죠. 멧돼지도 마찬가지에요. 등산 중에 멧돼지를 만나면 우산을 펼치거나 몸을 부풀리라는데 그건 잘못된 대면 방식이에요. 가만히 보내주는 게 좋아요. 혹시 공격 당하게 된다면 무조건 나무 위로 올라가세요. 멧돼지 공격 시간은 2-3초면 끝나요.”

“멧돼지 개체수는 아직 완전 파악되지 않았어요. 영양 상태가 좋은 암컷 같은 경우는 많이 낳을 때는 8마리, 9마리도 낳고 기본적으로 3-5마리는 낳아요. 우리가 1년만 포획을 쉬어도 그 이듬해는 두 배 세 배 이렇게 지수적 성장을 하거든요. 포획을 얼마나, 어떻게 할지 자료들이 필요한데 우리나라는 멧돼지 연구가 잘 되어있지 않아요. 자연스레 멧돼지의 자연적인 번식을 맞춰서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정책도 부족해지죠. 개체 수 산정도 잘 되어있지 않아요. 생태와 습성에 대한 기초 연구조차 없고요.”

“포획 적정수에 대한 연구가 전혀 없어요. 자연 조절을 기대하기엔 표범, 여우, 곰, 호랑이 같은 상위 포식자가 없으니. 200kg씩 되는 어미 성체가 죽은 걸 보면 마음이 심란해요.”

”환경부 자료에선, 유해 동물 구제 사업으로 사살된 멧돼지 수가 2018년 4만 2,667마리에서 2023년 7만 2,113마리로 69% 증가했어요. 돼지 구제역(ASF)의 영향으로 죽어난 멧돼지 수가 더 늘었죠.”

“암컷은 암컷끼리 무리를 이루어 다니고, 수컷은 단독으로 생활하죠. 혹한기에 성체는 버텨요. 새끼 잘 얼어 죽고요.”

연구자의 애정어린 관심.

“우리는 얘네 때문에 돌아뿌지. 사과꽃은 고라니가 묵고, 나무 뿌리는 멧돼지가 다 파뿌고. 지렁이 때문에. 갈수록 심해져.”

“멧돼지가 먹어 치우는 작물 때문에 받는 농가의 피해가 1년에 100억이 넘어요.”

“벼가 고개를 숙일라고 하는데 이 와보니까 이 논을 하룻저녁에 반을 먹었더라고. 그 이튿날 밤에 지키려고 서치라이트 가지고 와보고 삽을 가지고 와봐도 어느 때 오는질 몰라. 며칠은 그냥 밥도 못 먹어요. 되게 마음 아파서. 세 포대 나올 거를 한 포대도 못 추리면 맘이 어떻겠어요.”

“옥수수 3000개를 미리 예약받아놨는데 멧돼지가 싹다 먹어버리는 바람에 취소할 수밖에 없었어.”

골머리를 앓는 농가의 시선.

“먹이를 둬도 그냥 먹진 않아. 먹고 뒤로 빠지고 먹고 뒤로 빠지고. 어미가 리더인데, 가족이 경계심이 많아서 조직적으로 움직여. 경계심이 많아.”

“저돌적이란 말이 얘네 두고 나왔어. 돼지 저(猪) 갑자기 돌(突)!”

“자연 그대로 두는 게 제일 좋은데 포식자가 없으니 자꾸 늘어나고 손해가 커지고. 안타깝지…. 근데 우짜노. 우리도 살아야 하는데.”

“사냥개를 풀어서 잡지 보통. 사냥개들이 포위시켜야돼. 우리도 얘네가 달려들면 수를 못 쓰니까. 그냥 다치는 거지, 뭐.”

“암컷은 몰라도 수컷은 송곳니(엄니)가 일생동안 자라서 윗니에 갈리기 때문에 음청 날카로워. 조심해야돼.”

엽사의 시선.

“북한에서 가축전염병(ASF)이 번지더니, 2019년에 DMZ에서 발견된 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나왔어요. 우리 돼지들은 아무 문제들이 없다가 갑자기 죽었다고. 왜 멀쩡한 돼지들을 살처분해. 멧돼지들부터 조사해야지.”

“멧돼지 때문에 번지는 게 확실한 거 아닙니까? 우리 돼지들 살처분하기 이전에, 적어도 비무장지대 돼지들은 다 박멸해야지.”

“박멸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면…. 정부가 야생 멧돼지 ASF 방지 대책을 제대로 내놔야죠”

양돈협회와 일부 전문가의 시선.

“정부는 2020년 남북 접경지역의 야생 멧돼지에서 이 병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는 이유로 멧돼지의 ‘씨를 말리는 식’의 대책을 내놨어요. 멧돼지 1마리당 포상금 20만 원을 내건 덕분에 ‘살육의 축제’가 전국에서 벌어졌죠. 지방정부도 가세했어요. 강원도는 접경지역 5개 시군의 ‘멧돼지 제로화’를 천명했고, 아프리카돼지열병과 무관한 충청북도는 충북에 사는 전체 멧돼지의 절반가량을 포획하겠다고 선포했고요. 경상북도에서는 멧돼지 사냥이 한창이던 지난해 10-11월 전국에서 가장 많은 7,410마리를 잡았어요.”

“닭이나 오리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로 폐사하면 다짜고짜 철새들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데, 에이아이 바이러스는 거의 언제나 인간이 옮긴 것으로 드러났고, 사육 동물의 유전자 다양성 결여와 공장식 밀집 사육 때문에 급속도로 확산돼요. 아프리카돼지열병 또한 멧돼지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가능성이 훨씬 커요.”

“아프리카돼지열병을 비롯해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 재난에 가까운 가축 전염병이 창궐하는 것은 현대의 밀집형·공장형 축산 시스템 때문이에요. 지금 필요한 것은 이런 시스템의 조속한 개혁이죠. 멧돼지를 때려잡을 때가 아니지 않을까요.”

생각이 다른 일부 전문가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

“서울 도심 출몰한 멧돼지, 은행 ATM부스 들어가…50분만에 사살되었다. … 이 멧돼지는 인근 불암산에서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은행 건물 안에는 멧돼지만 있었고 별다른 파손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사살된 멧돼지는 경찰에 인계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집에서 쾅 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까, 멧돼지가 죽어있는 거야. 옥상에서 멧돼지가 똑 떨어진 거지. 지붕에 올라가 보니까 안 떨어질라고 발버둥 친 흔적이 있더라고.”


출처 : 이것이 야생이다2 4부 멧돼지 편의 한 장면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갑자기 멧돼지가 들어와서… 너무 놀랐죠. 여기저기 처박고 달려드는데 피할 수 있어서 망정이였지… 식탁 엎어지고 말도 아니었어요.”


출처 : 연합뉴스 TV 방송영상 캡쳐본

사람들이 보는, 하지만 네 시선도 동시에 느껴지는 이야기들.

“서울 도심에 멧돼지 3마리 출몰…2마리 사살”

“동해 천곡동 도심서 멧돼지 출몰… 20여분만에 사살”

“대구 도심에 멧돼지 잇따라 출몰…하루새 2마리 사살 1마리 도주…”

“부산 도심에 또 멧돼지 6마리 출몰 …3마리 사살”

“청주 도심에 멧돼지 출몰…1마리 사살‧2마리 도주”

“경기도 동두천 도심 멧돼지 출몰, 진돗개와 혈투…실탄 3발 쏴 사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너희의 도심 출몰 기사들. 기사 제목 끝 대부분은 사살이었어.

네가 죽거나, 도심에 출몰하는 수 외 숫자와 관련된 너의 자료들을 잘 모으지 못하겠더라. 문제에 대한 해결책, 이해관계를 자세히 알지 못한 채 다양한 입장의 이야기들을 모으다 보니 정리가 되지 않아 말문이 막혔어. 그저 내가 본 만큼 나열하고, 사람들이 너를 보는 시선, 네가 인가에 왔을 때 어떤 심정일지 시선을 지금의 내 속도로 따라가  봐. 경계심 많고, 섬세한 네 성향만큼이나 사람들이 너를 대하는 태도도 조심스러워질 수 있길 막연하게나마 바라. 커다란 문제 앞에서 무기력에 먹히지 않고 너희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너희의 털에 붙은 씨앗이 더 멀리멀리 퍼지길. 이 글로 나도 그 첫발을 뗄게.




운주 씀





참고자료

- EBS 다큐  이것이 야생이다2 4부 멧돼지, EBS1, 2017.12.20.,
https://home.ebs.co.kr/sunday/board/13/10082460/view/10009214120?c.page=2&startPage=20&hmpMnuId=102&sortType=&searchCondition=&searchConditionValue=0&sortTypeValue=0&searchKeywordValue=0&searchKeyword=&bbsId=10082460&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3263.html

- KBS 대전 야생멧돼지와의 충돌[이럴 수 있슈], KBS 대세남 C&D, 2024.01.23. https://www.youtube.com/watch?v=P7yIbgo4j7U

- 돼지와 사람, “한 언론기사에 대한 유감...멧돼지 피해자? ASF 공장형 축산 때문?”,  2020.01.08., http://www.pigpeople.net/news/article.html?no=7764

- 박경만 기자, “멧돼지 품바의 비극”, 한겨레프리즘, 2020.01.05.,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23263.html

- 박광수 기자, “5년간 야생동물 농작물피해 542억원…멧돼지가 60% 차지”, 경향신문, 2023.09.21.,
https://m.khan.co.kr/economy/market-trend/article/202309210815001#c2b

- 박광수 기자, 한밤중 삼겹살집 난입한 멧돼지 “4분간 헤집고 사라져”, 중앙일보, 2018.01.05., https://www.joongang.co.kr/article/22260403#home






운주 경계에 선 사람들을 늘 만나고 싶어한다. 완전함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연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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