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7월 20일

11. 임괘(臨卦 ䷒)와 관괘(觀卦 ䷓)

- 낮은 곳으로, 넓은 눈으로






이 이야기는 수괘(隨卦)의 깨어남에서 시작합니다.
그의 깨어남은 일단 자기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그가 무엇을 기반으로 서 있는 지를 돌아보고 해결할 건 해결합니다. (蠱卦)
그는 힘든 일들을 처리해 내고 자유를 얻게 됩니다.
낮은 단계의 의식에 사로 잡히지 않고 자기를 둘러싼 현실과도 거리를 두면서 새로운 길로 나아갑니다. (高尙其事)
그렇게 걸어간 그가 이른 곳이 큰 연못 앞입니다.
땅과 물을 가르는 지점 앞에 그는 서 있습니다.
지택림(地澤臨)의 현장 앞입니다.
그에게 깊은 영적 깨달음을 안겼던 택뢰수(澤雷隨)의 그 연못인지도 모릅니다.

오래전 그는 이 연못 속에서 온 몸을 전율하게 하는 내적 변화의 경험을 했습니다.
그 경험은 하늘이 주신 선물이었고 그는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다름의 실체가 드러나는 시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임박(臨迫)해지고 있고, 그는 세상의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큰 고통이 있는 곳으로 내려갑니 다. 강림(降臨)합니다.
임괘의 이 이야기는 수 많은 성인들이 자기 삶을 헌신해 간 이야기의 원형입니다.

대강 머리 속에 그리기만 해도 마더 테레사, 이태석 신부, 슈바이처 이런 성인들의 모습이 그 려집니다.
임괘의 낮은 곳으로 가는 헌신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억압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손을 잡아주고 세상과 다시 연결시키는 작업입니다.
최근에 제가 보고 있는 임괘의 중요한 활동은 새로운 생명 인식과 함께 일어납니다.
무엇보다 동물, 비인간 생명에 대한 사랑을 마음 깊은 곳에서 표시하고 그들의 죽음을 슬퍼하고 애도하고 동물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싶어하는 동물권 운동가들, 개발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가 불러오는 생태학살(ecocide) 저항 운동가들에게서 임괘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들은 채식을 하는 것을 넘어 공장 축산과 육식 산업에 대해 직접 행동을 하고 개발로 인한 생태 위기에 저항해서 그 결과를 책과 영화, 음악 등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해월 선생님의 ‘사람과 만물을 대하는 마음, 대인접물(待人接物)’ 설교에 나오는 생명 인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세상 만물 중에서 하늘님 모시지 않은 게 있겠습니까?
이것을 알게 되면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일은 굳이 금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하지 않게 됩니다. 제비의 알을 깨지 않아야 봉황이 날아오고 풀과 나무의 어린 싹을 꺽지 않아야 산이 무성해 집니다. 손으로 꽃나무를 꺽으면 어찌 그 열매를 얻겠습니까?
소중한 물건을 함부로 버리면 부유해 질 수 있겠습니까?
날아다니는 3천 종류의 새들도 다 자기 부류가 있습니다.
땅을 기어다니는 3천 종류의 벌레들도 다 자기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과 생명을 공경하십시오. 그 귀한 마음이 온 세상에 미칠 것입니다.

(萬物莫非侍天主 能知此理則 殺生不禁而自禁矣 雀之卵 不破以後 鳳凰來儀草木之苗
不折以後 山林茂盛矣 手折花枝則 未摘其實 遺棄廢物則 不得致富 羽族三千 各有其類 毛蟲三千各有其命 敬物則德及萬方矣)

우리 시대의 임괘는 사람을 넘어선 생명 의식을 담아야 할 것 같아서 주역 원문에 조금 더 추가를 했습니다.
象曰 澤上有地 臨 君子以 敎思(民)无窮 容保民无疆.(敎思民无窮 容保天下萬物无疆. 敬天敬人 敬物)

원문의 임괘는 사람에 대해 무궁무량한 사랑을 보인다면 추가한 내용에는 천하만물에 대한 경물(敬物) 개념을 담았습니다. 주역은 3천년 전에 쓴 글이어서 우리 시대의 감각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하는 해석의 과제를 늘 만나게 됩니다.
시역(侍易) 작업에서는 이 주제도 중간 중간 다루겠습니다.

사랑의 사람 임(臨)은 고통이 있는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그는 그곳에서 세상 사람과 만물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지만 길을 찾지는 못합니다. (咸臨)
수많은 방법을 쓰면서 길을 찾아간 그는 어느 시간이 되면 깊은 공감의 어느 지점에 이르게 됩니다. (至臨)
이어지는 지림(知臨)과 돈림(敦臨)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그가 타인을 돕는 것을 넘어 내면의 깊은 영성(志在內也)을 자각하는 성인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정말 정말 깊은 곳에 이르렀을 때 그는 세상을 보는 어떤 눈 하나가 열립니다.
처음에는 눈 앞에 보이는 슬픔과 고통에 반응했다면 이제 그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적 모순을 읽어내고 그런 모순을 불러오는 인간 내면의 무의식 작용까지 통찰하게 됩니다.

그가 가진 이런 눈이 ‘관(觀)’입니다.
관(觀)이라는 한자어는 신화적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관(雚)이라는 새가 있습니다.
이 새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새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가져오면 ‘미네르바의 부엉이’와 같은 개념입니다.
관(雚) 이라는 글자도 원형 이미지는 부엉이입니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그의 통찰을 도와주는 부엉이와 늘 함께 그려집니다.
관괘(觀卦)는 신비의 새 관(雚)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마음입니다.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 거시적인 통찰, 인간의 내면 무의식까지 읽어 낼 수 있습니다. 관괘는 이런 통찰을 ‘신도설교(神道設敎)’라고 했습니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어가 없던 시절에 가장 접근한 개념어 중의 하나가 ‘신도(神道)’입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존재하는 삶의 내용입니다.
그가 이런 통찰을 할 수 있었던 힘은 그가 임괘(臨卦)의 바닥을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至臨) 그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보았고 몸으로 그 속에서 살았습니다.
무엇보다 그 고통에 담긴 인간의 무의식적 욕망을 읽어내고, 나 자신이 그 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자기 자신을 예민하게 바라보는 눈을 익혔습니다.
관괘는 그가 자신을 읽어내는 눈을 ‘관아생(觀我生)’이라고 했습니다.
내 삶을 보는 일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보편 가치로서 나를 객관화해서 보는 눈입니다.

이 눈을 가진 사람은 거시적 통찰로서 사회 공동체와 국가의 비젼(觀國之光)을 읽어낼 수 있고, 무엇보다 민중의 마음(觀民)에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노자는 관의 이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聖人無常心,以百姓心爲心。성인은 내 생각이 반드시 옳다는 고정 관념이 없어 다른 사람 들의 마음을 따를 수 있습니다.(도덕경 49)’

관(觀)은 내가 세상을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관(觀)들이 연결되면서 새로운 상상력과 관점을 불러오는 변화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관(觀)이라는 이 행위는 능동성과 수동성이 동시에 있습니다.
내가 세상을 관(觀)하면 세상도 나를 관(觀)합니다. (觀其生)

내가 보는 관의 눈으로 내 삶이 타인에 의해 관찰 당합니다.
세상을 관(觀)하는 사람의 삶은 자유롭지 않고 어떤 점에서는 위험해 지기도 합니다.



19. ☷ 지택림地澤臨 ☱


臨 元亨利貞. 至于八月 有凶.
임 원형이정. 지우팔월 유흉.

우주의 새로운 질서를 이해한 나는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강림(降臨)한다.
그러나, 8월이 되면 높은 곳에서 조망하는 다른 눈으로 보게 된다.
(임괘(臨卦)는 음양이 하나씩 자라나고 줄어드는 소식(消息)괘에서 12월, 뒤집어서 읽는 도전 (倒顚)괘인 관괘(觀卦)는 8월이다. 임괘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지만 관괘는 높은 곳에서 조망한다. 임괘와 관괘는 사물과 현상을 반대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나무를 보는 것과 숲을 보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 / ䷓)

彖曰 臨 剛浸而長. 說而順 剛中而應. 大亨以正 天之道也. 至于八月有凶 消不久也.
단왈 임 강침이장. 열이순 강중이응. 대형이정 천지도야. 지우팔월유흉 소불구야.

시간이 다가오면서(臨迫) 내 안에서 강한 힘이 어두운 힘을 이겨내며 기쁘게 부드럽게 자라난 다. 진리를 삶으로 실천하겠다는 강한 마음이 내 안에서 자리잡고 나의 의지를 받아주는 이들이 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 하늘의 길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마음과 실천은 바른 길이다. 팔 월이 되어 다른 눈으로 보게 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마음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 다.

象曰 澤上有地 臨 君子以 敎思无窮 容保民无疆.(敎思民无窮 容保天下萬物无疆.敬天敬人敬物) 상왈 택상유지 임 군자이 교사무궁 용보민무강.(교사민무궁, 용보천하만물무량. 경천경인경물)

연못가에 앉아 연못을 내려다 보듯이 나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고 그 속으로 들어간다. 무궁무량한 사랑으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가르치고, 품어 안는다.

(무궁무량한 사랑으로 사람들을 생각하고 가르친다. 세상 만물을 사랑으로 품어 안는다.)

1.
初九 咸臨 貞 吉.
초구 함림 정 길
象曰 咸臨貞吉 志正也. 상왈 함림정길 지행정야.

내 마음이 움직이고, 고통이 느껴진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행동하겠다.

2.
九二 咸臨 吉 无不利.
구이 함림 길 무불리
象曰 咸臨吉无不利 未順命也.
상왈 함림길무불리 이순명야

아픔에 공감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이런 고통의 원인을 알고 풀어갈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

3.
六三 甘臨 无攸利 旣憂之 无咎.
육삼 감림 무유리 기우지 무구
象曰 甘臨 位不當也 旣憂之 咎不長也. 상왈 감림 위부당야 기우지 구부장야.

달콤하게 말한다. 현재 내 입장에서 다 이해되지 않아 내 수준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내가 다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오래지 않아 이 문제는 풀리게 된다.

4.
六四 至臨 无咎.
육사 지림 무구
象曰 至臨无咎 位當也. 상왈 지림무구 위당야.

정말 낮은 곳으로 내려갔다.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과 이어지고 그 자리에 머물 수 있었다.

5.
六五 知(智)臨 大君之宜 吉.
육오 지림 대군지의 길.
象曰 大君之 行中之謂也.
상왈 대군지의 행중지위야.

나를 낮추는 마음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듣고 지혜를 나눈다. 이런 균형 감각을 몸에 익힌 사람이 대군(大君)이다.

6.
上六 敦臨 吉 无咎.
상육 돈림 길 무구.
象曰 敦臨之吉 志在內也.
상왈 돈림지길 지재내야.

넓고 두텁게 마음을 쓰고 받아들인다. 지금까지 고통받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온 일은 헌신이지만 결국 나를 성장으로 이끈 나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

20. ☴☷ 풍지관 風地觀

盥而不薦(獻) 有孚 顒若. (淸水奉獻)
관 관이불천(헌) 유부 옹약 (청수봉헌)

관(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신비의 새 관(雚)의 눈으로 본다.
관(盥)의 큰 그릇에 맑은 물을 담아 손을 씻는다. 하늘에 제사드리기 위해 나를 정화한다. 아직 제단에 상을 차리지는 않았다. 하늘에 제사드리기 위해 나를 정화하는 이 시간에 온전히 집중한다.

彖曰 大觀 在上 順而巽 中正 以觀天下. 觀 盥而不薦有孚顒若 下觀而(淨)化也.
단왈 대관 재상 순이선 중정 이관천하. 관 관이불천유부옹약 하관이(정)화야.
觀天之神道而四時不忒 聖人以神道設敎而天下服矣.
관천지신도이사시불특 성인이신도설교이천하복의.

위에서 아래로 세상을 본다. 넓은 관점으로 통찰해서, 부드러운 관용과 사랑의 눈으로, 중정 (中正)의 공정함으로 본다. 세상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드리기 위해 온전히 정성드리는 내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정화(淨化)한다.
우주의 법칙을 관찰해서 계절의 순환을 설명할 수 있듯이, 나는 드러난 것 뿐만 아니라 인간의 깊은 무의식까지 이해하고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은 깊은 신비를 통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인다.

象曰 風行地上 觀 先王以 省方觀民 設敎.
상왈 풍행지상 관 선왕이 성방관민 설교.

바람이 땅 위를 불어 세상을 두루 두루 스쳐 지나가듯이 관(觀)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을 둘러 보며 세상의 소리를 듣는다.(觀世音) 시민들의 삶을 나의 관점으로, 관세음보살의 눈 으로 재해석해서 이해한다.

1.
初六 童觀 小人 无咎 君子吝.
초육 동관 소인 무구 군자린 象曰 初六童觀 小人道也. 상왈 초육동관 소인도야.

어린 아이처럼,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관점으로 본다.

2.
六二 闚觀 利女貞.
육이 규관 이여정.
象曰 闚觀女貞 亦可醜也.
상왈 규관여정 역가추야.

문구멍을 통해 좁은 눈으로 세상을 본다.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었던 여성들, 부르카와 같은 제한된 옷을 입고 종교적 제약 속에 살아야 하는 여성들은 세상을 넓게 읽기가 힘들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편협한 시각에 갇힌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3.
六三 觀我生 進退.
육삼 관아생 진퇴
象曰 觀我生進退 未失道也. 상왈 관아생진퇴 미실도야.

내 삶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고(觀照), 앞으로 나아갈지 물러설 지를 결정한다.

4.
六四 觀國之光 利用賓于王.
육사 관국지광 이용빈우왕
象曰 觀國之光 尙賓也.
상왈 관국지광 상빈야.

나를 넘어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빛과 비젼을 본다. 나는 왕에게 존경받는 손님이다.

5.
九五 觀我生 君子无咎.
구오 관아생 군자무구
象曰 觀我生 觀民也.
상왈 관아생 관민야

나를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보편적인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을 연결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다른 이들도 좋아하고, 나에게 힘든 일은 누구나 힘들다.

6.
上九 觀其生 君子无咎.
상구 관기생 군자무구
象曰 觀其生 志未平也.
상왈 관기생 지미평야.

관(觀)하는 내 삶이 다시 관(觀)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고 책임과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