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김혜정의 마음놓고 마음챙김

2024년 2월 27일

11. 방하착의 즐거움







우리는 살아있는 생명이기에 아무것도 안할 수가 없다. 자신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관성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일으키는 생각의 기저에 불선한 마음이 있다. 탐하는 대상과 연애하는 상상, 혐오하는 대상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상상, 혹은 누군가와 잡담하는 상상 등이 모두 작거나 큰 불행의 단초가 되는 불선한 마음 상태이다. 우리는 선한 행위를 하지 않는 모든 시간 동안 불선한 행위를 한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이 말이 통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불교에서는 ‘선(善)’을 현재 혹은 미래에 고통을 유발할만한 원인을 짓지 않는 마음 상태라 정의하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정의내리는 ‘선’과 의미범주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을 짓는 마음을 삼독심이라 한다. 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이 현재와 미래에 고통을 유발한다.

행복해지려면 선해져야 한다. 오직 선한 의도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마음이 방심해서 선한 행위를 하는 일을 멈추게 되면, 반드시 불선한 행위가 불수의적으로 일어난다. 그 결과 마음에 지옥문이 열린다. 불교 수행에서 ‘알아차림’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도 내용적으로 연결될 수 있다. 자기와 타인에게 고통을 주려는 악의로 인해 불선한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으키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다. 보통은 방심한 마음, 나태한 마음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채 자신과 타인에게 고통을 주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기가 무얼 하는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다.

명상을 하면 선하고 지혜로운 마음의 자질이 계발된다. 명상의 대상은 다양하다. 가장 대표적인 명상의 대상이 호흡과 감각이다. 명상을 하면 선하고 지혜로운 마음이 계발되는 이유는 우리가 명상을 하면서 집중하는 대상의 성질 때문이다. 호흡도 감각도, 집중을 하는 동안 마음에 탐하거나 성내는 마음이 유발되지 않는다. 가끔 어리석게 수행하는 명상가들도 있기는 하다. 특정 종류의 호흡, 예를 들어 느리고 깊은 호흡이 좋다는 판단을 하고 특정 호흡을 탐하는 마음을 일으키며 명상을 하거나, 특정 종류의 감각, 예를 들어 몸이 가볍게 느껴진다거나, 빛이 보인다거나 하는 등의 감각이 다른 감각보다 좋다는 판단을 해서 특정 감각을 기대하며 명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대상을 명상의 대상으로 선택하든, 그 대상을 관찰하는 마음에 삼독심이 없어야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방하착’이라는 말이 있다. 일시에 모든 집착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이다. 호흡에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무언가에 대해 생각을 하고자 하는 강력한 욕망이 주의를 재빨리 호흡에서 생각으로 끌어당긴다. 이때 생각을 지속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시에 내려놓는 것은 생각 이상의 괴로움을 수반한다.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습관의 힘은 너무나 강력한데, 탐욕을 유발하지 않는 대상에 주의를 두는 습관의 힘은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하고자 하는 욕망을 일시에 포기하는 것. 그리고 숨이라는, 지금 여기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 가볍게 주의를 옮기는 것이  방하착이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다섯 번, 열 번…, 선한 대상에 주의를 옮기고자 하는 마음의 의도가 불선한 생각의 습관을 이기는 성취 경험이 쌓이면, 마음의 힘이 계발되고, 생각을 포기하는 일이 점차 쉬워진다. 어느 순간 방하착이 고통이 아닌 즐거움으로 경험되기 시작한다. 복잡한 생각들이 모두 덧없는 환상이었다는 것이 체감되고, 단순한 명상 대상에 고요히 머무는 게 행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부터 전쟁 같았던 수행이 한결 쉬워진다. 선한 마음의 힘이 불선한 마음의 힘을 압도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이 방하착의 즐거움이다. 방하착이 즐겁게 체감되는 경험이 수차례 쌓이고 나면, 그 후부턴 제발 명상하지 말라고 설득해도 명상을 하게 된다. 명상이 다른 일보다 재미있고 유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평생에 걸쳐 축적해온 불선한 습관의 힘을 달리는 기차에 비유하자면, 명상은 그 달리는 기차를 전면에서 멈추는 일이다. 당연히 교통사고가 나고 엄청난 파열음이 들린다. 성질이 완전히 다른 두 대상이 만났기 때문이다. 행복해지려고 명상을 시작했는데 오히려 명상하기 전보다 아프고 힘든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평생을 고통의 원인을 짓는 마음의 습관만을 들이며 살아온 사람이 명상을 하며 마음에 선한 길, 지혜로운 길을 내는 것은 단언컨대 미래에 행복을 유발할 것이다. 수술 중에 아픈 것은 별 수 없다.

그런데 세상 경험을 어느 정도 해본 사람이라면, 지옥으로 가는 길이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을 듣고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지옥으로 인도한 마음은 선한 의도가 아니라 기만적인 마음이었을 것이다. 선한 의도로 착각했으나,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불선한 의도가 있었기에 고통이 유발된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아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그간 쌓아온 업의 전부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인의 업 또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정도만 알아도 자기와 세상에 대한 경외심이 깊어지고, 세상을 내 뜻대로 휘어잡으려는 불선한 마음도 포기하기 쉬워진다. 즉, 방하착이 쉬워진다.






김혜정차와 명상을 좋아하는 김혜정입니다. 수행자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제가 행복해지고자 걸어온 수행 여정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10년차 요가강사이며, 미얀마 쉐우민에서 처음 위빠사나 명상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로는 주로 고엔카의 수행법을 따라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