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4년 4월 1일
11. 지리산 반달가슴곰에게
난 요즘 부산과 구례를 오가며 지내고 있어. 자연이 있고, 맘 맞는 사람들이 좀더 있을 만한 곳으로 주거를 옮겨보고 싶어서. 낯선 곳에 한 달을 먼저 살아보려 하니, 여기저기 고맙다 말을 할 일이 많더라. 생각지 못한 곤란한 상황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라고들 했어. 너에게 편지를 쓰며 ‘고맙습니다’가 ‘곰’을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어원이 너와 같다는 말일 줄이야. 과거 사람들 사이에서 네가 신과 같은 존재였대. ‘고마’란 단어가 ‘곰’, 혹은 ‘신’을 뜻했다더라. 단군신화에도 과거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보여. ‘토테미즘’은 사람과 짐승은 경계가 없고 함께 하는 존재였다는 생각에서 나온 사상이라고 하더라.
시베리아 아무르강 유역에 가장 많이 분포하는 동물은 너희인데 그 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던 고대족들은 너희를 우상으로 숭배했다 해. 샤라크족은 나무숭배상을 만들고, 들간족, 만시족은 곰을 숲속의 여인, 산의 여인 등으로 불리며 수호신으로 생각했다나. 이런 관념은 시베리아의 다른 종족에게도 널리 퍼져 있었대. 비슷한 일대에 살았던 고아시아족은 너희를 신화 속 첫 번째 인간으로 생각하면서 숭배했는데, 단군신화도 여기서 기인했다더라. 한반도에 신석기문화를 전래시킨 게 고아시아족이다보니 말이야. 이후에 청동기문화를 가진 퉁구스족이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이 문화가 사라졌다더라. 청동기문화나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한 고구려,신라, 가야의 신화에서는 더 이상 너희의 이야기가 보이지 않게 되었대. 대신 사슴, 말 등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이 나오기 시작했지. 너희처럼. 토템은 단순히 동물 우상 문화가 아니었어. 토템을 통해 인간과 자연을 연관 지어 유기적이고도 총체적인 우주관에 대한 소망이었지. 이 생각이 끊긴 걸 현실에서 보여주듯 넌 일제강점기의 ‘해수 구제사업’ 트로피 사냥으로 절멸되다시피 했어.
네가 사라진 이 땅에서 2004년부터 네 복원사업이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다시 진행된거야. 그래서인지 구례 곳곳에 네가 상징으로 보이더라. 네 돌상, 인형, 캐리커쳐 등등. 단순한 복원 사업이 아니라, 다시 한 번 너희를 통해 자연과 연결되고자 하는 시도가 공간에 드러나는 것처럼 보여 반가웠지. 지리산엔 너희들이 약 80머리[1] 정도 살고 있대. 커피가 마시고 싶어 간 카페에서 너에 관한 책을 보고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어.
잔잔히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날 구석이 생기게 되는 걸까. 우연히 친구를 따라 반달곰 친구들이란 사단법인과 국립공원이 함께 하는 올무·창애 수거 활동에 참여하게 됐어. 사냥꾼이나 논밭에 피해를 보는 인근 주민들이 올무나 창애를 설치하는데, 고라니, 멧돼지, 청솔모, 오소리 등등 다양한 동물들이 걸려 고통받는다더라. 너희도 예외는 아니랬어. 우리가 덫을 제거하러 간 곳은 산동면 상위마을이었어. 산 아랫자락인 만큼 공기가 정말 좋았지. 덫이란 단어에 무거워지는 마음을 뒤로 하고 눈을 돌리면 멧돼지가 진흙을 비비고 간 소나무와 밤나무, 은사시나무들이 보였어.
눈을 돌리면 펼쳐지는, 탁 트인 전경들. 네 집 참 크구나. 산세는 험했지만 고개를 돌리면 나무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기분 좋았지. 너도 내려다보는 걸 좋아하지? 어렸을 적부터 읽어온 이솝 우화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네가 나무를 못 타는 줄 알지만, 넌 사실 나무타기 명수라며? 발톱을 야무지게 세워 쏜살같이 나무를 올라가고, 가지 위에서 그 큰 몸을 의지하는 게 신기하더라. 새들과 같이 둥지를 만들어 나무 위에서 쉬는 모습을 영상으로 봤어. 사람들은 네 둥지 쉼터를 ‘상사리’라 불러.
이런 네가 나무를 못 타는 줄 알고 널 만났을 때 나무를 섣불리 타는 사람들이 없길 바라. 예상보다 지리산에 사는 너희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등산로나 산나물을 캐다 종종 널 만나 겁을 먹더라. 난 누군가와 갈등을 한 차례 겪고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면 감정이 조금 수그러들곤 해. 여러 일들을 겪고나니 겁을 포함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상대를 모르는 경계에서 온다고 느껴지더라. 사람의 상상력은 강한 무기이기도 하지만 때론 그로 인해 겁이 많이 나기도 하니까. 너희는 주로 채식을 하기 때문에 사람을 먹기 위해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댔어. 사실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피하고 싶어 한다고. 방울을 달고 다니면 사람과 너 둘다 안전할 확률이 높다고 하더라. 혹시나 마주한다면 뒤돌아 뛰면 안 된대. 너희를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치고, 정말 싸울 일이 생기면 차라리 죽기살기로 싸워야 한댔어. 이건 사람 대 사람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
너희가 채식을 하게 된 이야기는 정말 재밌었어. 강한 생명이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생명이 강하다는, 얼레벌레 굴러가는 생명사를 너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만 같았어. 유전 계보를 타고 올라가면 너희 조상은 판다래.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던 곰의 조상 집단 중 대나무를 주로 먹고 사는 판다들만 우연히 살아남은 건지 너희 몸은 분명 되새김질하는 위장 하나 없이 짧은 장을 지닌 육식동물의 신체인데 우습게도 너희는 열매나 나무 등 채식을 고집한다더라.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돌연변이라 불리는 채식 집단 곰들이 살아남은 건지. 그 뒤 ‘반달가슴곰’으로 분화(진화)한 너는 도토리나 참다래, 벌집, 곤충 등을 주식으로 삼는댔어. 물론 종종 고라니나 연어 등 육식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뭇가지째 열매를 따는 너희의 모습이 더 잘 보이더라. 요상한 진화 덕분에(?) 먹은 섬유질들을 잘 소화시키지 못해 너희 똥엔 열매 씨앗이 그렇게 많은데, 덕분에 숲이 더 잘 자란대.(?) 얼레벌레 숲파수꾼 반달가슴곰.(ㅋㅋㅋㅋ) 너희가 좀 덜 무섭고 좀 더 친해서 말이 잘 통했으면 옆에서 똥쌀 때마다 웃었을 거야.
나는 너와 직접적인 관계도 아직 맺지 못했고, 이익 경쟁 관계는 더더욱 아니어서 사람들의 우려를 마음 깊이 공감하진 못하고 있어. 복원지 아랫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곰이 일부 과수원과 양봉장의 수확물들을 먹어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해. 밭이나 논이 너희와 사람들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는데, 실제로 사는 주민들은 크고 작은 자잘한 피해가 계속해서 일어나니 보상을 받을 수도 없어 울상이라더라. 더군다나 국립공원 근처인 만큼 복원 동물을 해하는 일은 불법이라 쉽사리 너희와의 경쟁으로 인한 손실 대책을 세우기가 더 어렵다 하네. 그러다 보니 국립공원에서는 올무나 창애를 설치하는 일이 불법임에도 더 강력히 제지하진 못하고 불법 사냥물 제거 활동을 하나봐. 지리산에서 너희가 늘어나며 인근 수도산, 가야산, 금오산 등 다양한 산으로 뻗어가고 있는데 인간이 감당하기는 갈수록 힘들어진대. 복원 연구팀에서도 인간과의 충돌로 언제 너희에 대한 여론이 나빠지고 복원 프로젝트를 정부에서 관두게 될까 봐 마음을 졸이는 듯 보였어.
일본에서는 기후가 급격히 변하는 바람에 여름에 다래, 참나무 열매 등 다양한 열매들이 잘 열리지 않아 민가로 내려온 곰들이 사람을 많이 해치고 다닌다더라. 도심 한복판에서도 숱하게 곰들이 보인댔어. 사상자가 연간 1000명이 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다고 해. 너희와의 공존은 그저 너희를 복원해서 살려만 둔다고 될 문제가 아니라, 지역주민과의 소통, 갈등을 사회적으로 풀어내는 게 가장 큰 숙제란 말이 정말 와닿게 됐어. 기후위기 문제도 함께 말이야.
사람들 중 일부는 그렇게까지 하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 너희를 이 땅에 살게 해야 하냐고 하더라. 지역주민들이 피해 보는 걸 고려하지 않고 너무 무책임하게 복원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포식자들이 멸종해가며 생태계가 단순지는 바람에 개체수가 폭발한 고라니, 멧돼지들이 과거의 너희가 겪었던 죽음으로 희생 당하고 있어. 계속해서 이 굴레를 반복하면 결국 누가 남게 될까? 우리도 남지 못할거야. 너희처럼. 복원을 하려는 사람들이 주민들과 소통하려 가장 노력하는 중일 거야.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줄 수 없다면 비난의 말은 얹지 않는 게 우리가 그동안 땅을 소유하며 벌어진 다양한 이면들에 책임을 지고 회복의 길로 가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너희가 전처럼 이 땅에 함께 사는 존재가 되길 바라.
운주 씀
참고자료
- 이것이 야생이다2 반달가슴곰편, EBS1, 2023. 4. 21.
https://www.youtube.com/watch?v=4CkURSwewjY
- 이용성, “日, 야생곰 비상... 올해 6명 물려죽어”, 조선비즈, 2023.12.04., https://biz.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3/12/04/5YYRFNP75NFPFEA3Q63IJPRD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