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6월 8일

11. 느낌과 여김





1) 느낌과 여김

우리말에서 학문적 용어는 한자나 영어 등 외국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 뜻을 제대로 음미하기가 어려워. 그래서 한국말 언어학자 최봉영은 학문적 용어를 일상에서 쓰는 토박이 한국말로 번역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 신경망의 흐름인 ‘감각-지각-생각-욕망’도 한자야. 이를 토박이 한국말로 번역하면 ‘늧-얼-넋-알’이 되지. 처음엔 ‘늧’과 같은 표현이 어색하지만 자꾸 사용하면 어떤 느낌이 와. 한국사람은 ‘늧’ 발음을 일상에서 자주 쓰니까. 느낌은 ‘늧’이 일어난 상태야. ‘늧’은 ‘늦’과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늦다’와 상관이 있어. 감각적 느낌을 느끼면 이미 상황이 일어나 늦어진 셈이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사고가 났음을 느끼면 돌이키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거든.



말 나온 김에 얼, 넋, 알도 살펴보자. 얼은 지각이야. 감각이 기억에 의해 재창조되어 지각으로 재현되듯이, 늧이 어리면 얼이 되지. 한국말에서 ‘얼’이란 발음도 많이 쓰이는 음절이야. ‘얼음’이나 ‘얼굴’에 ‘얼’ 음절이 들어가고, ‘얼치기’, ‘얼쑤’ 등의 말에도 쓰이지. ‘어리어리하다’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얼’은 다양한 감각(늧)이 하나의 지각(얼)으로 종합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 ‘느낌’이란 말은 ‘늧’과 ‘낌’의 조합으로 ‘늧의 낌새’라고 할 수 있어. 즉 느낌은 ‘늧’에서 비롯되어 낌새를 일으키는 ‘얼’까지 가는 과정을 포괄하는 말이 아닐까 싶어.

얼 다음은 ‘넋’이야. 넋은 녀김(여김)는 행위야. 얼을 어떤 뜻으로 여기는 과정, 지각에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지. 얼이 감각적 늧에 지각적 채워 넣기를 하는 것이라면 넋은 지각적 얼에 개념적 채워 넣기를 하는 거야. 한국말에서 ‘여김’은 ‘넋’을 만드는 과정을 의미해. 여김 또한 느낌처럼 ‘녀+김’으로 구성된 말이야. 그래서 여김은 얼에서 넋까지 과정 전체를 포괄한다고 할 수 있어. 즉 어떤 대상을 어떤 의미로 ‘여겨’ 넋을 만드는 과정이지. 그래서 ‘한국사람의 얼’이 어떤 이미지상이라면 ‘한국사람의 넋’은 그 이미지에 담겨있는 정신적 의미를 말해.

넋 다음은 ‘알’이야. 한국말에서 ‘알’이란 음절도 ‘늧’이나 ‘얼’만큼 많이 쓰여. ‘알아’ ‘알아볼게’ 등 앎에 대한 말만이 아니라 ‘알(달걀)’이란 사물을 지칭하는 명사도 있고 ‘다리에 알이 배겼어’라는 말고 쓰지. ‘알’은 달걀을 지칭하는 ‘알’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의미 있는 무언가가 형성된 상태가 아닐까 싶어. 늧이 종합되어 어떤 이미지를 이룬 상태라면 ‘얼’이라면, ‘알’은 ‘얼’에 ‘넋=의미’가 부여되어 의미를 가진 기호로 거듭난 상태야. 그래서 나는 한국말 ‘알’이 욕망이 구성된 상태라고 여기고 있어. 이렇듯 한자어인 ‘감각-지각-생각-욕망’을 한국말 ‘늧-얼-넋-알’으로 바꾸면 그 소리와 의미를 일상의 느낌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지. 학문 용어에서 말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감각과 생각을 토박이 한국말로 하면 ‘느낌’과 ‘여김’이야. 느낌과 여김이란 말은 그 자체로 과정을 의미하기에 범주와 개념의 개념망 모형에도 과정에도 적용이 가능해. 느낌은 감각적 늧에서 지각적 얼로 가는 과정으로 ‘범주화’ 과정이야. 범주를 받아들이고 기억에 의해 범주화시켜 경험을 수용하는 과정이지. 마찬가지로 여김은 지각적 얼에서 생각적 넋으로 가는 ‘개념화’ 과정이야. 새롭게 범주화된 얼에 의미(넋)를 부여해 기존의 개념기억(알)을 재구성하지. 가령 ‘사랑’이라는 말을 ‘따뜻한’ 느낌으로만 여겼던 사람은 ‘사랑은 전쟁이야’라는 말을 경험하면서 ‘차가움’이라는 범주가 사랑 개념에 포함돼. ‘사랑=전쟁’ 은유, 즉 사랑에 대한 새로운 범주 경험으로 사랑 개념이 재구성된 셈이지.



“나는 산을 본다”는 어떤 의도를 갖고 ‘산’이라는 대상을 보는 행위야. 반면 “나는 산이 보인다”에서 ‘보인다”는 의도하지 않고 그냥 시선을 돌렸는데 무언가 보인 상태지. 해외여행에서 무심코 거리를 걷다가 신기한 장면을 만나듯 생각과 욕망 없이 일어나는 감각적 수용과정이랄까. 세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지. 사람은 여겨진 개념이 없으면 보이는 느낌만 있어. 반면 의도와 목적이 있으면 여겨진 개념을 바탕으로 느낌이 수용되지. 여김에 의해 느낌이 선택된다고 할까. 이렇듯 느낌과 여김은 신경망과 개념망처럼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 구조야. 다만 동일하게 반복되는 순환 구조가 아니라, 확장되거나 축소되며 계속 변화하는 나선형 순환 구조지.

디자인에서 느낌은 아주 중요해. 디자인은 감각적 느낌을 통해 생각(여김)을 유발하는 활동이거든. 그럼 느낌이란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보이는 것’이야. ‘보는 것’이 어떤 목적이나 의도를 갖고 대상을 느끼는 것이라면 ‘보이는 것’은 그냥 어쩌다 느끼게 되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 칸트식으로 말하면 ‘무관심성’이고, 철학사에선 ‘미학(Aesthetics)’ 혹은 ‘경험론’에 해당되지. 동물에게 느낌은 그 자체로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이야. 그런데 사람은 느낌과 연결된 여김이 있기에 여김을 빼고 느낌을 이해할 수가 없어. ‘많다’는 ‘적다’의 대비처럼, 사람의 느낌을 이해하려면 서로 짝이 되는 ‘여김’을 알아야만 하지. 그래서 사람의 여김 과정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


2) 여김의 3단계

사실 언어는 거의 대부분 ‘여김’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욕망도 여김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지. 개념망에선 개념 구성 과정, 즉 개념화라고 할 수 있어. 개념화로 형성된 욕망이 우리의 감각을 통제하고 감각은 욕망에 수동적인 상태가 되거든. 앞서 감각의 특징으로 언급한 ‘출력의 유연성’은 욕망에 의해 통제되는 감각이라고 볼 수 있지. 사람의 욕망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구성해나가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언어를 살펴야 해. 사람은 언어를 갖고 개념을 만들고 소통하니까. 언어활동을 살피면 사람의 인식 과정과 개념화 과정을 짐작할 수 있지.

언어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개념 매체야. 그래서 사람은 성장하면서 언어를 배워야만 해. 언어를 알아야 다양한 범주를 경험하고 자신의 개념을 언어로 환원할 수 있지. 그리고 자신이 쓰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높을수록 그 언어를 함께 쓰는 사람들의 생각과 소통을 메타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최봉영은 한국사람의 여김을 3가지로 구분해. 대상을 그대로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여김’이고, 비슷한 다른 대상과 비교하는 여김을 ‘견주어 여김’이야. 마지막으로 어떤 대상을 설명하기 위해 전혀 생소한 대상을 당겨오는 여김을 ‘당겨 여김’이라고 말하지. 첫 번째 바로 여김은 사람의 기본적 인식에 해당되고, 두 번째 견주어 여김은 언어학에서 대유(代喩)라고 말해. 대유는 제유(提喩)와 환유(換喩) 등으로 구분되는데 제유는 환유 중에서 ‘전체와 부분’ 관계만을 지칭하는 말이야. 그리고 마지막 당겨 여김은 은유(隱喩)라고 생각하면 돼. 그럼 3가지 여김을 하나씩 살펴보자.


바로 여김 : 인식 / 아기가 처음 배우는 언어는 소리의 느낌이야. 아기는 어떤 경험을 하면서 들리는 소리를 자신의 개념과 매칭 하지. 한국사람에게 마, 이, 저, 그, 가, 아, 어 등의 소리들은 어떤 느낌과 연동되어 있어. 소리와 연관된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소리에 의미가 부여되지. 점차 소리는 어떤 개념적 의미를 함축하게 되고 아이는 개념적 소리들을 조합해 엄마, 이거, 아니 등 좀 더 정교한 개념을 함축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되지.

말소리가 자리 잡히면서 아이는 단어도 배우게 돼. 엄마가 책을 읽어주면서 “책 읽어줄게”라고 말하면 아이는 ‘책’이라는 단어를 들으며 그 대상과 함께하는 활동을 하게 돼. 책과 관련된 경험 맥락을 통해 책 개념을 형성하지. 아이의 마음속에 책 개념이 있으면 아이는 이런 말을 할 수 있어 “이거 책이야” 이 말에는 말소리와 개념적 단어가 모두 들어가 있어. ‘이’는 앞에 있는 현상을 가리키고, ‘책’은 사회적 개념이지. 아이가 “이거 책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경험하는 현상을 ‘책’이란 개념으로 인식했다는 의미야. 이제 아이는 책 개념을 ‘바로 여길’ 수 있게 된 것이지.

단어는 언어 개념의 기본 단위야. 많은 사람들의 경험적 개념이 단어에 함축되어 있지. 그래서 단어를 알게 되면 사회적으로 축적된 공통의 개념을 습득할 수 있지. 아이는 단어를 배워나가면서 더욱더 많은 개념들을 인식할 수 있어. 즉 경험을 언어로 여길 수 있지. 사회적 혹은 전문적인 단어 개념이 많을수록, 어휘력이 풍부할수록 아이의 생각도 풍성해지고 개념 만들기 능력도 좋아져. 반대로 어휘력이 낮으면 개념 인식은 물론이고 생각 능력도 낮아지지. 가령 ‘사랑’이라는 단어를 모르면 자신의 느낌을 개념적으로 인식할 수 없어. 사랑을 느끼지 못하니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도 없겠지. 재밌는 점은 개념 구성 능력이 높으면 신경망 연결이 더 촘촘해지게 되어 신체 능력도 좋아지는 경향이 있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지. 아무래도 미래 예측을 더 잘하게 될테니까.


견주어 여김 : 환유(metonymy) / 사람이 단어를 배울 때 가장 많이 쓰이는 기법이 바로 비교하기야. 언어는 말소리나 단어 그 자체의 의미만이 아니라 그 말이 어떤 맥락에 놓이냐가 중요해.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가끔은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거든. 언어에서 비교는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계열적 비교고 다른 하나는 결합적 비교야. 계열적 비교는 ‘많다-적다’처럼 서로 비교됨으로써 맥락이 이해되는 말로 동의어, 대립어 등이 있지. 계열 비교는 수직적인 관계도 있어. 코끼리를 중심으로 상위어는 ‘동물’이고 하위어는 ‘인도코끼리’가 있지. 상위어는 하위어의 공통의 특징을 뽑아 부각한 말이야. ‘동물’이라는 말이 ‘움직임’이라는 특징을 부각한 것처럼. 하위어는 ‘인도코끼리’처럼 코끼리에 ‘인도’라는 구별되는 지역적 특징을 합성한 말이야.

결합적 비교는 명사와 동사의 맥락적 관계를 말해. ‘배가 아프다’와 ‘배가 뜬다’에서 ‘배’의 의미는 동사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여겨져. 전자는 사람의 배로, 후자는 증기선 같은 배로 느껴지니까. 이렇듯 같은 말이라도 그 말이 어떤 동사 혹은 형용사와 결합되냐에 따라 의미가 다양해. 이렇듯 언어의 의미는 단어의 원형개념만이 아니라 계열관계와 결합관계라는 맥락적 의미도 두루 살펴야 하지.

단어의 원형개념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범주와 맥락에 따라 계속 변화해. 아이가 처음 단어를 배울 때는 말소리와 체험이 함께 반복되면서 개념적 매칭이 일어나지만, 한번 익혀진 단어와 비슷한 개념의 단어는 기존 말소리의 개념적 범주를 바탕으로 여겨지지. 그러면 훨씬 적은 노력으로 새로운 개념을 익힐 수 있어. 가령 자동차 개념을 알고 있는 경우, 트럭을 보고 아이가 “저건 뭐야?”라고 물어보면 “저건 트럭인데 자동차 같은 거야”라고 대답하면 돼.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승용차로 형성된 자동차 개념에 트럭 범주를 포함시킴으로써 기존 자동차 개념을 변화시키지. 트럭이라는 범주 경험으로 큰 자동차 개념이 하나 더 생긴다고 할까. 이런 방식으로 개념은 범주 경험이 추가되면서 계속 확장되고 생성돼.

견주어 여김은 직유, 제유, 환유 세 가지가 있어. 직유는 간단해. 직접적으로 연결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연결하는 거야. ‘강아지처럼 예쁜 아가’의 ‘~처럼’ ‘~같이’ ‘~듯이’라는 말로 서로 비교하는 것이지. 제유는 대상을 지시할 때 동일한 영역에 있는 일부 요소로 대신 말하는 거야. 노란색 모자는 쓴 아이가 지나갈 때. “저기 노란색 모자 지나간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이를 노란색 모자로 대신해 말하는 것이지. 뉴스에서 “국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국회’라는 전체로서 국회의 누군가를 대신 지시하는 말이지. 사실 국회의사당 건물이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환유는 어떤 개념을 설명할 때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개념을 빌려서 표현하는 언어 기법이야. 환유는 말을 만들 때 많이 쓰여. ‘코끼리’이라는 말은 ‘코+길이’로 어떤 동물의 코가 긴 특징을 환유적으로 표현한 이름이야. 이처럼 환유도 제유처럼 대상을 지시할 때 일부의 특징을 활용하지만 추상적 의미를 경험적 의미로 대신해 전달할 때도 쓰이지. ‘죽음’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무덤’이나 ‘십자가’ 등 죽음과 관련된 이미지를 활용하듯이 말이야. 환유 기법은 주로 즉각적 소통을 위한 인포그래픽이 많이 쓰여. 열정은 ‘불꽃’, 사랑은 ‘하트’ 등 아이콘이나 픽토그램, 이모티콘 등 글자가 아닌 이미지 표현들은 모두 환유와 밀접하지. 그래서 디자인에서 환유 기법은 아주 중요해.


당겨 여김 : 은유(metaphor) / 환유가 동일한 영역에 있는 경험이나 이미지를 활용해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이라면, 은유는 다른 영역에 있는 경험이나 이미지를 당겨와 추상적 개념을 설명하는 방식이야. 그래서 은유의 한국말은 ‘당겨 여김’이 아닐까 싶어. 은유는 시와 소설, 미술과 디자인 등 창의적인 분야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쓰이는 언어적 기법이야. 사실 은유는 일상적인 말에서도 자주 쓰여. ‘시간’을 말할 때 “시간이 빨리 지나갔네”는 시간을 앞에서 뒤로 지나가는 자동차에 은유한 것이야. “시간이 (자동차처럼) 빨리 지나갔네”에서 ‘자동차’가 생략됐지. 이처럼 시간이란 추상적인 언어 개념을 설명하려면 자동차처럼 경험 가능한 언어 개념을 끌고 와야 해. 되도록 다른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경험을 가져오면 더 좋고. 축구선수들끼리는 축구 은유가, 여행가에게는 여행 은유가 가장 익숙할 테니까.

은유언어학에서 설명하고 싶은 추상적인 언어 개념을 타깃(target), 타깃을 설명하기 위해 다른 영역에서 가져오는 구체적인 경험을 소스(source)라고 말해. 사람의 신체적 조건은 동일해. 그래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객관적 경험이 있어. 이 객관적인 경험은 일상의 언어에서 활발하게 은유적 소스로 쓰이고 있지. 모든 사람은 신체 구조상 앞뒤, 위아래, 겉과 속 등의 보편적 인식을 공유해.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다’의 ‘지나감’은 앞뒤의 경험이 은유로 활용되었고, ‘마음이 무너졌어’의 ‘무너짐’은 위아래의 경험이 은유로 활용되었지. 왠지 위로 올라가면 좋은 느낌이고, ‘무너지다’는 왠지 느낌이 안 좋아. 위로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은 무언가 아래로 떨어지면 늘 나쁜 느낌이 들거든. 은유는 신체의 구조나 근육운동 등 감각활동이 연상되는 말들이 많이 활용돼. 그래야 가치 판단을 하기 쉬우니까. 어쨌든 은유를 잘하려면 경험적 소스가 많이 있어야 해.

언어는 다양한 개념을 품고 있는 추상적 기호야. 추상성은 단계가 있어서 동물은 코끼리보다 추상적이고, 생명은 동물보다 더 추상적이지. 추상성이 높은 말일수록 해석의 여지가 많아 정확한 소통이 어려워져. ‘인생’이나 ‘사랑’ 등 추상 단계가 높은 말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각기 다른 해석을 할 수 있어. 그래서 내가 말하려는 ‘인생’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내 인생은 축구경기 같아”처럼 감각적 범주가 느껴지는 말로 은유를 해야 해. 그러면 듣는 사람은 ‘저 사람의 인생은 어떤 규칙 속에서 승부를 내기 위해 골을 넣으려 노력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거야.



또한 우리는 은유 프레임을 통해 기존의 언어 개념을 새로운 의미로 바꿀 수 있어. 앞서 언급했듯이 ‘내 사랑은 전쟁이야’라며 사랑을 전쟁에 은유하면 사랑을 서로 돕는 따뜻한 애정이 아닌 서로 싸우는 차가운 전투로 여기게 되지. 그러면 기존 사랑 개념은 ‘전쟁’이라는 범주안에서 해석되고, 사랑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지. 은유는 이런 방식으로 개념의 크기를 키우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줘. 그래서 예술가와 디자이너도 은유 기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새로운 감각 범주를 느끼게 해 주지. 오래전 인류의 조상들은 사람과 새, 사자, 황소 등을 섞어서 아시리아의 라마수(Lamassu)나 이집트의 스핑크스(Σφίγξ, Sphinx)와 같은 신비로운 조각상을 만들어 자신들의 수호신으로 모셨어. 신비로운 조각상처럼 새로운 은유를 접한 사람들은 기존 개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지.

은유는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해. 은유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 1941)도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s we live by)』에서 은유가 삶을 이끌어간다고 강조했지. 또한 철학자 이성민이 어떤 시인의 서문에서 언급했듯 은유는 미술가와 디자이너에겐 전문적인 생존 기법이야. 이렇듯 은유는 언어의 기법이자 삶의 기법이고, 나아가 미술, 디자인의 전문 기법까지 포괄하지.


정리

자 정리해보자. 개념을 중심으로 범주를 경험하는 사람의 인식은 바로 여김, 견줘 여김, 당겨 여김 크게 3가지야. 바로 여김은 감각을 모방하는 언어 기법이고, 견줘 여김은 비교하고 단순화해 지각을 재현하고 기본적인 본질 개념을 소통하는 언어 기법이지. 견줘 여김에서 환유는 ‘죽음=무덤’처럼 추상적인 말을 동일한 영역의 구체적인 이미지로 대체해 소통해. 반면 당겨 여김은 ‘인생은 마라톤’처럼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다른 영역의 말을 당겨와 은유하는 언어 기법이지. 당겨 여김은 새로운 소스를 프레임으로 활용해 언어 개념을 확장시켜. 때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만들기도 하고.

디자인은 개념에 부합되는 감각 기호(sign)를 만드는 행위로써 여김을 다시 느낌으로 전환하는 언어활동이라고 볼 수 있어. 실제 디자인 과제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디자인 방향성을 담은 ‘디자인 브리프’ 작성이야. 디자인 브리프에는 문제정의와 방향, 섬네일 등 디자인 컨셉 등이 들어가 있지. 이 디자인 브리프가 바로 디자인 여김에 해당돼. 그리고 이 여김을 대변하는 느낌이 바로 디자인 프로토타입이지.

문제 해결에 있어 디자인은 문제를 제기하는 클라이언트와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어. 그래서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의 협업이 디자인 과정의 기본 바탕이지. 디자인 과정은 클라이언트만이 아니라 더 많은 전문가가 참여할수록 좋아. 되도록 다양한 신경망과 언어망을 연결해야 예측가능성도 높아지고 문제 해결의 시행착오도 줄어들 테니까. 그래서 디자인은 그 자체로 협업적 소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야.

개념망의 근본 목적이 예측에 있듯이 언어는 다른 뇌, 즉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적 소통을 통해 예측을 강화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어.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예측가능성이 높아지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예측이 맞지 않아도 그 예측을 함께 실현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때문에 거대한 집단에 소속되면 든든하지. 게다가 디자인 프로토타입은 대량생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잘못된 예측을 더욱 경계해야 해. 리스크가 크지. 그래서 디자인은 여김(개념)과 느낌(범주)의 반복적 소통이 아주 중요해. 다양한 소통과 시행착오를 통해 최선의 여김과 최고의 느낌을 찾아야 하지.






윤여경
그래픽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자이다. 그린디자인을 공부하면서 디자인이 사람과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향신문과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디자인 공부 공동체인 ‘디학(designerschool.net)’에 참여한다. 쓴 책으로는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X축》(스테파노 반델리, 2012) 《런던에서 온 윌리엄모리스-그는 왜 디자인의 아버지인가》(지콜론북, 2014) 《역사는 디자인된다》(민음사, 2017) 《아빠 디자인이 뭐예요》(이숲, 2020)이 있으며, 공저로 《디자인 확성기》《디자이너의 서체 이야기》(지콜론북)가 있다. 이 외 〈다른 백년〉, 〈디자인 평론〉, 〈경향신문〉, 등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