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5월 27일
12. 다오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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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오를 아십니까? 엔에프티(NFT)에 이어 다오(DAO)가 화두다. 암호화폐에서 시작된 블록체인 혁명이 금융과 예술을 거쳐 사회 조직의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다오는 탈중앙화된 자율 조직(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을 뜻한다. 2016년, 이더리움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벤처 캐피탈 펀드로서 처음 만들어졌다가 실패했다. 작년부터 엔에프티의 유행에 힘입어 다시 부상하고 있다. 기업이나 국가의 중앙 집권화된 의사 결정 구조를 탈피하여 투명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가능케한다. 투자, 자선, 보조금 사업 등에 적합한 모델로 일단 도입되고 있다. 특정 목표를 위해 민주적으로 돈을 모아서 집행한다. 미국 헌법 원본을 사기 위한 다오, 줄리언 어산지를 해방하기 위한 다오 등이 대표적이다. 굉장히 빠른 설립 및 출자 속도를 이미 입증했다. 블록체인 업계의 흐름은 전통 자본의 속도를 초월한다. 시장이 24시간 가동될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중간 단계를 생략하기 때문이다. 협동조합이나 사단법인 같은 기존 조직은 아무리 민주적이라도 결국 국가가 그 실체를 보장한다. 내가 (사)다른백년을 믿을 수 있는 건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오는 블록체인 상에 존재한다. 국가가 아닌 네트워크가 실체를 보장한다.
다오의 등장은 크립토 운동 초창기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1993년 <크립토 아나키스트 선언>에서 티모시 메이는 크립토, 즉 암호화 기술이란 “분명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혁명일 것”이라고 점친다. 중앙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상호 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인쇄술의 발명이 중세 길드 질서를 무너뜨린 것처럼, 암호화 기술은 정부와 기업의 민간 개입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다.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처음 제안했을 때부터 지난 십여년 간 크립토 운동은 주로 화폐의 탈중앙화에 집중했다. 경제란 곧 인민의 믿음, 신뢰, 신용 시스템이고, 그 믿음의 기본 단위인 화폐부터 국가에게서 독립시켜야 했다. 중앙은행이 관리하던 화폐의 가치를 블록체인 상에서 유저들 간의 네트워크로 대신 구현했다. 흔히들 코인 광풍이 사상누각이라고 하지만, 애초에 국가나 은행, 달러나 원화 같은 개념도 인민이 공통으로 믿는 소설에 불과하다. 작금의 테라-루나 사태는 자본주의 초창기 튤립 파동이나 남해 회사 버블이랑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투기로 인한 폭등과 폭락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블록체인 코인/토큰 경제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위시한 크립토 화폐는 이제 공고히 자리잡았다.
그러면서 신흥 부자 계급을 창출했다. 크립토 운동을 이끌어온 사이퍼펑크(cypherpunk)는 개발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프랑스혁명의 주동자는 변호사가 많았던 것과 비슷하다. 18세기에는 법치(rule of law)로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면 21세기에는 코드 통치(rule of code)로 신세계를 건설한다. 코딩을 한다는 것은 새누리, 새나라의 법률을 제정하는 일이다. 이따끔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소수 인간의 변덕스러운 의지로 법을 개정하는 대신, 코드 통치는 프로그램의 상시 업데이트로 유지된다. 누구나 국회의원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코딩은 할 수 있다. 크립토 운동은 근대 자본주의의 근간인 인클로저 운동을 무력화한다. 공유지에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하면서 시작된 경제 체제의 안팎을 뒤집는다. 육체가 생활하는 미트스페이스(meat space)는 소수의 자본가가 점유하고 있지만, 앞으로 영혼이 거주하는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는 누구나 개발자(디벨로퍼)이자 창조자(크리에이터)로서 무한히 건국할 수 있다. 사토시 나카모토와 비탈릭 부테린(이더리움 창립자)은 함무라비와 모세의 역할을 맡는다. 신문명의 기틀을 닦는 코드를 제정한다.
사이퍼펑크들은 어떤 마음으로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고 있는가? 암호화를 뜻하는 ‘사이퍼’와 저항 정신이 담긴 ‘펑크’를 합친 이 슬로건은 원래 ‘사이버펑크’에서 유래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로 대표되는 문학 장르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 디스토피아에서 저항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사이버펑크다. 칠팔십년대 유행했던 일본 만화의 미학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블레이드 러너>의 미장센이 그래서 아니메스럽다.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도 아마 이러한 영향일 것이다. (사토시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이지만 강력한 후보들은 대부분 백인 남성이다.) 사이퍼펑크는 사이버펑크 문학을 읽고 자라서 구십년대 월드 와이드 웹에 접속한 이들이다. 인터넷 우주의 사유화를 반대하는 아나키스트다.
극우주의자로 치부되는 리버테리언이 많다. 하지만 사이퍼펑크의 핵심 정신은 사유화가 아니다. 프라이버시, 사생활이다. 사생활은 비밀과 다르다. 비밀은 아무도 알면 안되는 것이지만 사생활은 모두가 알면 안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생활이란 선택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능력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누리에서 자신을 원하는 만큼만 노출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이 사이퍼펑크의 목표다. 국가와 기업, 즉 중앙이 모든 데이터를 통제하고 감시하는 디스토피아를 막기 위한 인민의 규약을 만드는 것이다. 불법 다운로드의 온상으로 이해되는 P2P(Peer to Peer, Person to Person)는 바로 이러한 민중의 호혜망 건설을 위한 노력이다. 에릭 휴즈는 1993년 <사이퍼펑크 선언>에서 유명한 말을 남긴다. “사이퍼펑크는 코드를 쓴다.” 코드를 쓴다는 것은 사이버 우주에서 직접 법률을 제정하는 행위다. 현실 세계의 육체 권력이 메타 세계까지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한 저항이다.
웹 2.0까지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GAFA)이 데이터를 독점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반의 웹 3.0은 데이터의 탈중앙화를 낳을 것이다. 앞으로는 데이터가 자본이다. 데이터의 분배가 사회 경제 체제를 정의한다. 여태까지 ‘민영화’란 사실 기업의 사유화를 뜻했다. 민간이 스스로 조직하여 국가 중요 시설이나 자본을 공유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과거의 아나키스트는 무력 혁명을 기도했다. 홍길동마냥 뺏어서 나누고자 했다. 실패하고 실패하여 뒤늦게 고안한 것이 협동조합이다. 체제 내에서 최대한 탈중앙적이고 민주적인 조직 방식을 꾀했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중앙 권력을 거칠 수밖에 없다. 한살림 조직 역시 여느 주식회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의사 결정 구조와 중앙 집중적 유통망을 갖는다. 이는 기술적 한계에서 비롯된다. 국가 행정과 금융 권력에 의존하지 않고 인민 간의 신뢰를 보장할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이퍼펑크들이 건설하는 웹 3.0, 메타버스는 탈중앙적인 경제 체제를 표방한다. 모두가 개발자이자 창조자로서, 놀면서 버는(P2E, Play to Earn) 세상을 꿈꾼다. 인민의 데이터를 중앙이 수집하지 않고, 각자 축적하는 시스템이다. 인터넷이 ‘빅브라더’가 되는 것에 저항하는 유토피아적 아나키스트 운동이다.
다오는 블록체인 생태계에서 민중이 스스로 조직하는 형태다. 국가를 바이패스하고 자율적으로 회사나 조합을 만든다. 극우 리버테리언들이 사이버 우주에서 사생활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이 과연 지구를 살리고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나는 탈중앙화가 열쇠라고 믿는다. 셸리에서 소로우, 톨스토이에서 간디로 이어지는 비폭력 시민불복종, 채식주의-평화주의의 계보 역시 뿌리깊은 아나키스트 성향을 갖는다. 원래 극좌와 극우는 이어진다. 좌우와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서면 크립토와 비건, 블록체인과 생명평화 운동의 결합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앙 권력에 대한 저항, 민중에 대한 믿음으로 하나된다. 국경 없는 사회를 바라는 크립토 업계의 열망은 세계 평화를 꿈꾸는 생명 운동의 소망과 결합할 수 있다. 말하자면 톨스토이와 하이에크의 결혼이다. 지난 세기, 협동조합에서 길을 찾았다면 오늘날에는 다오에서 길을 본다. 도(道)가 원래 영어로 다오(dao)다. 다오가 과연 생명평화의 길일까? 블록체인이 국가를 초월하는 전지구적 인민 연대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티모시 메이는 마르크스를 메아리치며 선포했다. “철조망 같이 겉보기에는 중요치 않은 발명이 너른 농장과 농원에 울타리치는 것을 가능케했고, 이에 따라 서부 개척 시대의 변경에서 토지와 소유권 개념을 영원히 바꾼 것처럼, 수학의 한 불가사의한 분야에서의 겉보기에는 중요치 않는 발견(암호화 기술)이 지적 재산권의 철조망을 끊어버리는 가위가 될 것이다. 일어나라, 당신들이 잃을 것은 철조망밖에 없다!” 블록체인이 메이가 예견한 가위가 맞다면, 인클로저 운동이 쌓아올린 울타리를 허물고 모두가 한 울타리, 한울인 세상을 만들 것이다. 블록체인이 자본주의의 체인을 끊어버리는 역설을 상상한다.
사진 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103442741431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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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