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12월 26일
12. 먹고 움직이고 일하고 심화하라
-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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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ar.pinterest.com/pin/374572894019067649/
어느덧 지구대학 개벽학 학기에서 다룬 책들을 모두 다루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일은 그동안 내가 만난 열 권의 책이 나를 통과하는 동안 어떻게 나 자신을 심화하였는지를 총정리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에게도 열 개의 서평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었기를 바라며,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내면을 단단하게 다지는 다른 글들을 이곳 ‘다른백년’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마카야의 책으로 딥마셀>은 넓고 넓은 이 세계에서도 ‘한 사람’이 품고 있는 가능성과 도모할 수 있는 행동의 변화를 다루었다. 그리하여 반 년 정도의 탐색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결국 ‘잘 먹고 잘 움직여서 잘 일하라’는 것으로 함축될 수 있을 것 갈다.
식(食)
‘잘 살기 위해서는 잘 먹어야 한다. 그러나 잘 먹는 것에는 안 먹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최강의 단식』 속 이 말이 나에게는 이번 지구대학 학기에서 접한 가장 신선하고 파격적인 말이었다. 그간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투자 대비 효율(이른바 가성비)이 뛰어난 실천 지침이기도 했다. ‘방탄커피’의 재료인 MCT 오일을 배송 시켜 아침 커피에 타서 마시기만 하면 ‘그냥’ 실천할 수 있었다. 첫날의 신기하고도 약간은 곤란했던 경험을 제외하면, 음식의 단식은 간헐적으로 활용하여 신체적인 동시에 정신적인 이점들을 누릴 수 있는 도구로 빠르게 자리잡았다.
그동안 내가 위안음식으로 삼아 탐닉하던 감자칩과 마카롱도 ‘그냥’ 저절로 안 먹게 되었다. 꾸덕하고 바삭한 배달음식(예컨대 로제떡볶이와 튀김들…)에 대한 갈망도 식었고, 하루일정이 끝나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허전함을 느끼며 편의점에 가는 습관도 거의 사라졌다. 이것들이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노력이, 그것 없이는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귀결될 결과를 바꾸는 힘을 뜻한다면. 나에게 단식은 인체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인지하고 신체를 보다 생태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과정이었다. ‘뇌-장 축’과 장내 미생물군을 ‘앎’은 나 자신을 일종의 생태계로 이해하게 하며 세심하게 관리’함’으로 이끌었다.
동(動)
생각해보면 나는 개인적인 성향을 넘어 이기적인 사람이다. 이 연재를 시작할 무렵 내 방에는 8개의 화분이 있는데 그 중에서 코코넛껍질로 만든 자그마한 화분에는 새학기에 입양한 이름 모를 식물이 있었다. 듣기로는 사시사철 꽃이 피는 아름다운 종이라고 하였는데 중간에 대기근을 겪어서 꽃대를 모두 잃어버렸다. 가뭄도 가지치기도 모두 ‘나’라는 무책임한 관리자에 의해 벌어진 일이다. 반면에 잘 먹기 위한 ‘안 먹기’까지 시전하는 나는 내 몸에 한해서는 세심한 정원사다. 이처럼 뛰어난 자기수용 감각과 고유수용 감각을 나의 도움으로 공존할 수 있는 주변생물까지 뻗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어쨌든 나는 동물이다. 화분을 들여놓은 것도 나이고, 물을 주어야 하는 것도 나이다. 움직임은 나란 존재를 동물로서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인물로서 활기 있게 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임 실감하게 되었다. 『움직임의 뇌과학』은 내 공부법을 바꿔놓았다. 걷는 것까지는 무리인데, 서있는 자세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막힘 없이 사고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는 것만 같다. 앉아서 공부할 때는 교통체증처럼 머리 속 흐름이 꽉 막혀서 짜증이 치솟을 때가 많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요즘에는 매일같이 운동을 바꿔가면서 즐긴다. 위 책에서도 말해진 바이지만 다양한 종류의 운동법은 내가 세계와 접촉하며 교류하는 삶의 레퍼토리를 늘려주는 기분이다.
사(事)
산다는 것은 일의 연속이다.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고 일을 함으로써 사회적인 자아가 생성된다. 하지만 일을 하다 소진되어 미래의 행복을 쫓다가 죽고 싶지 않고, 일이 없어 무료하게 천천히 말라가고 싶지도 않다. 박노해 씨의 시 중에서 “일을 사랑하지 말고, 사랑이 일하게 하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일에 중독되어 스스로를 착취하는 현대인을 위한 해독이다. 그 말씀이 반갑고 종종 ‘번 아웃’ 느끼는 나에게 와닿는 지혜이긴 하지만, 나는 일과 진하게 연애하고 싶기도 하다. ‘러브 마이셀프’는 자기 안에서만 유통되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특히 위 시인이 문제제기하는 우리 사회의 맥락에서는, 소비를 통한 갈증 해소하기에 그치기 쉽다.
나에게 진정으로 ‘일을 사랑한다’는 것은… 물론 소득이 주어지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당면한 필요이기도 하다.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는, 내가 세상 ‘속에서’ 사회적인 가치를 발생시키는 동시에 크고 속이 실한 자아가 되어가는 것을 뜻한다. 이 둘은 최소한 나에게는 절대로 떼어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는 숲을 이루는 ‘한 그루의 나무’로서 뿌리를 깊게 내리는 일에 치중했지만…. 그리고 나의 행복은 나무의 쓰러지지 않는 항상성, 잔잔한 내면의 평온을 누리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된다』에서 전해주듯 모든 성공과 성취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바람에도 부러지지 않고 휘어지는 가지처럼, 확고하게 여물고 전보다 더 길게 뻗어가려는 태도, ‘과정 중심의 마인드셋’[1]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결(結)
그리고 개벽학은 나에게 ‘무아지경’의 순간을 물었다. 나무가 숲이 되며 ‘한 그루임’을 잊고,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에서 ‘뇌 속 모듈 시스템 1에서 4로 승화하는 순간을. 솔직하게 말해서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할 말이 적다. 현재 내가 돈을 받고 활동하는 것들을 돌아본다. 인문학을 중심으로 탐구하는 공부는 내게 담백하고 감칠맛이 난다. 웹사이트에 올릴 글을 다 썼을 때는 자아 효능감, 잠시나마 느낀다. 청소년과 요리를 함께 하며 그 안에서 생태주의를 풀어가는 문화예술 강사활동, 여태껏 배운 걸 녹여내서 발산하는 보람이 있고 예측하지 못한 그들의 행동을 이끌어낼 때 기쁘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있다.
오히려 더 어린 나이였을 때, 잠깐 체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지나간 건축 공사장과 장난감 공장에서 나는 느꼈었다. 국내판 ‘워킹 홀리데이’로 생각하고 떠난 제주도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합숙하며 새벽부터 현장 정리 일을 하며 느꼈던 시원함. 그때는 몸은 ‘되어도’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으로 매일매일이 충만했다. 안양의 한 사회적 기업에서 플라스틱 장난감의 나사를 풀고 전선을 해체하며 시간이 눈 녹듯 사라진 경험도 함께 떠오른다. 그렇게 집중해본 경험은 처음이었다. 의외로 세계와 함께 춤 출 수 있는 나의 위치는 나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곳 혹은 심지어 ‘일’이 아닌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더 움직이면 더 유연해질 것이다. 사랑하는 일을 찾고 업으로 삼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나를 지원하겠다. 어차피 ‘무아지경’으로 24시간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 자아의식도 우주의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 것, 개체를 유지하고 육체와 전체의 연결고리를 찾아 그 커넥션(연결고리)를 지속적으로 활성화하는 일을 맡았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 또한 불교 공부를 심도 있게 하다 보면 눈 녹듯 사라질 망상이고 집착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자신’으로 인해 삶이 무거운 다른 중생을 구제하는 중간 단계의 역할을 자임하고 싶다. 나는 내가 담긴 화분을 옮겨서 더 넓은 숲으로 간다. 숲은 넓고 그곳에 가려는 의지만 있다면 나는 강건하다.
[1] 티나 실리그, 조슈아 포어, 스콧 영 외, 『루틴의 힘 2 – 출근부터 퇴근까지 커리어에 집중하게 해 주는』, 오일문 옮김, 부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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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