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5월 30일
13. 소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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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나는 인제군민이 되었다. 내 고향 춘천을 떠나 서울에 온 지 약 십 년 만에 다시 강원도민이다. 그리고 오늘 강원특별자치도법이 통과되었다. 여러모로 감회가 새롭다. 어릴 때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던 강원도가 이제는 특별하다. 나는 왜 강원으로 돌아가는가?
소를 찾아서다. 동물해방물결의 소 살리기 운동이 발단이다. 인천의 한 불법 농장에서 구조한 소 여섯 명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일 년 간 동분서주했다. 우여곡절 끝에 인제군 남면 신월리와 인연이 닿았다. 폐교에 소 보금자리를 만들기로 했다. 마을에서는 젊은이가 온다고 반겨주신다.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다. 소 살리는 일이 마을 살리는 일이 되었다. 소 여섯 명이 오면, 청년 육십 명이 따라 이주할 것이며, 관계 인구 육백 명이 생길 거라고 공언했다. 나부터도 소 옆에 살고 싶어서 전입신고를 했다. 곧 소 집도 짓고, 사람 집도 꾸밀 것이다. 나는 소랑 살아본 적이 없다. 개랑은 살고 있지만, 소는 아직 멀다. 동해물이 구조한 머위, 메밀, 미나리, 부들, 창포, 엉이는 현재 인제군 서화면 하늘내린목장에서 임시 보호 중이다. 아마 올 여름에는 신월분교로 이사할 것이다.
선종에서는 본성을 찾는 과정을 소 찾기에 비유한다. 그래서 심우도(尋牛圖), 소를 찾는 그림이 선방에 많이 걸려 있다. 중국 송나라 곽암선사가 그린 것이 대표적인데, 총 열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십우도’라고도 불린다. 1933년, 한용운은 성북동에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불렀다. 소를 찾는 것은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참된 나, 참나를 찾는 것이다. 참나는 무엇인가? 곽암에 따르면 1단계는 심우, 바로 소를 찾는 것이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일단 깨닫고 싶다는 마음부터 먹어야 한다. 2단계는 견적, 발자국을 보는 것이다. 본성은 못 찾아도 흔적을 본다. 3단계는 견우, 소를 발견한다. 본성이 어딨는지 알아챈다. 4단계는 득우, 소를 얻는다. 깨달음을 얻는다. 견성이라고도 한다. 5단계는 목우, 소를 길들인다. 깨달음을 소화한다. 6단계는 기우귀가. 소를 타고 피리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 소와 완전히 하나되었기 때문에 고삐도 필요없다. 7단계는 망우존인, 소는 없어지고 사람만 남는다. 객체가 사라지고 주체만 남는다. 8단계는 인우구망, 사람도 소처럼 없어진다. 객체가 없으니 주체도 없다. 이 상태를 곽암은 텅빈 원(O)상으로 그린다. 9단계는 반본환원, 근본과 근원으로 돌아가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본다. 주객 구분 없이 세상을 바라본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나와 너가 따로 있지 않고 모두가 참나다. 궁극의 깨달음이다. 10단계는 입전수수, 시장에 나가 손을 모은다. 중생을 구하는 것이 깨달은 자의 역할이다.
소는 내가 아닌 존재, 타자화된 생명의 상징이다. 왜 하필 소인가? 소는 원래 가족이었다. 같이 농사짓는 일꾼이었다. 여기저기서 많이 보였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태어난 우리 세대는 소가 낯설다.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다. 소는 없고 소고기와 소젖만 널려 있다. 나는 소를 찾고 싶어서 고기와 젖을 피한다. 비건이 된다는 건 소의 발자국을 보는 것, 즉 견적이다. 나의 생태 발자국을 생각하는 것이다. 철저히 객체화되고 상품화된 소를 나와 같은 생명으로 인지한다. 그 다음은 소를 찾아야 한다. 직접 만나서 눈을 들여다 본다. 소를 껴안고 음악을 연주할 것이다. 피리를 불고 싶다. 나의 반려견 왕손이는 내가 리코더를 불면 노래한다. 소들은 어떨까? 왕손이를 안으면 아무 생각도 없다. 내가 왕손이고 왕손이가 나다. 마찬가지로 나와 소의 구분이 사라지면, 소는 나고 나는 소다. 참나는 소다. 동시에 나는 나고 소는 소이기도 하다. 동물해방은 주체화된 인간 동물과 객체화된 비인간 동물의 경계를 허문다. 사람의 언어, 이성으로 나눈 주객 구분을 초월한다.
여섯 소 중 누구랑 제일 친해질지 궁금하다. 나는 부들이가 떠오른다. 유일하게 뿔이 아래로 자란 친구다. 하지만 아직 소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축사에 갇힌 것만 보았다. 보금자리에서 뛰노는 장면을 보고 싶다. 소의 참모습이 궁금하다. 부들이를 길들여도 타지는 않을 것이다. 같이 산책하고 싶다. 피리 불며 호숫가로 나가서 산과 물을 마주한다. 소의 눈으로 세상과 나를 본다. 그것이 나의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을 때, 비로소 참나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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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 범선의 선(禪) 자가 참선할 선이다. 이름따라 산다. 소를 찾아서 인제로 간다. 미국과 영국, 동두천과 해방촌을 거쳐 강원도로 돌아간다. 소양호 아랫동네 춘천 출신이 소양호 윗동네 신월리 주민이 됐다. 귀소본능인가? 텅빈 원 하나 그리려고 길을 나선다. 소를 찾는 길이 나를 찾는 길이다. 소를 살리는 일이 마을 살리는 일이다. 신월리에 심우장, 소 찾는 집을 하나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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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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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노래하는 사람. 1991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밴드 ‘양반들’ 보컬이다. '살고 싶다, 사는 동안 더 행복하길 바라고'(포르체, 2021)와 '해방촌의 채식주의자'(한겨레출판, 2020)를 썼다. '왜 비건인가?'(피터 싱어 지음, 두루미, 2021), '비건 세상 만들기'(토바이어스 리나르트 지음, 두루미, 2020) 등을 번역했다. 동물권 단체 ‘동물해방물결’의 자문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