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14. 샹뱌오, 두긴을 말하다
- 우크라이나 전쟁과 일상의 의미
이 글은 중국출신의 인류학자이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사회인류학 연구소 소장 샹뱌오(项飙) 교수의 인터뷰 <샹뱌오, 두긴을 말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일상의 의미>를 번역한 것이다. 인터뷰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샹뱌오 교수의 생각, 그리고 러시아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자 ‘푸틴의 브레인’이라고 불리는 알렉산더 두긴(Alexandr Dugin)에 대한 분석을 담고 있다. 샹뱌오는 러시아 사람들이 두긴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이 전쟁이 중국사회와 중국청년들에 대해 가지는 함의를 ‘일상생활에서의 의미구성’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지난 4월, 샹뱌오 교수는 이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이병한 박사, 임명묵 작가와 토론을 가졌다. 해당 대담은 한국의 시사주간지 <시사IN> (제766호, “러시아의 국뽕에서 한중이 위기를 읽다”)을 통해 공개되었으며 본 번역문은 해당 대담을 위해 번역되었음을 밝힌다.
(인터뷰의 원문은 https://www.163.com/dy/article/H4BBL2870521S83S.html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치吴琦(이하 W): 이전에 이메일을 통해 선생님과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면서 궁금해진 게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떤 시각에서 혹은 어떤 계기를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와 같은 국제적 사건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샹뱌오项飙(이하 X): 올해 2월 13일 정도였나요, 베를린에 있었던 저는 쓰레기를 버리려 밖으로 나오다가 윗집에 사는 이웃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70세의 퇴직 엔지니어셨는데요, 60-70년대 히피족이었던 그분은 냉전 시기 독일에서도 상당히 발전된 곳이었던 독일 남부에서 베를린으로 건너왔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동독과 서독은 베를린을 거의 관리하지 않았어요. 당연히 공업 같은 것도 없었고 베를린 사람들은 양쪽 정부가 주는 재정 지원으로 만 생활했죠. 특이한 점이라면 당시의 서베를린은 마치 하나의 고립된 섬과 같아서 서베를린의 거주민들은 병역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었다는 점입니다. 아마 기술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텐데요, 당시 베를린은 징병된 인구에 대한 관리나 호적관리를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징집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모두 베를린으로 향했습니다. 그분 또한 이러한 이유로 베를린에 왔던 히피족 중 하나이셨죠.
다음날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습니다. 그리곤 러시아에 가 푸틴을 만나려 했죠. 당시 상황이 참 이상했어요. 미국은 1월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려 한다고 말하기 시작한 반면 우크라이나 정부는 두려움을 조성할 필요가 없다며 일을 크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거듭 국제사회에 요청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또한 러시아가 침략할 것 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죠. 이후 독일 외교장관이 먼저 러시아에 갔고, 다음에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갔습니다. 이어 숄츠도 갔어요. 그리고 잘 알려진 기다란 테이블에서 장장 5시간을 이야기했습니다. 회담 이후 양측의 기자회견을 보면 이상한 것이 없었어요. 오히려 매우 정상적이었습니다. 다들 협력과 평화를 이야기했거든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뭐냐면, 누군가 숄츠에게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묻자 숄츠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는 우리의 논의 대상이 아니며 이로 인해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이웃은 대화를 나누면서 미국과 영국은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반면, 독일과 프랑스, 우크라이나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은 “이라크 전쟁 이후 독일 사람들은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제가 쓰레기를 다 버리고 돌아가려던 순간, ”그런데 러시아도 완전히 믿을 수는 없죠”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이처럼,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일상생활 속의 작은 일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습니다. 저도 놀라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더 놀라웠던(그리고 이 일에 큰 관심을 가지도록 한) 일은 2월 27일 숄츠 총리의 의회 연설이었어요. 숄츠의 격앙된 연설, 마찬가지로 격앙되고도 놀란 반응의 몇몇 의원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요, 저는 하룻밤 사이에 독일에 이런 변화가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독일은 2차 세계 대전의 역사를 매일 이야기하고, 전쟁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 매우 높으며 나치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국가입니다. 독일의 사민당과 녹색당이 연정 집권한 현재는 전쟁을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석탄 에너지와 원자력 에너지의 조속한 폐기를 추진하고 있죠.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정책들이 갑자기 바뀌었어요. 원래 독일은 우크라이나에 5천 개의 헬멧을 보내기로 했어요. 하지만 27일이 되어서는 천억 유로를 투입해 군비 지출을 크게 확대했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보며 저는 독일인들이 속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는 상황이 매우 위급해 보였죠. 저는 그런 결정의 배후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독일은 오랜 기간 동안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왔어요. 왜냐면 과거 소련이 독일 통일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거든요. 독일 사람들은 (최소한) 고르바초프에게는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푸틴이 집권하여 본격적인 개혁과 개방을 실시했고 독일의 사민당과 비교적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독일도 스스로 군사나 영토에 대한 야욕이 없었습니다. 민생에 초점을 맞춰 실용적으로 정국을 운영해왔죠. 독일이 이렇게 변한 것은 러시아의 행동이 독일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과했던 것입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히 나토의 동진 때문이라거나,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인 학살을 막기 위해, 혹은 러시아와 크림반도 간 직접적인 교통이나 에너지 공급 통로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면 독일은 그렇게 놀라지 않았을 것입니다. 독일의 놀라움은 생존과 관련된 놀라움인 것 같습니다.
26일, 독일의 관영 통신사가 <러시아와 세계의 새로운 구도>라는 글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이번 군사작전의 승리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 다시 편입되면서 서방의 패권이 완전히 제거된 세계 질서가 다시 쓰였다고 선언했습니다. 당시 우리 지식인들은 노엄 촘스키, 타리크 알리의 글을 읽었는데요. 제가 존경하는 학자인 타리크 알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뉴레프트 리뷰(New Left Review)>에 "News from Natoland"라는 글을 통해 NATO의 동진은 큰 잘못이고 재앙적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NATO에 들어갈 수 없고 일정한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며 러시아를 무시해서는 안 되고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전쟁 이후 서구 좌파들 사이에서 큰 균열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 보도록 합시다. 우선, 이전에 제가 관심을 가졌던 주제들도 미국과 NATO의 동진(東進) 제국주의, 우크라이나의 내부 문제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발발 이후 중국의 몇몇 논평들을 보면서 단순히 "나토의 확장'이라는 문제만으로는 이 전쟁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놀랐을까요? 키신저나 미어샤이머처럼 NATO의 확장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반등을 경고하던 사람들도 이와 같은 군사행동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전쟁 시작 전에도 미국, 독일, 프랑스, 우크라이나, 러시아는 유럽의 새로운 전략적 구도를 어떻게 구축할지를 이야기해왔으며 모두들 문제들을 대화로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러시아도 새로운 전쟁으로 목적을 달성할 필요가 없어 보였어요. 그래서 저는 푸틴의 연설이나 글들을 상세히 살펴보았는데요, 저의 생각은 이 전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와 감정의 측면을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즉, ‘의미’라는 측면에서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전쟁은 단순히 (특정 목적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그 자체로 현실을 초월하는 모종의 의미 추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체 푸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사실 우리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2021년 6월에 푸틴이 발표한 글의 내용을 살펴보면, (푸틴은 이 글을 모든 병사들에게 읽으라 했다고 합니다.) 푸틴에게 있어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국가가 아닙니다. 푸틴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하나(一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서 봐야 할 점은 “우크라이나는 국가가 아니다”라는 발언의 의도가 우크라이나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신,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이우(Київ)를 러시아 문명의 기원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두긴(Alexandr Dugin)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요, 두긴에 따르면 사실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인들보다 러시아 문화의 핵심에 더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러시아 사람들보다 더 고귀하죠. 우크라이나 문명은 러시아 본토의 문명보다 더 장구합니다. 이번 전쟁은 문명의 유전자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자 문명의 발원지를 탈환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쟁의 과정에서도 주민들이 사는 지역은 폭격해도, 도심의 일부 역사 유적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것을 보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상상의 감정'이 깊어 보입니다. 푸틴이 했던 말로 다시 돌아가 본다면, 그의 글에서는 새로운 러시아에 대한 그의 상상과 그 배후에 있는 이데올로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두긴이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2014년, <Foreign Affair>는 크림반도 합병 이후 처음으로 두긴을 ‘푸틴의 브레인’라고 칭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두긴의 몇몇 글들을 살펴보았는데요, 저는 이 전쟁에 관심을 가지며 그 전쟁 뒤에 있는 의미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W: 는 직접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두긴을 푸틴의 브레인이라고 칭한 것이 아닌가요?
X: 맞아요.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그런 표현도 사실은 그냥 해석이에요. 하지만 그가 국회 대변인의 특별 고문을 맡았던 것을 보면 러시아의 고위층과 네트워크를 맺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이게 첫 번째에요. 두 번째는 90년대 후반과 2000년대까지 두긴이 여러 매체에 자주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저서도 스테디셀러가 되어 널리 읽혔죠. 몇몇 저명한 매체들은 스스로를 두긴주의자이자 신유라시아주의자라고 칭하기도 했어요. 세 번째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두긴이 1997년 출판한 책 『지정학의 기초 (The Foundation of Geopolitics)』가 러시아군 총인사부의 교재였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두긴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푸틴이 연설에서 사용하는 단어들도 두긴의 주장과 흡사합니다. 그리고 전쟁 이후 두긴의 기자회견을 보면 그냥 푸틴의 대변인입니다. 단어나 수사, 일부 개념에서 푸틴의 생각과 대부분 일치합니다. 두긴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인물입니다. 실제로 1997년부터 두긴이 밝혀온 생각과 이번 전쟁의 전개는 많은 부분 일치해요. 그렇지 않다면 이 전쟁은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푸틴이 코로나 기간의 격리로 인해 뇌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등의 이유를 말합니다만 두긴의 이론을 통해 접근하면 설명이 됩니다. 크게 설득력 있죠.
하지만 두긴이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그의 이론이 틀림없이 전쟁을 상당 부분 변호할 수 있다는 것과, 그가 지금도 이론적으로 전쟁을 변호하는 학자라는 것입니다. 두긴의 이론은 하나의 이론이지 일반적인 선전이 아닙니다. 이 이론은 소련의 붕괴 이후 러시아 사회의 변화 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체계가 있고 논리적으로도 들어맞으며(정합성) 생명, 인간에 대한 이해와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죠. 그가 인류학이나 언어학, 철학을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를 분석할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를 분석하면서 일종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그것이 어떻게 하나의 이론으로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이론이 어떻게 하나의 전쟁 이데올로기로 변하는지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긴이 이 전쟁과 무슨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이 논의를 통해 그를 심판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그저 학자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네 가지는 오늘날의 상황 속에서 우리가 왜 두긴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는지를 설명한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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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다시 말해, 두긴은 우리가 이 전쟁의 배후 원인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착안점일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관점에서 두긴의 이론을 이해하기 시작하셨습니까? 저희가 이해하기 쉬운 부분은 그가 프란츠 보아스, 마르셀 모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제이콥스와 같은 여러 인류학자들의 관점을 인용했다는 것인데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앞에 말씀하셨던 것에 따르면 단순히 인류학이라는 것 말고도 다른 경로가 있을 것 같아서요.
X: 핵심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의 사상 역정을 살펴보면 그는 천재적인 아이였고 어릴 때부터 9개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백과사전과 같은 학자라서 유럽의 여러 이론에도 정통합니다. 소련 시기, 그는 소련에 반대하는 ‘불순분자’였고 이로 인해 처벌을 받기도 했습니다. 두긴이 지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시기는 90년대 소련의 해체 이후였는데, 그가 말하길 소련의 해체는 그에게 하나의 ‘거대한 공허’와 같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대체 이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게나 거대했던 소련이 한순간에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니까요. 사실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겁니다. 제 기억에 푸틴도 자신의 자서전에 이와 비슷한 말을 썼던 것 같아요,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시기 푸틴은 동독에 있었습니다. 동독 사람들이 서독으로 향하는 것을 보며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KGB의 명령을 마냥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바는 침묵했고 아무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침묵으로 그는 모든 세계가 사라진 듯한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더 중요한 건 옐친 시대에 러시아 경제가 입은 피해가 독소전쟁 시기보다도 심했다는 점입니다. 이 시기 러시아 사람들은 늘 술에 찌들어 있었고 기대 수명도 급격히 감소했으며 사회가 붕괴하고, 조폭이나 독점이 증가했습니다. 푸틴이 1999년 쓴 <천년지교의 러시아>를 보면 당시 러시아의 모든 것이 추락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긴은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인지, 어떻게 희망을 찾을 것인지에 대한 단초를 지정학에서 발견했다고 합니다.
우선, 그는 칼 슈미트로부터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이라는 양분된 관점을 배웠습니다. 해양문명은 지중해부터 대서양에 이르는 이른바 ‘대서양주의’로 미국과 서구로 대표되며 개인주의, 상업적, 개방적, 민주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 대립되는 것이 바로 대륙문명입니다. 대륙문명은 집체주의적이고 상업 네트워크가 아니라 위계적인 권력을 통해 조직됩니다. 푸틴은 이를 ‘수직적 권력’이라고 부르는데요, 모든 것을 종적으로 배치하여 개인은 국가와 집단에 복종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를 설명하면서도 두긴은 인류학과 사회학 관점을 인용하는데요, 그중 ‘집단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뒤르켐의 견해를 가지고 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정치화하죠. 두긴이 머릿속에 이 세계는 대서양주의와 유라시아주의 사이의 대결입니다. 그가 보기에 90년대 러시아가 쇠락한 이유는 대륙과 해양의 균형이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서양주의가 불공평하게 대륙주의를 침략했고 유라시아 문명의 문명 질서가 무너지면서 각종 병패가 발생했던 것이죠. 동시에 두긴은 사회주의도, 소련도 반대했습니다. 그에게는 소련 사회주의 또한 재난의 근본적인 원인이었습니다. 대륙문명이 대륙문명을 공고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양의 침입을 당한 것이죠. 그가 왜 인류학이나 포스트모던 이론에 관심이 많을까요? 왜냐하면 그가 철저한 상대주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대륙문명과 새로운 유라시아주의의 문명은 자기만의 유전자와 규율, 언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두긴은 계속해서 언어철학을 인용합니다. 그는 해양문명은 대륙문명을 이해할 수 없으며 양자는 소통할 수 없고, 반드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륙 문명 내부의 일들은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만 이해되고 평가될 수 있으며 오늘날의 가장 큰 문제는 해양문명의 기준으로 대륙문명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두긴의 주장은 단순한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그에게 국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문명이죠. 그가 지리, 환경, 기후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긴은 또 유라시아 대륙의 기후가 이와 같은 문명의 기질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불변적인 것이며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는 다원문화주의자입니다만 그가 생각하는 다원문화는 좀 이상합니다. 만약 당신이 문화적인 의미에서 유대인이나 무슬림이지만 유대교나 이슬람을 믿지 않는다면 두긴에게는 일종의 죄악으로 비춰집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문명적 유전자를 배반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그는 해양문명의 현대성의 가장 큰 문제가 자신의 문명적 근간을 배반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만약 당신들이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우리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륙 문명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두긴 이론의 일부 내용입니다. ‘문명’이라는 매우 추상적이면서도 본질적인 개념이 바로 그의 모든 사상의 근간이죠.
여기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그의 서술이 나옵니다. 푸틴은 일련의 글을 통해 레닌을 비판합니다. 레닌은 주로 우크라이나 문제를 통해 러시아의 민족정책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여기서 그가 우크라이나라는 허구적인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한편, 두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서쪽의 3개 지역을 제외한 전체 지역을 점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서쪽 지역은 슬라브 문명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에요. 하지만 다른 부분은 반드시 점령해야 합니다. 점령은 하늘의 뜻을 행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들 지역과 러시아는 본래 문명적으로는 같지만 이후 정당하지 못한 정치 변화로 인해 이 관계가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최근 두긴은 “러시아는 당연히 국제법을 위반해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문명이 국제법보다 더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명확히 말하기도 했습니다.
W: 중국의 맥락에서도 두긴 및 푸틴의 묘사와 크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주 거대한 바둑을 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완전히 미쳤고 이성을 잃었으며 적당한 선을 넘었다는 생각을 하는 반면, 또 중국의 일부 언론에서는 이들의 주장이 제국주의·서구문명에 대한 반대와 배제에 기초했기 때문에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제가 원래 질문하려 했던 것은, 오늘날 두긴의 이론과 과거 파시즘 이데올로기의 흥기 사이에는 직접적으로 대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막 생각이 든 건데, 두긴의 주장을 과거 중국 봉건왕조의 ‘하늘의 도(天道)’와 같은 인식과도 비교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X: 우선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겠습니다. 저는 두긴의 이론이 ‘천하’, ‘천도’에 따른 호소, 인식방식, 감정 구성방식에서 중국 봉건왕조의 하늘의 도와 비슷한 점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두고 세계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이 세계의 절대적인 진리를 터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자신을 상대화해 다른 사람과 공감을 형성할 능력이 없죠. 두긴은 매우 현대적인 맥락 속에서 언어학 및 존재론적 논쟁을 통해 이와 같은 정서를 재차 논증합니다. 존재론에 대한 논쟁의 의미는 본디 하나의 세계가 존재하지만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존재론적 전환 이론은 “우리의 생각이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가 다르다”고 말합니다. 즉 인식론적으로 다른 것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론적으로 다르다는 것이지요. 본래 중국 왕조가 자신을 절대적인 천명의 담지자로 인식했던 것은 그들이 다른 존재를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중국의 왕조뿐만 아니라 이전의 모든 문명들이 모두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은 천하를 ‘천하무외(天下无外 – 천하에는 바깥이 없다)’로 이해했습니다. 모든 세상이 하나의 천하였던 것이죠. 당연히 중국의 천자를 중심으로 밖으로 뻗어 나가는 구조이고, 경계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바깥이 없다(無外)’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유교를 공부하기만 하면(교화) 중국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었습니다. 하지만 두긴의 ‘신유라시아주의’의 근본적인 입지점은 자신을 중심에 두고 외부로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중심에 두고 외부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의 이론의 중요한 시작점은 해양과 대륙의 이분법인데 이는 ‘절대적인’ 이분입니다. 두긴은 이 양자가 서로 뒤섞여서는 안 되고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는 문명, 천명, 기질, 본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는 한편, 그 구체적인 서술과정에서 현대성, 현대 지정학의 틀을 사용하여 구체적인 이해를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영국과 미국의 관계, EU에서의 독일의 위치 같은 것이요. 원래의 ‘천하’ 개념은 문명론일 뿐이지 지정학적인 개념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하자면) 두긴과 나치의 이념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두긴은 자신의 ‘제4의 이론’을 제기하며 인류의 현대사회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나치주의, 그리고 신유라시아주의를 겪어왔다고 말합니다. 신유라시아주의는 앞의 세 주의에 대한 ‘지양’이자 극복입니다. 그는 자신을 나치주의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그가 쓴 글들을 보면 나치의 정책에 영향을 준 사상가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무슨 ‘주의자’라거나 그가 나치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상적 근원이 나치의 사상적 근원과 상당히 가깝다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문명에 대한 강조입니다. 19세기 독일의 낭만주의 사상은 이후 인류학의 발전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확실히 나치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가령, 게르만인의 문명적 본질과 본성은 바꿀 수 없으며 자신의 전통과 역사, 뿌리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말들 말입니다. 이러한 접근은 왜 나치가 1930년대에 흥기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1차 대전의 패배와 더불어 자본주의 경제 위기에 따라 발생한 전 세계적인 거대한 공황, 공허와 미망 속에서 전통을 발견하고 인종적 자부심을 되살리며 ‘이토록 고귀한 민족이 어떻게 이런 굴욕을 당할 수 있겠는가?’로 이어진 것이죠. 이런 자부심에 굴욕이 더해지면 거대한 동원이 가능해지고 특히 당시의 엘리트들에게 호소력을 갖게 됩니다.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거대 자본 또한 그를 지지했는데, 이는 경제적인 고려와 더불어 패배의 설욕과 영광의 추구와 같은 의미 세계의 구성과도 연관됩니다. 여기에 관련해서는 이후에 다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중국 사회 또한 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언급한 것들을 들으면 모두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정한 경제사회적 조건 하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움직입니다. 여러 번 이야기되면 하나의 집착이 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치에도 맞지 않고, 인생의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으며 물질적인 현실 세계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종국적으로는 하나의 집착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논리나 원인, 이치를 따지지도 않고 그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집착에 반대하는 사람은 적으로 규정되죠. 반론의 여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나치즘의 근원과 연결됩니다.
W: 그렇다면 나치와 크게 비슷한 문명론의 총체적인 사회동원이나 이데올로기적 동원이 어떻게 21세기의 맥락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을까라는 같은 문제가 뒤따릅니다. 일전에 저희는 중국에서 나타난 탕핑(躺平)[1], 내권(内卷)[2], 허무와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요, 오늘날의 사람들은 정치적인 열정도 없는 것 같고 정치적 열정에 불을 지필 이론 같은 것을 알게 된 것도 아닙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낮은 투표율은 중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에요. 어떠한 이론이나 주의(主義)에 대한 흥미도 사라졌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생활 의미에 대한 추구도 사라졌다는 것이 일전에 우리가 같이 이야기해 보며 이해했던 단계적 사회의 특징이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두긴의 사상이 현실에 이토록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긴의 사상은 한 국가의 정책 특히 군사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공감대를 형성했어요. 그리고 실제로 실행에 옮겨지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도대체 어떤 세계인가 하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데요, 평화와 발전이 세계의 주요 흐름이라는 식의 호소를 다시 분석할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X: 맞아요. 유럽의 주류 정치가들에게 물어보면 모두 “오늘날 우리는 평화와 발전의 흐름과 냉전 이후의 평화배당(peace dividend)[3]을 잃었다”라고 말합니다. 평화배당이 사라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가슴 아픈 일이죠. 두긴은 이에 대해 “전쟁은 전 세계를 위해 싸우는 것이고, 하늘의 뜻을 대신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즉, 기존의 평화배당은 정의롭지 못했고 따라서 평화배당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죠.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라크나 시리아, 예멘 지역에서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다른 지역의 충돌 또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학기술과 신재생에너지, 교육, 사람들의 생활을 중요시하는 양상으로 전후 세계 질서의 모범이었던 독일이 현재 (군사적으로) 변하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독일 국민들은 여전히 충격 속에 있습니다. 매일 1,4000명의 난민들이 베를린 기차역으로 오고 있으며 저의 동료들도 자신의 집에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보편적인 상황 속에서 어떻게 두긴과 같은 경우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우선 여기에는 러시아라는 특수성이 있기는 합니다. 만약 다른 국가였다면 두긴의 발언은 사람들에게 이상하다고 여겨졌을 거예요. 하지만 러시아는 여러 영역에서 지위나 위상이 불균형적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컨대, 군사적으로는 강대하고 핵무기도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 위상은 이와 맞지 않습니다. 인구 수와 국토의 크기,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현실이 모두 불일치해요.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의 추락이라는, 다른 사회는 쉽게 경험하지 못할 거대한 추락을 경험했어요. 서방국가와의 관계도 상당히 복잡합니다. 여기에는 NATO나 미국의 책임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들 국가들에게는 러시아를 압박할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또 한 가지는, 허무주의에 관한 거예요. 두긴과 푸틴의 서술을 보면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가 중요한 화두입니다. 방금 이 문제를 물어보셨는데, 사람들의 의미적 공허는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현재 상황에 대한 그들의 역사적 서술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두긴과 푸틴이 일치합니다. 푸틴이 “소련의 해체를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은 양심이 없고, 소련 체제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는 사람은 머리가 없다”라고 말한 것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소련의 해체는 체제의 비극도, 이상의 비극도, 사회실험의 비극도, 인류 역사 발전의 비극도 아닌 단지 지정학의 비극이라고도 강조해 말했습니다. 푸틴은 제국주의 패권이 붕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소련은 해체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반면 사회주의 실험으로서의 소련의 실천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는 좌파들의 이해와는 상반됩니다. 또한 푸틴은 존재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레닌을 비난했습니다. 1913년부터 레닌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된 일련의 논쟁을 했습니다. 1919년에는 우크라이나의 노동자-농민들에게 편지를 보내 우크라이나가 독립을 해야 하는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이야기했는데요, 두긴-푸틴의 발언과는 재밌는 대조를 이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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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레닌의 분석은 대부분 경제와 정치적 안배에 대한 것입니다. 그는 경제적으로는 지주의 토지 소유제를 폐지하고 공업화를 해 소비에트를 세워야 한다고 보았으며 정치적으로는 두 개의 볼셰비키를 언급했습니다. 하나는 우크라이나의 볼셰비키로, 이들은 국가의 독립을 요구할 수 있고 여러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총체적인 볼셰비키로, 이른바 소련을 의미합니다. 우크라이나의 독립 여부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레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연합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가 현지 지주와 자본가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만큼은 허락할 수 없었죠. 단지 프롤레타리아 연합만 유지되면 되었습니다. 이런 조건 하에서라면 우크라이나는 스스로 독립을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닌은 우크라이나가 하나의 독립된 공화국이 되는 문제는 우크라이나 스스로의 결정, 특히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공산주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매우 명확하게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소련에 편입된 것은 우크라이나인들과 러시아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거나, 하나의 문명이라서가 아니라(레닌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공통된 이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몽골의 상황도 매우 비슷했습니다. 우란푸(乌兰夫)[4]도 몽골이 한족과 공통된 이상을 가져야 한다고 보았지 같은 문명적 기원을 가져야 한다고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공산주의자였기 때문에 중국의 사회주의 운동과 연대하길 원했죠. 레닌은 자신의 편지에서도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을 억압했으며 이 지역 내에서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민족을 억압한 민족이기에 우크라이나 민족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재차 말했습니다. 저는 그의 편지와 두긴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논점이 아니라 서술방식의 차이라고 봅니다. 레닌은 토지, 권력, 당의 관계와 같이 매우 구체적인 것을 이야기한 반면, 두긴의 서술은 인종, 기후, 성질에 관한 것입니다. 푸틴은“passionality”라는 단어를 인용하는데요, 저는 이 단어를 야성(血性)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단어는 두긴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인류학자나 역사학자에게서 왔습니다.
방금 말씀하신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서요, 두긴과 같은 인물의 사상이 어째서 이토록 강력한 동원력을 가질 수 있을까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답은 바로 허무주의입니다. 적어도 푸틴과 두긴의 언설 속에서 이 허무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회주의 실천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 따르면 1917년부터 1989년까지의 60년은 비극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원래의 문명에 대한 왜곡이었죠. 다른 하나는 푸틴과 두긴이 당시 소련의 모든 전략과 오늘날의 국제정치를 모두 단순한 권력 투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해 속에 공적인 원칙이나 정의 같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죠. 왜냐하면 해양과 대륙은 근본적으로 통할 수 없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글과 같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푸틴은 2월 21일 러시아에서 TV 연설을 했습니다. 사실상 전쟁 준비를 위한 것이었는데요, 푸틴은 우크라이나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국가이자 소련과 레닌이 창조해낸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레닌이 왜 이런 국가를 만들어 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 이유로 당시의 볼셰비키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권력을 차지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차르 타도를 위해 우크라이나와 같은 국가들에게 자결권을 부여했다는 것이지요. 당시 소련이 이들 소수민족들에게 잘 대해주었던 것은 일종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책략이지 이상이나 원칙 같은 것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자유주의에 대한 두긴의 비판 중 하나는 그것이 허무주의라는 것입니다. 그는 해양문명의 자유주의가 곧 허무주의라고 봅니다. 참 재미있는 말인데요, 두긴은 서방이 말하는 자유주의에는 사람들 간의 평등이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서구 현대의 자유주의는 이미 공동체의 범주를 모두 해체시켰기 때문입니다. 남은 것이라곤 ‘개인’뿐이죠. 두긴은 서구 현대의 자유주의가 역사와 전통, 풍습, 민족을 부정하고 있기에 이를 허무주의라고 봅니다. 2017년 즈음, 두긴은 프랑스 철학자 베르나르-앙리 레비와 토론을 가진 적이 있는데요, 재밌게도 그들은 서로를 허무주의자라고 칭했습니다. 레비는 “두긴의 도식에는 문명과 공동체만 있을 뿐 개인과 일상생활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를 허무주의자라고 불렀죠. 또한 “두긴의 허무주의에 따르면 총체적인 문명적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개인들은 소멸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두긴은 “민족/국가가 전부이며 개인은 아무것도 아니다. (Nation is everything,individual is nothing.)”라고 말하기도 했죠.
W: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우선, 신유라시아주의와 파시즘, 나치즘은 서로 굉장히 유사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는 전쟁을 일으키며 우크라이나 내부의 나치화에 반대한다고 선언했거든요. 방금 이야기한 허무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가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상대편에게 허무주의라는 꼬리표를 붙이는데 열심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늘날 우리의 공적인 토론에서도 서로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개념을 상대편에게 같다 붙이는 현상이 자주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와서요, 앞서 소련에 대해 말씀하신 몇 가지 내용에 따라 다시 여쭤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소련의 민족정책이 중국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사건의 이면에는 소련을 어떻게 다시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의 맥락에서 볼 때,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고, 오늘날 세계는 중국의 관점과 태도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떤 층차에서 이 문제를 파악하고 있는 걸까요? 단순히 지정학적인 문제인가요? 아니면 공통의 이상이라는 측면의 문제인가요. 거기에 더해, 이전에 여러 번 토론을 한 적이 있기도 한데요, 우리는 사회주의 전통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요?
X: 우선, 우리는 소련을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련의 원칙을 그리워하죠.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은 당시 레닌이 했던 생각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고 오늘날의 상황도 그때와 다릅니다. 우리는 소련이라는 실체나 제도를 그리워하지 않습니다. 소련과 사회주의는 당연히 구분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주의 기본원칙이죠.
여기서 두 가지를 더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첫째, 저는 사회주의 원칙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는 허무주의와도 연관됩니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 청년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이나 국제사회를 논할 때 하나의 정글을 상상합니다. 일상생활은 경쟁입니다. 누구든 능력만 있다면 위로 올라갈 수 있죠. 원칙 같은 것은 우스갯소리 같은 것입니다. 국제사회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날 왜 그리도 많은 사람들이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질까요? 저는 일종의 투영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글을 살아가는 것 같은 개인 생활을 국제사회에 투영하는 거죠. 경쟁으로 가득 찬 ‘정글을 살아가는 기분’은 사람을 애태웁니다. 좋은 경험이 아니죠. 설령 경쟁에서 승리하더라도 다음번에는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제정치에 이 감정이 투영되면 매우 강경한 민족주의적 입장이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도덕적인 의미를 지닌 게임으로 변해버려요. 도의적인 원칙은 필요하지 않게 되고 도리어 더 자극적이게 됩니다. 이런 허무주의는 사람을 동물과 같이 만들어 버립니다. 작은 나라나 한 집단, 일개 개인이나 인생의 어떤 단계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나는 것은 상관없어요. 하지만 오늘날의 중국은 너무나도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아주 작은 정책 조정도 구조적으로 부정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고 원칙적인 문제로 변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적인 원칙을 견실히 하지 않으면 추후 곤란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또한, 국제사회든, 국내의 일이든 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만약 원칙이 없다면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50년대부터 국제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존중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저우언라이가 반둥회의에서 제시한 평화 5원칙[5]이 있습니다. 평화 5원칙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명함이자 정치적 정체성입니다. 만약 이번 전쟁으로 큰 이익이 얻고 권력의 각축장에서의 중국의 입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앞서 세웠던 원칙을 우선 제쳐 두자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입니다. 상황이 매우 복잡해서 다른 국가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릅니다. 명확한 원칙 없이 당장의 이익에 현혹되어 결정을 내린다면 결국 모든 판국이 혼란스러워집니다.
또한, 사회주의 원칙이 남긴 유산에도 큰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물론 이 타격은 두긴의 이론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두긴은 명확히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사람이기에 그를 사회주의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우리의 학계에서 이미 드러나고 있습니다. 현재 몇몇 학자들끼리는 서로 대화도 하지 못합니다. 서구 좌파들은 본래부터 NATO에 반대해 왔으며 미국의 민주사회주의연맹(Democratic Socialist Association) 또한 NATO의 확산에 반대하는 동시에 미국의 NATO 탈퇴를 요청해 왔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이런 정치적 입장 때문에 억압받고 있어요. 한편, 우크라이나 내부의 좌파들은 서구 좌파들을 비판합니다. 이들이 서구 자체만을 과도하게 비판할 뿐 다른 유형의 제국주의에 대해서는 비판을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죠. 아무튼 현재 좌파 내부에서는 이러한 분열이 나타났습니다. 저는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좌파들이 억압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대로 신보수주의가 대두되고 이른바 ‘군사-공업 복합체’가 흥기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이미 분명해졌습니다. 이후에는 신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서로 연합하여 안보문제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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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다음 질문을 해보겠습니다. 앞에서 두긴을 대표로 하는 이론 사조의 흥기와 이것이 오늘날 국제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비록 이 이론들이 그 자체로 완성적이고, 논리적으로 말이 되며,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고는 하나 구체적인 학문의 관점, 예컨대 인류학이나 사회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떠한가요? 두긴의 이론에 특정 지식에 대한 오독이나 남용이 있지는 않나요? 특히 이론은 현실 정책에 사용되는 과정에서 왜곡이나 의미 전도가 발생할 수 있는데요, 이 부분에 대한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을까요? 왜냐면 중국에서도 두긴의 저술을 번역하고 이에 대해 적지 않은 찬성과 동의를 보내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거든요.
X: 두긴의 이론은 매우 철학적이고 신비주의적으로 보이는 측면이 있습니다. 칼 슈미트와 마찬가지로 두긴은 사회나 역사를 과학의 언어로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봅니다. 과학과 이성, 추론과 실증은 본래 해양문명의 인식론이며 대륙문명의 인식론은 신비와 정신적 감응, 문명체에 대한 정체성에 대한 중시 그리고 야성이라는 것입니다. 야성이라는 것은 인류학자 레프 구밀료프(Lev Gumilev)가 제기한 개념이에요. 구밀료프는 스탈린 시기 시베리아로 유배된 적이 있는데요, 그는 그곳에서 가혹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곤 시베리아의 각종 부락을 대상으로 민족지 조사를 실시한 뒤 야성이라고 불리는 개념을 창안해 내었습니다. 그는 야성의 대표적인 예시로 알렉산더 대왕을 꼽았습니다. 대체 왜 알렉산더 대왕은 끊임없이 정복을 하며 앞으로 나아갔을까요? 사실 계속된 정벌은 이성적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약탈한 것들을 가지고 돌아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구밀료프는 이를 일종의 야성이라고 보았습니다. 야성은 몸 안에서 타고난 정신력의 일종으로 끊임없이 사람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현실을 소유하고 추구하도록 합니다. 구밀료프는 가혹한 자연 조건으로 인해 야성이 시베리아의 민족들의 본질적인 요소가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유라시아대륙 사람들에게 야성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두긴의 주장에서 칭기즈칸은 유라시아 대륙을 대표하는 인물로 나타납니다. 그의 정복활동 또한 인성의 고양 행위였습니다. 두긴은 야성을 느낄 순 있지만 그것을 보여줄 수는 없고, 이를 막을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만약 누군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곧 야성을 발현할 것이고, 이런 상황 속에서의 살육은 인성 본질의 발현이라고 봅니다. 두긴의 이 논리 또한 스스로의 정합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논리를 가지고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두긴이 인류학적 개념을 인용한 것을 두고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그는 뒤르켐이나 레비스트로스 같은 사람들을 인용합니다. 뒤르켐은 <자살론>에서 “자살이란 현상은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자살의 의미를 개인의 자살행위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자살률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자살률은 사회의 구조를 체현하기 때문입니다. 사회구조와 사회환경은 많은 사람들을 자살하도록 이끕니다. 만약 한 개인의 자살만을 본다면 진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죠. 개체의 자살이 자살 현상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살 현상이 사회구조 문제의 상징으로 먼저 존재하는 것이죠. 이런 조건 하에서 비로소 개체의 자살행위가 존재합니다. 참 재미있는 생각이죠. 두긴의 이론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조금 변합니다. 문명은 개체의 행위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개체의 존재는 중요하지 않아요. 총체적인 사실이나 총체적인 문명부터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뒤르켐과 모스는 총체적 사실에는 우리들의 주관적인 의식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집단의식은 사회현상의 일부분이라고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두긴은 “우리는 사실을 간단히 볼 수 없고 볼 수 있는 것은 집단의식을 포함하는 총체적 사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러시아 국영 방송에서 하는 뉴스를 두고 거짓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실이나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그것을 믿느냐 마느냐예요. 뉴스의 보도는 종교의식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단지 모두가 우리 의미 체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따라서 몇몇 인류학적 생각들에 대해 두긴이 이를 오용했는지 아닌지를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비판을 해본다면 두긴의 주요 문제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생활과 결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보통사람들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무엇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고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사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어떻게 사실을 이해하는지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물론 보통사람들에게도 무엇이 절대적인 참이고 거짓인지는 확실히 말할 수 없으며 총체적 현실이라는 것에도 참과 거짓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보통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관심 있는지를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예컨대 가정생활이나 아이, 노인, 분배의 불공정 같은 것 말이죠. 하지만 두긴은 이런 것에서 시작하지 않아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러시아 문명의 핵심을 지킬 것인가에 대해서만 생각합니다. 그의 출발점은 우리들의 일상적 실천과 완전히 유리되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착에서부터 시작해 멀리 나아갔으며 논리적 추론들은 그 뒤에 따라올 뿐입니다. 따라서 두긴과는 일반적인 의미의 학술토론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그를 하나의 인류학적, 사회적 현상 자체로 두고 분석해야 합니다. 그가 행하고 있는 것은 연구가 아니라 의미의 구축입니다. 그의 생각에 대한 반박을 하고자 한다면 글을 통해서는 할 수 없습니다. 대신 사람들에게 두긴의 이러한 생각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두긴의 주장이 도대체 어떤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 두긴의 생각이 당신들의 일상생활적 실천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는지를 사고하도록 해야합니다. 그리고 두긴의 발언을 이런 생각들 위에 위치시켜야 합니다.
W: 시작부터 선생님께서는 ‘의미’를 말씀하셨었는데요, 저는 이 의미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이전부터 저희가 계속해서 말해왔던 중국사회, 특히 청년층들이 어떻게 의미를 찾고, 의미를 만들어내는지입니다. 다른 하나는 방금 말씀하신 집단적 의미입니다.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세대 청년들의 의미구성을 비롯해 중국 여론에서의 집단적 의미가 점점 더 우세해지고 있습니다. 집단적 의미는 중앙의 권력과 그 주위의 각종 이데올로기적 기구를 통해 새로운 세대에게 익숙한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의 파편화된 사회 속으로 점점 스며들었습니다. 이제는 과거처럼 시끄러운 선전방식이 아니라 서서히 하층으로 침투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중의 의미(큰 의미와 작은 의미) 사이의 긴장을 느끼게 되었고,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한 채 수수께끼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막 대화를 시작할 때도 아주 일상적인 일화를 묘사하셨었는데요,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만난 이웃의 말, “미국을 믿을 수 없지만 러시아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오늘날 중국의 맥락에 놓아서 생각해 보면 많은 중국 청년들도 이와 같은 문제에 자주 직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이 국가는 믿을 수 없으며 저 국가도 믿을 수 없다. 혹은 이 매체는 믿을 수 없으며 저 매체도 믿을 수 없다, 이 선생은 믿을 수 없으며 저 선생도 의심스러워 같은 문제말입니다. 심지어 친구조차도 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수많은 의미의 부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먼 곳에서 일어난 이 전쟁과 일상생활에서의 실천을 연관 지으셨는데요, 그렇다면 이 문제가 우리의 오늘날 일상생활에 들어왔을 때, 세상에 이러한 격변이 발생했다는 것을 감지했을 때, 구체적으로 개인의 의미구성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두긴의 이론은 하나의 신념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공통의 이상도 하나의 신념이겠습니다만, 그렇다면 오늘날은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요? 혹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신념이 필요합니까?
X: 저는 의미의 구성방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쟁을 볼 때는 반드시 푸틴의 ‘의미구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최소한 러시아 사회의 의미구성을 이해해야 하죠. 또 다른 문제는, 지금과 같은 격변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자신의 의미구성과 마주해야 하는가의 문제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앞서 말한 개체의 의미구성과 집단의 이데올로기 및 정서를 어떻게 봐야 하는 점입니다. 저는 최근 SNS에서 일어나고 있는 논쟁들을 보면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중국 내부의 상황을 좀 알고 싶어서 중학교 동창들의 모멘트[6]를 봤습니다. 본래 우리 원저우 사람들은 장사를 하기 때문에 사회성이 매우 좋습니다.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모멘트에 있는 말들은 ‘단교를 해야 한다’와 같이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더군요. 그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이데올로기적 차이보다는 감정적 충돌이었습니다. 만약 이데올로기적 차이였다면 토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감정 간의 충돌이라면 서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정은 이데올로기적 이론보다는 의미 그 자체와 연관됩니다. 좋고 나쁨, 기쁨과 언짢음, 통쾌함과 불편함 같이 직관적인 반응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 감정적인 의미가 어떻게 구성되느냐 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믿는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방향감을 잃는다거나 실의에 빠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사회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모든 일들에 대해 일정한 의심이나 거리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고 자신과는 전혀 다른 타인의 원칙을 발견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지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주장과 모습들에 대해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동시에 우리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는 의미의 모습(图景)을 형성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자신의 물질적 삶의 일상적 실천에 대한 이해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는 그리 직관적이거나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고, 이 일을 하면서 왜 어떤 때는 기쁘지만 어떤 때는 그렇지 않은지, 월급은 얼마이며 전체적인 업무를 어떻게 배치하는지, 당신은 어디에 사는지, 그리고 그 집은 누가 지은 것이며 어떤 건축 자체가 사용되었는지, 돈을 얼마가 들었는지 등 일상의 것들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한 사람 개인으로서의 자신의 불안이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기쁨이나 노여움, 슬픔이나 즐거움(喜怒哀樂)의 사회적 기원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겠죠. 그냥 기본적인 이해가 있으면 됩니다. 이를 가지고 논문을 쓴다거나 체계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식하고 있기만 하면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사건들이나 서사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답을 얻을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다른 견해를 만났을 때도 여기에 동의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왜 그런지, 없다면 왜 동의할 수 없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를 기본적으로 더 명확하게 알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문제는 SNS에서 매우 다양한 주장들을 보고 여기에 동의할지 동의하지 않을지에 대한 결정이 대부분 막연한 감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왜 어떤 설명에 대해 동의하는지/혹은 동의하지 않는지, 왜 러시아가 정의를 수호하고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지를 제대로 알 수도 없고 (심지어) 자신 스스로에게도 설명할 수 없어요. 여기에 대해 근거를 가지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적으며 러시아가 정의를 수호한다는 입장에 자신을 투영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혹은 반대편 입장에 자신을 투영해 러시아가 야만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SNS에서 우크라이나를 비하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광대라 칭하고 우크라이나를 ‘유럽의 자궁’[7]이라며 조롱하는데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편 전쟁을 떠올려 본다면 중국은 외부 세력이 침입한 이 사건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종의 감정적인 측면에 크게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이러한 감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날은 그 기준이 매우 다양해 뭘 따라야 할지 어렵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이 문제가 크게 심각하지 않다고 봅니다. 다양하다고 느낀다면 다양함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일종의 투영입니다. 별다른 고민 없이 절대적인 진술 속에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면 이내 일종의 집착이 되고 거대한 충동이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을 반드시 설득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고, 그 사람은 누군가에게 속았기 때문이라 생각해 남을 설득하는 것이 남을 살리는 것이라 여기게 되죠. 두긴이 그렇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속고, 괴롭힘 당하고, 억압을 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 전쟁을 우크라이나 해방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물질적인 생활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단순한 물질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물질적 생활에 대해 관찰하고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부근(附近)을 강조합니다. 부근을 다시 살펴보고 부근을 발견하는 것은 의미구축에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허무맹랑한 거대 서사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반둥 회의의 평화 5원칙과 같은 기본원칙들은 비교적 추상적일지언정 문명론이나 야성론보다는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으며 이와 같은 원칙들은 보호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중국의 독자들이 두긴을 보며 의미구조의 문제를 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1] "평평하게 누워있기"를 뜻하는 중국어이며 "열심히 노동을 해도 대가가 없는 중국 사회의 노동 문화에서는 최선을 다해 눕는 게 현명하다."라는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삶이 나아질 희망이 없자 자포자기하여 경제활동 참여를 거부하는 이들을 탕핑족이라 부른다.
[2] 내권은 본래 '한 사회나 조직이 급진적인 발전이나 점진적인 성장 없이 행하는 단순한 자기반복'을 의미하는 인류학 용어이다. 하지만 2020년 중국에서는 극심한 경쟁의 격화와 과로 사회에 내몰린 사람들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되며 유행하였다.
[3] 전쟁 등 갈등 상황이 마무리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이득을 뜻하는 용어. 조지 H.W. 부시와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는 1988-1991년 소련의 해체에 비추어 국방 지출 감소의 경제적 이점을 설명한 적이 있다.
[4] 중화인민공화국 전 국가부주석(1983-1988), 몽골족이다.
[5] 평화 5원칙은 다음과 같다. 1. 영토·주권의 상호존중, 2. 상호불가침, 3. 내정불간섭, 4. 평등과 호혜의 원칙, 5. 평화적 공존.
[6] 위챗(Wechat)의 소셜 서비스 중 하나. 한국의 ‘카카오스토리’와 가장 비슷하다.
[7] 우크라이나는 대리모 산업이 합법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범 이후 키이우의 한 아파트 지하에 대리모들이 출산한 신생아들이 누워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 사진을 두고 중국의 웨이보에서는 우크라이나의 대리모 산업을 비꼬며 '유럽의 자궁'이라는 비하적 표현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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