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14. 무망(䷘无妄)과 대축(䷙大畜)
- 나는 나로 살고 싶다. 나는 나를 넘어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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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망과 대축의 이야기는 앞에 있는 박괘(剝卦)의 석과불식(碩果不食), 복괘(復卦)의 돈복(敦復)에서 시작합니다.
지금 세상은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온 마음을 다해 산처럼 높이 쌓았던 경제적 힘과 문화적 가치, 사회적 품격이 어느 날 아침 사기꾼들이 집권하면서 사회의 공공 가치를 조직적으로 허물고 약탈합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당한 권력이기에 그들의 약탈을 저지할 명분을 아무도 가지지 못합니다. 속절없이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 다시 선거를 한다고 해도 새로운 집권자도 형태만 다를 뿐 약탈 현상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일한 희망은 우리 안에 잃어버려선 안 될 최소한의 가치를 지켜내는 일입니다.
석과불식(碩果不食)에 담긴 마음입니다.
이 씨앗을 지켜낸 복괘(復卦)는 자기 안에서 깊은 성찰을 하게 됩니다.
돈복(敦復)이 이루어낸 일은 그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의식의 중심을 잡는 일입니다. (敦復无悔 中以自考也.)
무망과 대축에는 석과불식의 잃어버릴 수 없는 삶의 가치와 돈복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습니다.
무망은 천뢰무망(天雷无妄)입니다.
하늘(天)의 따뜻한 기운과 겨울을 이겨낸 씨 과일 석과(碩果)의 강한 움직임(雷)이 만납니다.
하늘과 땅에서 동시에 일어나서 내 안에서 역동하는 이 힘은 하늘의 선물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제 나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내 삶의 가치를 세상의 잣대로 비교하면서 숨기고 빼앗기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발맞추어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무망(无妄)은 무망(無望)의 사람입니다.
그가 그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이유는 세상에 대한 기대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단지 자기 안에서 솟아나는 그 삶의 의지를 살아내고 자신이 받은 선물을 나누고 싶은 것 뿐입니다.
박괘의 세상은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박괘의 세상은 그렇게 굴러가다 자신과 세상을 파괴하고 자멸하게 됩니다.
안타깝지만 무너지는 것을 다시 세울 수 없습니다.
무망(无妄)이 무망(無望)의 삶을 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간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가 일군 텃밭의 채소를 함께 먹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세상의 슬픔을 나누지 않는 사람, 자기만 아는 사람이라는 비난과 이런 저런 오해와 모함에 시달리게 됩니다.
왜냐면 보통 사람들은 무망(无妄)처럼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일과 나쁜 일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옵니다.
기대하는 것이 없는 무망(无妄)은 그런 것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습니다.
사실이 아닌 오해와 모함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됩니다. (无妄之藥)
문제는 시대적 조건입니다.
무망은 자기 안의 북소리에 발맞추어 걷는 사람이어서 정지 신호를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거나, 무망(无妄) 안의 양심이 깊이 움직이는데 폭력적인 권력을 만나게 되면 대부분의 무망(无妄)은 살아 남을 수 없거나 몸과 정신이 무참하게 짓밟힙니다. (无妄之行 窮之災也)
대축은 무망보다 조금 더 지혜롭습니다.
그는 무망의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지켜봤습니다.
무망은 순수하지만 자기를 벗어나서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지는 못했습니다.
그의 열정은 아름답고 동시에 위험합니다.
대축은 내가 생각하는 옳고 그름이라는 과제를 조금 더 깊이 바라봅니다.
관점에 따라 옳고 그름의 기준, 정의의 기준은 달라집니다.
그는 수용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기준을 타인에게 갖다 대지 않습니다.
대축은 대정(大正)의 사람, 수용하는 사람, 자기를 넘어서는 사람입니다.
이게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이루어졌겠어요.
오랜 시간이 걸린 일이고 고통을 통해 몸에 쌓아 올린 지혜입니다.
그는 세상에는 옳고 그름 너머의 어떤 세계, 자기 생각과 진영에 갇히지 않고도 모두를 품어 안을 수 있는 어떤 의식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 곳을 향해 올라갑니다. (上 合志也)
그 과정에서 대축은 자기를 보게 됩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지나친 정의감은 마치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童牛)처럼 세상을 마구 찔러대고 있었습니다. 내 안에 잠재된 폭력성은 기분 나쁜 상대를 만나면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가는 멧돼지(豶豕之牙) 같습니다.
대축의 힘은 내 안의 폭력성을 다루고 완화시키고 필요하면 제거해 내는 자기 조절 능력에서 나오게 됩니다.
대축의 지혜는 결국 다양한 가치와 가능성을 수용한 새로운 길을 열게 됩니다.
그 길의 이름은 ‘천지구(天之衢)’입니다.
구(衢)는 사방으로 뚫린 넓은 길입니다.
하늘 위에 사방으로 뚫린 길이 열리게 됩니다.
이 길은 두 개의 극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산뢰이(山雷頤)이고 또 하나는 택풍대과(澤風大過)입니다.
이 두 길은 다음 공부에서 읽게 됩니다.
25. ☰☳ 无妄
无妄 元亨 利貞 其匪正 有眚 不利有攸往.
무망 원형 이정 기비정 유생 불리유유왕
진실무망(眞實无妄)한 삶의 아름다움.
무망의 삶을 따르지 않으면 화(禍)를 부르게 된다.
나는 내 안에 있는 나의 길을 따라 걷겠다.
彖曰 无妄 剛自外來而爲主於內. 動而健 剛中而應 大亨以正 天之命也.
단왈 무망 강자외래이위주어내. 동이건 강중이응 대형이정 천지명야.
其匪正有眚不利有攸往 无妄之往 何之矣. 天命不祐 行矣哉.
기비정유생불리유유왕 무망지왕 하지의. 천명불우 행의재.
무망은 하늘(天)의 강(剛)한 기운이 내려와서 내 안의 주인이 되어 힘차게 움직이는(雷/動) 마음이다. 무망의 5번은 2번과 호응한다. 무망의 아름다움과 바름은 하늘의 선물이다.
하늘의 마음인 무망(无妄)의 길을 따르지 않고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하늘이 돕지 않고 선물을 주지 않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象曰 天下雷行 物與无妄 先王以 茂對時 育萬物.
상왈 천하뇌행 물여무망 선왕이 무대시 육만물
하늘에서 내려온 기운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세상 만물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다. 때와 절기에 맞게 세상 만물을 기르면 모든 존재는 자기를 실현한다.
1.
初九 无妄 往 吉.
초구 무망 왕 길
象曰 无妄之往 得志也.
상왈 무망지왕 득지야.
나는 나로 살고 싶다.
2.
六二 不耕 穫 不菑 畬 則利有攸往.
육이 불경 획 불치 여 즉리유유왕
象曰 不耕穫 未富也.(無望)
상왈 불경확 미부야.
하늘이 내 마음을 움직여 하는 일들은 밭을 갈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자라 수확하는 것이 있고, 개간하지 않아도 땅이 기름지게 된다. 나는 기대하는 것이 없고 내 안에 있는 것이 실현되기만 하면 된다.
3.
六三 无妄之災 或檕之牛 行人之得 邑人之災.
육삼 무망지재 혹계지우 행인지득 읍인지재.
象曰 行人得牛 邑人災也.
상왈 행인득우 읍인재야.
무망지재(无妄之災), 내가 나로 사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렵나!
예를 들어 묶어 놓은 소를 누가 끌고 갔는데 마을 사람 모두가 의심받는 것처럼, 내가 나로 사는 것은 늘 비난받고 의심받고 조롱당한다.
4.
九四 可貞 无咎.
구사 가정 무구.
象曰 可貞无咎 固有之也.
상왈 가정무구 고유지야.
비난받고 조롱당했지만 나는 나를 지켜냈다.
5.
九五 无妄之疾 勿藥 有喜.
구오 무망지질 물약 유희.
象曰 无妄之藥 不可試也.
상왈 무망지약 불가시야.
무망의 삶을 살면서 나는 아팠다.
그러나, 이런 병은 약을 먹어서 낫는 병이 아니다.
내 안에서 자라는 치유의 힘이 무망지약(无妄之藥)이다. (勿藥自效)
6.
上九 无妄 行 有眚 无攸利.
상구 무망 행 유생 무유리.
象曰 无妄之行 窮之災也.
상왈 무망지행 궁지재야.
나는 나로 살았지만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 서 있다.
26. ☶☰ 大畜
大畜 利貞 不家食 吉 利涉大川.
대축 이정 불가식 길 이섭대천.
옳고 그름을 나누지 않고 세상의 지혜를 모으겠다.
나는 집에서 밥을 먹지 않는다.
큰 강을 건너 저 너머의 세계로 간다.
彖曰 大畜 剛健 篤實 輝光 日新其德. 剛上而尙賢 能止健 大正也. 不家食吉 養賢也.
단왈 대축 강건 독실 휘광 일신기덕. 강상이상현 능지건 대정야. 불가식길 양현야.
利涉大川 應乎天也.
이섭대천 응호천야.
대축의 마음을 가진 우리는 내면의 힘이 강하고 독실(篤實)하고 밝다. 날마다 새로워진다.
힘차고 밝은 마음을 위에 두고 지혜로운 이들을 존경한다. 우리는 지혜를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갈무리하여 우리 안에 모아둘 수 있다. 대축의 다른 이름은 대정(大正)이다. 대정(大正)은 옳고(正) 그름(不正)을 통합한 마음이다. 이런 대축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기르고, 그들이 자기 과제를 실현하게 하는 것은 하늘의 마음과 호응하는 일이다.
象曰 天在山中 大畜 君子以 多識前言往行 以畜其德.
상왈 천재산중 대축 군자이 다식전언왕행 이축기덕
산 속에 하늘이 있는 것처럼, 나는 앞서 가신 성현들의 말씀과 삶을 넓게 공부해서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겠다.
1.
初九 有厲 利已.
초구 유려 이이
象曰 有厲利已 不犯災也.
상왈 유려이이 불범재야.
옳고 그름의 원칙이 있다. 넘어서는 건 위험하다. 멈춰야 한다.
2.
九二 輿說輹.
구이 여탈복.
象曰 輿說輹 中 无尤也.
상왈 여탈복 중 무야
힘을 지나치게 주어 수레 바퀴에 묶은 끈이 풀린 것처럼 나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다 관계가 틀어지는 일을 겪고 있다. 이런 일은 바퀴가 빠져 꼼짝 못하는 수레가 된 꼴이지만 괜찮다. 나는 나쁜 의도가 있지 않았고 원칙을 지키고 싶었던 것 뿐이다.
3.
九三 良馬逐 利艱貞 曰閑輿衛 利有攸往.
구삼 양마축 이간정 일한여위 이유유왕
象曰 利有攸往 上 合志也.
상왈 이유유왕 상 합지야.
좋은 말을 타고 달린다. 처음엔 이 말을 잘 다루기가 어려웠다. 매일 매일 말을 타고 수레를 다루는 법을 익혔다. 좋은 말이 경계를 넘어 자유롭게 달리듯이 나는 생각의 틀에 갇히지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의식, 진영 논리를 넘어 내 마음을 높은 뜻과 하나되게 열었다.
4.
六四 童牛之牿 元吉.
육사 동우지곡 원길.
象曰 六四元吉 有喜也.
상왈 육사원길 유희야.
송아지의 뿔에 가로목을 대어 놓았다. 송아지도 우리도 서로 다치지 않게 된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나듯이, 뭔가 조금 알게 되면 여기 저기 설치고 다닐 수 있다. 그걸 제어하고 안전하게 보호할 장치가 필요하다.
5.
六五 豶豕之牙 吉.
육오 분시지아 길.
象曰 六五之吉 有慶也.
상왈 육오지길 유경야.
거세한 돼지의 이빨.
돼지를 순화시키기 위해 거세하듯이, 우리가 가진 진취적이고 밝은 힘도 폭력성을 제거하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한다.
6.
上九 何天之衢 亨.
상육 하천지구 형
象曰 何天之衢 道大行也.
상왈 하천지구 도대행야.
하늘 길이 온 세상으로 막힘없이 이어져 있구나!
우리가 모아들인 진리가 넓게 넓게 퍼져 나가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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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