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고석수의 물의 길
2023년 4월 24일
17. 섬들의 연결
하늘 아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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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솜털 같은 씨앗에서 시작하고 구층 높은
누각도 한 줌 흙에서 올라가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노자 64,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누각도 한 줌 흙에서 올라가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입니다.”
-노자 64,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섬들의 길
물의 길은 섬들이 이어지는 꿈이다. 내겐 고향처럼 느껴지는 일본과 대만을 가는 길이 좀 더 신나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면 좋겠다. 산 속에서 얻은 지혜가 바다 건너 이어지는 네트워킹을 꿈꾼다. 그렇게 지구를 느끼고 싶다. 커다란 배를 타고, 넓은 돛을 펼치며 바다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아나키적인 상상을 한다. 그래서 나는 하루라도 한시라도 빨리 강에서 바다로 나가, 여행을 시작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지난 2주간의 시간이 꿈처럼 다가왔다. 친구들이 일본과 대만에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내가 갈 생각만 했지, 오는 친구들을 맞이할 생각은 못했다. 실은 오랜 시간 이어져 있던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한 워크샵은 다시금 많은 감동을 주었다. 현장에서 함께한 모두가 한 마음을 느꼈다. 이렇게 국경을 넘는다는 감각은 참으로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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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일본 쿠마모토에서 온 피카레. 음악을 통해 숲과 자급자족의 삶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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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 대만 타이난에서 온 능셩싱 공장 멤버들. 도시와 야생을 넘나들며 대만 전역의 산에서 토종 복원 교육을 한다.)
마음의 선을 넘나드는 감각이 여기에 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늘 역할과 책임을 요구받는다. 그만큼 정밀하지만 작고 좁아진다. 책임감과 답답함이 따라온다. 이럴 때 작은 나를 벗어던지는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이 느낌을 천하(天下)라고 부르고 싶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라는 동아시아 한자이지만, 두 글자에는 오래된 상상이 담겨있다.
천하라는 상상
고대의 시간 속에서 주나라의 '천하'라는 개념은 학살과 전쟁의 세계가 전환되는 꿈이었다. 그리고 현대의 중국은 패권 이후의 새로운 단계를 천하체계로 개념화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이 감각은 하늘 아래 모든 생명이 이어진 것이다. 인류학자 샹바오가 강조하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기(想細)', '큰 연관 관계를 생각하기(想開)'에 가까운 것이다.
샹바오는 현대 중국의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그들의 부유하고 불안한 상태를 진단한다. 애국주의나 커다란 무언가에 경도된 상태보다는, 오히려 작고 정밀하게 쌓인 세계가 커다란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가 말하는 일본의 장인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이전에 일본에 있는 한 덴푸라 가게에 갔는데요, 그 가게는 오직 덴푸라 하나만을 팔았습니다. 그곳의 요리사들은 성게를 채취하기 위해 바다에 들어가는 해녀들부터 세토 내해에서 채취한 성게를 도쿄로 운반하는 사람까지, 하나의 성게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동을 포함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요리사는 덴푸라 하나를 만들 때마다 일종의 경외심을 갖고 기름이나 밀가루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생각하며 일련의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듭니다. 이런 의미에서 장인정신은 현재와 자신이 서있는 곳, 세계 속의 나의 위치에 대해 깊게 몰입하고 이해하는 것을 돕습니다."
이른바 '지구의 미래' 라는 표현 아래에는 불길하고 어두운 과학적 수치들이 가득하다. 내게도 한 때 '큰 세계'라는 것은 우울하고 답답한 것들 투성이었다. 뉴스와 신문에서 쏟아지는 것은 분노 또는 좌절이었다. 내게 그런 우울함에 반전을 준 계기는 여행이다. 여행을 사람들을 직접 만나며 미지의 큰 세계가 하나씩 쌓여갔다. 그리고 일본과 대만을 지나 도착한 곳이 항저우의 생태마을이었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이후 내게 세계를 느끼는 큰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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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중국 항저우의 삼생곡三生谷 생태마을)
마을은 고정된 무엇이라기 보다는 움직이는 네트워킹이었다. 영국에서 시작한 세계 생태마을 네트워크 통해 중국의 시골은 지구로 연결되었다. 마을의 구성원들은 한국, 일본, 대만, 태국, 인도, 그리고 유럽의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리고 자신들의 네트워킹을 천하(天下)라고 표현했다. 그것은 500년 된 시골 마을 위에서 다시 먼 미래를 재구성하는 언어였다.
하늘 아래 꿈
내게 세계란 더이상 막연한 느낌이 아니다. 곡성에서 살고 있는 나의 삶의 방식은 하늘 아래 이어져있다. 일본 쿠마모토에 있는 친구들과 대만 타이난에 있는 친구들. 그리고 이전 글에서 함께 언급한 각 지역의 친구들이 같은 하늘 아래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온 지구의 숨결을 함께 느끼며 살아가는 라이프 스타일이 있다. 서로의 방식은 자칫 외롭고 매몰될 수 있다. 하지만 만남은 다시금 새로운 영감을 주고 전환의 기회를 준다. 네트워킹의 힘이 여기 있다.
천하(天下)라는 개념을 통해보니 벌써 나의 꿈은 시작되었다. 섬과 마을은 그곳에 있을지라도, 사람들은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좀 더 자유롭게 여행하는 미래를 꿈꾼다. 비행기가 없더라도, 스스로 바다를 건너고 싶다. 어떤 재난이 다시 오더라도 멈추지 말고 계속해서 움직이길 바란다. 여기에는 하늘을 품은 물의 감각이 있다. 마치 땅을 품은 하늘처럼 넓고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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