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17. 함(咸 ䷞)과 항(恒 ䷟)
- 모두 다 사랑 / 늘 한결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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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주역 하경이 시작됩니다.
하경의 시작은 함괘(咸卦)와 항괘(恒卦)입니다.
함(咸)이라는 말은 ‘모두, 다’라고 읽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존재의 존재 근원이 무엇인지 성찰하는 내용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사랑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다 사랑으로 존재하고, 번성해 갑니다.
그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마음이 함괘(咸卦)입니다.
함괘(咸卦)가 ‘다’라면 항괘(恒卦)는 ‘늘’입니다.
모든 만물 함(咸)과 늘-한결같은 항(恒)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는 천지만물지정(天地萬物之情)이라는 한결같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마음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타인과 관계 맺고 사랑하게 하고,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어 갑니다.
함(咸)은 젊은 청춘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합니다.
남성은 기꺼이 자신의 욕망을 절제(止)하고 연인을 아낍니다.
여성은 사랑의 기쁨(說) 속에서 남성과 서로 교감합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랑은 두 사람의 관계를 넘어 의미있는 사회적 실천으로 나아갑니다.
그들의 사랑으로 세상은 밝아지고 고난과 고통을 극복하고 평화를 이루어 갑니다. (天下和平)
그런데, 이런 아름다운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象曰 山上有澤 咸 君子 以虛受人.
상왈 산상유택 함 군자 이허수인.
산이 자기를 비워 산 위의 연못에 물을 담듯이, 나를 비워 당신을 받아들인다.
산상유택(山上有澤)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누구에게나 백두산 천지가 떠오릅니다.
백두산의 천지 연못이 만들어 지는 과정에 화산 폭발이 있었습니다.
주역 저자는 사랑의 감정을 화산 폭발과 연결해서 생각했습니다.
내 가슴 속의 불길이 화산이 터지듯 터져서 나도 나를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상태에 대한 상상입니다.
화산이 폭발하고 화산재가 날리고, 용암이 쏟아져 나와 산을 불길 속에 휩싸듯이 사랑도 내 삶의 일상을 파괴하는 재앙입니다. 이런 혼란과 사랑의 열병 속에서 가슴 안에 큰 자리 하나가 만들어 집니다.
이렇게 빈 자리에 원숙한 사랑의 감정이 자리 잡는 과정을 주역 저자는 ‘이허수인(以虛受人)’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간 의식 진화의 여러 길이 있는데, 사랑의 열병을 앓아 가슴이 뛰고 아파서 찢어질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마음이 넓어지고 의식이 진화하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성장 경험입니다.
그렇게 사랑해서 당신을 품에 안으면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습니다.
항(恒)은 함(咸)을 통해 넓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삶의 희노애락을 다루는 마음의 폭이 넓습니다.
항(恒)이라는 글자는 ‘마음(忄)’에 걸치다 하는 뜻의 ‘긍(亘)’이 이어져 있습니다.
해가 동쪽 땅 위로 떠 올라서 정오에 높이 떴다가 서쪽으로 다시 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이렇게 해가 매일 매일 뜨고 지듯이 그렇게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항(恒)입니다.
한결같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해가 매일 매일 뜨고 지고 하지만 그 안에는 시간과 계절마다 늘 변화가 있습니다.
그 변화를 수용하고 견디는 마음의 폭이 넓고 한결같은 것이 항(恒)의 마음입니다.
항(恒)의 이런 한결같음은 어느 날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그는 함(咸)의 가슴이 찢어지는 감정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오랜 시간 감정을 바라보고 자기 감정을 인정하는 연습이 그를 늘 한결같은 사람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주역 상경은 건곤감리(乾坤坎離 ☰☷☵☲)라는 네 개의 괘가 중심입니다.
건곤감리(乾坤坎離 ☰☷☵☲)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며 질서가 잡혀 있습니다.
주역 하경은 8괘에서 건곤감리(乾坤坎離)에서 빠진 태진손간(兌辰巽艮/澤雷風山 ☱☳☴☶) 네 개의 괘가 중심입니다. 이 네 개의 조합에 따라 여러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진손간(兌辰巽艮 ☱☳☴☶)은 음과 양이 아래와 위 한쪽으로 치우쳐 있는 무질서한 모습입니다.
질서가 잡힌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상경은 우주의 질서를 상징하고, 무질서한 태진손간(兌辰巽艮)의 하경은 인간 삶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상징합니다.
그 역동성의 첫 시작이 함(咸)과 항(恒)의 사랑입니다.
가슴 뛰는 함(咸)에서 한결같은 항(恒)까지 이어지는 이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감정의 역동이 일어나는 지 모릅니다.
주역 상경은 건곤(乾坤)에서 시작합니다.
하늘과 땅의 마음입니다.
하늘처럼 맑게, 땅처럼 후덕하게 이 땅에서 살아가면 삶은 의미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건곤감리(乾坤坎離)의 질서라는 개념으로 세상을 해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불안정하고 불확실합니다.
그런 불확실성을 중심으로 인간과 세계를 해석해야 합니다.
세계를 해석하기도 쉽지 않고 인간 삶의 의미를 찾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주역 하경은 함(咸)과 항(恒)의 사랑에서부터 시작하자고 합니다.
31. ☱☶ 咸
咸 亨 利 貞 取女 吉.함 형 이 정 취녀 길
세상 모든 것은 사랑하고 공감한다. 연인을 만난다.
彖曰 咸 感也.
단왈 함 감야.
함은 공감하는 마음이다.
柔上而剛下 二氣感應以相興 止而說 男下女. 是以亨利貞取女吉也.
유상이강하 이기감응이상여 지이열 남하녀. 시이형리정취녀길야.
天地感而萬物化生 聖人感人心而天下和平. 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천지감이 만물화생 성인감인심이천하화평. 관기소감이천지만물지정 가견의.
택산함(澤山咸). 부드러운 음의 연못(澤)이 위에 있고, 강한 양의 산(山)이 아래에 있다.
청춘 남녀의 두 기운이 더불어 함께 하며 감응한다. 청년 남성의 산은 자기를 절제해서 멈추어 설 줄 알고, 젊은 처녀인 연못은 사랑의 기쁨을 누린다. 남성이 여성의 아래에 자리 잡는다. 그래서 그들은 연인이 될 수 있다.
하늘과 땅이 감응하여 만물이 생겨나듯이 성인은 세상 사람들과 공감하여 평화를 이룬다.
서로 감응하고 공감하는 것을 보니 천지만물 안에 깃든 사랑을 볼 수 있구나!
象曰 山上有澤 咸 君子 以虛受人.
상왈 산상유택 함 군자 이허수인.
산이 자기를 비워 산 위의 연못에 물을 담듯이, 나를 비워 당신을 받아들인다.
1.
初六 咸其拇.
초육 함기무.
象曰 咸其拇 志在外也.
상왈 함기무 지재외야.
엄지 발가락으로 느낀다.
마음이 멀리 있는 당신에게 간다.
2.
六二 咸其腓 凶 居 吉.
육이 함기비 흉 거 길.
象曰 雖凶居吉 順 不害也.
상왈 수흉거길 순 불해야.
장딴지가 움직인다. 당신을 따라가고 싶다. 멈춰라. 정숙해야 한다.
3.
九三 咸其股 執其隨 往 吝.
구삼 함기고 집기수 왕 인.
象曰 咸其股 亦不處也 志在隨人 所執下也.
상왈 함기고 역불처야 지재수인 소집하야
허벅지로 느낀다. 가만있지 못하고 감정을 따라가서 당신을 잡아봤지만 내가 잡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낮은 수준의 욕망을 만족한 것 뿐이다.
4.
九四 貞 吉 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구사 정 길 회망 동동왕래 붕종이사.
象曰 貞吉悔亡 未感害也 憧憧往來 未光大也.
상왈 정길회망 미감해야 동동왕래 미광대야.
나는 당신을 잡거나 소유할 수 없다. 사랑은 내 생각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가 가진 사랑의 빛을 다 보일 수 없어 오랫동안 우리는 마음을 설레며 만나야 했다.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서로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5.
九五 咸其脢 无悔.
구오 감기매 무회.
象曰 咸其脢 志(在)末也.
상왈 감기매 지말야.
등으로 느낀다. 온 몸으로 있는 그대로 당신을 받아들인다.
6.
上六 咸其輔頰舌.
상육 함기보협설
象曰 咸其輔頰舌 滕口說也.
상왈 함기보협설 등구설야.
광대뼈, 빰, 혀로 느낀다. 함부로 말한다. 용서하고 용납하지 않는다.
32. ☳☴ 恒
恒 亨 无咎 利貞 利有攸往.
항 형 무구 이정 이유유왕.
늘-한결같이. 나는 하루 하루를 영원한 하루, 오-늘로 산다.
彖曰 恒 久也.
단왈 항 구야.
항은 늘 한결같다.
剛上而柔下 雷風相與 巽而動 剛柔皆應 恒.
강상이유하 뇌풍상여 손이동 강유개응 항.
恒亨无咎利貞 久於其道也. 天地之道 恒久而不已也. 利有攸往 終則有始也.
항형무구이정 구어기도야. 천지지도 항구이불이야. 이유유왕 종즉유시야.
日月得天而能久照 四時變化而能久成 聖人久於其道而天下化成.
일월득천이능구조 사시변화이능구성 성인구어기도이천하화성
觀其所恒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관기소항이천하만물지정 가견의.
뇌풍항(雷風恒), 강한 양의 우레(雷)가 위에 있고, 부드러운 음의 바람(風)이 아래에 있다.
우레와 바람은 함께 일어나서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강하게 움직인다. 강과 유, 음과 양이 서로를 받아들인다. 항이 늘-한결같은 이유이다.
항은 마침과 시작이 함께 있어서,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해와 달이 하늘에 있어 세상을 밝게 비추고, 사계절의 변화는 만물이 끊임없이 자라나게 한다. 우리가 이런 항의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면 세상은 평화로워진다.
천지만물은 늘 한결같이 서로 사랑하는구나!
象曰 雷風 恒 君子以 立不易方.
상왈 뇌풍 항 군자이 입불역방.
번개치고 바람 불더라도 나는 지금 내가 가진 이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
1.
初六 浚恒 貞 凶 无攸利.
초육 준항 정 길 무유리
象曰 浚恒之凶 始 求深也.
상왈 준항지흉 시 구심야.
준항(浚恒)이라는 깊은 마음은 처음부터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만들어 가야 한다.
2.
九二 悔亡.
구이 회망.
象曰 九二悔亡 能久中也.
상왈 구이회망 능구중야.
우리는 오랫동안 늘 한결 같았다.
3.
九三 不恒其德 或承之羞 貞 吝.
구삼 불항기덕 혹승지수 정 길.
象曰 不恒其德 无所容也.
상왈 불항기덕 무소용야.
한결같지 않고 변덕스러우면 수치스러운 것이다. 한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데 누가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겠나!
4.
九四 田无禽.
구사 전무금
象曰 久非其位 安得禽也.
상왈 구비기위 안득금야.
사냥을 나가서 잡아오는 것이 없다. 사냥을 잘 하려면 동물들이 다니는 길목을 찾아서 오래 기다려야 하는데 나는 길목을 찾지도 못했고, 오래 기다리지도 못했다. 그러니, 어떻게 잡을 수 있겠나?
5.
六五 恒其德 貞 婦人 吉 夫子 凶.
육오 항기덕 정 부인 길 부자 흉
象曰 婦人 貞吉 從一而終也 夫子 制義 從婦 凶也.
상왈 부인 정길 종일이종야 부자 제의 종부 흉야.
우리는 한결같이 서로 사랑했다.
이런 우리 사랑은 아내와 남편에 대해 다른 평가가 내려졌다.
아내는 한 마음을 한결같이 지켜간 것이라고 평가받는데, 남편은 아내 뒤꽁무니만 따라 다니고 사회적 정의를 위해 마음 쓰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았다.
6.
上六 振恒 凶.
상육 진항 흉
象曰 振恒在上 大无功也.
상왈 진항재상 대무공야.
마음이 흔들린다. 그 동안 해왔던 일들이 헛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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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