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10월 26일

18. 둔(遯 ䷠)과 대장(大壯䷡)

- 미워하지도 않고 무례하지도 않은 힘을 쓰지 않는 힘






둔(遯)과 대장(大壯)의 이야기는 항괘(恒卦) 6번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함(咸)과 항(恒)은 사랑의 감정을 쓰는 사람입니다.
항(恒)은 함(咸)만큼 뜨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항(恒)의 오랜 사랑은 상대를 위해 마음을 깊이 써야 합니다. 무리가 오게 되어 있고, 무엇보다 마음의 흔들림이 멈추지 않습니다.

6.
上六 振恒 凶. 象曰 振恒在上 大无功也.
상육 진항 흉  상왈 진항재상 대무공야

마음이 흔들린다. 그 동안 해왔던 일들이 헛일인 것 같다.

사랑에 대한 회의, 무엇보다 내가 하는 사랑의 마음이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지금은 매달리고 잡을 시간이 아니라 상대가 그럴 수 밖에 없는 조건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물러서야 할 둔괘(遯卦)의 시간입니다.

둔괘(遯卦)에는 소인(小人)과 군자(君子) 두 사람이 나옵니다.
군자는 소인을 미워하지 않고 멀리하고 존재를 존중합니다. (遠小人 不惡而嚴)
그가 지금 보이는 소인의 삶, 나만 생각하고 내 이익을 중심으로 관계를 설정하고, 이해 관계에 반하면 공격적으로 대하는 모습은 단순히 그가 혼자 다 책임질 일은 아닙니다.
소인의 삶에 얼키고 설켜 있는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힘을 둔(遯)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소인의 삶,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이 사회의 문화적 현상으로 서서히 침투하고 확장되는 추세라면 군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柔浸而長也)
이런 무기력을 받아들일 수 없는 둔미(遯尾)는 뭐라도 해보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더 위험해질 뿐입니다.
하늘이 그를 도우셔서 황소 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그를 묶습니다.
묶어서라도 그를 멈춰 세웁니다.
한발도 더 나갈 수 없는 조건은 하늘이 그를 묶어서 보호하는 겁니다.
지금은 사람도 물러나고 하늘도 물러나는 시간입니다.
그 물러남의 시간을 살아가는 지혜가 호둔(好遯), 가둔(嘉遯), 비둔(肥遯)입니다.

호둔(好遯)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가둔(嘉遯)은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다 할 때 까지만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는 자기 역할이 다한 뒤에 그 자리에 머물지 않습니다.(功成以不居)
비둔(肥遯)은 가능한 갈등을 줄이고 물러남의 시간에 대비한 준비를 마쳐둡니다.
둔괘(遯卦)가 만난 자기만 아는 소인은 무례한 사람입니다.
천하유산(天下有山) 이라는 상징은 소인인 빼족빼족한 산이 군자인 하늘을 찌르듯이 공격하고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입니다.
둔(遯)은 그 무례함을 다 받아들이고 대응하지 않고 물러납니다.

둔괘(遯卦)의 시간이 지나면 대장(大壯)의 시간이 돌아옵니다.
자기를 꽁꽁 묶어 기다리고 물러난 그 시간 동안 둔(遯)은 훨씬 더 강한 사람 대장(大壯)이 되어 돌아옵니다. 대장(大壯)이 가진 힘은 힘을 쓰지 않는 힘입니다.
그는 힘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지 늘 성찰합니다.(非禮弗履)
그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랑이 가득차고, 정의가 물결치는 사회를 위해 힘을 씁니다. (正大而天地之情) 슈퍼맨 같은 정의로운 사람입니다.
슈퍼맨은 영화의 캐릭터이지만 동시에 인류가 오랫동안 그려온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의 의식 원형이기도 합니다.

대장(大壯)은 슈퍼맨의 상징을 ‘뿔달린 숫양’을 사용합니다.
대장(大壯)의 괘상(卦象)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뿔달린 숫양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
영화의 슈퍼맨이 슈퍼맨 팬츠와 망토를 걸치고 나타나듯이, 대장(大壯)은 머리에 뿔 달린 숫양 모자를 쓰고 정의를 위해 어디든 나타납니다.
그는 엉뚱한 곳에 힘을 쓰는 엉터리이기도 하고, 대단히 예의바른 신사이기도 하고, 뛰어난 조직 기획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는 힘을 다양하게 쓸 줄 압니다.
대장(大壯) 슈퍼맨의 압권은 5번입니다. 진정한 힘인 ‘힘에 대한 욕망이 사라진 힘’입니다.

5.
六五 喪羊于易 无悔. 象曰 喪羊于易 位不當也.
육오 상양우이 무회. 상왈 상양우이 위부당야.

뿔 달린 숫양이 울타리를 넘어 사라지듯이 내 안에서 힘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다.
힘이 필요하지만 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힘과 정의로움의 통합에 대한 오랜 인류의 염원이 대장(大壯)의 영웅을 상상하고, 슈퍼맨을 만들어 냈습니다. 둔괘(遯卦)의 힘을 쓰지 않음이 내장된 대장(大壯)의 힘은 우리 의식 깊은 곳에 있는 밝은 빛을 세상에 드러나게 합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땅위로 떠오르는 밝은 태양, 빛의 이야기 화지진(火地晉)입니다.



33. ☰☶ 遯


遯 亨 小利貞.
둔 형 소리정

지금은 물러서는 게 유리하다.

彖曰 遯亨 遯而亨也. 剛當位而應 與時行也. 小利貞 (柔)浸而長也. 遯之時義 大矣哉.
단왈 둔형 둔이형야. 강당위이응 여시행야.  소리정 (유)침이장야.  둔지시의 대의재.

나는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 적절한 때가 오면 움직일 것이다.
물러서는 것이 좋은 이유는 아래에서부터 음/유/소인(陰/柔/小人)이 조금씩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물러서고 머물러야 할 시간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象曰 天下有山 遯 君子以 遠小人 不惡而嚴.
상왈 천하유산 둔 군자이 원소인 불오이엄.

산이 하늘을 치고 올라와도 하늘은 산보다 높다.
나는 나 하나만 생각하고 나 뿐인 삶을 사는 소인(小人)을 멀리하고 미워하지 않겠다. 그가 그런 삶을 사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물러난다.

1.
初六 遯尾 厲 勿用有攸往.
초육 둔미 려 물용유유왕
象曰 遯尾之厲 不往 何也.
상왈 둔미지려 불왕 하재야.

받아들이고 물러서기 싫어서 계속 맞서다 뒤처졌다. 맨 뒤 자리 꼬리가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위험하지 않다.

2.
六二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육이 집지용황우지혁 막지승탈
象曰 執用黃牛 固志也.
상왈 집용황우 고지야.

황소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벗겨지지 않게 꽁꽁 나를 묶는다.
이렇게 나를 묶은 이유는 끌려가는 마음을 붙잡고 물러서 있는 동안 내가 가진 뜻을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3.
九三 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
구삼 계둔 유질 려 휵신첩 길
象曰 係遯之厲 有疾 憊也 畜臣妾吉 不可大事也.
상왈 계둔지려 유질 비야  휵신첩길 불가대사야.

옳지 않고 위험하기도 해서 물러서야 하는데 얽힌 게 많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아프고 힘들다. 지금은 가까운 사람들과 가족을 돌봐야 한다. 소인을 멀리하고 물러서서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나의 조건에서 어렵다.

4.
九四 好遯 君子吉 小人否.
구사 호둔 군자길 소인비
象曰 君子 好遯 小人 否也.
상왈 군자 호둔 소인 비야.나는 깨끗하게 물러나겠다. 내가 더 좋아하는 일이 있다. 자기 이익을 따라가는 소인은 이렇게 할 수 없다.

5.
九五 嘉遯 貞 吉.
구오 가둔 정 길
象曰 嘉遯貞吉 以正志也.
상왈 가둔정길 이정지야.

나는 물러날 때가 되어 물러날 수 있어 기쁘다. 나는 이 자리에 머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있었고 그 의무를 다했다.

6.
上九 肥遯 无不利.
상구 비둔 무불리
象曰 肥遯无不利 无所疑也.
상왈 비둔무불리 무소의야.

얽히고 맺힌 것 없이 여유롭고 편하게 물러난다.



34. ☳☰ 大壯


大壯 利貞.
대장 이정

내가 가진 힘이 강하다.

彖曰 大壯 大者壯也 剛以動故 壯. 大壯利貞 大者正也 正大而天地之情 可見矣.
단왈 대장 대자장야. 강이동고 장. 대장이정 대자정야. 정대이천지지정 가견의.

내가 가진 힘은 강하고 역동적이다. 이런 힘은 정의롭게 써야 한다.
힘과 정의로움을 함께 쓸 수 있을 때,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한 사랑을 볼 수 있다네.

象曰 雷在天上 大壯 君子以 非禮弗履.
상왈 뇌재천상 대장 군자이 비례불리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처럼 강한 힘을 가졌다.
나는 이 힘을 함부로 쓰지 않겠다. 상대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겠다.

1.
初九 壯于趾 征 凶 有孚.
초구 장우지 정 흉 유부
象曰 壯于趾 其孚窮也.
상왈 장우지 기부궁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발의 힘만 믿고 앞으로 나아갔다. 왜 이렇게 힘을 쓰는지에 대해 논리가 있지만 궁색하다.

2.
九二 貞 吉.
구이 정 길
象曰 九二貞吉 以也.
상왈 구이정길 이중야.

나는 힘을 가졌지만 동시에 힘을 언제 써야 할지도 안다. 힘과 예(禮)의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다.

3.
九三 小人用壯 君子用罔 貞 厲 羝羊觸藩 羸其角.
구삼 소인용장 군자용망 정 려 저양촉번 리기각
象曰 小人用壯 君子罔也.
상왈 소인용장 군자망야.

힘을 가지고 그 힘을 힘으로 바로 쓰는 사람과 그 힘으로 그물망 같은 조직과 체계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 숫양이 울타리를 밀다가 뿔이 걸리는 것처럼 힘은 조심스럽게 쓴다고 하더라도 위험하다.

4.
九四 貞 吉 悔亡 藩決不羸 壯于大輿之輹.
구사 정 길 회방 번결불리 장우대여지복
象曰 藩決不羸 尙往也.
상왈 번결불리 상왕야

울타리가 열렸다. 힘으로 울타리를 밀어붙이는 헛수고를 할 필요가 없고 뿔이 걸리는 고통을 겪을 일도 없다. 내가 가진 이 힘은 큰 수레를 움직이는 것처럼 세상을 위해 좋은 일에 쓰고 싶다.

5.
六五 喪羊于易 无悔.
육오 상양우이 무회
象曰 喪羊于易 位不當也.
상왈 상양우이 위부당야.

뿔달린 양이 울타리를 넘어 사라지듯이 내 안에서 힘에 대한 욕망이 사라졌다.|힘이 필요하지만 힘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6.
上六 羝羊觸藩 不能退 不能遂 无攸利 艱則吉.
상육 저양촉번 불능퇴 불능수 무유리 간즉길
象曰 不能退不能遂 不詳也 艱則吉 咎不長也.
상왈 불능퇴불능수 불상야 난즉길 구부장야.

숫양이 울타리를 밀다가 뿔이 걸려서 물러서지도 울타리를 뚫고 나가지도 못하는 것처럼 나는 힘을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문제를 해결할 실력도 없다.
힘을 적절하게 조절하지 못해 고통을 겪지만 경험을 통해 익히고 무모한 힘의 사용을 개선한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