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4월 26일
2. 작은 것들을 위한 시
– 더 작은 네트워크를 위하여
“세계의 평화 No way 거대한 질서 No way 그저 널 지킬 거야 난”
BTS, 작은 것들을 위한 시

Carnival in the garden, Simon Tünde (2022)
내가 있는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대학의 평화학 과정에는 Civil Mission을 위한 UN 평화유지군 시뮬레이션이 포함되어 있다. (UNESCO와 협정을 맺고 The UNESCO Chair for Peace Studies를 운영 중이다.) 매 학기마다 2주 동안 1주 응급 처치 교육 및 미션 브리핑을 하고, 1주 오스트리아 군대에 가서 군과 함께 직접 미션을 수행한다. 1학기부터 3학기 학생들이 현장에서 함께 공부하기 때문에 매번 학생 규모에 따라 테러• 납치• 협상• 분쟁지역 선거 모니터링(과격 사태 방지 및 예방) 등 시뮬레이션의 종류가 달라진다. (물론, 시뮬레이션은 대본이 있고, 군의 지도 하에 따라 운영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트라우마 반응이 아닌 이상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나의 1학기에 우리는 약 40여명의 인원이었다. 3학기 학생들로 구성된 HQ(Head Quarters)는 20명 정도로 거대했다. 2학기 학생들은 Squads(Team) Leader를, 1학기 학생들은 Squads Member를 맡았다. 우리는 총 4개의 스쿼드로, 각 팀에는 리더, 부리더, 멤버 3명이 속해 있었다. 여기서 HQ는 현장본부로 UN본부와 소통을 하며 미션을 운영하는 역할을 한다. Squards는 현장에 투입되는 팀으로 HQ의 지시 하에 협력하여 미션을 수행한다.
사실 1주일의 시뮬레이션은 미션 파악, 미션 브리핑, 필드 분석(인물, 지형, 문화 등), 협상 및 추후 관리 등 여러 가지를 모두 소화하기에 불가능한 일정이다. 따라서 틀을 정해 놓고,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진행을 한다.
첫 학기, 팀원으로서 나의 미션은 팀과 함께 남북으로 나뉘어진 지역에 가서 각 구역의 리더를 만나고, 필요한 것 및 지역 정보를 알아오는 일이었다. 이때는 처음이라 정말 정신이 없었다. 군대 생활과 밀려드는 정보, 반드시 지켜야 할 지역 문화 및 에티켓 등 몸과 머리가 쉴 새 없이 굴려졌다. 오전에 분쟁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대처 방법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시뮬레이션을 위한 훈련을 했다. 나의 첫 학기는 겨울이어서 스노우 슈즈 및 각종 장비 사용법을 익혀야 했다. 그 장비들을 챙겨 산행을 하고, 마지막 3일은 직접 산악지역에 가서 협상을 했다. 중간에 본부가 습격을 당해 야간 대피와 본부 이동을 하는 일도 있었다.
잠은 부족하고, 몸은 힘들고. 영어로 순간순간 대처해야 하는 긴급한 미션 상황은 엄청난 압박을 가져왔다. 그러던 중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 단위로 밥을 먹는 와중에 친구들과 ‘우리는 평화학을 배우러 왔는데…… 평화와 군대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평화학을 하다 보면 기본적으로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와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라는 개념을 배운다. 소극적 평화는 전쟁과 같은 직접적 폭력적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적극적 평화는 더 광범위하게 사회적, 구조적, 문화적 차원에서 간접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인스브루크 대학에서 UN 평화유지군 미션 시뮬레이션을 과정에 넣은 것은 갈등 상황으로 인한 직접적 폭력에 대응하는 방법을 익히고, 평화학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UN 평화유지군이 기존의 군과 다르게 유지될 거라고 생각했다. 수직적 구조의 군대가 시민사회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보고싶었다. Civil Mission은 단순히 군대의 미션이 아닌 시민사회-군대-정부의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미션이었다. (시민사회는 주로 국제 NGO를 의미한다.) 기대가 컸던 건가. 첫 학기 군에서 일주일동안 나는 어떠한 다른 점도 찾을 수 없었다. 수직적 구조와 운영, 개인의 상태와 감정은 고려되지 않았다. HQ와 리더들은 미션 운영을 위해 매일 밤을 새워야 했고 예민해졌다. 스쿼드와 HQ는 무전이 아니고 만나기 힘들었다. 필드에서 소통은 짧아졌고, 한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우리가 내린 결론은 분쟁지역에서 즉각적인 대응을 위해서는 이러한 구조와 운영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긴 토론과 여유는 사치라는 것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미션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두가 빠르고 정확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전쟁과 분쟁으로 인한 폭력 아래서 평화는 너무나 무기력했다.
2학기가 되었다. 인원이 30명으로 줄었다. HQ는 11명, Squads는 1학기와 같이 4개로 구성되었다. HQ가 작아지다 보니 미션의 규모가 약간 줄었다. 팀에서 하는 일은 비슷했다. 우리는 지난 번과 같이 각 지역의 리더를 찾아가고 협상을 했다. 차이가 있다면 스쿼드의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1학기 때 스쿼드는 군 구조에 최적화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학기 우리는 퀴어 액티브 그룹이었다. 리더들이 해야 하는 협상을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고, 매니큐어를 바르고 협상에 나섰다. 미션이 끝나고 돌아오면 군 숙소에서 몰래 가져온 아이팟으로 노래를 틀고 춤을 췄다.
숨통이 틔었다. 분 단위로 움직이는 군에서 시간을 잊을 수 있었다. 수직적구조 아래 개인이 사라진 군대에서 우리 스쿼드는 개개인을 챙겼다. 내가 지켜지면서 미션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멤버의 곁을 지켰고, 폭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멤버는 미션에서 쉬게 했다.
하지만 우리는 예외적이었다. 웃고 떠들었지만 전체가 있을 때 미션에 압박을 느꼈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협상에 나선 친구는 군 리더에게 당장 지우라는 말을 들었고, 테러가 일어났을 때는 리더 역할이 비어 우왕좌왕했다. 즐겁고 힘든 순간이 왔다갔다했다. 질문은 ‘수직적 구조와 직접적 폭력 아래서 평화가 가능한가’로 바뀌었다. 그 질문의 답은 3학기가 끝나고 서야 찾을 수 있었다.
3학기에 나의 동기들은 7명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모두 HQ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이 시작했을 때HQ는 나를 포함 3명이 되었다. 4명이 Red Card를 내고 불참의 의사를 전했다. (Red Card는 자신이 정신적 또는 신체적 어려움이 있을 경우 사용할 수 있다.) 한 친구는 이미 두 학기 동안 경험할 것을 모두 해서 더 이상 자신에게 군대식 시스템을 훈련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HQ를 하고 난 이후 버틸 체력적, 정신적 에너지가 없다고 했다. 이라크에서 온 친구는 트라우마로 계속 힘들어 했기 때문에 HQ까지는 무리라고 말했다. 마지막 친구는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UN과 일한 경험이 많다는 이유로 본인에게 과중하게 책임이 부여되는 것에 항의하며 가기 직전에 역할을 놓았다.
3명뿐인 리더 그룹. 2개의 스쿼드, 2명의 리더와 2명의 부리더, 4명의 멤버. 역대급으로 작은 규모에 군과 교수진이 비상에 걸렸다. 그들은 한 명이라도 빠지면 미션이 진행될 수 없다고 굳은 얼굴로 이야기했다. 군 장교는 각자의 이유로 Red card를 낸 친구들을 ‘이해하지만’, ‘무책임’하다며 우리에게 자신의 역할을 책임질 것을 강조했다. 이 학교에서 내가 처음으로 화를 내던 순간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시뮬레이션을 관둬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교육 과정 중 하나이고,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규모가 작아졌으니 알아서 상황을 짜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어쩌면 내가 이번 학기에 시뮬레이션을 다 끝내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이상 이런 수직적구조에서 나를 갈아 넣을 수 없었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구조는 의미가 없다. 그렇게 해서 지켜지는 평화라면 이건 판을 새로 짜야 한다. 대안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같은 것을 반복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생각이 분명해졌다.
시뮬레이션을 시작하면서 군 장교가 한 얘기에 나는 명확히 의사를 표현했다. 만일 한 번 더 책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이상으로 정신적, 육체적 무리가 가해질 경우 나는 시뮬레이션을 그만두겠다고. 그러자 장교는 그런 마음이라면 지금 그만두고 돌아가라고 했다. 헛웃음이 났다. 무엇을 위한 평화유지군이고 미션인가, 나는 생각했다.
지금 관두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다면 나의 의지로 그만 둘 것임을 밝혔다. 그는 그건 똑같이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니 할 거면 책임지고 역할을 수행해야 함과 그렇지 않을 경우 다른 동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며 그 순간을 마무리했다.
그 뒤로 다른 장교분이 나의 지도를 전담했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수직적 구조의 위에 있는 사람은 지시를 명확하게 잘 내리면 된다는 것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HQ 본부는 지하였다. 창은 보안을 이유로 가려졌다. 그곳에서 이틀 동안 하루에 2시간을 자고 미션 계획을 짰다. 사람이 적어지니 군과 교수진은 계획한 만큼 미션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걱정하는 사람들을 달랬다.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3일째 되는 날,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나는 실질적 평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수직적 구조는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했다. 그 구조 하에서 조직이 유지되고, 미션이 성공하려면 강해지고 커져야 했다. 결국 수직적 구조와 직접적 폭력 아래서 평화는 이름만 남을 뿐 존재하지 않았다. 평화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하더라도 그것은 폭력을 잠시 멈추게 할 뿐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졌다.
단순하고 극한적인 상황은 구조를 더 공고하게 한다.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선한 목적을 향한다 해도 다수가 하나를 향할 때 그 힘은 거대하고, 절대적이며, 무서워진다. 처음 평화학을 시작할 때, 소극적 평화의 정당성을 믿었다. 분쟁지역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일들을 막기 위해서는 군사적 활동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3번째 평화유지군 시뮬레이션이 끝나고 나는 그것이 끝없는 폭력의 고리임을 상기했다. 물론, 분쟁지역에서 보호를 위한 구조활동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그것이 군사적 방식에 의해 또 다른 구조적, 개인적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아야 함을, 개인과 구조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함을 절실히 느낀다. 그것이 내가 작은 우주들의 다중 네트워크, a world of many worlds를 구상하는 플루리버스 디자인에 주목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