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김혜정의 마음놓고 마음챙김

2023년 8월 28일

2.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살면서 남 탓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잘 되면 내 덕이요, 잘못되면 남 탓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통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지 말라셨다. 우리가 고통받는 이유는 모두 우리 안에 있는 탐(욕망), 진(성냄), 치(어리석음) 때문이다. 

위빠사나 명상을 배우기 시작하고 얼마 후 나는 부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의아했다. 보통 명상센터에 수행을 하러 오는 이들을 보면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외부에 귀인을 두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그런 사람들은 명상하러 오지 않는다. 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내부에 귀인을 두는 사고 패턴이 있는 이들이 명상하러 자주 온다. 명상센터에는 마조히스트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을 정도다. 그러나 명상을 지속하면서 나는 자책을 하는 마음의 습관적 경향이 마음을 정화하는데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왜 저런 말씀을 하셨을까? 세상에서 지혜롭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한 양반이 왜 저리도 마음을 억압하는, 마음에 역기능적인 발언을 한 것일까?

모든 말은 마음이 한다. 말의 기저에는 마음이 있다. 마음이 맞아야 말이 통하기 마련이다. 같은 말도 좋은 마음으로 들으면 좋게 들리고, 나쁜 마음으로 들으면 나쁘게 들린다. 부처님이 저 말씀을 했을 때 부처님의 마음은 매우 건조하고 차가웠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중생의 마음은 보통 습하고 따뜻하다. 부처님의 마음과 중생의 마음은 온도와 습도가 다르다. 고통의 원인은 어리석음 때문이라는 말은 가뜩이나 덥고 습해서 무거운 중생심을 더욱 무겁게 만들 여지가 있다. 부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려거든 마음의 온도와 습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

덥고 습한 마음을 양지바른 곳에 곱게 펼쳐서 보송보송해질 때까지 잘 말려라. 자기를 충분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사랑해줘라. 건강한 재료들을 장 봐 와서 자신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라. 요리하기 귀찮다면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사 먹어라. 공원에 가서 아름다운 경치를 질릴 때까지 감상하라.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해라. 날씨가 좋은 날엔 자전거를 타고 나가 얼굴에 부딪히는 시원한 바람을 느껴보라. 마음이 맞는 친구와 전화로 수다를 떨어라. 주말엔 바다로 여행을 떠나보라. 코끝에서 느껴지는 짭조름한 바다의 냄새와 발밑에서 부드럽게 무너지는 모래의 질감을 느껴보라.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거나 판단하지 말라. 무엇이든 좋다. 자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고 존귀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줘라. 자신의 행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을 행복하게 해줘라. 실제로 자기 자신보다 더 귀한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명상은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일이다. 자신을 직시하는 힘은 건조하고 단단한 마음의 기반 위에서 자라난다. 마음이 덥고 무르고 습하다면 아직 자기 자신을 직시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질 것이다. 따라서 진지한 명상 수행을 시작하기에 앞서 덥고 습한 마음을 잘 말려야 한다. 마음이 충분한 사랑을 받고 나면 마음은 점차 보송보송해진다. 통찰력은 이때야 비로소 발현된다. 마음이 습기를 가득 머금고 있어서 무른 상태라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직시하는 일이 상처가 된다. 그러나 마음이 건조하고 단단해진 상태라면, 자신의 어리석음을 발견해도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저 지혜로워질 뿐이다. 만약 본인 마음이 아직 충분히 건조하고 단단하지 않다면 너무 밀어붙이지 말라. 아직 명상을 시작할 준비가 안 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 줘라. 남보다 외모가 못난 것 같다고, 공부를 못한다고, 돈이 없다고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갓난아기를 바라보듯 자신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작고 귀여운 강아지를 대하듯이 자신을 어여삐 여겨라. 이는 비단 자기 자신을 대할 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만약 주변에 철모르고 행동해서 남에게 자꾸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섣불리 그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알려주려 하지 말라. 내가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듯이 그 사람도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가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이다. 통찰력은 충분히 사랑을 받은 마음에서 자라난다. 때가 되면 그는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불교에서는 성스러운 진리로 여긴다. 고통이 인간의 숙명이라니, 이보다 더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이 어디 있으랴! 세상에 추구할 만한 가치를 지닌 영원불멸의 의미 따위는 없다. 세상은 무의미의 축제이다. 밀란 쿤데라의 유명한 책 제목처럼, 존재의 무게는 실로 가볍기 짝이 없고, 가볍디가벼운 존재의 실상을 무거운 중생심으로 바라보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괴롭다. 그러나 물기를 탈탈 털어버려서 가벼워진 마음으로 존재의 덧없는 실상을 바라보면 아무런 상처를 받지 않는다. 그저 지혜로워질 뿐이고, 그저 자유로워질 뿐이다.

실오라기처럼 가벼워진 마음으로 천국에 입성하라. 천국은 마음 안에 있다. 마음 밖에서 천국을 찾아 헤맨다면, 오직 고통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혜정차와 명상을 좋아하는 김혜정입니다. 수행자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제가 행복해지고자 걸어온 수행 여정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싶습니다. 10년차 요가강사이며, 미얀마 쉐우민에서 처음 위빠사나 명상에 입문했습니다. 그 후로는 주로 고엔카의 수행법을 따라 위빠사나 명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