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뉴아메리카 견문

2025년 2월 10일

2. 거대한 체스판 : 마스터와 파운더






(사진 출처: NBC News)

1. 2016 : 미들게임 

FLASH BACK.

시계 태엽을 되돌려 2016년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9년 전 11월의 그날 밤, 미국과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바로 그날 말이다. 리얼리티 TV쇼의 광대가 정말로 세계 최강국의 왕좌를 차지했다. 설마설마 했지만 리얼리 현실이 된 것이다. 그 초현실적인 결과에 충격과 공포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체 미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도대체 민주주의는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미국 전역 중에서도 유독 침통한 지역이 한 곳 있었다. 민주당의 아성인 캘리포니아 하고도, 혁신의 허브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벨리이다. 무거운 침묵이 팔로알토와 샌프란시스코를 밤안개처럼 자욱히 감싸 안았다.    

피터 틸도 그곳에 있었다. 그는 뉴질랜드와 일본 등 세계 곳곳에 저택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에는 LA와 뉴욕, 마이애미에도 집이 있다. 하지만 그 날 밤은 그의 본거지 프레시디오(Presidio)에 머물렀다. 금문교와 샌프란시스코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다. 틸의 집은 책으로 정의될 수 있는 곳이다. 탁자마다 다양한 높이로 다방면의 책들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역사와 정치 방면으로는 양장의 고서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손길이 닿는 곳곳마다 체스에 대한 책들도 널려 있다. 그의 체스 사랑은 원체 유명하다. 어릴 때부터 발군의 실력을 자랑하며 오늘날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넓은 저택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시시때때로 체스 교본을 펼쳐놓고 역대급 명승부 경기를 찬찬히 복기하는 것이다. 즉 전술 시뮬레이션과 전략 게임은 그의 취미이자 일상이고 또 일생이다. 그날 밤이 바로 피터 틸의 일생일대의 승부가 판가름나는 순간이었다.

종종 집에서 파티를 연다. 카페나 레스토랑 같은 공개적인 장소를 꺼리는 편이다. 본인의 근거지에서 내밀하게 사람들을 만나는 쪽을 즐긴다. 각진 턱선과 뚜렷한 이목구비만큼이나 대화 또한 딱딱하고 직설적이다. 단독진입 본론으로 들어가 딱딱딱 떨어지는 논리정연한 대화를 선호한다. 칵테일 파티라고 해서 담소를 나누는 것도 아니다. 날씨나 휴가 같은 주제로 수다 떠는 것은 질색이다. 아니 그런 자리를 몹시 불편해 한다. 이 사람 저 사람 네트워킹을 하기보다는 가장 명석한 사람을 찾아가서 진지하게 토론한다. 물론 그도 똑같은 인간인데 일상에 대한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왜 낯선 사람들을 번갈아 잡담을 하면서 10분씩 낭비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대신 흥미로운 주제를 이야기할 때면 사람을 휘어잡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주제가 정치이다. 이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 가?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안광을 뿜어내며 열정적으로 말을 쏟아낸다. 그의 평생 화두가 실은 기술이나 기업이나 투자가 아니라 정치인 것이다. 기술도 기업도 투자도 어디까지나 궁극의 목적, 정치를 위한 수단이다. 

그날 밤 파티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실리콘벨리에서 트럼프의 당선을 바라는 이들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 충신이라 할 수 있는 소수정예가 그의 집으로 집결했다. 커다란 TV 스크린으로 CNN 방송을 시청했다. 틸은 평소와 달리 가장 앞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서부 시간으로 저녁 9시를 지나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노스캐롤라이나와 오하이오에서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시간과 위스콘신에서도 앞서간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승부처 펜실베니아에서도 엎치락뒤치락 막상막하였다. 트럼프가 미국의 중서부, 러스트벨트를 쓸어버릴 것이라고 했던 틸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았다. 진짜야? 이게 진짜라고? 사람들은 점차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어갔다. 와인을 까고 샴페인을 터트려 글라스 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폭스뉴스로 채널을 돌리자, 폭스는 이미 트럼프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틸과 동료들은 포효했다. 기쁨의 환호성을 내질렀다. 승리의 축배를 높이 들어올렸다. 그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실리콘벨리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엿이나 먹어라! (Fuck the Valley) 짜릿한 밤이었다.   

틸은 동지들과 함께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 사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내 미국을 재건할 기회가 열리고 있었다. 틸이 정권인수팀의 핵심 보직을 맡을 것임이 확실했다. 서둘러 틸과 함께 미국을 인수하고 개조할 팀을 짜야 했다. 어느 누구도 트럼프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보스, 틸에 대한 존경과 신뢰 만큼은 무한했다. 역배에 올인한 역발상 배팅처럼 트럼프는 이 나라의 창조적 파괴자가 될지 몰랐다. 실리콘벨리의 혁신을 워싱턴에 주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단아가 8년을 집권한다면 파운더스 펀드와 틸 재단(Thiel Foundation)이 오래 꿈꾸었던 기술친화적 신세계가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디지털 신문명국가를 만들고, FDA 규제를 완화하여 수명연장기술 등 바이오테크의 전성기를 이끌 수도 있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탈중앙화로 가는 길을 앞당길 수도 있었다. 동지들은 대장을 더욱 우러러보았다. 이제 실리콘벨리를 넘어서 미국 전체를 실리콘스테이트로 개조해 나갈 파운더이심에 틀림이 없었다. 그들 사이에서 틸은 밤의 대통령, 그림자 대통령으로 통했다. 

2016년 11월 11일, 실제로 트럼프 당선인은 틸을 정권 인수팀 멤버로 발표한다. 트럼프의 책사로 불리었던 수석전략가 스티븐 배넌과 한 팀을 이루었다. 틸의 역할은 분명했다. 워싱턴의 딥스(Deep State), 행정국가를 파괴하는 것이다.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조직들이 거론되었다.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연방통신위원회 (Federal Communications Commission), 증권거래위원회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 식품의약국 (Food and Drug Administration), 과학기술정책실 (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미국국제개발처(United States Agency for International Development) 등등 명단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선출되지 않은 수십만 공무원들이 이 비대하고 무능한 연방기구에 똬리를 틀고 앉아 세금을 축내고 있었다. 이들이 정부 안의 정부 역할을 하면서 정권과 상관없이 정책을 제멋대로 조정하며 나라를 망치고 있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으로 미국이 떠안고 있는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차기 정권으로 계속 미루는 것이 습관이자 관습이 되어버린 이들이다. 이 기형적 기생조직들을 대폭 축소하거나 전면 축출하는 것이 틸의 임무였다. 1998년 12월 페이팔(PayPal) 창업 때부터 꿈꾸어 오던 관료제 국가의 전면적인 대수술을 가차 없이 집도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게 된 것이다.      

뉴욕의 부동산 킹이 실리콘벨리의 테크 킹을 이토록 신임하게 된 것은 어찌된 연유일까? 역시나 인지상정, 힘들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이를 각별하게 여기는 법이다. 기적에 기적을 거듭하며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가 되었으나 정작 공화당은 트럼프에 여전히 냉담했다. 대선 직전까지도 중도 사퇴와 후보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해 7월 중순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도 그러했다. 그가 후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인민과 더불어 엘리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다. 네오콘의 실세 부시 전 대통령을 연거푸 조롱했고, 존 맥케인과 미트 롬니 등 오바마에 패했던 자당의 전직 후보들도 비판했다. 그러자 공화당의 주류 정치인들이 모두 전당대회에 불참한 것이다. 자연스레 공화당을 오래 지원해왔던 대기업의 총수들도 트럼프와는 거리를 두었다. 풀뿌리의 푼돈은 넘쳤지만 큰손들의 목돈은 몹시 아쉬웠다. 그 중에서도 실리콘벨리는 특히나 트럼프에 적대적이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는 150명의 기술기업가와 투자자들이 후보자 지명을 우려하는 공개 편지를 쓰기도 했다. ‘민중후보’ 트럼프가 아쉬운 대목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민초들은 짠내나는 보통사람들이었다. 명문대학 아이비리그를 나오거나, 기업을 일으켜 갑부가 된 사람이 좀체 드물었다. 트럼피즘에 근사한 때깔을 입혀줄 셀럽이 간절했다. 트럼프월드에 반드시 필요한 깨소금 역할을 피터 틸이 맡아준 것이다. 전당대회의 연사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기념비적인 연설이었다. 유튜브에도 있다.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처음에는 몹시 어색하고 어설펐다. 독일에서 이민 온 부모님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 바로 여기였다며 어린 시절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세는 구부정했으며, 시선처리는 로봇처럼 부자연스러웠다. 아마 연단 앞에 설치된 프롬프터를 연신 의식했기 때문인 것 같다. 즉흥 발언보다는 준비된 원고를 리허설대로 읽고자 한 것이다. 그럼에도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쉬지 않고 호흡이 가빴다. 긴장을 넘어 흥분한 것이다. 열정이 냉정을 눌렀다. 그만큼이나 오래토록 염원해왔던 결정적 순간이었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냉랭했다. TV 카메라는 연설에 집중하지 않으며 부산스러운 좌중을 빙 둘러가며 비추어 주었다. 틸은 그 무심함 속에서 다시 한번 그의 지론을 설파했다. 한때 맨해튼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달에도 사람을 쏘아 올렸던 이 위대했던 국가의 참담한 기술적 쇠퇴를 역설했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여전히 플로피디스크를 쓰고 있단다. 비가 내리면 전투기가 작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의 정부는 완전히 무너졌다며 목소리를 드높였다. 3분쯤 지났을까, 마침내 청중들이 조용해지며 그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는 소련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를 두고 커다란 논쟁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 나라는 누가 어떤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가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오바마 집권 8년을 거치며 다양한 성정체성을 반영하는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제가 확산된 것을 비꼰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문제가 아니라며, 도대체 누가 어떤 화장실을 쓰던지 그게 무슨 대수냐며 화가 난 듯이 큰 소리를 내질렀다. 뭣이 중헌디? 뭔 상관이야? WHO CARES? 마지막 그 두 단어를 내뱉자 처음으로 박수 다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기억하는 다음 대사가 이어진다. ‘물론 우리 미국인은 모두 저마다의 고유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게이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공화당 당원인 것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저는 제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제발 그 놈의 정체성 정치 타령은 그만두고 위대한 미국인으로 하나가 되자는 메시지였다. 공화당은 본디 이민자와 소수자에게 배타적인 정당이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MAGA 인민들은 그 경향이 더욱 심했다. 그런데 저 이민자 출신의 동성애자 억만장자가 본인이 미국인이라는 점이야말로 가장 자랑스럽노라며 떳떳하게 외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를 도와서 다시 이 나라를 원대한 꿈을 꾸었던 위대한 미국으로 되돌려놓겠노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USA! USA! USA! 비로소 대중들이 크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도 벌떡 일어나 함께 USA! USA! USA!를 외쳤다. YES! YES! YES! 틸도 치아가 훤히 드러날 만큼 활짝 웃으며 화끈하게 화답했다. 실리콘벨리의 갓파더와 저학력 노동계급의 풀뿌리 민중이 애국보수로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트럼프와 틸과 인민 사이의 삼각동맹이 체결되는 분수령이었다. MAGA의 형질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각변동, 미국의 정치판이 거대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2. 2007 : 오프닝

틸의 책장에는 16세기 정치 이론가이자 피렌체의 공직자였던 마키아벨리의 책들도 적지 않다. 누구나 들어보았지만 정작 읽은 사람은 드문 <군주론>만 꽂혀 있는 것이 아니다. 유독 그의 손때를 많이 탄 책은 따로 있다. 제목에서부터 지루함이 전해지는, 그래서 어쩐지 틸과는 더욱 어울리는 <로마사 논고>>(Discorsi sopra la prima deca di Tito Livio>이다. 2000년 전 숨진 로마 역사학자의 저서를 세 권에 걸쳐 약 150여개의 소재로 나누어 사색하고 분석한 500년 전의 저작이다. 이 책의 3부 6장의 제목이 ‘음모에 대하여’이다. 이 장에서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적에 맞서 힘을 키우는 방법, 독재를 끝내는 방법 등을 안내한다. 그런 책이 그가 상당한 시간을 쏟는 체스판의 안락의자에서 손 닿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음모란 누군가를 권력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하여 적이 모르게 은밀히 도모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음모에 가담하는 것은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그 일을 위해 전략을 짜고 협력하고 함께 노력을 기울이는 행위는 공모이다. 마키아벨리는 음모과 공모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작당모의를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무척이나 드문 법이다. 그 희귀한 종류의 사람이 간간히 등장하니, 피터 틸도 그런 유형이었다. 

돌아보면 스타트업의 바이블이 된 틸의 저서 <제로투원>에도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한 챕터를 통으로 ‘비밀’에 대하여 다루었다. 비밀스러운 음모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 수립과 치밀한 실행 방침이 수반되어야 한다. 조직 구성부터 공모자 모집, 자금 조달, 비밀 유지, 여론 관리, 리더십 및 예지력 발휘, 궁극적으로 음모를 중단할 시점을 파악하는 일까지 매 단계마다 저마다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와 인내이다. 기존의 질서를 반드시 엎어버리고 말겠다는 대담함이 필요하고, 그 지난한 과정에서도 결코 지치지 않고 버티어 내는 인내심 또한 필히 요청된다. 틸은 이러한 자질도 갖춘 인물이었다. 무려 10여년에 걸쳐 빌드업을 해온 프로젝트의 과실을 따낸 것도 바로 2016년이었기 때문이다. 11월 트럼프의 당선에 앞서 그는 리버럴 성향의 인터넷 미디어 하나도 파산시켜 버렸다. 자그마치 2007년부터 준비해온 일이다.

그가 성소수자,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 게이라는 사실은 ‘아우팅’된 것이다. 매사 신중하고 진중한 성격의 틸은 자신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다니지 않았다. 공은 공이요 사는 사인 바, 사생활을 드러낼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무려 3천만 시청자가 보고 있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이 게이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것도 사전 맥락이 있던 것이다. 2007년 밸리웨그(Valleywag)라는 사이트에 “틸은 뼛속까지 게이이다.”(Peter Thiel is totally gay, people)라는 기사가 올라온다. 2002년 설립된 인터넷 언론 고커 미디어의 자회사로 IT 기업을 둘러싼 가십을 주로 다루었다. 하위문화 특유의 신랄한 조롱이 기저를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벨리의 억만장자가 실은 동성애자라는 폭로성 기사는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다. 다른 온라인 저널들도 하나 둘 고커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틸은 고커가 인터넷 혁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을 가장한 무질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해 좌표를 찍고 조리돌림을 하면서 희희낙락 낄낄대며 혐오를 일삼는 인터넷 언론들이 세상을 시궁창으로 몰고갈 것을 염려했다. 틸처럼 기이한 의견을 지닌 특이한 사람들이 수없이 모여 있는 곳이 밸리이다. 그 누구도 생각치 못하는 것을 감히 생각해보려고 하는 괴짜들이 있기에 위대한 혁신도 가능했던 것이다. 고커는 ‘Think Different’를 멈추게 할 수 있었다. 고커 공포증이 천재들을 움츠러들게 만들고 역발상을 봉쇄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것은 문화적 퇴행일 뿐만이 아니라 장차 일어날 수 있는 막대한 부에 대한 손실이기도 했다. 벨리의 야망이 1%라도 줄어든다면 미국과 세계와 인류 전체에도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틸은 미래를 승부하는 투자자로서 고커를 가만두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때마침 프란치스코 교황도 ‘무책임한 언론은 혀로 살인을 저지르는 테러’와 같다며 비슷한 견해를 제출하셨다.

고로 사적인 복수는 아니었다. 그저 정의를 구현하고 싶었다. 그 정의의 사도 역할을 수행해줄 배우로 등장한 이가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이었다. 고커가 호건이 친구의 아내와 성관계를 하는 비디오를 온라인에 공개해버린 것이다. 반격과 역공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헐크가 고커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을 때, 틸은 천만 달러의 소송 비용을 익명으로 부담했다. 2016년 3월, 플로리다 주 배심원은 총 1억1500만 달러를 지급할 것을 판결했다. 그 중 6000만 달러는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이었다. 역사상 언론사에 내려진 최대의 배상액이었다. 한 시절 온라인 세상을 주름잡았던 고커 미디어의 피가 법정 바닥에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즉 2016년 피터 틸은 상반기에는 입 안의 가시 같던 미디어 제국을 붕괴시키고, 하반기에는 워싱턴의 기득권을 타파할 트럼프를 당선시켰다. 대선이 끝나고 열린 한 축하 파티에서 찍힌 틸의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트럼프는 평소의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 반면에,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틸이 붉은 색 복장에 금발 가발을 쓰고 입장한 것이다. 헐크 호건의 코스튬으로 분장한 것이다. 헐크와 트럼프, 두 개의 패를 쥐고 틸은 2016년을 완전히 장악했던 것이다. 틸에게 트럼프는 정치혁명의 수단, 워싱턴의 쌍적폐를 청산할 또 한 명의 헐크에 다름 아니었다.


(사진 출처: NBC News)

워싱턴 점령(Occupy Washinton)은 틸의 오랜 지론이었다. 곰곰 피터 틸을 내가 언제 처음 알게 되었나 따져보니 아무래도 2014년인 것 같다. 뉴욕타임스에서 틸과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대담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레이버는 <부채, 그 첫 5000년의 역사>,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불쉿 잡> 등을 집필한 저명한 경제인류학자이다. 무엇보다 Occupy Wall Street, 99% 운동을 조직하고 이끈 실천적 지식인으로 나에게는 친숙한 존재였다. 2012년 그가 UCLA에 강연하러 왔을 때도 나는 맨 앞자리에서 그의 설교를 쫑긋 경청했다. 그 그레이버와 틸의 대담을 10년이 더 지난 2025년 2월에 다시 읽어보노라니 감회가 무척이나 새롭다. 당시 나는 그레이버 편이었다. 상대가 틸이었다는 것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을 정도이다. 가장 오른쪽의 리버테리안과 가장 왼편의 아나키스트. 물과 기름 같은 사람들이건만 그래도 생각이 일치하는 공통의 시대감각은 있었다. 오늘날 미국이 사상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심각한 정체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 미국을 혁신시키기 위한 방법론에서 두 사람은 완전히 상반되는 입장을 보였다. 그레이버에게 중요한 것은 99% 운동처럼 진정한 참여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당시 맨해튼의 주고티 공원에서는 매일 밤 시위대들이 참여하는 해방구의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하는 숙의민주주의, 국회를 대신하는 민회, 요즘말로 하면 시민의회를 옹호한 것이다. 만민공동회를 역설한 셈이다. 그에 반하여 틸은 이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고쳐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망가진 제도라고 선을 그었다. 민주주의의 외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틸이 이상적인 모델로서 제시한 것은 스타트업이다.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 어떤 일도 투표로 정하지 않는다. 진정한 파괴적 혁신은 민주주의 같은 수평적 모델이 아니라 CEO가 군주적 권력을 행사하는 계층적 조직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반세기 미국의 지지부진과는 달리 오로지 실리콘벨리만이 번창하고 번영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은 소박한 평민 정치(folk politics)에 기대지 말라고 조언했다. 2014년 당시 나는 아마도 코웃음을 쳤을 것 같다. 완전 돌아이일세, 무시했을지도 모른다. 헌데 2025년 2월에는 이 ‘folk politics’라는 표현에 눈길이 아주 오래오래 머물렀다. 참여민주라는 민속 풍의 정치에 더는 안달하지 말고, 최정예사단을 꾸려서 스타트업처럼 승부하라는 방침이 어쩐지 제법 그럴싸하게 보인다.    

이제 와 제대로 각 잡고 살펴보니 틸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자신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피력해왔다. 망가져버린 미국의 시스템에 직면하여 논객이자 지식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창업가들의 자기계발서처럼 읽히고 있는 <제로투원>도 실은 2014년에 출간된 당시의 본디 취지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틸 나름의 처방전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제안이 진지한 토론의 대상이 되기를 바랬던 것 같다. 그러나 사방팔방에서 십자포화를 연달아 얻어맞는다. 인터넷 미디어들은 여전히 그를 게이라며 얼토당토않게 물어뜯었고, 레거시 미디어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는 양립될 수 없다’는 이단적인 주장에 헛똑똑이 파시스트라는 치명적인 낙인을 찍었다. 이쯤이면 노빠꾸, 막가자는 것이다. 맞다이로 들어와, 붙어보자는 말이다. 도통 대화와 토론이 되지 않는다면, 정녕 이 무능하고 무기력한 정치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라면, 스스로 정치에 개입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기술의 해방공간을 창출하기 위하여 직접 국가권력을 찬탈하여 나라의 틀과 꼴을 개벽해야 했다.

실제로 틸은 2012년 대선에도 참여한다. 2016년 트럼프 지지가 처음이 아니었다. 물론 12년 당시 틸과 같은 이단적 사상을 가진 정치인은 없었다. 그의 비전을 담아낼 수 있는 정당 또한 없었다. 다만 괴팍한 괴짜가 필요했다. 그때 픽한 인물이 텍사스의 의사이자 작가 출신 정치인 론 폴(Ronald Ernest Paul)이다. 틸은 폴에게 정치자금을 대주었다. 물론 그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았다. 밑밥을 깔아두는 것이다. 진지를 구축해 두는 것이다. 오프닝 게임, 빌드업을 하는 것이다. 고커를 침몰시키는 데도 9년이 걸렸다. 워싱턴의 양당체제와 행정국가를 허물어뜨리는 데는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주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그만큼이나 미국은 삐걱삐걱 오작동하고 있었다. 2016년 마침내 조커가 등장했다.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전격적으로 전략을 수정한다. 풀베팅과 풀스윙, 틸은 온 힘을 다하여 모든 것을 걸었고, 끝끝내 끝내기 역전 만루홈런을 커다랗게 쳐올렸다. 

3. 2020 : 엔딩게임

다시 2016년 11월. 틸은 동거동락했던 핵심 측근들을 데리고 동부로 떠났다. 인수위가 꾸려진 곳은 뉴욕의 트럼프 타워였다. 14층에 있는 칙칙한 사무실을 실리콘벨리 스타일로 개조했다. 공무원 특유의 큐비클은 죄다 쓰레기통에 내다버렸다. 고정된 자리 배치는 고장난 조직의 상징과도 같았다. 칸막이가 없는 긴 탁자를 설치하고 노트북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며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었다. 틸의 팀은 두드러지게 젊었고 말쑥했으며 날렵하고 재빨랐다. 정권인수팀의 여타 정치인들과 관료들 사이에서 슈퍼모델들처럼 보일 정도였다. 3040이 주축이 된 그들은 5060이 퇴근한 이후에도 밤을 새워 일을 했다. 2017년 1월 20일 취임 전까지 전력으로 질주한 것이다. 그들이 작성한 가장 중요한 문서가 150인 명단이다. 자고로 인사가 만사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주요 요직에 배치되어야 하는 점령군들을 추천한 것이다. 국가의 내부로 침투하여 행정국가를 붕괴시키는 특수임무를 수행할 특공대였다. 

(사진 출처: The Intercept)

가령 틸이 FDA(식품의약국)에 추천한 사람은 발라지 스리니바산(Balaji Srinivasan)이었다. 스탠포드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당시36세의 암호화폐 기업가였다. 여전히 종이 문서로 운영되는 낡은 미국을 떠나서 0과 1로 작동되는 디지털 신생국가를 만들자고 떠들고 다니는 친구였다. 그의 시각에서 FDA는 존재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었다. 의사와 환자가 그들이 사용했던 약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탈중앙화된 데이터베이스만 만들면 그만이었다. 틸이 투자한 맛집을 평가하는 앱 Yelp에 빗대어, 제약 분야의 엘프를 만들자는 것이다. 스리니바잔은 트럼프와의 최종 면접도 가졌지만 결국 FDA에 배속되지는 못했다. (그는 2020년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2022년 <Network State>를 출간한다.) 비단 스리니바산 만이 아니었다. 150명 가운데 트럼프 정부에 합류한 인사는 열 명 남짓에 그쳤다. NSC(국가안전보장회의)에 케빈 해링턴(Kevin Harrinton)이 들어가고, 백안관 기술보좌관으로 마이클 크라치오스(Michale Kratsios)가 투입되는 등 틸의 최측근 몇몇이 임명되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는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조짐은 점점 더 안좋아졌다. 인수팀에서 틸과 동맹을 맺었던 수석전략가 스티브 배넌도 백악관에서 7개월 만에 쫓겨난 것이다. 또 다른 세력이 대통령을 에워싸고 있었다. 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가 복병이었다. 가족들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비선정치를 하면서 국정을 농단했다. 틸은 훌훌 짐을 싸서 털털 서부로 돌아간다.

트럼프 1기는 엉망진창이었다. 혼란스러웠다. 혼돈의 연속이었다. 탄핵 시도도 연거푸 일어났다. 엎친 데 겹친 격 전염병까지 퍼져갔다. 미국은 특히나 속수무책이었다. 도처에 주검이 널렸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2020년 11월 대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정상적인 선거가 어려웠다. 아직도 유권자들이 종이에 도장을 찍고 그 표를 일일이 세어서 대통령을 뽑은 제도가 이토록 어리석어 보인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특히나 우편 투표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고, 기어이 부정선거론의 도화선이 되었다. STOP THE STEAL,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극렬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까지 난입하는 그 사달이 난 것이다.

이 대환장 난장판 파티를 틸은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라의 모든 도시들이 팬데믹으로 봉쇄되어 가던 무렵에는 하와이의 마우이(Maui) 저택에서 보냈다. 사망자 숫자는 갈수록  늘어갔고, 트럼프의 패색은 점점 더 짙어 갔다. 그럼에도 패배를 수용하지 않는 지지자들이 국회를 점령한 초유의 사태는 LA의 대저택에서 지켜보았다. 트럼프는 미숙했다. 인수위 때부터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휘둘린 것이다. 그 실패의 틈을 비집고 공화당 주류가 되살아날지 몰랐다. 그런데 공화당 밖에서 여전히 트럼프의 승리를 확신하는 ‘대안적인 진실’에 흠뻑 빠진 광적인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당원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MAGA 복음을 따르는 신실한/실성한 광/신도들이었다. 공화당은 죽었고, 공화국도 죽어가고 있었다. 불타는 로마처럼 워싱턴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천성으로 신중한 틸은 낙담하거나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다. 감정에도 쉬이 휘둘리지 않는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저류를 파고든다. 재차 숙고하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차분하게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책을 펼쳐 들었다. 그가 가장 존경하는 체스 선수, 호세 라울 카파블랑카를 읽는다. 큰 그림을 그리며 넓게 사고하고 포석을 잘 두는 그랜드마스터이다. 특히 카사블랑카는 엔드게임의 최강자이다. 오프닝도 미들게임도 결국 종반전, 끝내기를 위한 밑자락이다. 탁월한 포지셔닝을 통한 예술적 콤비네이션으로 찬란한 피날레 게임을 장식한다. 체스를 한 편의 마스터피스로, 위대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다. 본래 마스터 간의 체스 경기는 두 판 이상 벌어지는 법이다. 승부는 마지막 삼세판에서 갈리는 것이다. 킹을 바꾸지는 않기로 했다. 트럼프의 패배로 트럼피즘은 더더욱 들불처럼 번져나가 미국을 집어삼킬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이제 공화국의 대통령이 아니라 제국의 제왕, 총통이 되어갈 것이다. 2024년 불타오르는 레드 아메리카가 어렴풋 보이는 것 같았다. 과제는 완승과 압승 이후이다. 인수위 기간의 복마전, 파워 경쟁에서 밀려나면 일을 그르친다. 킹이 아니라 주변을 바꾸어야 한다. 주포를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친위 세력을 대폭 보강해야 한다. 틸은 이미 백업 플랜을 착착 가동시키고 있었다.           

또 다시 플래시 백. 2016년 12월 14일로 돌아간다. 첫 번째 대선에서 승리한지 한 달, 취임식도 앞으로 한 달여 남은 시점이었다. 트럼프 타워 25층으로 테크기업의 거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애플의 팀 쿡,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구글의 레리 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페이스북에서는 COO 셰릴 샌더버그가 참석했다. 시스코와 오라클, 인텔과 IBM의 수장들도 자리했다. 이들 중 단 한 명도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틸을 제외한 모두가 힐러리를 찍었다. 불편함을 넘어서 서로들 불신하는 사이였다. 트럼프는 애플이 중국에서 스마트폰을 생산하는 것을 거칠게 비난했다. 베조스가 소유한 <워싱턴포스트>가 가짜뉴스를 퍼뜨린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트럼프의 당선은 구글의 가치에 반한다며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 심지어 베조스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로켓에 태워서 우주로 던져버리겠다는 농담을 했을 정도이다. 그만큼 실리콘벨리와 트럼프 사이에는 우주만큼이나 아득한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을 수 있는 것이 동부와 서부를 연결하는 실세, 피터 틸의 막강한 힘이었다. 트럼프의 오른쪽에 부통령 펜스가 앉았고, 트럼프의 왼편에 틸이 앉았다. 워싱턴과 테크기업을 연결함으로써 디지털-정경유착을 도모하는 첫번째 회합이었다. 기업 총수들의 표정은 여전히 무척 난감했지만, 제국의 총통은 만면에 흐르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틸의 손을 번쩍 들어 치켜 올렸다. 공화당 전당대회부터 그날 회의의 기획까지 틸의 공을 높이 치하했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틸의 주먹을 살살 어루만지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틸의 얼굴이 점점 붉어져갔을 정도이다. 킹과 킹의 브로맨스가 므흣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일론 머스크와 알렉스 카프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고군분투하던 시절이다. 만성적인 자금난으로 허덕거리던 무렵이다. 특히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자율주행 오토파일럿이 첫번째 사망 사고를 일으킨 해가 2016년이다. 9월에는 스페이스X에서 연료 주입 중이던 팰컨 9 로켓이 발사 직전에 폭발하는 사고도 일어났다. 알렉스 카프는 정치부의 베테랑 기자들조차 누군지 잘 모르는 듣보잡이었다. 그해 테슬라의 시총은 시스코의 1/5에 불과했고, 팔란티어는 인텔의 1/10도 되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틸은 머스크와 카프를 그 자리에 배석시킨 것이다. 심지어 상석을 내어주었다. 틸의 바로 왼쪽에는 팀 쿡이 있었는데, 바로 그 다음 자리에 머스크를 앉힌 것이다. 머스크와 카프가 당선인에게 직접 어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무명이었던 카프는 이 회동을 십분 활용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위대한 미국의 재건에 팔란티어의 소프트웨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발표했다. 불법 이민자들의 추적과 추방에도, 강력한 안보태세 확립과 국방력 강화에도 팔란티어의 프로그래밍이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피력했다.

실제로 트럼프 1기 동안 머스크는 화려하게 부활했고 카프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펜타곤과 NASA 등 국가의 주요 기관들이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와 계약을 맺고 협력을 심화했다. 스페이스X는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NASA의 우주비행사를 국제우주정거장에 쏘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친히 이 광경을 참관하여 머스크에게 엄지 척을 들어올렸다. 즉 트럼프 1기 4년이 점점 더 혼돈으로 빠져드는 와중에도, 테슬라와 팔란티어의 주가는 계속 우상향하고 있었다. 이들 기업에 투자한 파운더스 펀드 또한 돈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틸이 파운더스 펀드를 설립한 이래 가장 수익율이 좋은 4년이 바로 그 시기였다. 주요 국가기관들과 본격적으로 합작하기 시작한 스페이스X와 팔란티어는 바이든 정권 4년을 통해서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틸이 딥스테이트 내부 깊숙하게 장착시킨 프로그램들이 자율적으로 자연스럽게 가동되고 있던 것이다. 올드아메리카의 세금이 줄줄줄 파운더스 펀드로 흘러 들어와 뉴아메리카를 재건할 든든한 군자금이 되어주었다. 



2020년 틸은 플로리다로 거처를 옮긴다. 마이애미 해변가에 새 보금자리를 꾸렸다. 파운더스 펀드도 남플로리다에 새로운 사무실을 열었다. 팜비치에 있는 트럼프의 마라라고 리조트와도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겨울별장 마라라고는 이제 MAGA의 헤드쿼터가 되었다. 워싱턴의 공화당 당사는 더 이상 중요치 않았다. 미래의 정치는 식물정당의 외부에서, 아스팔트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2022년 봄 마라라고에서 틸은 젊은 정치인 한 명을 트럼프에게 소개시켜준다. 틸의 충직한 직원 출신인 JD 밴스였다. 곧 오하이오주 상원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했다. 4월 트럼프는 밴스를 지지했고, 5월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공화당의 공천을 낚아챈다. 응당 틸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 속에서 밴스는 상원 의원에도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불과 2년 후 만 39세의 나이에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다.      

하여 2025년 1월 다시 출범한 트럼프 2기 정부는 완전히 틸의 사단(Thiel-verse)으로 꾸려지게 되었다. 좌-밴스, 우-머스크. 부통령 밴스도, 소통령 머스크도 틸의 사람들이다. 쌍포가 쌍두마차로 구체제를 격파하고 구질서를 혁파하고 올드아메리카를 폭파시켜버릴 기세이다. 2017년 오십 세를 맞이하여 오래된 연인과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두 아이를 입양한 틸은 더 이상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 가정에서는 정성껏 남편과 아이들을 내조하고, 사회에서는 그가 키워왔던 후생들을 음양으로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후원한다. 실리콘벨리의 마스터가 이제는 뉴아메리카의 마에스트로가 된 것이다. 본디 나를 따르라, 돌격대형 리더가 아니었다. 작전을 짜고 작곡을 하고 연주를 한다. 백악관과 워싱턴 곳곳에 포진시킨 틸의 미니미들을 악기 삼아 위대한 교향곡을 총지휘하기 시작한다. 신세계 교향곡 제 2악장, 디지털 뉴월드 심포니를 우아하게 연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교향곡은 어쩐지 어둡고 장엄한 구세계의 오래된 정취가 물씬하다. 장차 파격과 파란이 연달아 연출될 것이다. 어쩌면 파탄과 파국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불타는 워싱턴의 불꽃 이스크라를 따라서 불타오르는 세계로 번져 나갈 것이다. 그럴수록 이 바로크풍 대반전 교향곡은 클라이막스를 향하여 웅장하게 치달아갈 것이다.

<로마사 논고> 제1권 26장에는 “신생 군주는 그가 정복한 도시나 지역에서 모든 것을 새롭게 조직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 제3권 1장에는 “한 종교나 국가가 오래 존속하기 위해서는 종종 시초로 되돌아가야 한다.”고도 적혀 있다. Back to the Future. 자 이쯤에서 우리는 피터 틸의 시초로, 그 설계의 원점으로 돌아가볼 필요가 있다. 딥마인드의 딥시크, 그의 머리 속 깊숙한 곳으로 더더욱 깊이 들어가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피터 틸은 1967년생, 올해로 58세가 되는 미국의 586이다. 1986년에 대학생이 되었다. 애송이 새내기 시절부터 영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교수님들과 선배들까지 캠퍼스를 완전히 장악한 ‘68년 체제’에 저항하고 반항하는 골수 반동분자였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퍽큐(Fuck the World!)를 날리고 다니는 꼴통 이대남이었다. 응답하라 1985, 스탠포드 대학의 운동권 시절로 돌아간다.








이병한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