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고석수의 물의 길
2023년 7월 14일
20. 에필로그
- 평화와 풍요의 바다를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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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1 : 대마도 해협에서 만난 돌고래 떼]
평균 속도 30노트(56km/h). 고속선에 올라 대마도 해협을 건넌다. 내년에는 이 길을 노를 저어 건널 생각이다. 그래서 단 한 순간도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 눈을 부릅뜨고 창밖을 바라본다. 부산대교를 지나며 거제도와 대마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섬과 섬 사이에서 노를 젓고 싶다. 최대한 천천히 건너고 싶다. 홀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그 순간 창 밖으로 기적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돌고래 스무마리가 눈 앞으로 다가온다. 회색빛의 미끈한 몸통을 보는 그 순간이 감동적이다. 정말 물의 길을 가는 이유가 이미 충분하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경이다. 내겐 이미 풍요와 평화의 바다가 열린 듯하다. 스무 편의 연재를 마치며 바다의 선물을 받는다.
인류와 물의 길
돌고래도 아름답고 인간도 아름답다. 나는 인류가 오랜 시간 평화와 풍요의 바다를 열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수 만년전 바다를 건넌 인간은, 수 억년전 지느러미 달린 캄브리아기 시절을 기억했을지 모르겠다.
연재 초반에는 태평양, 지중해, 대서양의 물의 길을 탐구했다. 태평양에서 바다 공동체를 꿈꾸던 폴리네시아인이 있다. 수 백개의 흩어진 섬에서 평화를 원했다. 마치 은하 제국처럼 드넓은 태평양에 펼쳐진 미지의 섬들 속에서 그들은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교역을 시작했다.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 지중해에서 바다 민족의 공포를 이겨낸 그리스인이 있다. 거친 파도와 암초의 조건 속에서, 전쟁을 끝낼 평화를 꿈꿨다. 그리스 문명은 이후 서구 문명을 꽃피운다. 대서양에서 변방의 끝을 탈출한 중세 유럽인들이 있다. 그들은 바이킹과 중동이라는 위협을 벗어날 평화를 원했다. 그렇게 근대 문명이 열어낸 현대의 풍요 앞에 인류가 다시 서있다. 인류세는 풍요와 평화의 모순이다. 인류세의 물의 길은 모순을 다시 직면하는 길이다.
나와 물의 길
연재 중반에는 나의 물의 길을 탐구했다. 카누에 올라타 직접 노를 저었다. 섬진강은 곡성, 구례, 하동을 지나 남해로 연결되었다. 출렁이는 강물과 바다 위에서 겪은 일을 글로 써내려 갔다. 나에게 그것은 명확한 느낌이었다. 신나고 재밌고 계속하고 싶은 성질의 것이었다. 배 아래로 연어가 유유히 헤험쳐 나갈 때, 도로변의 자동차를 바라보며 엉금엉금 흘러갈 때, 다리 아래에서 불을 피워 밥을 해먹을 때, 생명이 살아났다.
나는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구성해보았다. 내게 물의 길은 선물이 넘치는 길이었다. 야생의 몸이 깨어나는 길이었다. 실험을 펼칠 수 있는 길이었다. 마치 태평양의 물의 길처럼 선물이 오가는 길이다. 지중해의 물의 길처럼 몸을 깨워가는 길이다. 대서양의 물의 길처럼 실험을 펼치는 길인 것이다.
동아시아, 그리고 어린이 캠프
연재 후반에는 물의 길로 가고 싶은 동아시아를 탐구했다. 내가 하늘길로 만난 동아시아는 이미 평화와 풍요의 길이었다. 누군가에겐 오염수와 미중갈등이 번지는 곳이 동아시아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친구들과 춤을 추고, 가족들과 환대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나는 후자의 힘으로 전자를 살아내고 싶다. 이것은 나의 직관이다. 엔데믹과 함께 하늘길을 타며 다시금 확신했다. 아이들과 노래하고 춤추고 새로운 문명을 꿈꾸는 곳이 바로 여기다. 나는 이것이 늘 너무나 하고 싶다. 이것이 나의 동아시아라는 장소이다. 평화와 풍요는 내가 돌아갈 집이다. 물의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지난 단오날 남해 신사에서 다함께 기도를 드렸다. 용왕님과 마고 할매에게 빌었다. 남도 물길을 따라 섬들을 잇고 싶습니다. 친구들과 가족들을 신나고 안전하게 만나게 해주십쇼. 동아시아 섬들에서 교육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 모험과 야생의 감각을 함께 키우며, 어린이들이 중심이 되어 이 지구를 여행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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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 전남 영암 남해신사는 1000년간 바다를 향해 기도를 드린 곳이다. 광주 무등공부방의 주최로 매년 해신제가 개최된다.]
2022년, 작년 나의 목적지는 남해 바다였다. 집 앞의 강변 산책로를 따라 바다까지 나가는 감각을 얻었다. 여행을 천천히 간다는 것은 즐겁고 풍요롭고 평화로운 길이다. 2023년 올 해의 목적지는 쓰시마였다. 안전한 항해를 위해 우선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이 길은 아주 오랜 시간부터 존재한 평범한 길이다. 다만 잠시 잊혀졌을 뿐이다. 가이드북을 펼치는 심정으로 1987년의 쓰시마의 자료집을 본다. 중세 고선으로 쓰시마 부산을 노를 저어 건넌 실험의 연구결과다. 일본 문화의 특유의 꼼꼼함이 책에 담겨있다. 21명의 선원이 7명씩 3교대로 노를 저엇다. 새벽 7시에 출발한 배는 당일 오후 5시 부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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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 1987년 발간된 자료집 "절해를 건너다(絶海を渡る)". 당시 마을 부흥을 위해 대마도 청년들이 부산까지 노를 저어갔다. 퍼포먼스의 기획 과정이 상세히 남겨져 있다.]
대마도까지 가는 물의 길은 다양한 만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올 한해 남해의 친구들에게 초대를 받았다. 부산에서 함께 대만으로 여행간 아이들은 배를 타고 오면 자신들의 학교로 와달라고 한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시인의 시집을 선물받았다. 바다와 강을 건너는 연어가 되라는 마음으로 시를 읽는다. 남해에서 판타지 시골 라이프를 만들어가는 친구들이 있다. 패들링도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골 라이프 스타일을 실험하는 방법이다.
무엇보다 대마도의 아이들이 다시 놀자고 우리를 부른다. 내년 6월 25일에는 나는 국경을 넘어야겠다. 대마도에서는 매년 6월 25일 국경 마라톤이 개최된다. 현대판 조선 통신사를 꿈꾼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코스프레를 하고 국경을 달리고 싶다. 올해 국경 마라톤에서 부산 아줌마들과 함께 춤을 추는 쓰시마 친구를 보니, 여기서 일본이라는 편견을 넘을 수 있는 힘이 보인다. 일본은 오염수와 후쿠시마로 대표되는 곳이 아니라, 아이들이 넘쳐나는 이웃이다. 함께 미래를 고민할 친구들이 사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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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 대마도, 부산, 통영, 남해의 친구들과 찍은 사진]
끝도 시작도 없는 물의 길
물의 길은 나에게 많은 질문을 주었다. 도대체 왜 배를 타야하는가. 도대체 왜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가. 도대체 왜 바다를 건너가고 싶은가. 도대체 왜 무동력으로 하고 싶은가.
수많은 질문에도 나의 답은 이미 "하고 싶다"로 정해져 있었다. 다만 물 위에는 길이 없어 보였다. 길을 나서는 것이 두렵고 무서웠다. 그래서 많은 토론을 하고 연구를 했다. 함께 생활하며 고민을 해준 짝꿍과 이화서원 공동체 식구들, 그리고 연재 기회를 주신 다른백년에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덕분에 인류학, 신화학, 소마틱스, 에니어그램, 동아시아사 등 다양한 공부를 긴장감 있게 할 수 있었다. 평화와 풍요라는 추상적이던 단어들이 정교한 사고가 되었고, 가까운 느낌이 되었고, 건강한 근육이 되었다.
이제 마지막 지면을 빌어 모두와 나의 질문을 나누고 싶다. 왜 세월호는 물에 빠져야 했을까? 왜 후쿠시마 사고는 일어났을까? 왜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일까? 아직 나에게도 이 질문들은 뻣뻣하고 긴장된 느낌의 질문들이다. 하지만 함께 한다면 우리를 더욱 건강하게, 성숙하게 만들어줄 질문이라 확신한다.
아직 나의 많은 질문은 끝나지 않았고, 여행도 끝나지 않았다. 되려 연재를 통해 정확한 키워드를 길어 올렸으니 더 신나게 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평화와 풍요의 물의 길을 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스무 편의 글은 마무리 됩니다. 그간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석수의 물의 길은 계속 됩니다. 당신의, 우리들의 물의 길은 이제 시작될 것입니다. 마치 물의 길이 단 한 순간도 끝난 적이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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