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12월 31일

2024년 주역 이야기

- 둔(遯): 어쩔 수 없는 것을 순히 받아들이고, 내 마음 안에서 예(禮)와 정의로움을 세운다. 가둔정지(嘉遯正志)






안녕하세요.
2024년의 주역괘를 같이 읽고 싶습니다.
2023년의 주역괘는 가인(家人)괘에서 찾았습니다.
2022년 이태원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큰 우울과 트라우마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런 시간에는 따뜻한 위로의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따뜻함과 보살핌이 사회에 넘쳐나길 바랐습니다.
가인(家人)은 집에 불을 피워 온기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삶이란 바닷물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과 같이,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이, 계절이 순환하는 것처럼 오고감이 있습니다.
제가 주역괘를 읽는 작업도 한 해는 따뜻하고, 나아가고, 밝은 이야기에서 찾으면 다음해는 물러나고,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이야기에서 찾습니다.
날실과 들실이 오고가며 옷감을 짜듯이 삶에는 양면이 같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매년 연말이 되면 교수신문에서 올해의 사자성어를 찾습니다.
2023년의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亡義)입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와 대비되는 이야기가 논어 헌문편에 나오는 견리사의(見利思義)입니다.
이익 앞에서 올바름과 의로움을 생각하는 사람(見利思義)과 잊어버리는 사람(見利忘義)으로 대비됩니다.
2024년의 괘로 읽을 둔괘(遯卦)는 이런 견리망의(見利忘義)의 세상을 기반으로 합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어떻게 이어질지를 보는 겁니다.
우리는 견리사의(見利思義)는 좋은 삶이고, 견리망의(見利忘義)는 염치가 없고 뻔뻔하고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견리망의(見利忘義)는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의 모습과 겹칩니다. 공정이라는 가치에 높은 의미를 두는데, 그 내용도 조금 더 읽어보면 나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데 불공정하다는 눈입니다.
견리사의(見利思義), 공공의 이익과 가치, 정의를 위해 공정해야 한다가 아닙니다.
나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자본주의의 보편적 인간관입니다.
나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사는 것은 누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산다는 것은 자부심을 가질 것도 없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 그냥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단지 바라기는 그 정도가 일정 선을 넘지 않기를 바라는데, 견리망의(見利忘義)가 사회적 키워드가 된 것은 그 선을 누가봐도 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을 누가 어떻게 정할 수 있나요?
여러 조건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수용될 수도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아야 할 때 둔괘(遯卦)는 이렇게 말합니다.

象曰 天下有山 遯 君子以 遠小人 不惡而嚴.
상왈 천하유산 둔 군자이 원소인 불오이엄.

산이 하늘을 치고 올라와도 하늘은 산보다 높다.
나는 견리망의(見利忘義)하는 소인(小人)을 멀리하고 미워하지 않겠다. 그가 그런 삶을 사는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물러난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원(),과 불오(不惡)입니다.
멀리하고 미워하지 않는다입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라고 말하면서 그를 비판하고, 뻔뻔하다고 욕하고 분노하지 않는 겁니다.
단지 가까이 가지 않고, 말 섞지 않고 멀리 두는 겁니다.
그가 보이는 지금 이런 행동은 단지 그의 잘못만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지금 그래야 할 이유가 있고, 지금 우리 실력이나 조건으로는 제어할 수도 없습니다.

정말 문제는 견리망의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분노하고, 우울해하고, 나랑 동조하지 않는다고 불편해하는 이런 마음이 우리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들은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그들은 성장하는 추세 속에 있습니다.
시민들의 지지도 받고 있고, 늘 새롭게 자신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미 하나의 삶의 양식이 되어 가고 있어서 견리망의하면서도 당당함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물러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물러날 때 둔()이 보이는 자세가 미워하지 않는 마음,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해석하고 자기 존엄성을 잃지 않는 마음, 어쩔 수 없는 것을 순히 받아들이는 평온한 마음입니다. (不惡而嚴)



이 마음의 연습이 중요한 이유는 이어지는 대장(大壯)괘에 있습니다.
대장(大壯)괘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겁 없이 하는 용기입니다.
둔괘(遯卦)가 물러나는 사람이라면 대장(大壯)괘는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물러서고 나아갈 때 이 둘을 잘 분간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삶에서는 엇박자가 일어나곤 합니다.
효사의 내용도 조금 더 봅시다



1.
初六 遯尾 厲 勿用有攸往.
초육 둔미 려 물용유유왕
象曰 遯尾之厲 不往 何災也.
상왈 둔미지려 불왕 하재야.

받아들이고 물러서기 싫어서 계속 맞서다 뒤처졌다. 맨 뒤 자리 꼬리가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해 볼 수 없다. 대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야 위험하지 않다

1번은 물러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지금 현실을 순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건 다해 봅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주위에 자기처럼 이야기하면서 남아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들 물러났고 나 홀로 남은 것 같습니다.
1번은 이런 상태를 둔미(遯尾)라고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마음을 접었는데 혼자 싸우다가 뒤쳐져서 잘못하면 위험해질 정도가 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2.
六二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육이 집지용황우지혁 막지승탈
象曰 執用黃牛 固志也.
상왈 집용황우 고지야.

황소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꽁꽁 묶여 있는 것 같다. 벗겨낼 수가 없다.
이렇게 묶여 있지 않으면 자꾸 끌려가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더 단단해 지겠다.  

2번은 하늘이 돕습니다.
그의 삶은 무슨 말을 하고 싶고 행동하고 싶지만 황소 가죽끈으로 묶인 것처럼 무슨 일도 해볼래야 해볼 수가 없습니다.
마음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조건 앞에서 자기를 다시 바라봅니다.
자기 안에서는 의지와 뜻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갑니다.

3.
九三 係遯 有疾 厲 畜臣妾 吉.
구삼 계둔 유질 려 휵신첩 길
象曰 係遯之厲 有疾 憊也 畜臣妾吉 不可大事也.
상왈 계둔지려 유질 비야  휵신첩길 불가대사야.

옳지 않고 위험하기도 해서 물러서야 하는데 얽힌 게 많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아프고 힘들다. 지금은 가까운 사람들과 가족을 돌봐야 한다. 소인을 멀리하고, 물러서서 미래를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은 나의 조건에서는 어렵다.

3
번은 물러설 수 없는 조건에 있는 사람입니다.
휵신첩(畜臣妾), 이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그들에게는 애착의 끈으로 묶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이란 옳고 그름, 선하고 악함의 눈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견리망의(見利忘義)라는 말을 쓰기가 쉽지 않은 지점입니다.

4.
九四 好遯 君子吉 小人否.
구사 호둔 군자길 소인비
象曰 君子 好遯 小人 否也.
상왈 군자 호둔 소인 비야.

나는 기꺼이 물러나겠다. 자기 이익을 따라가는 소인은 이렇게 할 수 없다.

4
번의 호둔(好遯)은 명쾌함이 느껴집니다.
그는 아쉬움도 없고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그는 그가 생각하는 소확행의 좋은 삶이 있고 이 세상에는 개입하고 싶지 않습니다.
호둔(好遯)은 너무 명쾌해서 오히려 비현실적입니다. 삶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5.
九五 嘉遯 貞 吉.
구오 가둔 정 길
象曰 嘉遯貞吉 以正志也.
상왈 가둔정길 이정지야.

나는 물러날 때가 되어 물러날 수 있어 기쁘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있었고 그 의무를 다했다

5번의 가둔(嘉遯)어쩔 수 없는 것을 순히 받아들이는 평온한 마음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다 하고, 다하고 난 뒤에는 이만큼이라도 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물러서는 사람입니다.
이럴 때 가둔(嘉遯)정지(正志)라는 마음을 씁니다.
사회에 정의와 좋은 삶의 기준이 있을 때는 정의롭게 살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정치, 경제, 언론, 종교, 교육, 시민 운동 등에서 한국 사회는 모범이 되는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배출해 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그 동안 존경받아 왔고 사회적 정의의 기준을 세웠던 영역에서 많은 부분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어디에도 정의를 찾기가 쉽지 않고, 진실이 사라진 탈진실의 사회입니다.

이럴 때는 정의를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가둔정지(嘉遯正志)는 멈추고 물러서서 정의를 자기 안에서 찾습니다.
정지(正志)라는 개념을 느낌으로 생각해보면 정의(正義)와 입지(立志)의 중간 영역 정도입니다
정의(正義)사회 정의와 같은 사회적 공공선에 대한 마음이고, 입지(立志)내 삶의 의미에 대해 내가 뜻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어 내고자 하는 의지 입니다.
정지(正志)는 사회적 기준이 아니라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정의에 대한 나의 기준입니다.
이렇게 내가 세운 나의 정의를 일단 ()라는 말로 가정해 둡시다.
정지(正志)는 입지(立志)처럼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보다는 내면을 성찰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정지(正志)는 말 그대로 정지(停止)라고 읽어도 됩니다.
멈추어 서서 성찰합니다.

이런 성찰은 이어지는 대장(大壯)괘의 힘으로 쌓여갑니다.
대장괘의 핵심 메시지는 비례불리(非禮不履) - 나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 힘을 예()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입니다
대장의 이 힘은 가둔정지(嘉遯正志)의 과정에서 만들어 집니다.
()라는 마음은 우주가 만들어질 때 사용된 마음입니다.
성리학에서는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오상(五常)의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의 작용으로 우주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우주와 인간을 구성하는 근원적인 마음입니다.
()과 대장(大壯)의 핵심은 예()의 함양입니다.
()라는 마음을 키우기 위해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힘들 때는 멀리두고 공간을 만든 상태에서 자신의 내면을 새롭게 재구성합니다.  

6.
上九 肥遯 无不利.
상구 비둔 무불리
象曰 肥遯无不利 无所疑也.
상왈 비둔무불리 무소의야.

얽히고 맺힌 것 없이 여유롭고 편하다

()의 진정한 이유는 비둔(肥遯)이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물러서서 바라보고 마음의 평화를 가지면 피곤하고 지치고 조금 허기졌던 마음이 배가 채워지는 것처럼 만족감과 포만감이 오게 되고 마음이 조금 살찌게 됩니다.
이 여유로움이 대장(大壯)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더 많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내가 노력하는 것이 의미있는 결과를 불러올까요?
탈성장이라는 개념은 많은 논의가 있지만 전형적인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입니다.
양당제 비판하지만 중간 영역의 정치 세력을 만드는 건 선거제도 개혁하지 않으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당을 압박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두 당은 이미 시민들의 지지를 충분히 받고 있어서 바꿔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은 정말 넋놓고 보는 일 밖에 할 수 없고 매일 매일 아픈 마음만 느껴야 합니다.
2024년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전 세계 70개 국 이상에서 선거가 있습니다.
인류가 선거라는 방식의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래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선거에 참여해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해입니다.
한국의 4월 국회의원 선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이 선거 중에서 가장 큰 규모는 미국 대통령 선거입니다.
아마 미국 대통령 선거는 2024년 세계 민주주의의 현실을 읽는 상징처럼 해석될 겁니다.
현재 앞서 있는 대통령 후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입니다.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권위주의 가치가 승인받는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현실에 대해 누가 대응할 수 있을까요?
시민들이 찾고 있는 새로운 지도자의 가치 지향이 지금까지 사회를 진보하도록 이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 의심하는 마음, 기존의 가치 체계와 사회 구성 원리를 해체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면 그 과정이 파괴적이고 불합리하더라도 물러서서 바라보고 더 깊은 통찰을 해야합니다.
자유, 민주, 평등, 생명, 평화, 가족 이런 가치로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습니다.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후퇴는 세계 여러 지역에서 전쟁 위험을 불러옵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도 안을 더 깊이 들어가보면 권위주의 정부가 선거로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정치를 통해 사회적 진보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자유, 민주, 평등 같은 계몽주의 가치관으로 해석할 수 없는 영역이 확대되고 있고, 시민들은 그 부분을 지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동안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하고 사회를 묶어 주던 공동의 가치가 해결할 수 없는 지구 규모의 위기 앞에서 나부터 살아야 한다는 자기 안전 중심으로 사회적 가치가 후퇴하는 추세입니다. 정치인들은 시민들의 안전 욕망을 자극하고 배타적 정책은 지지를 받습니다.

2024년은 기후 위기의 미래가 어느 정도일지 눈 앞에서 확인하게 될 겁니다.
태평양 바다의 수온이 주기적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엘니뇨와 라니냐의 주기가 올해는 엘니뇨라서 수온이 올라가게 됩니다. 산업화 기준, 지구 기온 1.5도 상승이라는 수치에 근접하는 경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는 1도를 전후로 엘니뇨 때 1도를 넘고 라니냐 때 1도 아래를 기록합니다. 최근에는 라니냐의 시기였지만 태평양 인근의 나라들에서 산불이 나서 꺼지지 않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엘니뇨여서 태평안 연안의 건조 지역에서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끓는 지구, 홍수, 가뭄, 지진 등 기후 재난으로 인한 지구 규모의 이주를 세계가 함께 다뤄야 할 상황인데, 각 나라마다 이주민에 대한 벽은 점점 더 높아집니다.
변화의 길을 알더라도 그 길로 나아갈 방법을 찾지 못합니다.

현경 선생님은 이런 시대에는 온전함의 섬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자고 합니다.
세계의 질서, 권위, 가치가 무너지고 있어서 사회를 전체적으로 보지 말고, 가능한 범위에서 작은 섬을 만드는 것처럼 온전함의 가능성을 만들어가다 보면 그 섬들이 늘어나서 다도해가 되고, 그 섬이 융기해서 새로운 대륙이 만들어 지는 상상을 하자고 합니다.
()의 물러남은 온전함의 섬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인간 의식 진화의 스파이럴 다이나믹스 이론은 한 사회가 진화할 때 스파이럴의 형태를 취해서 바로 아래에서 위 단계로 올라가지 못하고 일정 정도는 후퇴의 경향을 띠는 것처럼 이 쪽에서 저쪽으로 반대쪽 입장이 강화되는 과정을 거치며 진화해 갑니다.
제가 주역괘를 읽을 때 오고 가며 읽는 것도 같은 관점입니다.
인간 의식 진화는 단순하게 한 방향으로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 진화의 스파이럴 상태에 따라 다른 사회가 출현합니다.
다음 인류의 의식 진화의 과제는 옐로우 단계, 통합성의 단계입니다.
이 과제로 나아갈 때 꼭 거쳐야 하는 지점이 수용성 - 어쩔 수 없는 것을 순히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다 그럴만해서 그렇게 산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마음입니다.
무엇보다 이 마음을 타인에 앞서서 나 스스로에게 말해줘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 살았다, 애썼다, 다 그럴 이유가 있었으니까 괜쟎아. 걱정 안해도 되.
그렇게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내 안의 어린 아이가 위로받고 음식도 먹고 조금 살이 올라 포동포동해지게 해야 합니다. 비둔(肥遯)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나의 바깥을 보는 눈이 열리고 이 정도는 해볼 수 있겠구나 하는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고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대장(大壯)의 마음이 시작되는 겁니다.

주역은 양면성의 공부여서 두 괘가 짝을 이루고 있는데, 이 둘은 반대쪽에 서 있으면서 동시에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둔괘(遯卦)의 짝은 대장(大壯)입니다.
대장(大壯)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용기를 가지고 하는 마음입니다.
올해의 주역괘를 찾기 위해 저는 12월이 되면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다루는 책을 여러권 읽고,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을 여행을 하고 지혜로운 분들을 만납니다.
이번 글에 가장 많은 영감을 받은 곳은 순천 기억공장 1945에서 열린 관옥 이현주 선생님의 걱정맙시다 전시와 이현주 선생님과 현경 선생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걱정맙시다. -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으니, 굴러 굴러 갈 데까지 가겠지요.
시대의 메시지라고 생각했습니다.

2023년 하반기부터 저는 둔괘(遯卦)가 시대적 과제가 되는 시간이 오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강의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곡성 이화서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몸으로 느껴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마음을 연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읽는 키워드를 내 삶에서 찾았습니다.
삶을 통해 사회적 키워드를 찾는 기법을 주역 관괘(觀卦)에서는 관아생(觀我生)이라고 합니다. 선비들이 오랫동안 사용한 기법인데. 이게 우리 시대의 방법입니다.
종교 개혁으로 성경 해석을 사제들만 하던 시대에서 누구나 성경을 읽고 자신의 양심과 의지로 성경 해석을 하는 시대가 열린 것처럼, 이제는 세계 해석의 기준이 사회의 중요한 정신적 지도자에서 각자의 해석으로 넘어간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탈진실과 불확실성이라고 읽을 수도 있고, 사회 진화의 다음 단계가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사회를 전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의 길이 이미 없습니다.
답이 자기 안에 있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나를 하늘처럼 모셔야 합니다.(侍天主)

2024
년에 어쩔 수 없는 것을 순히 받아들이고, 내 마음 안에서 예()와 정의로움을 세워가는 가둔정지(嘉遯正志) 합시다

고맙습니다.  



2023. 12. 26.

빛살 모심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