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12월 7일

21. 건(蹇 ䷦)과 해(解 ䷧)

-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걷고 / 마침내 해방






건괘(蹇卦)와 해괘(解卦)의 앞에 있는 규괘(睽卦)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天地睽而其事同也. 男女睽而其志通也. 萬物睽而其事類也. 睽之時用大矣哉.
천지규이기사동야. 남녀규이기지통야.  만물규이기사류야. 규지시용대의재

하늘과 땅은 따로 있지만 같은 일을 하고 있고, 남자와 여자는 다투지만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세상 만물이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반목과 갈등을 적절한 때와 조건에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서로 갈등하고 다투고 경쟁하지만 갈등 속에 흐르는 사랑을 알아채고 결국 서로 사랑하고 협력하고 성장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빠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갈등과 경쟁에서 사랑과 협력으로 이어지는 중간 과정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이겠어요.

건괘(蹇卦)와 해괘(解卦)는 그 중간 과정을 이끌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건(蹇)의 사전적 의미는 ‘절뚝거리며 걷는 사람’입니다.
건건(蹇蹇)이라는 말은 온갖 고생을 하며 자기 길을 걸어가는 삶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건괘(蹇卦)는 절뚝거리면서도 산과 강을 넘는 험한 길을 걸으며 세상을 평화롭고 정의롭게 만들어 갑니다.(蹇以正邦)

우리 눈에 가장 쉽게 들어오는 이미지 중의 한 사람은 지팡이를 짚고 조금 다리를 절며 걸으시던 김대중 대통령님입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의 삶을 바라보면 건괘(蹇卦)의 험난한 길을 걸어 성인의 삶에 이르는 과정이 보입니다. 
건(蹇)은 자기 앞의 길을 알고 걷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이 길을 걸어야 할 어떤 소명 의식을 가지고 걷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 쪽으로도 가보고 저 쪽으로도 가봅니다.
어떨 때는 협력하는 길을 걷고, 어떨 때는 위험하고 어렵지만 혼자서 묵묵하게 걷기도 합니다. 잘하기도 하고, 잘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 변함없는 것은 계속 걸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건괘에는 왕건래예(往蹇來譽), 왕건래반(往蹇來反), 왕건래연(往蹇來連), 왕건래석(往蹇來碩) 이런 말이 연이어 나옵니다. 이 말의 공통점은 왕/래(往/來)입니다.
조금 쉽게 이야기하면 넘어지면 일어나서 또 가고, 또 넘어지고 일어나는 오뚜기 같은 느낌을 담은 언어입니다.
건괘(蹇卦)는 자신이 걷는 이 길을 통해 서로 갈라졌던 마음이 이어지고, 억압적이고 얼어있던 관계가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규괘(睽卦)는 서로 사랑하면서 미워하는 관계인데, 이런 관계는 의외로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관계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부도 사랑하지만 서로 미워하는 경우가 있고,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남북관계도 그 안에는 깊은 사랑이 있어서 서로를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수없이 넘어지면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 중에는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중요한 의제가 있었습니다.

건괘가 이렇게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 중에는 소명 의식과 함께 잘못된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조건이나 타인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찾는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건괘(蹇卦)는 그 마음을 ‘반신수덕(反身脩德)’이라고 했습니다.
외부 조건의 변화가 아니라 내 안에서 문제를 읽고 새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다시 일어섭니다. 반신(反身)이라는 개념은 수신(修身)이라는 개념보다 조금 더 깊은 의식 세계를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눈입니다. 내가 선한 의지가 있지만 그 안에 있는 그림자를 읽어내겠다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그는 실수와 잘못을 받아들일 수 있고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해 갑니다.
건(蹇)의 이런 자기 성찰, 끊임없는 변화와 시도, 하늘의 도움이 이어져서 건(蹇)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 험한 길을 지나와서 넓고 큰 길을 만나게 됩니다.

수운 선생님의 시에는 이런 기쁨을 표현한 부분이 있습니다.

纔得一條路 步步涉險難
山外更見山 水外又逢水
幸渡水外水 僅越山外山
且到野廣處 始覺有大道

하나뿐인 험난한 길을 간신히 찾아내어 한 발 한 발 걷습니다.
산넘어 또 산이고, 물 건너 또 물입니다.
간신히 물 건너 물, 산 넘어 산을 지나왔습니다.
이제 넓은 들에 이르렀습니다.
큰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해괘(解卦)는 건괘(蹇卦)처럼 이쪽 저쪽을 가지 않아도 됩니다.
건(蹇)은 길을 찾을 수 없었지만, 해(解)의 길은 명확하게 눈에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 동안 걸었던 길을 정리하고, 한 길을 걸을 수 있고, 무엇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습니다.

해(解)의 중요한 키워드는 ‘복(復)과 숙(夙)’입니다.
‘복(復)’은 어디로 갈지 알고 ‘돌아가는 길’이고, ‘숙(夙)’은 ‘빨리, 서두르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문제가 해결되고 있고, 그 동안의 억압에서 해방되는 시간이고, 얼었던 땅이 풀리고 새싹이 돋아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서둘러서 오랜 문제를 해결해 내고 해방의 공간에서 새로운 싹이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해(解)는 과거에 매이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의 잘잘못에 대해 대단히 관대한 입장을 가집니다.(赦過宥罪)
풀어야 할 문제를 빨리 풀기 위해 기본적인 원칙을 정하고 그 기준만 가지고 잘잘못을 따집니다. 2번의 황금 화살 상징은 공정한 기준을 상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세력을 제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새로운 싹이 움터 나오는 땅 위에 과거의 힘이 발을 딛고 비켜주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해방의 시간에 여기저기에서 마찰이 일어납니다.
이 문제를 근원적으로 풀게 되는 것은 5번의 힘입니다.

5.
六五 君子維解 吉 有孚于小人. 象曰 君子有解 小人退也.
육오 군자유유해 길 유부우소인.  상왈 군자유해 소인퇴야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유(維)’입니다. 밧줄로 묶인 상태입니다.
조금 더 읽으면 어떤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기도 합니다. 생각의 틀에 갇히고, 나를 인식하는 범위가 좁아서 나를 넘어선 세계를 이해하는 힘이 없습니다.
‘군자유유해(君子維有解)’는 나를 감싸고 있는 의식의 틀을 깨고 새로운 의식으로 태어나는 모습입니다. 새로워진 나, 갱신(更新)된 삶, 마침내 이르른 해방입니다.
이런 의식 성장을 통해 우리는 나를 넘어선 세계까지 해방시킬 수 있고, 해방의 과정에서 여기저기에서 일어나던 마찰이 자연스럽게 해결되고 각자가 자기의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규(睽)의 분리와 갈등, 반목과 억압에서 시작된 오랜 해방 투쟁의 과정이 건(蹇)과 해(解)입니다.
건(蹇)은 길을 찾기가 어려웠고, 해(解)는 자기를 넘어서는 인간 해방의 과정이 어려웠습니다.
이 길을 다 걷고 난 뒤에 건(蹇)과 해(解)는 가인(家人)의 사랑 안에서 자유를 누리고, 함(咸)과 항(恒)의 사랑을 하고, 둔(遯)과 대장(大壯)의 힘을 가지고, 진(晋)의 떠오르는 태양같은 진취적 기상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자기의 틀을 벗고 새 사람이 됩니다.
하경의 31번 함괘(咸卦)에서 40번 해괘(解卦)까지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인간 해방의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손괘(損卦)와 익괘(益卦)의 정서는 31번에서 40번까지와 조금 다릅니다.
평화에 대한 염원이 강하게 이어집니다. 이런 정서는 41번에서 50번까지 계속됩니다.



39. ☵☶ 蹇


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 吉.
건 이서남 불리동북 이견대인 정 길.

산과 강을 넘어 절뚝거리며 정의의 길을 걷는다.
나는 서남으로 가기도 했고 동북으로 가기도 했다.
서남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마음을 이을 수 있었고, 동북에서는 쉽지 않았다.
지혜로운 대인께서 나에게 갈 길을 가르쳐 주셨다.

彖曰 蹇 也 險在前也. 見險而能止 知矣哉.
단왈 건 난야 험재전야. 견험이능지 지의재.
蹇利西南 往得中也 不利東北 其道也.
건리서남 왕득중야 불리동북 기도궁야.
利見大人 往有功也 當位貞吉 以正邦也. 蹇之時用 大矣哉.
이견대인 왕유공야 당위정길 이정방야. 건지시용 대의재

고난의 길을 걷는다. 내 앞 길이 험하다.(行路之難)
위험할 때는 멈추고 때를 기다려 나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지혜로운가!
서남쪽(협력의 길)로 갈 때 나는 사람들 속에서 적절하게 대응했지만, 동북쪽은 막힌 길이었고 나는 지혜롭지 못하고 내 생각에도 갇혀 있었다.
지혜로운 분을 통해 내가 어려움 앞에서 대응했던 여러 방식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고 실제적인 성과를 얻는 법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가 어떤 자리에 서야 할지 알았고 정의를 세울 수 있었다.
비틀거리며 정의의 길을 걸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가!

象曰 山上有水 蹇 君子以 反身脩德.
상왈 산상유수 건 군자이 반신수덕

우리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어려운 길을 가고 있다.
이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내기 위해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의 경험에 대해 다시 성찰하고 실패에 대해 좌절하지 않는 마음의 힘을 키운다.

1.
初六 譽.
초륙 왕건래예.
象曰 往蹇來譽 宜也.
상왈 왕건래예 의대야

멈추자. 멈출 수 있으면, 때를 기다릴 수 있으면 신뢰를 얻고 존경을 받는다.

2.
六二 王臣蹇蹇 匪躬之故.
육이 왕신건건 비궁지고
象曰 王臣蹇蹇 終无尤也.
상왈 왕신건건 종무우야

왕과 신하가 온갖 어려움을 견디는 것은 내 몸 하나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고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었다.

3.
九三 往蹇來反.
구삼 왕건래반
象曰 往蹇來反 內喜之也.
상왈 왕건래반 내희지야

용기를 가지고 나아갔지만 막힌 길이었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지금은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기쁨과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4.
六四 往蹇來.
육사 왕건래연
象曰 往蹇來連 當位實也.
상왈 왕건래연 당위실야

각자의 자리에서 희망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연대한다.
우리는 함께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서로를 충실하게 섬긴다.

5.
九五 大蹇 朋來.
구오 대건 붕래
象曰 大蹇朋來 以中節也.
상왈 대건붕래 이중절야

나는 큰 어려움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내가 지켜야 할 삶의 가치를 잃지 않았다. 오랜 벗 동지들이 나의 손을 잡기 위해 달려왔다. 

6.
上六 往蹇來 吉 利見大人.
상륙 왕건래석 길 이견대인
象曰 往蹇來碩 志在內也 利見大人 以從貴也.
상왈 왕건래석 지재내야 이견대인 이종귀야

우리는 어려움을 견디며 단단해지고 성장했다. 우리는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고 도왔다.
지혜로운 분을 만났고, 그 분의 지혜를 귀하게 받아 따르고 실천했다.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왔다.



40. ☳☵ 解


解 利西南 无所往 其來 吉 有攸往 吉.
해 이서남 무소왕 기래복 길 유유왕 숙 길.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해방이다.
서남쪽이 좋다지만 더 갈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자. 가서 풀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면 빨리 서두르자.

彖曰 解 險以動 動而免乎險 解.
단왈 해 험이동 동이면호험 해.
解利西南 往得衆也. 其來復吉 乃得中也. 有攸往夙吉 往有功也.
해리서남 왕득중야. 기래복길 내득중야.  유유왕숙길 왕유공야
天地解而雷雨作 雷雨作而百果草木 皆甲拆. 解之時 大矣哉.
천지해이뇌우작 뇌우작이백과초목 개갑탁. 해지시 대의재.

우리는 험난한 길을 걸어와 그 길에서 벗어난다.
서남쪽으로 갔을 때는 시민들의 마음을 얻었고, 돌아와서는 정도를 얻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을 빨리 가자. 해결해야 할 문제를 풀어내자.
하늘과 땅이 풀리는 봄이 오면 번개치고 비 내리지만 온갖 과일과 초목이 껍질을 벗고 새싹이 돋아난다. 해(解)의 시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象曰 雷雨作 解 君子以 赦過宥罪.
상왈 뇌우작 해 군자이 사과유죄

천둥치고 비 내린 뒤에 얼었던 세상이 풀리고 따뜻해지듯이, 우리는 잘못이 있는 사람의 잘못을 따지지 않고 죄지은 사람이라도 관대하게 대하겠다.

1.
初六 无咎.
초육 무구.
象曰 剛柔之際 義无咎也.
상왈 강유지제 의무구야

어려운 일이 풀려간다.
우리는 어려움을 풀어가기 위해 강(剛)과 유(柔)로 입장과 생각의 차이가 있지만 만난다. 

2.
九二 田獲三狐 得黃矢 貞 吉.
구이 전획삼호 득황시 정 길
象曰 九二貞吉 得中道也.
상왈 구이정길 득중도야.

사냥을 나가 여우 세 마리를 잡는 것처럼 나는 황금 화살을 사용해서 풀어야 할 일을 해결하겠다. 황금 화살은 중도의 마음으로 사심없이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을 상징한다. 

3.
六三 負且乘 致寇至 貞 吝.
육삼 부차승 치구지 정 린
象曰 負且乘 亦可醜也 自我致戎 又誰咎也.
상왈 부차승 역가추야 자아치융 우수구야.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하지 않고 자루를 메고 수레를 탔다. 그 자루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그 자루를 노리고 도둑이 달려든다. 이런 일은 나 스스로 불러들였다. 누구를 탓할 수 있나.

4.
九四 解而拇 朋至 斯孚.
구사 해이무 붕지 사부
象曰 解而拇 未當位也.
상왈 해이무 미당위야

싹터오는 새싹을 엄지발가락으로 밟고 있는 것처럼 과거의 힘이 그대로 있어 새것이 자리 잡을 수 없다. 이 발을 치워버리자. 해방 세상을 위해 동지들이 달려올 것이다.

5.
六五 君子維有解 吉 有孚于小人.
육오 군자유유해 길 유부우소인.
象曰 君子有解 小人退也.
상왈 군자유해 소인퇴야

우리들 자신도 어딘가에 묶여 있다. 낡은 의식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의식으로 갱신(更新)했다. 우리의 변화가 입증되자 해방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들이 인정하고 물러났다.

6.
上六 公用射隼于高墉之上 獲之 无不利.
상육 공용사준우고용지상 획지 무불리.
象曰 公用射隼 以解悖也. 
상왈 공용사준 이해패야.

오래 기다려 왔지만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어 높은 담 위에 올라 활을 쏘아 매를 잡았다.

(매를 잡는다는 것은 우리를 얽매고 억압하고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게 막았던) 패악(悖惡)한 집단을 제거하는 것을 상징한다. (나는 매를 잡기 위해 활을 준비하고 때를 기다렸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