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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법가와 법치의 거리 1000년, 그리고 다시 1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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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엘리트를 키워낼 목적으로 설립된 중국정법(政法)대학의 형법연구자 뤄샹교수는 사법고시 준비학원의 ‘일타강사’이기도 하다. 2003년 박사과정시절부터 가계를 돕기 위해 ‘알바’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대학에서 정교수로 승진한 후에는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수십만명의 사법고시 준비생에게 법치주의 이념을 알리는 수단으로는 이 편이 더 효과적이지 않냐는 주위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형법기초 온라인강의가 2020년 중국의 유튜브 삐리삐리에서 갑자기 인기를 끌며 그는 셀럽지식인으로 떠올랐다. 국민적 관심을 끄는 사법적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그의 평론은 가볍게 수천만 뷰를 기록한다. 언론과 정치가 온통 ‘법조인판’인 한국에선 신기할 것도 없지만, 보통사람들이 “변호사와 양의(西醫)는 적게 볼수록 평안하고 행복한 삶”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는 중국사회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벼락같이 유명세를 타게 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에 용모도 준수하고 말재주도 빼어난 그가 허리를 숙이며 겸손하게 답한다. “중국의 시민들이 공정과 정의에 대한 갈증이 심했던 것 아닐까요?” 오해하지 마시길, 그는 조국이나 윤석열, 한동훈과 같은 금수저가 아니라, 후난(湖南)성 촌구석에서 온 가난한 농민의 자식으로 흙수저출신이다. 그리고 대학에 몸담고 있는 체재내 지식인이라 민감한 정치영역의 주제라면 여전히 입도 벙긋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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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의 디테일(法治的細節)>은 작년 연말에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법률에세이이다. 그의 전작 <형법학강의(刑法學講義)>처럼 보통사람의 눈높이에서 형법과 법치의 이모저모를 설명한다. 중국의 전통 형법은 전쟁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유력한데, 최초의 형벌은 전쟁의 패잔병, 반란군, 군기문란자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병형동일(兵刑法同一) 원칙에 의해 외부는 병으로 지배하고 내부는 형벌로 다스렸다. 법률과 도덕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는 법치의 근본전제는, 차선 혹은 차악을 택해서 최악을 피하려는 인간성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역사를 통해 인간이 도덕적 최선이 실현되는 천당을 지상에서 추구할 때, 오히려 최악의 지옥도가 펼쳐졌음을 배웠다고 설명한다. 하이데거가 히틀러를 플라톤이 이상국에서 그린 철학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나치에 협조했다가 비판받았던 것이 좋은 예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원과 같은 ‘객관적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지만, 인간은 절대로 완벽한 원을 그릴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 그의 법률관이다.
그럼에도 중국의 형법은 국민의 생명과 권리를 더 많이 보장하는 선한 방향으로 진화해왔을까? 뤄샹은 과거에 사형제도폐지를 주장했으나 지금은 부득불 그 효력을 인정하고, 범죄자가 그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었을 경우라면, 사형이 범죄자의 선택의지를 존중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한다. 미중 G2국가가 모두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그 현실적인 기능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형법을 개정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사형죄목을 줄여왔기에 1998년에 68개였던 것이 지금은 46개가 됐다. 명청시기의 고대법사상을 반영한 ‘사완(死緩)’이라는 제도도 존재한다. 명청시기에는 오판의 가능성을 경계하여 형집행을 뒤로 미루고,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중앙에서 다시 한번 판단을 했다. 지금은 사형판결 2년후 여죄가 밝혀지지 않으면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복역기간중 사회적 공헌이 있을 경우에는 25년 유기징역으로 다시 감형하는 제도이다. 고위관료들의 심각한 부패에 대해서도, 사형이나 무기징역과 다르게, 감형이나 가석방이 불가능한 진짜 무기징역, 종신감금제도도 존재한다. 17년이라는 장기형을 선고 받고도, 불과 일년 남짓 옥살이를 한 후에 이미 가석방돼 사면을 기다리고 있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사례를 생각하면 이런 제도의 합리성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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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살해범으로 몰려 26년간 수감됐던 쟝시(江西)성의 장위환(張玉環)씨는 2020년 다시 무죄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유일한 증거였던 그의 자백은 강요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백강요죄는 3년이하의 유기징역이고, 5년간 기소가 가능한데, 수사권 남용에 의한 피의자의 인권침해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언론을 통해 의제화하고 있다.
성범죄나 젠더문제와 관련한 사법적 논의는 중국에서도 뜨거운 주목의 대상이다. 여성주의적 시각을 반영한 성중립적 표현을 사용하거나 강간에 대한 판단기준에서 “No means No”라는 동의여부, 반항을 판별하는 객관성을 강화하고 있다. 그루밍처벌을 위한 성동의능력기준연령의 세분화도 그 일환이다. 중국사회도 한국의 N번방사건을 특히 주목했는데, 이미 인터넷을 공공장소로 법률해석하고 있으므로, 악질적인 신종 성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이 가능하다.
중국사회에서 유아나 부녀자를 유괴납치해서 인신밀매하는 행위는 과거 오랜기간 사회문제가 됐다. 올해 장수(江蘇)성 쉬저우(徐州)지역에서, 수십년간 감금된 채로 여덟명의 자식을 낳은 여성이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가난한 농촌지역에서 남자아이로 대를 이어야 한다는 관념과, 신부감을 구하지 못할경우 보쌈이나 매매혼을 하던 구습이 남아서 생겼던 일들이다. 이때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가중처벌에 의해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납치범들뿐 아니라, 이들로부터 아이와 부녀자를 매수한 수요자에 대한 처벌조항이다. 현재는 3년이하의 유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 과거에는 자포자기하고 혼인관계를 받아들이게 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이를 완전히 면책하는 조항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를 감형수준으로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납치범에 비해 처벌이 지나치게 가볍기 때문에, 이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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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시장경제질서 파괴죄에서는 개혁개방이후 큰 혼란속에 차츰 질서를 만들고 자리를 잡아가는 중국 시장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다. 대표적인 항목은 과거 중국에서 자주 문제가 됐던 가짜 식품과 의약품에 대한 처벌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문제가 된 ‘불량식품’중에서 대중의 가장 큰 분노를 불러 일으켰던 것은 안휘성의 가짜분유사건이다. 한 농촌지역에서 100여명 가까운 유아들이 가짜분유를 먹고, 영양실조때문에 머리만 커지고 몸이 성장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이 분유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유해식품은 아니었다. 분유나 분유의 일부를 전분과 설탕, 그리고 우유맛 향신료로 대체하고 속여서 팔았다. 공업용 재료와 같이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 들어간 것은 아니지만, 유아들에게 공급돼야 할 단백질, 지방, 비타민, 미네랄 등을 고르게 섭취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당초 법조문에 기재된 “유해성분”이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적용할 수 없었다. 또, 각 업자들의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 처벌의 기준이 되는 금액(5만위안)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재고생산량 기준으로 미수죄를 적용할 수도 있었고, 법조문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생산자와 판매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
가짜 의약품의 경우에는 불법행위가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한 것이었다는 정반대 이유 때문에 화제가 된 사례도 있다. 공전의 히트작 <나는 약의 신이 아니다(我不是藥神)>라는 영화는 실제 몇가지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다국적 의약회사가 지나치게 비싸게 팔던 글리벡이라는 백혈병치료제를 카피약으로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던 백혈병 환자들의 이야기이다. 정품 수입약은 한화기준으로 수백만원대에 팔렸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구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도의 카피약은 암거래로 수십만원에 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효과를 본 주인공 루용(陸勇)이 총대를 매고 공동구매로 밀수를 한 결과 불과 몇만원에 공급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했다. 인도의 카피약은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고 정식 수입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짜약’에 해당됐고, 루용은 구속됐다. 하지만, 사건 발생 당시에는 “건강에 위해한”이라는 표현이 법조항에 들어 있었기 때문에, 선처를 바라는 여론에 의해서, 해당법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지어져, 수년후 재심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인도의 제약회사에 대금지급을 위해 차명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만 위법이 적용됐다. 나중에 이 문구는 다국적 제약회사의 요구에 의해서 관련 법조항에서 삭제됐으나, 한편으로 소규모 해외구매는 처벌하지 않는 사법당국의 해석이 제시됐다. 물론, 앞서 설명한 루용의 사례는 소규모가 아니었으며, 그의 허가받지 않은 약품판매는 이외에도 ‘불법경영(非法經營)’죄에 해당한다. 이렇게 허가 받지 않은 상업행위는 설사 이윤추구가 아닌 자선 등의 목적이라도 불법에 해당한다. 또, 밀수에 의한 탈세행위도 불법이다. 중국에서 오랜 기간 유행해온 해외명품 대리구매 행위 등도 이에 해당한다. 형법은 징벌수단이지만, 형법의 기초는 도덕적 정당성 위에 있어야 한다는 상식이 있다. 이에따라 검찰 등의 사법당국이 기계적 사법적용을 자제했기 때문에, 영화는 실제와 같이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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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집권시기부터 이어진 미국측의 총공세로 지적재산권과 저작권법에 의한 단속도 중국내에서 강화하는 추세이다. 저작권을 위반한 불법수익의 금액에 따라서 7년이상의 유기징역도 가능하다. 중국인 소비자들의 소득증대와 문화생활 향유 의지가 높아짐에 따라서, 합법적인 구매비중이 많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와 연관이 있는 불법경영죄의 출판조례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를 옥죄거나, 새로운 미디어의 발전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웹소설의 유명저자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인쇄판매했다가 유기징역형을 받은 사례가 있다. 다양한 인터넷 매체들의 글을 포함해서, 출판 검열을 거치지 않은 소규모 독립출판물 시장이 ‘아트북페어(artbook fair)’와 같은 행사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런 출판물들은 해적판이 아니기 때문에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고 입법의도에 명시된 것처럼 출판물 시장질서를 교란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출판과 예술, 대중문화, 심지어 학술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한 경우도 드물기 때문에, 그저 지나치게 경직된 중국의 검열제도를 피해서 소수의 독립문화생산자와 향유자들에게 숨쉴 공간을 마련해 주는 정도이다. 이렇게 처벌받는 사례는 대개 제3자의 고발에 의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고발의 의도와 목적은 출판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피고발자와의 개인적인 원한관계에서 비롯한 보복의 경우가 많아 더욱 안타깝다. 더불어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한한령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때문에 여전히 K-문화상품들이 중국내에서 불법적으로 유통되는 것도 아쉬운 현실이다.
중국은 청조말인 1908년에 도입된 <헌법대강(憲法大綱)>과 1911년에 도입된 <대청신형률(大清新刑律)>에 따라 죄형법정주의를 도입하고, 문명사회 기준으로 지나치게 잔혹한 형벌을 없앰으로써 법을 현대화하기 시작했다. 죄형법정주의는 권력자의 자의가 아니라 법에 명문화된 규정에 따라서만 범법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공권력을 매우 중시하는 권위주의체제의 특성상 “사회관리질서방해죄”안에 죄형법정주의와 충돌하는 악법들이 존재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1979년의 형법에 있던 “건달죄(流氓罪)”이다. 도덕적이고 모호한 어휘를 사용해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시민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 공권력이 남용된 일부지역의 극단적인 경우에는 가벼운 성희롱이나 애정표현이 사형으로, 노상방뇨와 같은 경범죄가 15년의 유기징역과 신장에서의 노동개조라는 매우 위중한 처벌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적 형법은 1997년에 도입됐는데, 이 어처구니없는 법조항은 취소됐지만, 여전히 그 후신인 “소란죄 (寻衅滋事 Picking quarrels and provoking trouble)”가 남아 있다. 기존 법령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보충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고, 지나치게 높은 형량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중국정부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옭아매거나, 공권력이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이유로 시민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전형적인 ‘악법’이다. 몇달전 수저우에서 벌어진 일본의상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당시, 난징에서 중국내의 반일감정을 자극할만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불똥은 엉뚱하게 중국내의 코스프레와 일본문화 애호가들에게 번졌다. 수저우의 일본풍 상점과 식당가로 유명한 한 상업지구에서 일본의상(유타카)을 입고 코스프레 사진을 찍던 한 젊은 여성에게 경찰관이 접근해 ‘토착왜구’라면서 폭언을 퍼붓고 이 소란죄를 적용해 여성을 강제로 구인, 구류했다. 큰 사회적 논란이 일긴했지만, 공권력을 남용한 경찰관은 애국주의 비호여론에 힘입어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인터넷 신상털이(人肉搜索)”는 과거 군중노선으로 민중을 동원하는 온갖 정치운동이나 문화대혁명 시기에 죄명을 목에 걸게 하고, 중인환시리에 조리돌림(游街示众)을 하던 시기의 변형된 유산으로 볼 수도 있다. 지금은 범죄자나 용의자를 군중앞에서 공개적으로 망신주거나 피해를 주는 것은 법이 금지한다. 인터넷에서도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고, 프라이버시 정보를 공개하는 행위는 불법행위이다.
뤄샹의 인기는 “국가여 범죄자들을 엄정히 처벌하여 공정과 정의를 실현하라!”라는 식의 분노여론을 선동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메시지를 통해 얻어진 반응이다. 형법에 대한 위와 같은 대중의 기대는 국가권력의 작용을 미화하는 방식의 선전과 함께 증폭한다. 과거 혹은 현재의 한국권위정부의 소위 사정정국도 이런 포퓰리즘에 기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법치의 정신이자, 형법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공권력을 구속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중국의 고대형법을 집대성했던 법가(法家)는 죄형법정주의를 구현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법은 권력유지를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법에 상술한 독립적 가치를 부여하는 법치(法治)와는 엄밀히 구분돼야 한다. 사필귀정인지 법가를 대표하는 진(秦)의 상앙(商鞅)과 이사(李斯)모두 자신들이 만든 혹독한 형법에 의해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2천년전 진시황은 법가에 기반해 중국대륙을 통일했고, 이로부터 1000여년이 지난 1215년 영국에 대헌장이 등장하면서 절대권력을 구속하려는 근대적 법치정신의 초석이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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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상이 존경하는 중국 근현대법학의 태두 션쟈번(沈家本)은 100년전에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법가는 전제통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아서, 민중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 반대로 법치의 중요한 명제중 하나는 권력을 구속함으로써 민중에게 자유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헌법대강>과 <대청신형률>을 기초한 장본인이다. 법치를 유난히 사랑하는 한중양국의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