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2월 15일

26. 혁(革 ䷰)과 정(鼎 ䷱)

- 正位凝命 열정과 냉정 사이의 혁명, 혁명의 응집과 안정






곤괘(困卦)에서부터 시작된 사회적 고통과 차별, 빈곤은 정괘(井卦)의 마을 공동체 운동의 힘만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닙니다.
사회는 조금 더 구조적인 혁신(革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혁괘(革卦)와 정괘(鼎卦)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저는 서른 살이 되던 해에 농촌으로 와서 오랫동안 좋은 농민이 되고 아름다운 마을 공동체를 이루어내는 낭만적인 꿈을 꾸며 살았습니다. 농업, 농촌이 몰락해가는 시대적 추세를 완전히 거슬러서 살았기에 무언가를 이루고 나면 다음 해에 조금 더 나은 상황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이룬 것을 지켜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좋은 마을 공동체 운동을 이끌었지만, 내가 한 일을 보편적 모델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하게 느끼곤 했습니다.
정괘(井卦)의 마을 공동체 운동을 한 사람은 혁괘(革卦)의 변화를 꿈꿀 수 밖에 없습니다.
이 길에 선 사람은 대부분 정치 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국가를 넘어서는 상상, 시간을 넘나드는 상상이 혁명의 전략으로 다가왔습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을 한국인을 넘어 동아시아인이라고 정의했고, 고대와 현대의 시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의식 혁명에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제가 동아시아 인문 운동가가 되는 장면입니다.

혁괘(革卦)는 아름다운 사자성어로 넘쳐나는 이야기입니다.
기일내부(己日乃孚), 치력명시(治歷明時),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제 눈에 들어오는 하나의 글은 ‘수화상식(水火相息)’입니다.
혁괘(革卦)는 택화혁(澤火革)이라고 읽습니다.
윗 부분의 택(澤)은 연못이어서 물의 마음입니다.
아래 부분의 화(火)는 불의 마음입니다.
혁명에는 이 두 마음이 함께 작용합니다.
불의 마음은 열정이고, 물의 마음은 냉정입니다.
불의 마음을 담은 1,2,3효는 혁명가의 열정으로 넘쳐 납니다.
물의 마음을 담은 4,5,6효는 혁명가의 냉정한 자기 성찰의 이야기입니다.
이 둘은 분리된 이야기가 아니라 물과 불의 호흡,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수화상식(水火相息)은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고가는 혁명입니다.

‘문명이열(文明以說), 문명 전환의 희열’이라는 말도 가슴에 아리게 새겨집니다.
혁명은 사회의 구조와 제도, 인간 의식의 진화를 불러옵니다.
이런 혁명이 이루어질 때 인류가 느낀 기쁨과 희열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최근에 니카라구아 여행을 현경 선생님과 함께 했습니다.
현경 선생님은 20대 때 혁명에 이제 막 성공한 니카라구아에 학교의 학생 대표로 와서 그 현장을 지켜보게 됩니다. 그곳에서 지내던 2주 동안 너무 기뻐서 거의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혁명은 이렇게 우리 마음을 요동치게 하고 기쁨에 빠지게 합니다.
그런데, 혁명에는 냉정이 하나 더 필요합니다.
좋은 제도를 안착시키고, 무엇보다 의식 진화라는 과제에서 자기를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혁명은 이 냉정 단계에서 실패하고 혁명의 우상화가 진행됩니다.

정괘(鼎卦)의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합니다.
정(鼎)은 혁명을 우상화하지 않고 빠른 시간에 상징(象徵)으로 대체합니다.
사람에 갇히면 혁명은 실패하게 됩니다.
정(鼎)은 아름다운 상징을 만들고, 그 상징의 의미를 하늘과 연결시킵니다.
정괘(鼎卦)의 세발달린 솥은 혁명이 꿈꾸는 아름다운 미래의 상징입니다.

‘우리는 지금 세발달린 솥처럼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합시다.
무엇보다 우리는 먹는 문제를 해결할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재들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도록 지지하고 지원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늘과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모여 하늘에 제사드리고, 새로운 삶의 기쁨을 나눕시다.‘

세발달린 솥 정(鼎) 안에 담겨있는 혁명의 꿈입니다.
혁명의 열정과 냉정 사이를 오고가며 결국 사회를 안정시키는 정괘(鼎卦)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혁명사를 읽어보면 혁명 뒤의 권력 투쟁이 더 치열합니다.
정괘(鼎卦)도 그 과정을 다 거쳐 갑니다.
그 치열한 권력 투쟁의 과정을 거치며 결국 정괘(鼎卦)가 성공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공정함,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한 조율 능력입니다.
혁명의 열정과 냉정을 거치며 의식 혁명에 성공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지혜입니다.

41번 손괘, 42번 익괘에서부터 시작되어 49번 혁괘, 50번 정괘로 이어지는 이 열 개의 이야기는 대부분 사회 변화를 위한 노력을 담고 있습니다.
그 오랜 투쟁의 과정에 정점을 찍는 이야기가 혁괘(革卦)와 정괘(鼎卦)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49. ☱☲ 革 택화혁

己日 乃孚 元亨 利貞 悔亡.
혁 기일 내부 원형 이정 회망

기일(己日), 누구나 이 때구나 하는 그 날이 오면.

彖曰 革 水火相息 二女同居 其志不相得 曰革. 己日乃孚 革而信之.
단왈 혁 수화상식 이녀동거 기지불상득 왈혁. 기일내부 혁이신지
文明以說 大亨以正 革而當 其悔乃亡.
문명이열 대형이정 혁이당 기회내망
天地革而四時成 湯武革命 順乎天而應乎人 革之時 大矣哉.
천지혁이사시성 탕무혁명 순호천이응호인 혁지시 대의재

물은 불을 꺼트리고, 불은 물을 말리지만 불과 물은 사라지지 않고 다시 돌아온다. 물과 불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듯이 서로를 살리고 소멸시킨다. (水火相息)
두 사람이 함께 살지만 서로 마음을 얻지 못한다.
혁명은 이렇게 소멸하고 살려내고, 서로 갈등하며 함께 사는 길을 찾는다.
누구나 이 때구나 하는 그 날이 왔다.
오래된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태 문명을 열어 모두가 기뻐한다. (文明以說)
하늘과 땅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정의로운 세상이다.
누구나 혁명을 환영했고, 슬픔이 사라졌다.
천지의 혁명은 계절이 조화롭게 순환하게 하고, 인간 세상의 혁명(탕왕과 무왕의 혁명)은 하늘을 따르는 사람들이 인민의 지지를 받게 된다.
혁(革)의 때가 아름답구나.

象曰 澤中有火 革 君子以 治歷明時.
상왈 택중유화 혁 군자이 치력명시

연못 속에서 불길이 타오르듯이, 나는 내 마음 안에 타오르는 불길로 역사를 치유하고 새 시대를 밝히겠다.

1.
初九 鞏用黃牛之革.
초구 공용황우지혁
象曰 鞏用黃牛 不可以有爲也.
상왈 공용황우 불가이유위야

황소가죽끈으로 나를 단단히 묶는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2.
六二 己日 乃革之 征 吉 无咎.
육이 기일 내혁지 정 길 무구
象曰 己日革之 行有嘉也.
상왈 기일혁지 행유가야

혁명의 그 날,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자. 우리에게 축복이 있을 것이다.

3.
九三 征凶 貞厲 革言 三就 有孚.
구삼 정흉 정려 혁언 삼취 유부
象曰 革言三就 又何之矣.
상왈 혁언삼취 우하지의

조심해야 한다. 일단 멈추자. 우리는 세 번을 모여 의논하고 합의했다. 우리의 이런 신중함이 인민의 지지를 받았다. ‘지금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늘 질문한다.

4.
九四 悔亡 有孚 改命 吉.
구사 회망 유부 개명 길
象曰 改命之吉 信志也.
상왈 개명지길 신지야

나는 혁명가의 열정이 아니라 개혁가의 냉정을 사용하기에 무엇을 개혁해야 할지 알고 있다.
제도를 혁신하고 사회 구조를 바꾼다. 인민이 나의 개혁 의지를 신뢰한다.

5.
九五 大人虎變 未占 有孚.
구오 대인호변 미점 유부
象曰 大人虎變 其文炳也.
상왈 대인호변 기문병야

털갈이를 한 호랑이의 무늬가 아름답다.
우리도 호랑이처럼 아름답게 우리 삶과 의식을 혁신(革新)하자.
이런 혁명은 길흉을 점칠 필요도 없다.

6.
上六 君子豹變 小人革面 征 凶 居貞 吉.
상륙 군자표변 소인혁면 정 흉 거정 길
象曰 君子豹變 其文蔚也 小人革面 順以從君也.
상왈 군자표변 기문위야 소인혁면 순이종군야

표범의 털 무늬가 짙다.
우리도 표범처럼 짙게 우리 자신을 바꾸자.
우리가 아무리 소인배처럼 살아 왔다지만 지금은 혁명의 의미를 마주해야 한다.
삶과 의식을 개혁한 사람들을 따르자.

50. ☲☴ 鼎 화풍정

鼎 元(吉)亨.
정 원(길)형

세발 달린 솥은 크다.

彖曰 鼎 也. 以木巽火 亨飪也 聖人亨 以享上帝 而大亨 以養聖賢.
단왈 정 상야. 이목손화 형임야 성인형 이향상제 이대형 이양성현
巽而耳目聰明 柔進而上行 得中而應乎剛 是以元亨.
손이이목총명 유진이상행 득중이응호강 시이원형

세발 달린 솥인 정(鼎)은 새로운 나라의 상징이다.
나무에 불을 붙여 솥에 담은 음식을 삶고 익힌다.
우리가 요리한 이 음식을 하늘님께 먼저 드리고, 미래의 인재가 될 성현들에게도 드린다.
우리는 혁명 이후의 안정이라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몸과 마음을 낮추고 귀와 눈을 열어 인민의 마음을 이해하는 총명함이 필요하다. 우리는 혁명의 이상이라는 높은 곳을 향해 부드럽고 유연하게 나아간다.
유연함의 지혜를 사용해서 중심을 지키고 강한 힘과도 조화를 이룬다.
이렇게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것을 ‘원형(元亨)’이라고 한다.

象曰 木上有火 鼎 君子以 正位凝命.
상왈 목상유화 정 군자이 정위응명

나무에 불을 붙여 세발 달린 솥으로 음식을 해서 나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과업을 해내겠다.
우리에게 주어진 혁명의 선물을 제도와 삶으로 응집(凝集)해 내겠다.

1.
初六 鼎顚趾 利出否 得妾 以其子无咎.
초륙 정전지 이출부 득첩 이기자무구
象曰 鼎顚趾 未悖也. 利出否 以從貴也.
象曰 정전지 미패야. 이출부 이종귀야

솥이 엎어졌다. 더러운 찌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솥을 엎었더라도 잘못한 일은 아니다. 더러운 것을 씻어내야 귀한 음식 재료를 솥에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본 부인의 자식이 아니라 첩의 자식이라도 괜찮다. 그가 귀한 사람이라면...

2.
九二 鼎有實 我仇有疾 不我能卽 吉.
구이 정유실 아구유질 불아능즉 길
象曰 鼎有實 愼所之也. 我仇有疾 終无尤也.
상왈 정유실 신소지야. 아구유질 종무우야

솥에 좋은 음식이 가득하다. 이 음식은 신중하게 꼭 필요한 곳에 나누어야 한다.
나를 병들게 하고 시험에 빠지게 하는 친구가 있다. 원수 같은데 끌린다.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막아냈다.

3.
九三 鼎耳革 其行塞 雉膏不食 方雨 虧悔終吉.
구삼 정이혁 기행색 치고불식 방우 휴회종길
象曰 鼎耳革 失其義也.
상왈 정이혁 실기의야

솥의 귀가 떨어져 나가 솥을 고쳐야 한다. 솥을 잔치 자리까지 옮길 수 없어 꿩고기 요리를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없다. 솥의 귀가 떨어져 나간 것은 혁명의 대의를 잃었다는 상징이다. 비가 온다. 그 비를 맞으며 나를 돌아본다.

4.
九四 鼎折足 覆公餗 其形渥 凶.
구사 정절족 복공속 기형악 흉
象曰 覆公餗 信如何也.
상왈 복공속 신여하야

솥 다리가 부러졌다. 우리가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할 음식이 쏟아졌다. 내 꼴이 형편없다, 이런 나를 누가 믿어주겠나.

5.
六五 鼎黃耳金鉉 利貞.
육오 정황이금현 이정
象曰 鼎黃耳 中以爲實也.
상왈 정황이 중이위실야

솥에 황금 귀와 고리가 있다. 공정하게 실행하고 내실 있게 변화를 이끌어낸다.

6.
上九 鼎玉鉉 大吉 无不利.
상구 정옥현 대길 무불리
象曰 玉鉉在上 剛柔節也.
상왈 옥현재상 강유절야

솥의 귀에 옥으로 만든 고리가 위에 달렸다. 꼭 필요한 곳을 찾아 보살피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잘 조절한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