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2월 29일

27. 진(震 ䷲)과 간(艮 ䷳)

- 震來恐懼/艮身止躬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






진괘(震卦)와 간괘(艮卦)는 흔들리는 사람과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역은 대립되는 두 이야기를 하나로 이어서 보는 양면성을 연습하는 철학 도구입니다.
흔들림이 있어 멈춤이 있고 멈춤이 있어 흔들림이 있습니다. 흔들림과 멈춤은 서로 기대 있습니다. 삶이란 흔들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멈춤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로만 이야기 할 수 없는 양면성이 늘 통합되어 있습니다.

진(震)은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진(震)이 발딛고 있는 땅은 지진(地震)이 난 것처럼 흔들립니다.
모든 변화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서 지금 삶의 조건을 흔들지만 새로운 삶의 길을 새로 세우기도 합니다. 변화를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고, 전부 받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진괘(震卦)는 지금 우리 시대를 상징하는 괘이기도 합니다.
사회는 늘 변화하고 있고, 누구도 오랫동안 살았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변화는 그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사람과 변화의 흐름에 내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일 만한 변화가 어떤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시대는 누구도 오랫동안 경험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 수 없습니다.
늘 새로운 물결처럼 변화가 밀려오고 누구나 삶을 새롭게 익혀야 합니다.
진괘(震卦)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은 이 변화의 물결을 피하기도 하고, 물결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제사드리는 술 비창을 흘리지 않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은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균형을 잡고 있는 사람입니다.

간괘(艮卦)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변화, 누구에게나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멈추는 사람입니다.
멈출때 멈추고 나아가야 할때 나아가는 간(艮)은 자기 자리를 넘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변화할 수 밖에 없더라도 가능한 속도를 늦춰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길 바랍니다.
이런 세상과 대립하는 간(艮)은 고통스럽습니다.
세상과 그는 적대합니다. 간(艮)은 이런 느낌을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변화는 간(艮)의 주위를 물결이 휩쓸고 가듯 다 쓸어가 버립니다.
간(艮)은 간신(艱辛)히 자신의 몸 하나를 지켜냅니다. (艮其身 止諸躬也)
오랫동안 투쟁하듯이 살아왔던 간(艮)은 몸과 마음에 큰 상처를 입게 됩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기도하며 세상을 마무리하고 떠나고 싶어합니다.
깊은 산 속에서 세상에 대한 지나친 욕망없이 소박한 삶을 아름답게 살고 싶었던 간(艮)의 꿈은 변화하지 않는 누구도 용납하지 않는 폭력적인 세상에서 길을 잃습니다.
그러나, 간의 멈춤은 당장 주변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는듯 보이지만  넓게보면 그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연결되게 됩니다. 간(艮)은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넉넉한 마음을 가집니다.

정농회라는 유기농업 단체가 있습니다.
제가 청년 시절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았던 조직입니다.
정농회의 농부 스승님들처럼 살고 싶었고, 온 마음을 다해 그 길을 걷고 싶었습니다.
아마 제가 안정적인 농업 기반을 가지고 있었으면 지금도 여전히 농민이었을 겁니다.
스승님들의 삶은 세상의 어떤 물결 앞에서도 흔들림없이 굳건히 자신을 지켜내셨습니다.
저는 그런 힘이 없었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변화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흔들림과 멈춤의 양쪽을 오고가며 살았습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변화를 익혔고, 또 세상과 맞서기도 했습니다.
흔들리면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익혔습니다.




51. ☳☳ 震


震 亨. 震來虩虩 笑言啞啞. 震驚百里 不喪匕鬯.

진 형  진래혁혁 소언액액. 진경백리 불상비창

흔들림. 발딛고 있는 땅이 흔들린다. 두렵다. 그런데, 웃음꽃이 핀다. 백리에 이르는 땅이 흔들렸지만 나는 하늘 제사에 마음을 모으고 제사 술 비창(匕鬯)을 흘리지 않았다.

彖曰 震 亨. 震來虩虩 恐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 震驚百里 驚遠而懼邇也.
단왈 진 형. 진래혁혁 공치복야 소언액액 후유칙야.  진경백리 경원이구이야
出可以守宗廟社稷 以爲祭主也.
출가이수종묘사직 이위제주야

흔들림이 두려웠지만 그 흔들림은 복이 되는 일이었다. 두려운데 웃을 수 있었던 것은 흔들림이 새로운 삶의 규칙, 일상을 다시 세우기 때문이다. 백리에 이르는 땅이 흔들리게 되면 멀리 있는 사람들은 놀라고, 가까운 곳의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된다.
나는 두렵지만 제주(祭主)가 되어 종묘사직의 국가를 위해 나아갈 수 있다.

象曰 洊雷震 君子以 恐懼脩省.
상왈 천뇌진 군자이 공구수생

번개가 치고 우레가 울린다. 번개치는 하늘을 보며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나를 살핀다.

1.
初九 震來虩 後笑言啞啞 吉.
초구 진래혁 후소언아아 길
象曰 震來虩虩 恐致福也 笑言啞啞 後有則也.
상왈 진래혁혁 공치복야 소언아아 후유칙야

벼락이 쳐서 놀라지만 그 뒤에는 웃음꽃이 핀다. 두려움이 복이 되고 새로운 삶의 규칙, 일상이 이루어지기에 웃을 수 있다.

2.
六二 震來厲 億喪貝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
육이 진래려 억상패 제우구능 물축 칠일득
象曰 震來厲 乘剛也.
상왈 진래려 승강야

위험할 정도로 흔들린다. 많은 재산을 잃게 된다. 높은 산으로 피한다. 잃은 것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7일이 지나면 다시 돌아온다.
이런 위험과 재난을 겪는 이유는 내 삶이 요동치는 흔들림 위에 타고 있기 때문이다.

3.
六三 震蘇蘇 震行 无眚.  
육삼 진소소 진행 무생
象曰 震蘇蘇 位不當也.
상왈 진소소 위부당야

강한 흔들림에서 조금 멀어졌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어디에 자리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서 재난을 벗어났다.

4.
九四 震 遂泥.
구사 진 수니
象曰 震遂泥 未光也.
상왈 진수니 미광야

진창에 빠졌다. 나는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읽었다. 밝은 지혜가 없었다.

5.
九五 震 往來厲 億 无喪有事.
구오 진 왕래려 억 무상유사
象曰 震往來厲 危行也 其事在中 大无喪也.
상왈 진왕래려 위행야 기사재중 대무상야

흔들림 속에서 조심조심 오고간다. 상황을 잘 살핀다. 하늘 제사에 드리는 술을 흘리지 않고 실수없이 제사를 지냈다. 나는 제사에 온 마음을 다하고 중심을 흩트리지 않고 균형을 잡고 있었다.

6.
上六 震索索 視矍矍 征 凶. 震不于其躬 于其鄰 无咎 婚媾 有言.
상륙 진삭삭 시확확 정 흉. 진불우기궁 우기린 무구 혼구 유언
象曰 震索索 中未得也 雖凶无咎 畏鄰戒也.
상왈 진삭삭 중미득야 수흉무구 외린계야

다리가 후들거린다. 눈을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꼼짝할 수 없다.
벼락이 내 몸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웃에게 떨어졌다. 친척들은 나에게 투덜거린다.
나의 이 두려움은 내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흔들림 속에서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웃이 겪는 고통을 보며 조심할 수 있었다.



52. ☶☶ 艮


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
간기배 불획기신 행기정 불견기인 무구

멈춤. 등에서 멈춘다. 나는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몸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없다. 마당을 지나가지만 사람들은 나를 보지 못한다.

彖曰 艮 止也. 時止則止 時行則行 動靜不失其時 其道光明.
단왈 간 지야 시지즉지 시행즉행 동정불실기시 기도광명
艮其止 止其所也. 上下敵應 不相與也. 是以不獲其身行其庭不見其人无咎也.
간기지 지기소야. 상하적응 불상여야. 시이불획기신항기정불견기인무구야

간(艮)은 멈춤이다. 멈춰야 할 때에 멈추고 가야 할 때 간다. 움직일 때와 머무를 때를 안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춘다. 빛난다.
세상 사람들과 나는 서로 거부하고 함께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나를 잡을 수 없고, 마당을 지나가도 보지 못한다.

象曰 兼山 艮 君子以 思不出其位.
상왈 겸산 간 군자이 사불출기위

산 너머 또 산이 있다.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서 생각하지 않는다.

1.
初六 艮其趾 无咎 利永貞.
초륙 간기지 무구 이영정
象曰 艮其趾 未失正也.
상왈 간기지 미실정야

발가락에 멈춘다. 나는 욕망에 흔들리지 않았고 바르게 살았다.

2.
六二 艮其腓 不拯其隨 其心不快.
육이 간기비 불증기수 기심불쾌
象曰 不拯其隨 未退聽也.
상왈 불증기수 미퇴청야

장딴지처럼 나는 멈추지 못하고 따라 가고 있다. 원하지 않는데 따라가는 것이 힘들다.
그는 나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3.
九三 艮其限 列其夤 厲薰心.
구삼 간기한 열기인 여훈심
象曰 艮其限 危薰心也.
상왈 간기한 위훈심야

더 이상 따라갈 수 없다. 여기서는 멈춰야 한다. 허리가 끊어지는 것처럼 위험하고 애탄다.

4.
六四 艮其身 无咎.
육사 간기신 무구
象曰 艮其身 止諸躬也.
상왈 간기신 지저궁야

내 몸 하나 간신(艱辛)히 지켰다.

5.
六五 艮其輔 言有序 悔亡.
육오 간기보 언유서 회망
象曰 艮其輔 以中 正也.
상왈 간기보 이중 정야

입을 닫는다. 말할 때는 조리있게 한다. 입을 닫겠다는 것은 지나치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6.
上九 敦艮 吉.
상구 돈간 길
象曰 敦艮之吉 以厚終也.
상왈 돈간지길 이후종야

나는 고요하다. 이대로 머무르다 아름답게 마치고 싶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