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3월 15일

시역 28. 점(漸 ䷴)과 귀매(歸妹 ䷵)

- 鴻漸/虛筐 결혼, 기러기처럼, 빈 광주리처럼






진(震)과 간(艮)은 흔들림과 흔들리지 않음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한발씩 찾아가게 됩니다.
점괘(漸卦)는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길을 찾아가는 사람이고, 귀매(歸妹)는 그렇게 찾아간 길에서 허무를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점(漸)과 귀매(歸妹)는 결혼을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주역은 상징의 이야기여서 기록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 하는 것처럼’ 으로 읽어야 합니다.
결혼은 인간 삶의 근원적 가치를 담고 있는 중요한 상징입니다.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하고, 결혼은 사랑을 위협합니다.
점괘(漸卦)와 귀매(歸妹)괘는 이 양면성을 통해 대립된 것에서 중용의 길을 걷는 어려움을 보여줍니다.

점(漸)과 귀매(歸妹)의 주체는 여성입니다.
여성들에게 결혼은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신중할 수 밖에 없고 오랫동안 여성들은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점괘(漸卦)의 상징은 기러기입니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 하고 한쪽이 먼저 죽으면 홀로 살아갑니다. 하늘을 나는 기러기 무리는 한 가족입니다.
기러기는 겨울을 한반도에서 보내고 봄이 되면 떠나가는데, 기러기 가족 중 하나가 아프거나 상처를 입어 날지 못하면 그들이 기다릴 수 있는 마지막 시간까지 기다립니다. 그들은 운명 공동체의 가족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운명공동체의 가족이 어느 날 하루 아침에 만들어 지는 것은 아닙니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됩니다.
가족을 지켜내고 싶었지만 아내와 남편이 다 지켜내지 못하기도 합니다.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버리거나 떠나 보낼 수 밖에 없는 고통을 겪기도 합니다.
성격이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러기가 나무 가지에 앉았다’라고 표현합니다.
기러기는 발이 넓어서 갯벌이나 들판에 앉는 새인데, 결혼 생활은 기러기가 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것처럼 불안정합니다.
이런 고통과 불안정을 두 사람이 지혜롭게 극복해 나가면서 가정의 기반이 안정되게 되고, 그들에게도 기다리던 아이가 찾아옵니다.
기러기가 하늘을 납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질서를 찾아 먼 길을 날아 함께 갑니다.
점괘(漸卦) 6효의 원문은 홍점우육(鴻漸于陸)인데, 홍점우규(鴻漸于逵)라고 읽고 싶습니다.
홍점우육(鴻漸于陸)은 땅에 자리잡고 있을 때이고, 홍점우규(鴻漸于逵)는 하늘을 날아 먼 길을 가는 모습입니다. 마음을 모은 기러기 기족은 이제 먼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기러기의 깃털이 빛을 받아 빛납니다.

귀매(歸妹)는 결혼 속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갑니다.
가부장제 속의 결혼이 가지는 모순을 하나 하나 드러냅니다.
여성에게 결혼이 행복한 일일 수 없습니다.
귀매(歸妹)의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만난 관계가 아닙니다.
그녀의 결혼은 자기 의지로 하는 사랑이기보다는 정략적이고, 거래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한 눈을 감고 살아야 하듯이 볼 것과 안 볼 것을 가려서 봐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다 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은 마치 감옥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그림처럼 아름다운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산다는 결혼의 상상은 처음부터 신화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그 슬픔을 품에 안고 이 모순을 자각하며 사는 여성입니다.
그녀는 결혼을 통해 행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녀가 맡고 있는 삶을 성실하게 살고 가족을 보살폈습니다.
그 자체로 고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은 텅 빈 광주리를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혼은 이 광주리에 아무 것도 채워주지 않았습니다.



53. ☴☶ 漸

女歸吉 利貞.
점 여귀길 이정

그녀는 하나 하나 조금씩 조금씩 결혼을 준비한다.

彖曰 漸之進也 女歸吉也. 進得位 往有功也. 進以正 可以正邦也. 其位 剛得中也.
단왈 점지진야 여귀길야. 진득위 왕유공야.  진이정 가이정방야. 기위 강득중야
止而巽 動不窮也.
지이손 동불궁야

한발 한발 나아간다. 그녀가 결혼을 준비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아가며 적절한 자리를 찾고 실력을 입증한다.
바르게 나아가기에 세상을 바로 세울 수 있다. 그녀는 강하고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멈출 때 멈추고, 받아들일 것은 부드럽게 받아들여 우리의 움직임은 궁지에 빠지지 않는다.

象曰 山上有木 漸 君子以 居賢德善俗.
상왈 산상유목 점 군자이 거현덕선속

산 위의 나무처럼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자란다.
지혜로운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조금씩 조금씩 좋은 사회를 위한 문화 풍속을 만들어 간다.

1.
初六 鴻漸于干 小子厲 有言无咎.
초륙 홍점우간 소자려 유언무구
象曰 小子之厲 義无咎也.
상왈 소자지려 의무구야

어린 기러기가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서 물가에 서 있다. 나는 지금 두렵다.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는 나의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다. 나는 주위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만 조금씩 나아가기 위한 필요한 조언으로 받아들이겠다.

2.
六二 鴻漸于磐 飮食衎衎 吉.
육이 홍점우반 음식간간 길
象曰 飮食衎衎 不素飽也.
상왈 음식간간 불소포야

기러기 가족이 반석 위에서 음식을 쪼아 먹는다.
즐겁게 먹지만 배부르게 먹는 것은 아니다. 알맞게 먹고 서로 사랑한다.

3.
九三 鴻漸于陸 夫征 不復 婦孕 不育 凶 利禦寇.
구삼 홍점우륙 부정 불복 부잉 불육 흉 이어구
象曰 夫征不復 離羣 醜也. 婦孕不育 失其道也. 利用禦寇 順相保也.
상왈 부정불복 이군 추야. 부잉불육 실기도야. 이용어구 순상보야

기러기가 육지 깊숙이 들어왔다.
남편은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고, 아내는 아이를 가졌지만 낳아서 기를 수 없다.
삶의 고통이 도적처럼 찾아왔다.
남자는 가족을 떠나고, 여자는 아내의 길(婦道)을 잃었다.
삶에 찾아온 고통을 함께 힘을 모아 이겨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4.
六四 鴻漸于木 或得其桷 无咎.
육사 홍점우목 혹득기각 무구
象曰 或得其桷 順以巽也.
상왈 혹득기각 순이손야

기러기가 나무 가지 위에 앉았다.
펼쳐진 발로 나무 가지에 앉는 것은 불편하다.
어떻게 해서 판판한 나무 가지를 찾았다. 가족을 지켜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5.
九五 鴻漸于陵 婦三歲 不孕 終莫之勝 吉.
구오 홍점우능 부삼세 불잉 종막지승 길
象曰 終莫之勝吉 得所願也.
상왈 종막지승길 득소원야

기러기가 갯벌에서 가깝고 살기 좋은 언덕 위에 집을 짓는다.
아내는 3년 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우리는 함께 노력했고 결국 아이를 가졌다.
한발씩 한발씩 나아가면 결국 어떤 것도 우리의 소원과 열망을 막지 못한다.

6.
上九 鴻漸于陸(逵) 其羽可用爲儀 吉.
상구 홍점우륙(규) 기우가용위의 길
象曰 其羽可用爲儀吉 不可亂也.
상왈 기우가용위의길 불가난야

기러기가 하늘 길(逵)을 난다.
줄지어 하늘을 나는 날개 짓이 아름답다.



54. ☳☱ 歸妹


歸妹 征 凶 无攸利.
귀매 정 흉 무유리

그녀의 결혼은 불행하다. 차라리 하지 않았더라면.

彖曰 歸妹 天地之大義也. 天地不交而萬物 不興 歸妹 人之終始也.
단왈 귀매 천지지대의야. 천지불교이만물 불흥 귀매 인지종시야
說以動 所歸妹也. 征凶 位不當也. 无攸利 柔乘剛也.
설이동 소귀매야. 정흉 위부당야. 무유리 유승강야

결혼은 하늘과 땅의 큰 뜻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지 않으면 세상 만물이 번성할 수 없듯이, 결혼은 인간 삶의 시작과 끝, 전부이다.
결혼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고 우리가 살아 숨쉬고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도 결혼이 불행하고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부부가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서로를 향한 부드러운 사랑보다는 강한 성적 욕망과 지배욕 위에 있기 때문이다.

象曰 澤上有雷 歸妹 君子以 永終 知敝.
상왈 택상유뢰 귀매 군자이 영종 지폐

연못 위로 우레가 치는 것처럼 우리는 성(性)의 기쁨을 나눈다.
우리의 사랑이 오래 이어지길 원하고 우리가 풀어야 할 모순과 폐습(弊習)이 무엇인지 안다.

1.
初九 歸妹以娣 跛能履 征吉.
초구 귀매이제 파능리 정길
象曰 歸妹以娣 以恒也 跛能履吉 相承也.
상왈 귀매이제 이항야 파능리길 상승야

언니와 함께 한 남자와 결혼했다. 절뚝거리며 딸려가는 것 같았다.
이런 결혼은 오래된 풍습이고, 함께 남편을 모시고 가족 간의 연대를 깨지 않기 위한 목적이다.

2.
九二 眇能視 利幽人之貞.
구이 묘능시 이유인지정
象曰 利幽人之貞 未變常也.
상왈 이유인지정 미변상야

애꾸눈으로 보는 것처럼,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다 보려고 하지 않는다.
결혼 생활은 어쩌면 감옥에 갇혀 사는 것과 같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빛을 감추고 있을 뿐 어둡지 않다.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3.
六三 歸妹以須 反歸以娣.
육삼 귀매이수 반귀이제
象曰 歸妹以須 未當也.
상왈 귀매이수 미당야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했고, 지금은 헤어졌다.
그와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다.

4.
九四 歸妹愆期 遲歸有時.
구사 귀매건기 지귀유시
象曰 愆期之志 有待而行也.
상왈 건기지지 유대이행야

결혼할 때가 되었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만날 때가 있을 것이고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겠다.

5.
六五 帝乙歸妹 其君之袂 不如其娣之袂 良 月幾望 吉.
륙오 제을귀매 기군지몌 불여기제지몌 양 월기망 길
象曰 帝乙歸妹不如其娣之袂良也 其位在中 以貴行也.
상왈 제을귀매불여기제지몌량야 기위재중 이귀행야

제을(帝乙) 임금님이 딸을 시집보낸다.
그녀의 옷소매가 함께 가는 동생보다 화려하지 않다.
그녀는 달이 보름에 가깝듯이 풍만하고 아름답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결혼의 의미에 맞는 중심을 잡고 있고, 자기를 낮추면서도 고귀함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6.
上六 女承筐无實 士刲羊无血 无攸利.
상륙 여승광무실 사규양무혈 무유리
象曰 上六无實 承虛筐也.
상왈 상륙무실 승허광야

그녀는 빈 광주리를 들고 서있다. 그는 양을 칼로 찔렀지만 피가 흐르지 않았다.
텅 빈 광주리처럼 우리는 아무 것도 채울 수 없었고, 결혼할 수 없었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