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3년 10월 20일

3. 세상 모든 식물들에게 (1)




사진 출처: 효원, 인스타그램 @hy0cean




안녕, 식물들아. 날이 갑작스레 추워졌어. 추분을 넘어 한로도 지나니 6시쯤 해도 확 지고 말이야. 밤낮 길이가 달라지고 있는 게 실감나는 요즘이야. 내 머릿 속에서 ‘환경’이라는 단어가 막연히 삶의 공간과 분리되어있던 시절엔 ‘자연’하면 너희부터 떠올렸었어. 배경처럼 늘 있는 너희. 지구 내 모든 생명들의 무게를 더해보면 그 중 너희 무게가 80%를 차지한다며? 너무 당연하게 있어서 그저 우리가 사용하는 자원, 식재료, 사물쯤으로 치부되던 너희.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란 속담이 있던 것만 봐도 네가 얼마나 수동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해왔는지 느껴져.

난 요즘 네 세계에 눈뜨게 되었어. 물에서 뭍으로 올라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역사를 만들어왔는지, 너희의 얘기를 듣고 보니 짠하기도, 경이롭게도 느껴지더라. 4억 4천만년 전 처음 뭍으로 올라와 지금의 산소들을 폭발적으로 만들어 내고, 물이 있는 환경에서부터 독립하기 위해 관다발, 잎, 씨앗, 꽃을 순서대로 발명해낸 너희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란 말,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해. 우린 너희가 태양열을 받아 만드는 생산 에너지들에 의존하고 있는 존재인데. 그리고 몸이 고정된 너희는 종자를 멀리까지 퍼뜨리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과 도움을 주고받는데 그 틈에 높고 낮음이 어디 있길래 우린 ‘만물의 영장’이란 말을 쉽게 쓰는걸까. 개체수가 성공적으로 늘어서라면, 만물의 영장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겠지. 인간만이 욕망하고 사고하는 존재라는 관점에서 영장류란 말을 사용했다 하더라도 이상해. 사람들은 너희가 욕망이나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 끊임없이 갑론을박을 벌여. 네 감정의 영역까진 내가 함부로 추측할 수 없지만, 욕망하는 존재라는 건 네 생김새가 말해주는걸.

물이 늘 있는 환경을 벗어나 최대한 뭍의 안쪽까지 오려고 엄청 노력했지? 수분을 효율적으로 빨아들일 관다발과, 탈수를 이겨낼 씨앗을 만들었잖아. 움직이는 동물들의 특성을 이용해 씨앗을 나르며 이동하는 너희들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모든 게 이어져 있단 걸 감각하게 되었어. 한반도 멧돼지가 나르는 씨앗만 60종이 넘는다 하더라? 난 너희를 보며 무한한 호기심을 느껴. 내가 흘러가는 생명의 시간 속에 담겨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거든. 하지만 이 신비로운 감정이 상대를 불편할 수 있게 한다는 걸 알아. 내 호기심이 네 상흔이 되지 않도록, 널 더 잘 알고싶어. 내가 들은 너희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보며 편지를 써보려고 해.

용기 있는 이끼에게

나는 물을 무서워해. 호흡부터 시작해 발장구를 쳐서 앞을 가르는 일까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물 속에서는 하나도 없으니까. 어쩌다가 급류라도 만나면 쓸려 버리기도 하잖아. 오지도 않은 머리 속 상황들이 물에만 들어가면 범람하게 돼. 어떤 이들은 시작과 끝이 없는 듯이 품어주는 기분에 맘이 포근해진다던데, 난 오히려 물처럼 형태없이 영속되는 시간들이 무서워. 그런데 요즘은 이런 불안과 동주해보고 싶어서, 수영을 배우고 싶더라. 모든 생명은 태초에 물에서 뭍으로 올라와 수많은 분화[1]를 한다잖아. 그래서 인류는 계속해서 계통수[2]를 그려내는 데에 도전하는 중이고 말야.

너는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최초의 식물이라며? 우리말론 물에 낀 때란 의미로 ‘이끼’로 불리지만 정확히는 ‘선태식물’[3]로 불리는 생존의 혁명가들이라고. 무슨 배경과 생각으로 뭍으로 올라왔을까. 궁금해. 약 5억년 전 지구는 어땠을까 상상해봐. 이걸 뒤늦게 발견해낸 우리야 네가 신비로운 혁명가라고 부르지만, 처음 뭍으로 올라와 전례없는 환경을 마주한 너는 말로 못할 적응기를 거쳤겠지. 너희가 없어 지구의 산소 농도가 지금같이 유지되지 못했다면, 인류는 단 하나도 없을 수 있단 말이 인상 깊더라. 육상 동물인 내가 물을 무서워하는 만큼이나, 네가 물에 있을 땐 뭍이 무서웠겠지. 네 용기가 뻗고 뻗어나가 육상식물들의 시초가 되고 동물들이 폭발적으로 늘어가는 결과를 낳았을 거란 걸, 넌 알았을까. 삶은 늘 예측할 수 없어. 그걸 이제 조금이나마 받아들이려고. 통제하고픈 욕구를 내려놓고 나는 너와 반대로, 물로 뛰어 들어가 보려 해. 네 용기를 건네어 받고서. 
 
Pexels 무료 배포 사진. 사진작가Ave Calvar Martinez Instagram (@avecalvar)
사진 출처: Ave Calvar Martinez Instagram (@avecalvar)

강인한 고사리와 양치식물들[4]에게

작년 봄에 산야초 수업을 들으며 너희를 처음 만났었지. 선생님께서는 너희가 양지바른 곳을 좋아해 무덤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말씀해주셨어. 신나게 고사리를 캐다가 옆을 보면 무덤이 있어 흠칫 놀라 인사를 하고 다른 곳으로 가곤했단 말이 생각나. 탈수를 피해 잎을 오그린 너희 모습이 한껏 오므린 손과 닮아 아기손 같다가도, 무덤가에서 보면 섬뜩하다던 말씀도 같이 해주셨어. 그러네. 너희는 죽음과 삶의 경계를 닮았기도 하구나. 4억년 전 열악한 환경에서 몇 차례의 멸종 위기를 견디며 물과 영양분을 빨아들일 수 있는 뿌리를 만들고, 관다발로 몸을 세운 너. 본격적으로 광합성을 잘 할 수 있는 무수한 잎부터, 보다 안정적인 생식을 위한 이형포자를 거쳐 씨앗까지 발명한 너희들. 사람도 습관 하나를 만들 때 들이는 품이 엄청난데,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스스로 수렴하고 발산하며 견뎌왔을까. 

산에서 흔히 보이는 너희들이 건넜을 무수한 위험들을 상상해봐. 물에서부터 해방되기 위해 노력했던 너희들이 이제 산의 습도, 온도와 같은 미기후[5]들을 만들어내는 건 정말 멋진 일이구나. 이런 너희가 그저 환경에 맞게 적응한 수동체들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적응자 혹은 자연의 희생자에서 나아가 생존자. 더 나아가 창작자가 된 너희. 나는 산에 갈 때마다 너희 작품들을 피부로 보는 듯해. 바람이라도 살랑거리는 날엔, 산이 바다처럼 느껴지기도 하더라. 시끌벅적 거대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 이끼가 처음 올라오기 전 바다가 그런 곳이었을까.

우리가 요즘 볼 수 있는 너희는 비교적 작은 모습이지만, 데본기[6] 시절엔 2, 30m가 넘는 양치 식물들도 많았지? 나무와 풀의 경계를 흐릴 거대 초본들도 많았다더라. 이럴 때마다 우리의 언어가 참 흐리다는 생각을 많이 해. 아니, 어쩌면 생존자들의 언어들이야말로 생동 그 자체라서, 경계 지을 수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삶 앞에서 범주와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은 끊임없이 있으니까. 이런 너희를 채취하며 네 삶과 죽음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낀 사람들이 제사상에 고사리 나물을 올렸나봐. 너희의 끊임없는 생명력 앞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너희들의 살고자 하는 욕망이 곧 동물들을 살게 만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을게. 내 생존 욕망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었으면 좋겠거든. 3월 말 양지바른 곳에서 우리 또 만나자.



운주 씀
 





[참고 자료]

-EBS 다큐프라임(2012), EBS Docuprime_생명 40억년의 비밀 1부 - 소리없는 지배,  식물_#001, https://www.youtube.com/watch?v=kxr3AjjToqU&list=PLHcvF51SvfiG0Li8So5CdMrZxcLGgWBWK
-카오스재단(2022), [술술과학] 나무와 숲은 언제 처음 생겼을까_식물 EP.10 (식물의 관점#5), https://www.youtube.com/watch?v=k4-W45fx70Q
-윤태희(2016.08.16.), “지구 산소량, 4억년 전쯤 이끼가 만들었다”(연구). 나우뉴스, https://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60816601016
-국립생물자원관(2014). 선태식물관찰도감. 14-15p



[1] 분화 : 생물의 발생 과정에서, 분열·증식하는 세포가 각각 형태적·기능적으로 변화하여 역할에 맞는 특이성을 확립해 가는 현상.

[2] 계통수 :  생물이 진화의 결과 여러 종이나 분류군 사이에서 나타나는 신체적이거나 유전적 특징의 유사성과 차이를 바탕으로 친연 관계를 수형도로 나타낸 다이어그램

[3] 선태식물 : 포자로 번식을 하는, 관다발이 분화되지 않은 비관다발 식물. 관속 식물과 달리 잎과 줄기가 분화되지 않은 식물.

[4] 양치 식물 : 포자로 번식하며 뿌리, 줄기, 잎을 가지고 있는 유관속식물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원시적인 식물. 양치식물의 계통 분류는 학문이 발전하면서 같이 변화되어서, 지금에 이르러서는 석송식물문과 고사리식물문으로 나누어 구분하고 있다. 석송식물은 석송강. 물부추강이 포함되고. 고사리식물에는 속새강, 고사리삼강, 마라티아강, 고사리강이 속한다.

[5] 미기후 : 주변환경과 다른 국소지역의 특별한 기후나 지표면으로부터 지상 수미터 사이(보통 1.5m)의 기후

[6] 데본기 : 고생대 6개 기 중 네번째 기이며, 4억 1920만년에서 3억 5920만년까지 시기






운주 경계에 선 사람들을 늘 만나고 싶어한다. 완전함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받아들이는 연습 중.

︎ uoonju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