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30. 남과 북, 도시와 농촌, 오래된 그리고 새로운 사랑과 전쟁 (상)
- 성장과 리스크관리, 뭐가 더 중한디?
중국 최초의 도시청년 귀농기라 할만한 <촌스럽지 않은 촌살이(土里不土氣)>에서 리(里)는 일본말 사토야마(里山)에서 따온 제목이다. 마을사람들이 땔감과 식량 등을 얻는 부근의 산을 뜻한다. 일본의 농촌지역 환경과 전통생활문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라 타이완을 통해서 중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인공물로 가득한 도시도 원시림의 야생도 아닌 인간의 문명과 자연이 어우러져 사는 공간을 의미한다. 생물학을 전공하고 노르웨이에서 서로 알게 된 베이징 출신의 80허우 중국인 유학생부부는 귀국해서 각기 환경NGO의 활동가가 됐다. 몇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베이징 도심에서 70KM정도 떨어진 근교로 귀촌해 자급자족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시골 살림살이가 교과과정이 되는 ‘가이아 자연학교’를 열어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이들이 7년간의 시골살이를 손수 그린 예쁜 삽화, 사진과 함께 정리했다. 다양한 도구로부터 시작하는 시골생활 ‘써바이벌’ 기능들, 주위의 동식물 관찰, 주위에서 얻기 쉬운 재료로 만든 ‘샤방’한 요리 레시피까지 알차게 담았다. “우리 마을 만능 홍반장”처럼 이들과 교감하며 늘 도움을 주고받는 시골 마을 이웃들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사례들과 함께 꼼꼼히 설명한다. 가끔씩 시골을 찾았을 때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게만 느껴지던 농촌 사람들의 말투나 표정이 나름의 생활조건속에 적응한 소통방식이라는 것을 깨닫고부터 우리와 그들이 아닌 함께 이웃이 된다.
중국에서 도시로 나왔다가 농촌으로 돌아간 ‘반향(返鄉)청년’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은 이미 십여년전이다. 한국에도 <백년의 급진>, <여덟번의 위기>등으로 알려진 정치경제학자 원톄쥔은 청년과 농민, 시민들이 함께 하는 ‘신향촌건설운동’의 리더이기도 하다. 20년간 진행된 이 사회운동은 중국판 새마을운동인 ‘신농촌건설’이나 ‘향촌진흥’정책과도 궤를 같이 한다. 근대화, 도시화, 공업화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을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시각으로 분석하는 동시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생태문명건설’을 주장한다. 보통사람들의 구체적인 실천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정책으로 소농중심의 생태농업을 포함한 1,2,3차 산업의 융복합 발전, 한국의 군행정단위정도에 해당하는 현(縣)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생태계 건설, 도시와 농촌의 상생발전을 제안한다. 중국경제의 고질적 문제인 생산과 금융 과잉자본을 농촌에서 흡수하는 방식으로 버블붕괴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반대편에 루밍(陸銘) 상하이교통대 교수가 있다. 그는 중국판 <도시의 승리>라고 할만한 <대국대도시(大國大城)>(2016), <중심지향도시(向心城市)>(2022)를 연이어 출간했다. 실제로 <도시의 승리>와 <도시의 생존>의 저자인 하버드의 에드워드 글레이저와 중국의 도시화에 대해서 10년간 공동 연구한 내용도 언급한다. 2020년 인구센서스에 의하면 중국의 도시화율(성진화율城鎮化率)은 64%인데, 그는 선진국의 사례에 비추어 중국도 서둘러 80~90%의 도시화율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년 도시화율이 1% 정도씩 증가하는 중국의 현실에 비춰봤을 때 앞으로 15년에서 20년 사이에 이뤄질 일들이다. 특히 인구 천만에서 사천만에 달하는 메갈로폴리스 10여개가 등장할 것을 예견한다.
여기서 중국의 도시화율을 뜻하는 성진화율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에서 성(城)은 전통적으로 도시를 의미하고 縣城(현성)과 鄉鎮(향진)은 농촌의 중심지, 즉 군청과 읍사무소소재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성진은 농촌의 중심지를 소도시로 포함시키는데, 대도시뿐 아니라 농촌을 포함한 지역을 고루 발전시켜서 인구를 분산시키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신형성진화 (新型城鎮化)라는 도농과 대중소도시의 조화를 뜻하는 모델을 제시한다. 원톄쥔은 이를 도시화를 의미하는 영단어 urbanization이 아니라 townization이라고 중국판 영어 신조어를 만들어서 설명한다. 향촌건설파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대도시 중심형 발전이 아니라 유럽에서도 독일과 같이 지역적으로 분권화된 국토발전모델을 선호한다.
이를 반박하기 위해 루밍은 EU모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가 주로 비판하는 중국의 정책은 거주이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후커우(戶口)제도와 과도한 지역균형발전정책이 초래한 자원의 왜곡된 배분이다. 이 문제점들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단기적이고 국지적인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이익을 훼손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리카도의 자유무역이론을 따라 지역별로 비교우위를 찾아 규모의 경제를 이루고 중국내에 거대한 통일 상품과 생산요소시장을 만들어서 자유로운 교역을 허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발전의 계책이라고 본다. 그는 EU를 결성하고 유로화를 도입한 경제적 동기가 통일된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민족과 문화, 언어가 분리돼 있고 경제상황과 조건의 차이가 큰 국민국가들이 함께 함으로써 겪게 되는 시장통일의 어려움을 조목조목 따진다. 서유럽과 남유럽의 PIGS 상황이 매우 다르고, 여기에 동구권으로 EU와 유로존을 확장하면서 더 큰 어려움이 생겨났다. 재정은 국가별로 분리돼있는데 통화정책은 달리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모순은 심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자본뿐 아니라 노동력도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런데, 통일된 재정을 가지고 있고, 민족, 문화, 언어의 장벽이 없기 때문에 통일된 시장을 만들기에 훨씬 유리한 중국이라는 국민국가가 도농으로 이원화된 호구제도를 유지해서 노동 시장을 통일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독일 모델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을 보인다. 독일도 점점 도시화율이 높아지고 대도시 중심의 발전 경향이 근년들어 진행되는 상황이다. 또 독일이 프랑스나 영국과 같은 다른 유럽의 대국에 비해 역사적으로 통일이 늦어져서 연방제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도 설명한다. 그래서 그는 중국이 염려해야 하는 것은 ‘남미병’이나 ‘중진국의 함정’이라기 보다는 ‘EU병’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이상적인 국가 발전 모델은 EU가 아니라 미국이다. 상하이를 중심으로 하는 장강삼각지역은 문화적인 성향이 비슷한 일본 토쿄권역 메갈로폴리스의 발전상을 배워야 한단다. 루밍은 중국을 양분해서 본다. 상하이나 광둥성을 중심으로 제조업 등이 발달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리는 동남연안지역과 농촌이 많이 분포해서 지속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중서부내륙지역에 서로 다른 발전 모델을 제안한다.
거시적으로 현대 중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는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전개돼 왔다. 시장금리를 직접 통제하는 정부가 계속 은행에 저금리를 유지하게 강제함으로써 쉬운 대출과 투자과잉을 유발해왔다. 그 결과중의 하나가 부동산 거품이다.
여기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의 발전모델과 관련이 있다. 일본이나 한국과 달리 중국의 경제발전 정책은 중앙정부가 거시적으로 산업을 지역별로 안배하는 것이 아니라, 각성이 단기적으로 GDP 목표를 두고 경쟁하도록 유도해왔다. 중국은 정치가 고도로 통일된 것과 달리 경제적으로는 분권화 돼있기 매문이다. 각 성들은 높은 GDP 목표를 달성하고 동시에 안정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본을 많이 투자하는 제조대기업을 유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나름의 합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경쟁적으로 대규모 공단을 조성해서, 첨단산업과 가치사슬의 전후방 산업연관성이 강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할 수 있는 제조업체를 유치하려고 한다. 그래서 지역마다 수많은 자동차 제조업체가 난립하고 태양광발전과 관련한 업체들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다 (지금은 당연히 전기자동차가 대세이고, 엄청나게 많은 브랜드의 전기자동차가 시장에 쏟아진다. 물론 이중에 외국에도 이름이 알려질만한 전국 브랜드는 2~3개 정도 뿐이다). 그런데, 전세계적으로도 자동차 업체들의 합병과 대형화가 가속하는 가운데, 아무리 거대한 중국시장이라도 통일된 상품시장내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업체와 지역은 한계를 갖을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지역의 공단들은 아예 부지와 건물만 들어선 채 텅빈 공간으로 남거나 시설이 투자되고 기업이 만들어진 후에도 시장 경쟁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 중국 전체로는 시장내에 엄청난 중복투자가 이뤄진 셈이다. 그래서 자동차같은 산업은 동남연안에 거대한 산업 클러스터를 만든 대표기업 몇개가 생산하는 것이 유리하다. 테슬라의 중국 공장이 상하이에 위치한 것도 이유가 있다. 여기에 내륙으로 이동하는 상당수 기업이 국유기업이고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만일 이런 기업들이 장강 상류나 중류로 이동한다면 장강 전체가 오염될 수도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신도시 개발이다. 중국은 지역균형발전과 지역별 농지의 안정된 확보를 위해서 성별로 택지개발면적 지표를 균등하게 나눠줬다. 그래서 동부연안지역은 인구가 몰려도 택지를 개발할 수 없게 제한돼 있고, 인구가 유출되는 내륙의 성들은 넉넉히 배정된 건설지표에 따라 신도시를 무분별하게 개발한다. 신도시는 구도시지역과 인접한 곳부터 유기적으로 발전해야 인구밀집 효과가 생기고 이에 따른 서비스산업의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상하이의 푸동이나 청두의 가오신구 등이 좋은 사례이다. 하지만 중국의 많은 성들은 구도시에서 수십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에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한다. 이게 바로 중국의 ‘고스트 타운’(鬼城)의 실체이다. 텅빈 공단과 경쟁력없는 제조업체이든 고스트 타운이든 모두 지방정부의 부채 발행을 통해서 이뤄진 것들이다. 결국 투자회수율이 매우 낮기때문에 부실채권이 될 수 밖에 없다. 부실채권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시 통화정책이 개입하면 부동산을 포함한 자산시장으로 돈이 몰려서 거품을 키운다. 지방 정부의 모럴 해저드도 해결되지 않는다. 생산자본 과잉과 불량채권에 의한 금융부실, 그리고 금융자본 과잉은 개혁개방 이후 40년간 누적돼 온 중국 경제의 고질병이다.
루밍이 중국 거시경제에서 발견하는 또 한가지 큰 문제는 경제구조의 이중화이다. 최근 한국내에서는 <좋은 불평등>과 같은 주장들이 있어 과거 30년간 한중의 밀접한 경제발전이 한국경제에 구조적인 이중화문제를 가져왔다고 본다. 그런데 중국내에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과가 중년이상의 농민공들이 대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현상이다. 이들은 주거비를 포함한 도시의 물가는 오르는데 예전에 하던 비교적 단순한 육체노동은 급여수준이 많이 오르지 않아서 도시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반면,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들은 숫자도 적고 더 높은 교육수준을 요구한다. 즉, 기술과 생산성이 향상된 소수의 노동자들을 원하는 것이다. 노동집약형 제조산업이 자본집약형 제조산업으로 지나치게 빠르게 전환하고 있는데,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대출금리가 매우 낮아서 투자유발 효과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하면서 노동집약형 제조업체들은 내륙으로 이전하거나 해외생산기지로 활로를 찾는다. 그런데 내륙 지역정부들도 자본투자를 많이 하는 첨단산업이나 제조대기업을 선호하기 때문에, 노동집약형 제조업은 중국의 연안지역에서 바로 동남아국가들로 이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중국 내륙지역의 임금이 동남아 지역보다 높기 때문인데, 루밍에 따르면 이는 중국 정부의 최저임금정책과 연관이 있다. 노동시장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돼 있어서 임금이 물가 등과 연동돼 있는 동남연안과 달리 내륙은 정부 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상향돼 있어 경쟁력이 높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노동임금은 노동생산성과 함께 자연스럽게 상승해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동남연안의 임금이 부동산가격과 같은 물가의 상승압력때문에 올라가는 것도 긍정적으로만 바라 보지 않는다. 그리고 동남연안지역 부동산거품은 지나치게 낮은 금리문제와 앞서 언급한 택지규제, 도심 용적률규제 등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앞서 중년이상 농민공들의 노동생산성 향상 문제를 언급했다. 루밍은 올해 한국에도 소개된 스콧 로젤의 <보이지 않는 중국>의 연구 결과를 제시하면서 농촌지역의 교육수준 향상 문제와 이를 연동한다. 이런 상황의 개선은 대략 한세대 30년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가능하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서비스업의 발전이다. 대도시에 인구가 밀집하면 서비스업이 발전하고, 이들 중소기업에서 많은 일자리가 생성된다. 상대적으로 교육수준이 낮은 인력도 다양한 서비스업에 종사할 수 있다.
중국의 동남연안 제조업이 로봇을 포함한 자동화된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하는 흐름을 선도하는 가운데 일자리가 줄고, 노동소득도 줄어든다. 중국의 국민총소득중에서 노동소득비중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이는 내수형 소비시장의 발전에 큰 제약이 된다. 일자리 증가와 노동소득이 GDP 성장을 따라가지 못하면 나라가 잘 살게 됐다는 언론 보도를 볼 때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서비스업이 발전하면 이 공백을 메우거나 노동시장과 산업구조의 선진국형, 특히 미국형 모델로 자연스러운 진화를 이룰 수 있다. 그는 다시 금융과 교육 등을 포함한 서비스업이 가장 발전한 미국을 이상적인 목표로 강조한다. 대도시에 사람이 모이면 지식, 정보, 기술기반의 서비스업이 고도화한다. 부가가치가 낮은 단순노무직 서비스업 종사자들도 오랜 도시 생활을 통해서 견문과 지식을 넓히고 사람들을 상대하는 기술이 늘면, 스스로 사업자가 될 수도있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게 된다.
최종적인 답안이 대도시의 발전이기 때문에 ‘중심지향도시’라는 어휘가 성립한다. 마치 “사람은 한양으로 가야하고 말은 제주도로 가야한다”는 한국 속담과 같이 중국에는 “사람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人往高處走水往低處流)“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높은 임금과 좋은 생활환경을 좇아 농촌에서 도시로 몰리고,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몰리고, 대도시의 교외지역에서 도심부로 몰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자연스런 흐름을 막지 말아야 하는데, 중국 정부는 도농과 지역 균형발전을 명목으로 호구제를 유지하며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약한다. 심지어 1975년 개정된 중국 헌법에서는 이 조항이 삭제 됐다.
물론 도시 중산층의 귀농귀촌도 하나의 흐름으로 존재하고 정서적으로나 사상적으로는 몽유도원에서 거니는 도연명의 삶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루밍이 정곡을 찌르며 반박하는데, 그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고독을 즐기기보다는 어울려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 당신들은 소수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은 빅데이터 분석에 근거한 것이고, 중국에서 농촌과 소도시 인구는 점차 줄고 있지만 대도시의 인구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런 인구의 유동을 일종의 투표행위로 해석한다면, 어떤 나라든 다수파는 도시 생활을 선호한다. 중국의 70허우 대다수는 농촌에서 유년기를 보냈지만 반대로 그들의 자녀 세대인 90허우는 대부분 도시환경에서 자라났다. 하물며 왕성한 활동기의 이 청년들이 도시생활을 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호구제가 폐지되고 농민을 포함한 중국내 이주민들이 현지의 주민과 같은 수준의 의료, 교육 등의 공공복리와 부동산거래권 등의 혜택을 평등하게 누리게 되면 여러가지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다. 우선 농민공들이 가족과 함께 도시로 이주해와서 노인과 부녀자, 아이들만 농촌에 남아서 발생하는 농촌가정의 사회문제들을 (이를 총칭하는 류수(留守)XX라는 표현이 있다.)해결할 수 있다. 현재는 약 20%정도의 농민공들만이 이런 선택을 하고 있다. 이들 가정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으로 전환되는 장기적 목표를 갖게 되면,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도시에서의 소비가 늘어나서 내수형 소비가 증가하고 서비스업이 더욱 발전한다. 즉, 교육수준이 낮은 이주민들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됨으로써 서비스 시장을 활성화하고 그 자신도 소비자로 참여하게 된다.
루밍은 여기서 호구를 관리하는 중국 대도시 지방정부들의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인 정책을 비판한다. 상하이를 포함한 대도시들은 주로 학력이라는 지표를 통해서 자신들의 목표를 관철하려 한다. 고학력, 명문대학출신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호구를 제공하고, 또 이들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부동산 등의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이와 같은 학력차별도 문제이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을 통해서는 정반대 결과를 얻게 될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예를 들어 둘다 대학을 졸업한 “매우 우수한 인재 A”와 평범한 인재 B가 한명씩 있다고 가정해보자. 평균학력을 높이겠다는 목표만을 달성하려면 사실 이 정부는 A대신 B를 선택해야 한다. 만일 A가 호구를 얻고 이 도시에 살면서 고액연봉을 받는 아주 바쁜 직장을 얻게 된다면, 이 인재는 자기 가정 살림을 돌봐주거나 잦은 매식을 도와줄 식음료업 종사자 등,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서비스와 일자리를 필요로 하게 된다. 물론 금융, 법률과 의료, 혹은 문화 분야와 같이 역시 고학력의 서비스도 요구한다. 하지만, 평균적인 임금을 받고 자기 스스로 여러가지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키는 B 한명에 비교하자면 여러명의 저학력, 저기능 노동 수요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학력지수 자체는 평균적으로 하락하게 돼 있는 것이다.
이들 인재에 대한 주택제공 등 추가적인 혜택 공여도 문제이다. 원래 공공복리는 더 좋은 인재를 유인하려는 기업의 고용조건과 달리 정부의 자원재분배를 통해서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이 큰데, 이런 방식으로는 오히려 격차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루밍은 대도시가 첨단산업과 고부가가치산업이 요구하는 고기능 인재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서구사회에서는 팬데믹 락다운 기간에도 그 중요성이 재삼 확인된, 그만큼 많은 ‘필수노동’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고기능인재와 저기능인재는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호구제도의 문제뿐 아니라 국제적인 대도시의 문화적 포용성에 대한 흥미있는 연구 결과도 공유한다. 호구를 가진 원주민들과 호구가 없는 이주민들의 평균 소득에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상하이 지역 방언을 구사하는 이주민들의 경우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보다 평균소득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업체를 경영하는 사업주인 경우가 많다. 이런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점이 있다. 예전에는 원주민들의 푸퉁화 구사 능력이 부족해서 지역방언을 구사하지 못하면 이주민들은 비즈니스 자체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푸퉁화 보급률이 높아지고 난 이후에는 지역방언 구사 능력이 부족한 것 때문에 정보나 기술의 전달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업무환경에서는 푸퉁화를 사용하는 것이 이미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지역방언 구사 능력은 일종의 아이텐티티와 신분을 나누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상하이 원주민들이 지역방언을 구사하는 능력을 가진 이주민들을 훨씬 더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루밍의 분석에 의하면 이는 문화적인 측면이기는 하지만 호구제도가 파생시킨 부작용일 가능성도 있다. 즉 호구가 없는 이민자들이 신분의 불안정성 때문에 보이는 일탈적 행동들 때문에 원주민들이 원주민 그룹에 훨씬 높은 신뢰자본을 부여하게 되고 이 그룹의 아이덴티티를 규정하는 조건중의 하나가 현지방언 구사능력이기 때문이다. 루밍은 상하이가 국제적 대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상하이 주민들도 문화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키워나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현재 사용되는 상하이 방언 자체가 근대화 150년 동안 지속적으로 주변 지역의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혼성적으로 형성됐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쑤저우방언, 항저우방언, 영어 등의 영향을 받아오며 진화했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국내외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면서 국제적인 거대도시로 성장할 상하이에서 그 방언도 열려있는 시스템이 될 수 밖에 없다.
(다음 편에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