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30. 손(巽 ䷸)과 태(兌 ䷹)
- 神命行事 / 朋友講習, 有無相資 우리는 하나되어 기쁨을 누린다네
사물과 세상을 관찰하는 방법 중에 그 대상의 전체적인 범위를 파악하고 난 뒤에 구체적인 판단과 실천 방법을 찾는 지혜가 있습니다.
공자님의 관찰 방법이기도 하신데, 논어 자한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子曰,“吾有知乎哉? 無知也.有鄙夫問於我,空空如也.我叩其兩端而竭焉.”
자왈, 오유지호재? 무지야.유비부문어아,공공여야.아고기양단이갈언
내가 아는 것이 있을까? 아는 것이 없다. 어느 어리석은 이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텅빈 자리에서 시작해서 양쪽 끝을 두드려보고 내가 아는 범위에서 다 말하겠다.
이 말에서 ‘叩其兩端(고기양단)’은 사자성어처럼 사용되기도 합니다.
양쪽 끝을 읽고 난 뒤에 각자에게 맞는 적절한 지점을 찾도록 가르치는 교수법이기도 합니다.
공자님의 이런 지식 이해는 주역 공부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51번 진괘(震卦)에서 시작해서 56번 여괘(旅卦)까지 이어지는 6개의 이야기는 우리가 삶에서 만나게 되는 양 극단을 사례로 들었습니다.
흔들리는 사람 진(震)과 흔들리지 않는 사람 간(艮), 차근 차근 결혼을 준비하고 행복을 꿈꾸는 점(漸)과 결혼의 폭력성으로 불행을 느끼는 귀매(歸妹), 대궐같은 집에서 사는 풍(豊)과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 다니는 여(旅), 이들은 모두 삶의 양 극단을 읽는 방식입니다.
삶은 이 양 극단을 이해하고 이런 대극(對極)을 삶을 통해 통합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손괘(巽卦)의 상징은 불어오는 두 개의 바람, 태괘(兌卦)의 상징은 이어진 연못입니다.
손(巽)과 태(兌)는 대극이 아니라 대극의 통합을 상징합니다.
손의 핵심 키워드는 신명행사(申命行事)입니다.
여기서 신(申)은 신(神)이라는 말의 원형입니다.
갑골문에서 신(申)은 음양의 조화와 역동성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신(神)의 조화라는 개념으로 확대되어 나갔습니다.
신명(神命)은 하늘로부터 내려옵니다. 우리말로는 ‘신내림’이라고 합니다.
행사(行事)는 내 안에 내려오신 신께서 나를 통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갑니다. 우리말로는 ‘신남’입니다. 신내림과 신남이 하나로 어우러지면 춤과 노래가 넘쳐나고, 삶에 역동성이 일어납니다. 이런 삶을 ‘신바람이 난다’라고 표현합니다.
신바람이 나면 두려움도 없어지고, 하늘과 소통하며 살 수 있고, 삶은 기쁨으로 가득차고, 풍요로워집니다.
손(巽)의 2번 구이효에는 신과 소통하는 두 사람 사(史)와 무(巫)가 나옵니다.
이 두 사람은 서로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무(巫)는 황홀 상태에서 하늘의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고, 사(史)는 무(巫)의 말을 받아서 기록합니다.
무(巫)가 온 몸과 마음으로 하늘과 접속할 수 있는 이유는 사랑하는 친구 사(史)가 자신을 보호하고 하늘의 소리를 바르게 기록할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노력은 삶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옵니다.
신명행사(神命行事)의 삶이어서 하늘과 소통하고, 두려움을 넘어서고, 삶이 풍요로움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기독교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신명행사(神命行事)의 성령 충만한 삶도 그림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손(巽)은 기본적으로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순종하는 마음 속으로 하늘이 내려올 수 있고, 많은 일들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성과는 손(巽)에게 이걸 지키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킵니다.
순종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켜야 할 돈과 권력이 생겨나면 비굴해 지게 됩니다.
손(巽)의 6번 상구효는 비굴함이고 그는 그가 가진 것을 잃게 됩니다.
그는 순종하는 자신만 보이고 비굴한 자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잃는 순간까지도 그는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태(兌)는 신명행사(神命行事)의 신바람나는 삶에서 이어집니다.
손(巽)의 기쁨은 하늘의 바람이 내 안으로 내려와서 생겨나는 충만함에서 시작한다면, 태(兌)의 기쁨은 내 삶이 좋은 친구들과 소통할 때 느끼게 됩니다.
태(兌)의 키워드는 ‘여택(麗澤), 붕우강습(朋友講習)’입니다.
‘이어진 연못처럼 우린 서로 배우고 가르친다네.’
이어진 연못에서 한쪽 연못으로 물이 들어오면 이어진 다른 연못도 함께 물이 차오르듯이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서로 나누어 성장하는 기쁨을 담고 있습니다.
거기다 경제적인 부분까지도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돕는 유무상자(有無相資)에 이르게 되면 힘든 일을 하더라도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고, 죽음의 공포 앞에 서더라도 두려움을 이겨내게 됩니다.
우리는 분리된 개개인이 아니라 이어진 연못처럼 하나로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근대사의 동학(東學)은 하늘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하나로 잇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의 정신 세계를 찾아내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어려움을 나누고 돕는 붕우강습(朋友講習), 유무상자(有無相資)로 까지 확대되면서 동학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동학 안에는 손괘(巽卦)와 태괘(兌卦)가 하나로 연결된 모습이
보입니다.
57. ☴☴ 巽 중풍손(重風巽)
巽 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손 소형 이유유왕 이견대인
나는 나를 낮추고 작아져서 바람처럼 흘러간다. 그 곳에서 지혜로운 사람, 대인을 만난다.
彖曰 重巽 以申命. 剛巽乎中正而志行 柔皆順乎剛 是以小亨. 利有攸往 利見大人.
단왈 중손 이신명. 강손호중정이지항 유개순호강 시이소형. 이유유왕 이견대인
신명(神命), 두 개의 바람이 만난다. 위로부터 오는 강한 바람(성령의 바람)이 우리를 바르게 자리잡게 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게 한다. 내 안에서 부드러운 바람이 일어나 성령의 바람을 따른다. 내가 나를 낮추어 바람처럼 흐르다 대인을 만난 이유이다.
象曰 隨風 巽 君子以 申命行事.
상왈 수풍 손 군자이 신명행사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듯이 성령의 바람이 불어와 성령 충만한 삶을 산다.
1.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초륙 진퇴 이무인지정
象曰 進退 志疑也 利武人之貞 志治也.
상왈 진퇴 지의야 이무인지정 지치야
지금 나를 낮추고 하늘의 바람을 받아들여야 할지, 거부해야 할 지 의심이 생긴다.
명령이 내려오면 죽기를 각오하고 따르는 군인처럼 나를 복종시켜 두려움없이 나아가고 싶다.
2.
九二 巽在牀下 用史巫紛若 吉 无咎.
구이 손재상하 용사무분약 길 무구
象曰 紛若之吉 得中也.
상왈 분약지길 득중야
제단 상 아래에서 몸을 낮추어 무(巫)는 신탁을 받고, 사(史)는 기록해서 하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하늘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이 오고갈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3.
九三 頻巽 吝.
구삼 빈손 인
象曰 頻巽之吝 志窮也.
상왈 빈손지린 지궁야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마지못해 받아들이고 있다.
4.
六四 悔亡 田獲三品.
육사 회망 전획삼품
象曰 田獲三品 有功也.
상왈 전획삼품 유공야
마음이 편해졌다. 하늘의 바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삼품(三品), 사냥을 나가 여러 마리를 잡듯이 삶에서 풍성한 성과가 생겨난다.
5.
九五 貞 吉 悔亡 无不利 无初有終. 先庚三日 後庚三日 吉.
구오 정 길 회망 무불리 무초유종. 선경삼일 후경삼일 길
象曰 九五之吉 位正中也.
상왈 구오지길 위정중야
하늘 뜻을 따라 살았기에 마음에 남는 것이 없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지 못해 어려웠지만 결국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변화가 시작되는 경일(庚日)을 전후로 새로운 변화의 의미에 대해 지혜롭게 여러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바른 자리에 서 있고, 중정(中正)의 마음으로 공정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6.
上九 巽在牀下 喪其資斧 貞 凶.
상구 손재상하 상기자부 정 흉
象曰 巽在牀下 上窮也 喪其資斧 正乎 凶也.
상왈 손재상하 상궁야 상기자부 정호 흉야
제단 상 아래에서 나를 낮춘다.
그런데 돈도 잃고 도끼(권력)도 잃었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 왜 이런가?
지금 나는 높은 곳에서 많은 것을 가졌는데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겸손은 옳은 일이지만 비굴함은 내가 가진 것을 잃는 불행을 불러온다.
58. ☱☱ 兌 중택태(重澤兌)
兌 亨 利貞.
태 형 이정
나는 기쁘다.
彖曰 兌 說也. 剛中而柔外 說以利貞 是以順乎天而應乎人. 說以先民 民忘其勞
단왈 태 열야. 강중이유외 열이이정 시이순호천이응호인. 열이선민 민망기노
說以犯難 民忘其死. 說之大 民勸矣哉.
열이범난 민망기사. 열지대 민권의재
희열(喜悅),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마음이 만드는 기쁨.
이런 기쁨은 하늘을 따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을 앞에서 이끌어 갈 때 서로 기뻐할 수 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고, 어려움을 이겨내며, 설사 죽음 앞에 서더라도 그 두려움을 넘어선다.
하늘과 사람이 하나되어 우리는 함께 기뻐한다.
象曰 麗澤 兌 君子以 朋友講習.
상왈 여택 태 군자이 붕우강습
이어진 연못처럼, 우리는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기뻐한다.
1.
初九 和兌 吉.
초구 화태 길
象曰 和兌之吉 行未疑也.
상왈 화태지길 행미의야
안으로 강하지만 바깥으로는 누구라도 부드럽고 조화롭게 만난다.
나의 삶에 대해 아무도 의심하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2.
九二 孚兌 吉 悔亡.
구이 부태 길 회망
象曰 孚兌之吉 信志也.
상왈 부태지길 신지야
우리는 서로 믿는다.
그런 믿음에서 신뢰가 생기고 후회가 사라지고 기쁨이 일어난다.
3.
六三 來兌 凶.
육삼 내태 흉
象曰 來兌之凶 位不當也.
상왈 내태지흉 위부당야
화태(和兌)와 부태(孚兌)의 기쁨을 부러워하며 그들에게 간다.
다른 곳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다. 내 자리에서 찾아야 하는데 지금 어디에 서야할지 모른다. (自兌)
4.
九四 商兌未寧 介疾 有喜.
구사 상태미녕 개질 유희
象曰 九四之喜 有慶也.
상왈 구사지희 유경야
어떻게 계산하고 생각해봐도 편하지 않고 기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어디 다른데 좋은 것이 있나 찾아다니는 마음의 질병을 치유하니 기쁨이 생긴다. 정말 축하할 일이다.
5.
九五 孚于剝 有厲.
구오 부우박 유려
象曰 孚于剝 位正當也.
상왈 부우박 위정당야
나는 바른 자리에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힘들고 어려운 것도 함께 하며 같이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지금 탐욕스럽고 기쁨을 빼앗아가는 이들을 가까이하고 믿고 있다. 위험하다.
6.
上六 引兌.
상륙 인태
象曰 上六引兌 未光也.
상왈 상륙인태 미광야
내 안에서 빛나던 기쁨의 빛이 사라졌다. 기쁨을 뺏어오고 싶다.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