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4월 25일

31. 환(渙 ䷺)과 절(節 ䷻) 

- 渙其躬 / 甘節  영성에 기반을 둔 전환과 절제된 취향






손괘(巽卦)와 태괘(兌卦)는 대극(對極)의 통합(統合)을 다룹니다.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가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서로의 차이를 통해 내면 의식을 성장하는 계기를 만들고 선순환의 길을 엽니다.

환괘(渙卦)와 절괘(節卦)는 이런 통합 상태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보여줍니다.
환괘(渙卦)는 삶의 전환(轉換)입니다.
삶에는 늘 어디에서 오는 지 알 수 없는 바람이 불어옵니다. 우리는 이 바람을 잘 이용할 수도 있고, 바람을 만나 배가 뒤집히기도 합니다.
환(渙)은 물 위로 불어오는 바람(風行水上)을 타고 배에 올라 큰 강을 건넙니다.
그가 건넌 전환의 강은 세가지입니다.

첫 번째 인식의 전환입니다.
그는 공부하고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바꾸어 나갑니다.
두 번째 전환은 몸의 전환입니다.
몸과 마음에는 시간이 지나면 때가 끼이게 됩니다.
몸에는 ‘습(習)’이라는 것이 붙어서 우리를 동일한 패턴의 굴레에 가둡니다.
환(渙)은 새로운 몸을 만들고 삶의 패턴을 새롭게 재구성합니다.
세 번째 전환은 만나는 사람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새로운 바람을 타면 새로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환괘(渙卦)는 마치 새로운 산이 하나 더 만들어 지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渙有丘)

이렇게 몸과 마음, 만나는 사람들을 새롭게 재구성하게 되면, 새로운 사람들이 나를 돕고, 내 삶은 나를 위한 삶을 넘어 세상의 슬픔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게 됩니다.
환(渙)의 마음을 가진 지도자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을 위해 내어 놓습니다.
삶에서 의미를 두는 가치가 달라집니다.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이마 위로 땀이 흘러내립니다.
환(渙)은 자신을 전환하고 세상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며 스스로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절(節)은 절제(節制), 적절(適切), 조절(調節)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환(渙)이 대극의 통합을 통한 삶의 전환이라면, 절(節)은 대극의 통합을 통한 적절한 삶의 조절입니다. 같은 이야기의 양면입니다.
절제는 자본주의 삶의 양식과 잘 맞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절제보다는 충동을 자극하는 문화입니다.
절제의 삶은 삶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의식과 함께 시작됩니다.
환괘와 절괘가 하나의 이야기인 이유입니다.
새로운 눈이 열리면 절제는 절제의 고통이라기 보다는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기쁨이 됩니다.

절괘(節卦)에는 절제를 바라보는 네가지 사례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부절(不節)입니다.
부절은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지혜가 부족합니다. 충동을 조절하고 더 높은 가치를 지향하는 내적인 수련이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안절(安節)입니다.
안절은 내 몸에 잘 맞는 삶의 방식을 찾아내고 거기서 편안해집니다.
집을 예로 들어보면 꼭 큰 집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예전처럼 많은 사람들이 같이 살지 않는 사회에서는 작고 관리하기 좋은 적절한 규모의 집이어야지 집이 크면 집에 눌려 살게 됩니다.
세 번째는 감절(甘節)입니다.
우리 시대의 감각으로 하면 ‘미니멀 라이프’ 정도의 의미로 읽을 수 있습니다.
적절하고 편한 것에 더해서 자기 만의 취향을 찾아내는 삶의 방식입니다.
삶이 달콤해집니다. 인스타그램은 이런 감절의 삶을 보여주는 전시장이기도 합니다.
네 번째는 고절(苦節)입니다.
고절은 좋다 나쁘다를 넘어서 가치 중립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절괘(節卦)는 고절(苦節)에서 고통스럽더라도 인내하는 자기 생각에 갇힌 사람을 다루는데, 그런 부분도 있지만 고절은 세상과 지구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저도 지난 날 삶을 돌아보면 고절(苦節)의 삶이었습니다.
지금도 기후, 생명, 안전 등의 문제 앞에 서면 쉽게 고통에 공감하고 행동을 제한하게 됩니다.

환괘(渙卦)와 절괘(節卦)의 이야기는 삶의 전환과 조절이라는 원만한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편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손괘(巽卦)와 태괘(兌卦)에서 이어지는 신남과 기쁨이 배경에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 의식이 하늘과 이어지고, 이웃들이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눌 형제로 인식되는 하나된 마음, 영성(靈性)이 생겨야 환괘(渙卦)와 절괘(節卦)의 전환과 자기 조절이 가능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를 대응하기 위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하고, 위험을 강조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은 삶의 전환과 절제 속에 영성이 내면화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성과 사회적 진보가 이어져 있습니다.



59. ☴☵ 풍수환 風水渙


渙 亨 王假有廟 利涉大川 利貞.
환 형 왕격유묘 이섭대천 이정.

모든 것이 흩어지고 있다.
왕과 함께 우리는 흩어질 때 지혜를 얻기 위해 종묘에서 기도한다.
거칠게 흘러가는 큰 강을 건너자.

彖曰 渙亨 剛 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
단왈 환형 강 내이불궁 유득위호외이상동
王假有廟 王乃在中也. 利涉大川 乘木 有功也.
왕격유묘 왕내재중야. 이섭대천 승목 유공야.

모였던 것이 흩어지면서 여기저기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강한 물살이 쉼없이 흘러가며 물길을 만드는 가운데,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를 가지고, 왕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흩어지면서 동시에 마음이 모이는 전환이 일어나는 이유는 왕이 중심을 잡고 있고, 우리는 나무로 만든 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 실제적인 변화와 성과를 얻었기 때문이다.

象曰 風行水上 渙 先王以 享于帝 立廟.
상왈 풍행수상 환 선왕이 향우제 입묘

물 위로 바람이 불어와 물결이 퍼져나갈 때 우리는 종묘에서 왕과 함께 하늘에 제사드린다. 

1.
初六 用拯 馬壯 吉.
초육 용증 마장 길
象曰 初六之吉 順也.
상왈 초육지길 순야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불안정할 때 좋은 말을 구해 도움을 받아 피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한 자리에 머물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2.
九二 渙奔其机 悔亡.
구이 환분기궤 회망
象曰 渙奔其机 得願也.
상왈 환분기궤 득원야

전환의 시간에 대응하기 위해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생각한다. 전환의 길을 찾았다.

3.
六三 渙其躬 无悔.
육삼 환기궁 무회
象曰 渙其躬 志在外也.
상왈 환기궁 지재외야

내 몸에 쌓여있는 오래된 습관의 찌꺼기들을 날려 버린다. 새로운 몸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마음을 세운다.

4.
六四 渙其群 元吉 渙有丘 匪夷所思.
육사 환기군 원길 환유구 비이소사
象曰 渙其群元吉 光大也.
상왈 환기군원길 광대야

내가 오래 몸담았던 집단에서 나왔다. 새로운 사람들이 산을 이루듯이 모인다.
이런 일은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나는 밝은 빛 속에 있다.

5.
九五 渙汗其大號 渙王居 无咎.
구오 환한기대호 환왕거 무구
象曰 王居无咎 正位也.
상왈 왕거무구 정위야

왕의 이마에 땀이 흘러내린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해서 아무도 믿지 못하고 흩어지고 있다.
왕은 세상이 이렇게 불안할 때 내가 할 일은 내가 가진 것을 먼저 세상으로 흩어서 마음을 안정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세찬 물살 속에서도 우리는 바른 자리를 잡았다.  

6.
上九 渙其血(恤) 去逖出 无咎.
상구 환기혈(휼) 거적출 무구
象曰 渙其血 遠害也.
상왈 환기혈 원해야

세상의 변화에 대해 걱정하지 않겠다. 근심을 바람에 날려 보내고 거리를 두고 멀리 있겠다.



60. ☵☱ 수택절 (水澤節)


節 亨 苦節 不可貞.
절 형 고절 불가정

절제, 적절한 자기 조절이어야지 지나치게 고통스러우면 견딜 수 없다.

彖曰 節亨 剛柔分而剛得中 苦節不可貞 其道窮也. 說以行險 當位以節 中正以通.
단왈 절형 강유분이강득중 고절불가정 기도궁야. 열이행험 당위이절 중정이통
天地節而四時成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천지절이사시성 절이제도 불상재 불해민

강함과 부드러움이 적절하게 조절되고 있으면서 강한 절제의 힘이 중심과 균형을 잡고 있다.
지나침은 길이 막힌다. 절제된 삶은 힘들지만 동시에 기쁜 삶이다. 우리가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더라도 절제하는 것은 그것이 세상과 바르게 소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매듭이 있어서 사계절을 만들 듯이 우리도 우리 삶을 조절해서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 서로 상처입지 않고, 손해보지 않게 할 수 있다.

象曰 澤上有水 節 君子以 制數度 議德行.
상왈 택상유수 절 군자이 제수도 의덕행

연못에 물이 가득 찼다. 연못이 담을 수 있는 물의 한도가 있는 것처럼 우리 삶도 적절한 정도에 따라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야 하고, 제도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서도 토론해야 한다.

1.
初九 不出戶庭 无咎.
초구 불출호정 무구
象曰 不出戶庭 知通塞也.
상왈 불출호정 지통새야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길이 막혔다는 것을 알고 있다.

2.
九二 不出門庭 凶.
구이 불출문정 흉
象曰 不出門庭凶 失時極也.
상왈 불출문정흉 실시극야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다. 두려웠고 언제 나가는 것이 적절한 지 알 수 없어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3.
六三 不節若 則嗟若 无咎.
육삼 부절약 즉차약 무구
象曰 不節之嗟 又誰咎也.
상왈 부절지차 우수구야

어디까지 할 수 있는 지 한계를 알고 절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부끄럽다. 절제할 힘이 나에게 없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4.
六四 安節 亨.
육사 안절 형
象曰 安節之亨 承上道也.
상왈 안절지형 승상도야

편안한다. 절제의 삶을 사는 것이 내 몸에 잘 맞는다.

5.
九五 甘節 吉 往 有尙.
구오 감절 길 왕 유상
象曰 甘節之吉 居位中也.
상왈 감절지길 거위중야

입 안이 달다. 우리는 적절한 자리에서 소박한 삶의 기쁨을 즐긴다.

6.
上六 苦節 貞凶 悔亡.
상륙 고절 정흉 회망
象曰 苦節貞凶 其道窮也.
상왈 고절정흉 기도궁야

쓰고 괴롭다. 나는 고통스럽게 나를 다스리고 절제했다. 절제하는 삶이 옳은 길이지만 이건 나 스스로도 견뎌낼 수 없는 막힌 길이었다. 

 





김재형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