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33. 기제(旣濟 ䷾)와 미제(未濟 ䷿)
- 正而位當 / 君子之光 강을 건넌 사람 / 빛을 전하는 사람
이제 우리는 주역 상하경을 다 읽었습니다.
오늘 읽을 기제와 미제는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주역은 음양의 조화와 균형이라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조건과 상황의 의미를 읽어 나갑니다.
균형이 잡혀 있을 때는 좋은 일이고, 조화가 무너지면 불길하게 생각합니다.
주역은 인간과 우주(자연), 개인과 사회를 바라보는 64가지 이야기입니다.
주역의 이야기는 간략하고 상징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해독의 난이도가 높지만 조금의 연습만 하면 어느 정도는 읽어낼 수 있습니다.
상징이지만 언어로 되어 있어서 읽고 생각하다 보면 상징의 연결 고리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주역 이야기는 3천년 전에 기록되었지만 지금 읽어도 그 본질적 의미는 현대인의 삶과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제외하면 지금도 고대인들의 진취성에 놀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주역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내재화된 창작 원칙 같은 게 있지 않을까?
그런게 있습니다.
위(位), 응(應), 중(中) 원칙입니다.
이거보다 몇 가지가 더 있는데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원칙입니다.
대부분의 주역책은 이 세 원칙이 주역괘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지를 읽는 것이 중요한 부분입니다.
위(位)는 적절한 자리입니다.
응(應)은 서로 호응하는 좋은 관계입니다.
중(中)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힘입니다.
기제(旣濟)괘는 1번에서 시작해서 6번까지 양과 음이 번갈아 가면서 자리잡고 있습니다.
䷾
주역을 구성한 사람들은 기제괘에서 음양의 조화라는 이상적인 형상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괘의 이름을 ‘강을 건넌 사람, 완성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아 기제(旣濟)라고 지었습니다.
기제는 ‘내가 어디에 자리잡아야 하는가’ 하는 주제를 성찰할 때 기준이 됩니다.
위(位)라는 개념은 기제를 중심에 두고 다른 괘를 비추어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바로 앞에 공부한 중부(中孚)를 기제와 비추어 보면
䷾ ䷼
중부의 2,3,6효와 기제는 음양이 맞지 않습니다.
기제가 양일 때 양이고, 음일 때 음인 효는 1,4,5효입니다.
이럴 때 중부의 1,4,5효를 정(正), 2,3,6효를 부정(不正)이라고 합니다.
기제를 기준으로 양쪽을 연결해 보면 쉽게 보입니다.
응(應)이라는 개념은 좋은 관계인데, 괘의 위와 아래 관계에서 찾습니다.
주역은 두 개의 작은 괘가 이어져서 하나의 큰 괘가 됩니다.큰 괘의 위에 있는 작은 괘를 외괘(外卦)라고 하고, 아래에 있는 작은 괘를 내괘(內卦)라고 합니다. 응(應)은 외괘와 내괘 사이의 같은 자리의 음양을 읽습니다.
1효와 4효, 2효와 5효, 3효와 6효가 같은 자리입니다.
외괘와 내괘가 음양으로 만나면 호응(好應)한다고 하고, 같은 음과 같은 양이 만나면 불응(不應)입니다.
다시 중부를 아래와 위로 읽으면, 1,4효는 양과 음, 2,5효는 양과 양, 3,6효는 음과 양입니다.
1,4 / 3,6 은 호응이고, 2,5효는 불응입니다.
중(中)은 균형과 조화의 힘인데, 이건 공식처럼 2,5효가 중이고, 나머지 1,3,4,6효는 부중(不中)입니다.
이 세가지 이야기를 만드는 원칙에 따라서, 정, 호응, 중 일 때는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부정, 불응, 부중 일 때는 여러 모순을 겪게 됩니다.
이 셋의 다양한 조합에 따라 이야기도 변화가 생겨납니다.
정, 불응, 중 / 부정, 응, 부중 / 정, 응, 부중 ....
기제의 이야기는 일을 이루어내고 완성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중에 5번의 동쪽 이웃과 서쪽 이웃이라는 상징은 실제 주역을 구성할 당시 은나라와 주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은나라는 기제의 상태, 강한 나라이고 완성된 국가이고, 주나라는 아직 힘이 약하고 미완성 상태, 미제(未濟)입니다.
그런데, 하늘은 미제의 주나라에서 드린 제사를 받습니다.
강하고 완성된 것이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하늘이 도우실 수 있는 여백을 가져야 하늘이 일하시게 됩니다.
미제(未濟)는 상징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여우입니다.
미제의 여우가 강을 건너지 못하는 것은 실력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살아보면 실력으로만 일이 성사되는 것은 아닙니다. 열심히 노력하였고 실력도 있는데 조건과 상황에 의해 강을 건너지 못하였을 때, 실패와 좌절의 고통을 겪은 그의 마음에 하늘 마음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기제와 미제를 옆에 두고 바라보면 보입니다.
䷾ ䷿
우리가 공부했던 위(位)와 응(應)을 연결해서 보면, 미제는 모든 효에서 위(位)가 없습니다.
기제와 미제는 완전히 음양이 반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제는 강을 건너더라도 그 곳에서 그가 있을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미제는 그 마음 안에 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제는 그 빛을 ‘군자지광(君子之光)’이라고 했습니다.
미제의 빛은 밝고 아름답습니다. (君子之光 其暉吉也)
미제의 빛이 자신을 향하기 보다 타인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제는 자신의 빛으로 결국 누군가를 강을 건너게 돕습니다.
인류의 수 많은 정신적 힘과 아름다운 문화적 힘은 미제처럼 누군가 강을 건너게 돕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미제의 빛을 가지고 강을 건넌 사람, 그가 누구일까요?
빛의 사람, 건(乾)입니다. 중천건(重天乾)은 모두가 다 양으로 구성된 ䷀ 빛의 존재입니다.
이렇게 건괘(乾卦)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됩니다.
주역은 끝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일단 여기서 주역 이야기는 한번 마칩니다. 긴 여행이었습니다.
한번 더 에필로그의 의미를 담은 글을 마지막으로 쓰고 이 연재는 마치겠습니다.
63. ☵☲ 수화기제 水火旣濟
旣濟 亨 小 利貞 初吉 終亂.
기제 형 소 이정 초길 종난
이제 강을 건넜고, 완성했다. 큰 일 뿐만 아니라 작은 일까지도 다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이렇게 안정된 축복 속에서 시작했지만 이런 성공도 결국은 무너지게 된다.
彖曰 旣濟亨 小者亨也. 利貞 剛柔正而位當也. 初吉 柔得中也. 終止則亂 其道窮也.
단왈 기제형 소자형야. 이정 강유정이위당야. 초길 유득중야. 종지즉난 기도궁야
기제의 성공은 작은 것까지도 다 자기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강한 것은 강한 것의 자리에서, 부드러움은 부드러움의 자리에서 바르게 자리 잡고 자기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의 성공은 부드러움이 중심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성공과 완성에도 끝이 온다. 어지러워지고 가는 길이 막히게 된다.
象曰 水在火上 旣濟 君子以 思患而豫防之.
상왈 수재화상 기제 군자이 사환이예방지
불 위에 물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불이 물을 끓이지만 물이 불을 끌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이런 환란(患亂)의 어지러워짐을 미리 알고 준비한다.
1.
初九 曳其輪 濡其尾 无咎.
초구 예기륜 유기미 무구
象曰 曳其輪 義无咎也.
상왈 예기륜 의무구야
수레를 뒤로 당겨 제동하면서 간다. 여우가 강을 건너다 꼬리를 적시고 멈춘다. 쉽게 갈 수 있지만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일인지 생각하며 속도를 조절한다.
2.
六二 婦喪其茀 勿逐 七日 得.
육이 부상기불 물축 칠일 득
象曰 七日得 以中道也.
상왈 칠일득 이중도야
부인의 가마 가리개가 사라졌다. 찾지 않아도 된다. 7일이 되면 돌아온다.
가마 가리개가 사라져 밖을 나갈 수 없게 됐지만 당황하지 않고 마음을 바르게 지키고 있어서 7일이 되어 다시 찾을 수 있었다.
3.
九三 高宗 伐鬼方 三年克之 小人勿用.
구삼 고종 벌귀방 삼년극지 소인물용
象曰 三年克之 憊也.
상왈 삼년극지 비야
은나라 고종은 3년이나 걸려 귀방 지역을 정벌했다. 이건 정말 고달픈 성공이었다.
소인(전쟁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런 전쟁을 해선 안 된다.
4.
六四 繻有衣袽 終日戒.
육사 수유의녀 종일계
象曰 終日戒 有所疑也.
상왈 종일계 유소의야
헤진 옷을 준비해서 배에 물이 새는지 확인한다. 새는 곳이 있을 수 있다.
위험을 알 수 없어 늘 대비하고 예방한다.
5.
九五 東鄰殺牛 不如西鄰之禴祭 實受其福.
구오 동린살우 불여서린지약제 실수기복
象曰 東鄰殺牛 不如西鄰之時也 實受其福 吉大來也.
상왈 동린살우 불여서린지시야 실수기복 길대래야
동쪽 이웃은 소를 잡아 큰 제사를 드리고, 서쪽 이웃은 소박한 제사를 드렸는데 하늘은 서쪽 이웃의 제사를 받고 복을 내리셨다. 동쪽 이웃이 드린 제사는 부족함이 없었고, 서쪽 이웃이 드린 제사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그에게는 그 자리를 채울 하늘 복이 찾아오고 있었다.
6.
上六 濡其首 厲.
상륙 유기수 려
象曰 濡其首厲 何可久也.
상왈 유기수려 하가구야
여우의 머리까지 물에 잠겼다. 완성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어떻게 영원할 수 있겠나?
64. ☲☵ 화수미제 火水未濟
未濟 亨 小狐汔濟 濡其尾 无攸利.
미제 형 소호흘제 유기미 무유리
강을 건너지 못했다. 작은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는데 아뿔싸 꼬리를 적셨다.
彖曰 未濟亨 柔得中也. 小狐汔濟 未出中也. 濡其尾无攸利 不續終也. 雖不當位 剛柔應也.
단왈 미제형 유득중야. 소호흘제 미출중야. 유기미무유리 불속종야. 수부당위 강유응야
강을 건너지 못했지만 우리는 부드러움을 마음 중심에 가지고 있다.
작은 여우가 강을 거의 다 건넜는데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작은 여우가 아직 물을 다 건너지 못했는데 건넌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여우가 강을 건넜더라도 그곳에 그가 있을 자리는 없다.
여우는 강을 건너는데 집중하기보다 강함과 부드러움의 교감에 더 마음을 두고 있다.
여우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내가 강을 건너기보다 모두가 강을 건너길 바란다.’
象曰 火在水上 未濟 君子以 愼辨物 居方.
상왈 화재수상 미제 군자이 신변물 거방
물 위에 불이 있는 것처럼 물은 아래로 흘러가고 불은 위로 치솟아 서로 만나지 못하고 일을 완성시킬 수 없다. 나는 사물의 속성을 신중하게 분별해서 어디에 자리잡게 해야 할지 생각한다.
1.
初六 濡其尾 吝.
초륙 유기미 린
象曰 濡其尾 亦不知極也.
상왈 유기미 역불지극야
꼬리를 적신다. 작은 여우가 자기의 한계를 알지 못한다.
2.
九二 曳其輪 貞 吉.
구이 예기륜 정 길
象曰 九二貞吉 中以行正也.
상왈 구이정길 중이행정야
수레를 뒤로 당겨 제동한다. 서두르지 않고 어디에 있는 것이 적절한 자리인지 생각한다.
3.
六三 未濟 征 凶 利涉大川.
육삼 미제 정 흉 이섭대천
象曰 未濟征凶 位不當也.
상왈 미제정흉 위부당야
무리해서라도 강을 건너고 싶었다. 그렇게해서 강을 건너더라도 그곳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다. 저 강을 꼭 건너야할까?
4.
九四 貞 吉 悔亡 震用伐鬼方 三年 有賞于大國.
구사 정 길 회망 진용벌귀방 삼년 유상우대국
象曰 貞吉悔亡 志行也.
상왈 정길회망 지행야
강을 건너지 못했지만 후회와 아쉬움은 없다.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실행했다.
지방 제후인 진용 장군이 3년 동안 귀방 지역 정벌에 참여했다. 중앙 정부에서 그에게 상을 내렸다.
5.
六五 貞 吉 无悔 君子之光 有孚 吉.
육오 정 길 무회 군자지광 유부 길
象曰 君子之光 其暉吉也.
상왈 군자지광 기휘길야
강을 건너지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나의 빛이 있다.
나는 나를 믿고, 세상을 믿는다. 군자의 빛이 밝고 아름답다.
6.
上九 有孚于飮酒 无咎 濡其首 有孚 失是.
상구 유부우음주 무구 유기수 유부 실시
象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
상왈 음주유수 역부지절야
우리는 서로 믿고 사랑한다. 술 한 잔을 나누며 즐긴다.
어떤 친구들은 그들의 우정을 과시하기 위해 머리를 술독에 처박는다.
절제하지 못하면 그들의 생각이 아무리 좋더라도 실현할 수 없다.
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