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4월 19일
4. 수괘(需卦)와 송괘(訟卦)
내가 옳다.
그래서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억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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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괘는 기다리는 사람, 송괘는 기다릴 수 없고 억울하고 싸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 다 바른 삶을 살고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수괘는 내가 옳기 때문에 기다리면 문제가 자연스럽게 풀린다고 생각하고, 송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의 억압과 폭력을 견딜 수 없고 저항하지 않는 것은 비겁하다고 생각합니다. 저항해야 할 때 저항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수괘는 빛을 찾게 되고 기다리던 비가 내리는 경험을 하고, 송괘는 힘들게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억울하고 가슴 답답한 길을 가게 됩니다.
누구의 경험이 잘한다 못한다 할 수 없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다림의 마음을 가진 사람도 언제까지 참을 수는 없고, 갈등을 일으켜야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답은 기다릴 때와 싸울 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지혜에 있습니다.
2019년 12월 31일에 저는 이화서원 카페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2020년의 삶에 대한 성찰과 전망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 https://cafe.naver.com/pottari/6047 )
제목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오시더라도 모시고 공경합시다.(不速之客來, 敬之終吉)’였습니다.
주역 수괘에서 2020년의 의미를 읽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쓴 뒤 보름 정도 지나서 언론에 코로나 바이러스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는 우리가 모두 아는 대로 입니다.
이 글은 코로나 재난을 예측한 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어떻게 읽는가 하는 문제에 섰을 때, 우리들 대부분은 두려움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문제가 좋다 나쁘다는 의미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가 가져올 엄청난 사회적 변화와 인식의 변화가 예측되었고 가치 중립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청객(不請客),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가치 중립적이고 양면성을 통합한 언어입니다.
원하지 않지만, 동시에 귀한 분입니다.
실제 이화서원에서는 이 관점으로 코로나를 대했고, 주역 수괘의 지혜를 받아들여서 대응했습니다.
대부분 공간과 시설에서 모이지 못했고,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도 중단했을 때 우리는 오히려 문을 열었고,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누가 오시든 잠잘 곳을 만들어 드리고, 음식을 대접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음식연락(飮食宴樂)의 기쁨을 나누며,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잘 기다렸고, 코로나 여신을 모시고 공경한 덕분에 이화서원은 탄탄한 공동체의 힘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수괘는 언제 실현될지 알 수 없지만 꿈을 꾸고 그 꿈이 실현되는 과정에 조급해 하지 않고 일상을 건강하게 이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성공하는 이유는 기다리는 과정에 기쁨을 창조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음식을 나누며 서로 사랑하고, 같이 기도하고, 책을 읽으며 생각을 나눕니다.
수괘의 기다림은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고 우정을 키우고 환대를 연습하는 시간입니다.
해월 선생님은 ‘집에 손님이 오시면 손님오셨다고 하지 말고 하늘님 강림하셨다고 하십시오.’ 하고 제자들에게 권했습니다.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우정과 환대로 서로를 하늘님으로 인식하는 눈이 열립니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감각을 Convivialty 라고 말했습니다.
함께 생력을 창조하는 마음입니다.
김종철 선생님은 Convivialty를 ‘공생공락共生共樂’이라고 번역하셨는데, 저는 주역 수괘의 느낌을 담은 ‘음식연락飮食宴樂’ 이라고 번역하고 싶습니다.
김종철 선생님이 삶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가 주역 수괘의 손님에게 음식을 나누는 일에 조금 더 무게를 둔 정도의 번역입니다.
수괘가 기다림의 시간에 기쁨을 창조한다면 송괘는 정의롭습니다.
세상에는 분노할 일이 있고 싸워야 할 때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의에 맞서서 싸우는 일은 두렵고 숨 막힙니다.
어떨 때는 이 싸움에서 이기더라도 얻는 것은 없고 상처만 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송괘의 지혜는 맞서 싸우면서 동시에 물러서는 일입니다.
싸움의 범위를 넓히면 반드시 패하게 됩니다.
멈출 지점을 넘어서 길을 잃으면 싸움의 정당성, 정의로움은 상실되고 감정만 남게 됩니다.
다툼의 범위를 명확히 한정하고 그 부분이 해결되면 합리적인 지점을 찾아 물러설 수 있어야 합니다. 다투는 과정에 감정이 확대되면 결국 깊은 연못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처럼 너 죽고 나 죽고의 상황이 됩니다.
소송은 이기고 지느냐, 옳고 그르냐의 관점을 가지면 풀 수 없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정의로움, 옳음, 경험에 대해 지나치게 확신하는 확증편향이 있습니다.
송괘가 문제를 푸는 과정은 내가 옳다는 확증편향을 조금씩 내려 놓는 연습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삶에서 이루어야 할 것이 억울함을 푸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분노를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더라도 상대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잃지 않는 균형 감각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갈등의 해결이 이런 선한 의지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천수송天水訟은 하늘과 땅이 다른 길을 가는 형상입니다. 天與水違行
각자가 서 있는 입장과 상황이 다르고 문제를 인식하는 기준도 다릅니다.
같은 글자를 놓고 내가 이해한 것과 상대가 이해한 것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지 않았고,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싸울 수 있습니다.
어떤 싸움은 나의 억울함을 넘어서 그 시대의 시대 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는 혼자서 풀 수 없습니다. 힘을 모아야 합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고 외치며 몸을 던진 전태일 열사는 노동 운동가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쓴 뒤에 지금 내 앞에 있는 문제는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인식에 이르게 됩니다.
그는 개인의 저항을 넘어선 거대한 분노에 불길을 당깁니다.
05. | ☵☰ 需 |
수천수水天需
需 有孚 光亨 貞吉 利涉大川.
수 유부 광형 정길 이섭대천
지금은 때가 아니어서 기다리지만 나에게는 우리들 모두가 꿈꾸는 빛의 시간이 온다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을 가지고 강을 건넌다.
彖曰 需 須也 險在前也. 剛健而不陷 其義不困窮矣.
단왈 수 수야 험재전야. 강건이불함 기의불곤궁의.
需有孚光亨貞吉 位乎天位 以正中也. 利涉大川 往有功也.
수유부광형정길 위호천위 이정중야 이섭대천 왕유공야
위험하다. 어딘가에 함정이 있다. 행동하기 전에 멈추고 생각하고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린다. 내가 기다리는 이 곳을 ‘하늘의 자리天位라고 하고, 균형감을 가진 중정正中’이라고 한다.
기다리다보면 언젠가는 강을 건널 수 있다.
象曰 雲上於天 需 君子以 飮食宴樂.
상왈 운상어천 수 군자이 음식연락
하늘 위에 구름이 가득한데 비가 내리지 않는다.
비는 올 때가 되면 온다. 나는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기쁨을 나누며 기다림의 시간을 즐기겠다. conviviality
1. 初九 需于郊 利用恒 无咎.
초구 수우교 이용항 무구
象曰 需于郊 不犯難行也. 利用恒无咎 未失常也.
상왈 수우교 불범난행야 이용항무구 미실상야
교외에서 조금 거리를 두고 기다리겠다.
조급해하지 않겠다. 평상시에 살던 그대로 내 삶의 일상을 놓지 않겠다.
2. 九二 需于沙 小有言 終吉.
구이 수우사 소유언 종길
象曰 需于沙 衍在中也. 雖小有言 以吉終也.
상왈 수우사 연재중야 수소유언 이길종야
사람들은 나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하고 있다.
모래 길을 걷는 것처럼 발이 무겁다. 좋고 나쁨에 크게 매이지 않고 넓고 멀리 보겠다.
3. 九三 需于泥 致寇至.
구삼 수우니 치구지
象曰 需于泥 災在外也. 自我致寇 敬愼 不敗也.
상왈 수우니 재재외야 자아치구 경신 불패야
기다리면 때가 온다고 생각하지만 하루 하루 기다리는 것이 발이 빠지는 뻘 위를 걷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공격당하고 침입당할 것 같은 불안도 생긴다. 정신차리자. 조급함이 나를 무너뜨릴 수 있다. 이게 함정이다.
4. 六四 需于血 出自穴.
구사 수우혈 출자혈
象曰 需于血 順以聽也.
상왈 수우혈 순이청야
함정에 빠져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다. 나 스스로 이 곳을 벗어나야 한다. 길이 어디에 있을까? 마음을 가라 앉히고 내 마음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5. 九五 需于酒食 貞吉.
구오. 수우주식 정길
象曰 酒食貞吉 以中正也.
상왈 주식정길 이중정야
나는 지금 하늘의 자리, 중정中正에 서 있다. 좋은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인다.
6. 上六 入于穴 有不速之客三人來 敬之終吉.
상육 입우혈 유불속지객삼인래 경지종길
象曰 不速之客來敬之終吉 雖不當位 未大失也.
상왈 불속지객래경지종길 수부당위 미대실야
지금 내 처지가 어디에 갇힌 것처럼 불편하다. 누군지 모르는 초대하지 않은 손님 세 분이 오셨다. 그 분들을 공경하며 하늘님처럼 모셨다. 가진 것이 없어 제대로 대접하지는 못했지만 크게 실수하지는 않았다.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끝났다. 비가 내리고 다시 빛이 비친다.
06. | ☰☵ | 訟 |
천수송天水訟
訟 有孚 窒惕 中吉終凶. 利見大人 不利涉大川.
송 유부 질척 중길종흉. 이견대인 불리섭대천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숨이 막힐 것 같다. 서로가 물러나지 않아서 누가 옳은 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지혜로운 분의 안내를 받아 적절한 지점을 찾고 싶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강을 건너고 싶지 않다.
彖曰 訟 上剛下險 險而健 訟. 訟有孚窒惕中吉 剛來而得中也. 終凶 訟不可成也.
단왈 송 상강하험 험이건 송. 송유부질척중길 강래이득중야. 종흉 송불가성야.
利見大人 尙中正也. 不利涉大川 入于淵也
이견대인 상중정야. 불리섭대천 입우연야.
권력을 가진 강한 사람, 억울함을 참을 수 없는 사람. 그들 둘이 만났다. 두 사람은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이 적절한 지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두 사람 다 중심을 놓치지 않는 실력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 사람이 끝까지 가겠다고 생각하면 그들은 이 투쟁에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균형의 힘을 중시해서 두 사람이 중정(中正)을 찾게 하지만, 적절한 지점을 찾지 못하면 두 사람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연못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같다.
象曰 天與水違行 訟 君子以 作事謀始.
상왈 천여수위행 송. 군자이 작사모시
하늘과 물이 다른 길을 간다. 이렇게 된 이유는 첫 시작의 어느 지점부터다. 왜 그렇게 시작했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옳고 나만 억울한 것일까?)
1. 初六 不永所事 小有言 終吉.
초육 불영소사 소유언 종길
象曰 不永所事 訟不可長也. 雖小有言 其辯 明也.
상왈 불영소사 송불가장야. 수소유언 기변 명야
나는 이 다툼을 오래 끌고 갈 마음이 없다. 사람들은 내 문제에 대해서 뒷담화를 하는데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겠다. 갈등을 오래 끌고 싶지 않으면 말을 가려서 들어야 한다.
2. 九二 不克訟 歸而逋 其邑人 三百戶 无眚.
구이 불극송 귀이포 기읍인 삼백호 무생
象曰 不克訟 歸逋竄也. 自下訟上 患至掇也.
상왈 불극송 귀포찬야. 자하송상 환지철야
소송을 했지만 이길 수가 없었다. 이 소송의 결과는 내 문제를 넘어 우리 마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힘이 내 주변 이웃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막으려면 억울하지만 멈추고 숨 죽여야 한다.
3. 六三 食舊德 貞厲終吉. 或從王事 无成.
육삼 식구덕 정려종길. 혹종왕사 무성
象曰 食舊德 從上吉也.
상왈 식구덕 종상길야.
나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 두렵다. 그들과 부딪치지 않고 내가 물려받아 가진 것으로 만족하며 살겠다. 왕과의 인연으로 정치적 역할이 주어지고 공무를 맡더라도 나는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문제를 풀어 성공하기 보다는 갈등이 확대되지만 않아도 괜쟎다.
4. 九四 不克訟 復卽命 渝安貞 吉.
구사 불극송 복즉명 유안정 길
象曰 復卽命渝安貞 不失也.
상왈 복즉명유안정 부실야
나는 그를 이길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를 이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왜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반응하며 내 삶을 소진하고 있나? 멈추자. 최선을 다해 내 입장을 주장한 다음에 멈추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는 길이다. 知止
5. 九五 訟 元吉.
구오 송 원길
象曰 訟元吉 以中正也.
상왈 송원길 이중정야
오랜 갈등을 풀어냈다. 우리 둘 다 중정(中正)의 마음, 균형 감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혜로운 분의 조언을 귀담아 듣고 보편적인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의 존재를 존중하겠다.
6. 上九 或錫之鞶帶 終朝三褫之.
상구, 혹석지반대 종조삼치지
象曰 以訟受服 亦不足敬也.
상왈 이송수복 역부족경야.
서로 갈등을 조정하고 아름다운 허리띠를 선물 받았다. 그런데 아침이 되기도 전에 세 번이나 빼앗긴다. 그와 나는 문제를 이해하고 합의의 결과를 해석하는 기준이 달랐다.
여전히 서로를 인정할 수 없었다. 공경의 마음이 없는 합의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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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살 김재형 이화서원 대표. 전남 곡성에서 이화서원이라는 배움의 장을 만들어 공부한다. 고전 읽는 것을 즐기고 고전의 의미를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있다. '시로 읽는 주역', '아름다운 세 언어 동아시아 도덕경', '동학의 천지마음', '동학편지' 를 책으로 냈다. 꾸준히 고전 강의를 열어 시민들과 직접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