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김혜정의 마음놓고 마음챙김
2023년 10월 5일
4. 명상하면 지렁이가 용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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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십 대라는 이른 나이에 마음에 대해 남들보다 큰 관심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한 까닭은 삶이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워서였다. 명상을 만나기 직전의 내 마음은 마치 칼로 난도질당한 마냥 피를 뿜어대고 있었다. 그런데 다년간 요가로 단련된 내 몸은 선혈이 낭자한 마음과 달리 너무나도 건강해 보였다. 만나는 사람들도 나를 멀쩡하게 잘 사는 사람 취급했다. 나는 이리도 생생하게 아픈데, 아픔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얀마행 비행기에 올랐다. 본래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에 간 수가 손에 꼽힌다. 그런데 미얀마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당시에 읽었던 책 한 권 때문이었다. 잭 콘필드가 쓴 <위빠사나 열두 선사>라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을 즈음 스트레스를 받으면 운동으로 풀던 나는 매일 입에서 단내가 올라올 때까지 운동했다. 몸에 이상 신호가 왔다. 손목에서 시작된 통증이 팔꿈치를 타고 어깨로 올라왔다. 왼쪽 고관절 통증으로 소리를 지르며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해가며 운동을 했는데도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그때 우연히 발견해 읽은 책이다. 명상에 관심이 깊은 서양인 저자가 미얀마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수행법을 배우고 익힌 뒤 정리했다. 혼자 책에 적힌 대로 따라서 해보았다. 신기했다. 분명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잠시 두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명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변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명상을 매일의 습관으로 굳히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미얀마에 갔다. 인에 박힐 때까지 배우고 익혀서 명상을 습관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미얀마에서 한 달간 묵었던 절의 이름은 쉐우민이다. 처음 쉐우민이라는 절에 도착했을 때가 떠오른다. 들리는 말로는, 그간 쉐우민에 수행하러 온 한국인들이 보시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인 내게 유독 친절했다. 한류 열풍도 한몫했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눈에 띄는 미인인 것도 아닌데, 오직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로 한류열풍은 대단했다. 다른 미얀마 재가수행자들은 6-7명이 한 방에 묵었으나 한국인인 내겐 독방이 배정되었다. 내심 기뻤다. 그런데 방에 들어서서 내가 앞으로 한 달간 몸을 뉘어야 할 매트리스를 보는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혔다. 오랫동안 쌓인 땟국물 때문에 분명 처음엔 하얀색이었을 매트리스가 갈색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매트리스 위에 깔라고 얇은 요를 주셨으나 그것도 썩 깨끗해 보이진 않았다. 그뿐이 아니었다. 방에 바퀴벌레가 날아다녔다. 원래 동남아시아의 바퀴벌레는 날기도 하나 보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 같은 서울 깍쟁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았다.
단체 명상을 하는 홀에 갔다. 남 눈치를 많이 보는 한국인들과 다르게 미얀마의 재가수행자들은 모두 자유로운 영혼들인 것 같았다. 명상 도중에 일어나는 생리 현상을 거리낌 없이 분출했다. 내 앞사람은 속이 더부룩한지 끊임없이 방귀를 꼈다. 명상할 때 쓰라고 절에서 나눠준 모기장은 모기는 막아주었지만, 앞사람이 뀐 방귀 냄새를 막아주진 못했다.
식당에 갔다. 다행히 미얀마의 현지식은 입에 맞았다. 아쉽게도 장에는 맞지 않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탈이 나서 화장실로 달려갔다. 본래 한국에서의 나는 얼굴은 털털해도 엉덩이가 깍쟁이인지라 낯은 가리지 않는데 화장실은 가렸다. 공중화장실에 가는 게 비위가 상했다. 오죽했으면 생리 현상을 하도 오래 참아서 방광염에 걸린 적도 있었다. 나의 화장실을 가리던 기벽은 미얀마의 절에서 한 달을 살다 온 후 사라졌다. 웬만한 한국의 공중화장실은 미얀마에서 사용했던 화장실보다 깨끗했기 때문이다. 화장실에 가기 싫다고 굶을 수도 없었다. 뭘 먹긴 먹어야 종일 명상을 할 수 있었다. 미얀마와 같은 초기불교 국가에는 채식하라는 계율이 없는 대신 오후 불식이라는 계율이 있다. 저녁을 안 준다는 말이다. 그러니 밥을 줄 때 잘 받아서 먹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 오후 불식이 익숙하지 않은 재가수행자들을 위해 절에서는 정오 이후에 주스와 설탕 조각을 제공하고 있었다. 단언컨대 쉐우민에 머문 기간 동안 그곳에서 설탕 조각을 가장 많이 집어 먹은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나는 틈날 때마다 설탕 조각을 집어 먹었고, 종종 명상 도중에 설탕의 모습이 아른거리곤 했다. 그러나 매일 배앓이를 하느라 피골이 상접 했던 내게 설탕을 먹는 일조차도 쉽지 않았다. 바로 개미들 때문이었다. 설탕이 든 통은 명상 홀 바깥 복도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는데, 나처럼 설탕 조각을 노리는 개미들이 통 주변에 바글바글했다. 개미들이 들어가기 전에 재빨리 뚜껑을 열어 설탕 조각을 빼낸 후 다시 닫아야 했다. 나는 매일같이 설탕을 먹기 위해 개미들과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이 지났다. 한국에 있을 때의 내가 군살 없는 근육질의 몸으로 지옥 속을 살고 있었다면, 이곳에서의 나는 잦은 배탈로 인해 점점 야위어 갔으나, 마음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평화로웠다.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살면서 이토록 평화로운 적이 있었는지 기억을 헤아려 보았다.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물질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가장 깊은 평화를 발견하다니. 인생은 참 아이러니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를 이곳에 오게 했던 문제는 조금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명상 도중에 그 문제가 자주 떠오르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한국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에야 깨달았다. 오히려 명상 도중에 설탕 생각과 이곳의 지저분한 화장실 생각을 더 자주 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먼 곳까지 온 것인데, 문제에 대한 생각조차 별로 하지 않았다니. 스스로 문제라 여겼던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애를 쓸수록 마음만 괴롭고 마땅한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절망스러웠다. 이곳에서 배운 수행법은 좋았다. 마음의 평화가 수행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방증했다. 그렇다면 혹시 수행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 수행을 꾸준히 지속하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고백하건대, 한국으로 돌아와 매일 명상을 하고, 틈날 때마다 명상센터에 장기수행과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지금도 나는 화가 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인간관계로 인한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안다. 당시의 내가 수행이 부족해서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문제가 없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미 명상을 통해 마음은 지극히 평화로워진 상태였다. 마음이 평화롭다면, 다른 이가 나를 업신여기든, 모함하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애초에 문제는 있지도 않았다. 다만 문제를 문제로 여기는 마음을 놓기가 힘들었을 뿐이다.
나를 돌아보건대, 명상한다고 지렁이가 용이 되진 않는다. 그러나 명상을 하면 고통스러운 지렁이가 행복한 지렁이가 된다. 물론 고통스러운 용도 행복한 용이 될 수 있다. 지렁이도 용도, 명상을 제대로 하면 분명한 이득을 볼 수 있다. 명상은 나 아닌 남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명상하면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힘이 생긴다. 화를 내도 괜찮고, 슬퍼해도 괜찮고, 인간관계가 어려워도 괜찮다. 명상은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닌, 행복하게 가는 길이다. 나와 함께 행복하게 기어갈 지렁이들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며 나의 불행한 지렁이 시절을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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