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5월 24일

4. 사건의 지평선 - 사회의 교차성(Intersectional Society)





(사진: Designs for the Pluriverse, Arturo Escobar 책 표지에서 발췌)

사물은 모든 부정성을 떨쳐버릴 때, 매끈하게 다듬어지고 평탄해질 때, 아무 저항 없이 자본과 커뮤니케이션과 정보의 흐름에 순응할 때 투명해진다.
한병철



나의 (거의) 첫 기억은 동네 산 밑의 개울이다. 그 개울에서 나는 물장구를 치고, 개구리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8살 때 그 동네를 떠난 뒤, 그곳은 재개발이 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작고 낮은 상가는 거대한 건물이 되었고, 산은 없어졌다. 물론 개울도 사라졌다. 왜 그래야 했을까? 시간이 흘러 평화학 연구를 하며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서 질문을 던진다. 나에게 중요한 기억, 그 기억이 시작된 장소는 어디인지. 그것이 나에게 어떤 것을 주는지,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나는 안양에서 태어나 광명에서 자랐다. 베드타운(bed town)으로 기획된 초기 신도시들이다. 그래서 평화학을 하며 나를 돌아볼 때, 내가 주목했던 것은 화학공장, 공항, 군대시설 등이 아닌 도시 안의 아파트였다. 인간의 거주 조건이 인간의 의식과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것이 평화를 만드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투쟁의 가장자리에서 생존을 외치는 강렬한 감각이 아닌 심심할 수도 있는 잔잔한 일상에서 번지는 느린 폭력과 평화적 감각의 상실이 나와 맞닿아 있었다. 보통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무엇일까? 그 안에서 인간과 생명은 어떻게 물 흐르듯이 파괴되고 생명력을 잃는지가 나의 질문이었다.

안양과 광명을 잇는 공간은 안양천이다. 높은 아파트 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사람들의 산책로이자 쉼터인 그곳에서 나의 기억도 흐른다. 저녁에 가족들과 산책하던 기억,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강가를 걷던 기억, 역에 가기 위해 안양천 위 다리를 오가던 기억 등 무수한 기억이 함께 있다. 나에게 그 기억들은 마냥 좋은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매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안양천에 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어떤 감정으로 가든 안양천에 있던 순간은 나를 편안하게 했다.

이건 나의 기억이고 경험이다. 얼마전 함께 안양천을 걷던 친구의 말은 조금 달랐다. 자신이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이 “안양천 근처는 더럽고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기억으로도 그때 안양천은 지금처럼 정비가 잘 되어 있지 않고 스산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물에 쓰레기가 많아 악취가 나고 색도 탁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에 안양천이 그랬던 것 같기도 했다.

이 차이는 나와 내 친구의 기억에서 안양천이 가지는 이미지, 그리고 그 이미지의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안양천 주변이 정비되고 수질이 개선된 상태와 그전 시점 중 내 머리속에 강하게 남은 것과 친구의 머리속에 강하게 남은 것, 그 정도가 다른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억 안에 같은 공간이라도 그 공간과 시간이 나에게 가지는 위치성에 따라 감각이 달라진다. 그리고 그 감각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회적 상황과 변화들이 있다. 안양천이 시의 수질 개선 및 산책로 조성 사업에 따라 달라진 것, 사람들이 주변 환경 조성에 관심이 많아진 것 등 사회•문화적인 요건들이 나의 경험과 얽혀 있다.

그래서 나의 경험과 감각을 돌아볼 때 필요한 것은 경험을 충분히 되살리는 것과 함께 그 경험의 바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살던 안양에서 산과 개울은 없어짐을 당했다. 그 자리에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생기고 동시에 단지 앞에는 안양천이 흘렀다. 내가 이사 온 광명의 아파트 단지 앞에도 안양천이 흘렀다. 비슷한 상황과 모습이지만 나의 감각은 전혀 달랐다. 안양에서 나는 터전이 파괴되고 사라짐을 느꼈다. 안양천을 봐도 마음이 불편했다. 반면 광명에서는 안양천을 보며 마음을 안정시켰다.

이 오묘한 감정 그리고 감각들과 연결되어 있는 사회의 변화들을 보며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본다. 일상에 스며드는 어떠한 폭력을 바라보지 못하는지, 편안함에 묻어둔 감각과 감수성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우리는 자주 눈에 띄는 것들에 신경을 집중하지만, 변화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순간 일어난다. 그 안에서 관계가 만들어지고, 관계가 나를 만든다. 안양천과 연결된 감각에서 나는 어떠한 생명과 힘을 잃고 잊었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한 사회는 겹겹이 쌓인 페스트리처럼 개인의 교차성들이 얽히고 설켜 더 복잡한 교차성들을 만들어 낸다. 그 사회들은 다시 얽히고 설켜 또 다른 교차성을 만들어 내며 정교하고 복잡하게 변화한다. 변화에는 여러 부분이 있다.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애매모호하기도 한 묘한 감각들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감각을 자주 잃고 잊어버린다. 그 사이 실제로는 더 복잡하고, 뒤얽혀 있으며, 역설적인 일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나에게 또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을 깊고 넓게 바라보기 위해 잃어버리는 묘한 감각들을 깨우고, 그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야 한다.







이희연오스트리아에서 평화학을 연구하고 있다. 폭력과 죽음의 고리를 정치생태 안에서 해석하고, 평화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또한, 현재 플루리버스와 가이아 이론을 한국의 동학과 연결하여 재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