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10월 25일

41. 한국의 ‘유사신분제’와 자유, 평등 그리고 ‘데모크라시Democracy’





‘한국말 말차림법’이라는 새로운 문법체계를 고안한 최봉영은 원래 철학자이다. 철학자답게 말과 생각을 명확하게 풀어서 설명하려다보니, 외국어와 한국말의 차이를 곰곰히 생각하게 됐다. 그는 학부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을 거치면서 전문적인 연구자로서 조선의 성리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영어라는 언어의 문법, 한국말과 한국의 철학, 그 배경이 된 중국의 철학, 그리고 서구의 철학과 역사를 깊이 분석하고 비교할 수 있었다.

그는 한국말 말차림법을 만들면서, 한국말의 기본 어휘들이 원래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곰곰히 따져보는 ‘바탕치기’를 해왔다. 이를테면 ‘사람’이라는 말은 ‘살다’와 ‘살리다’라는 뜻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람은 “살고 살리는 힘을 가진 온갖 것과 함께 살리는 임자”라고 그는 풀이한다. 그리고 그 능력의 근원이 “말하기에 있다”고도 이야기한다.

그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2023년 추석연휴를 앞두고 공개한 글 《한국사람에게 인격은 무엇을 말하는가》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한국의 “유사신분제” 문제에 대한 지적이었다. 나는 평소에 이 문제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병폐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주의 깊게 몇번이고 숙독했다. 나는 그의 문제제기에 매우 공감했지만, 그가 문제를 들여다 보는 방식이 그의 한국말 말차림법이나 바탕치기에 기반한 그 자신의 한국 문화 이해 수준에 비추어 충분한 깊이를 갖추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아서 내 나름의 비평적 의견을 보태보기로 하였다.

우선 그의 글의 핵심 메시지를 요약해 보겠다. 사람은 나고 자라서,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되어가는데”, 이를 ‘사람됨’이라고 하고, 이러한 ‘사람됨’을 나타내는 여러 특성중에서 그는 ‘인성人性‘, ‘인품人品’, ‘인격人格’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풀이한다. 즉, 사람됨의 밑바탕이 ‘인성’이고, 사람됨의 마음속 됨됨이가 ‘인품’,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차림새가 ‘인격’이라고 한다. 또, 사람은 나름의 줏대를 자기 뜻대로 펼치면서 누리고 살아갈 권리가 있는데, 이렇게 살아가는 방식이야말로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이 현대 사회에서 “보편적 인권”을 향유하게 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한다.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왕정시대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어떻게 인권이 보장받게 됐고, 국가와 인권은 어떤 관계를 갖는지 밝힌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선언>과, 프랑스 대혁명의 <인간과 시민선언>, 그리고 <UN인권선언>등이 이러한 내용을 “자명한 것”으로 정리해서 밝히고 있다. 창조주, 즉 신은 모든 인간에게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그것은 생명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할 권리이다. 흔히 천부인권이라 불리는 사상이다. 인간, 특히 왕과 귀족을 포함한 지배층에 맞선 시민계급은 투쟁과 혁명을 통해서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한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했다. 국가는 국민의 이런 권리를 보호해야 하고, 국가의 권력은 이런 목적을 위한 국민 혹은 시민의 동의하에서만 정당성을 갖는다. 국민이 주권을 갖는 이러한 현대 국가를 ‘데모크라시democracy’, 즉 ‘민주정 제도’ 국가라고 일컫는다.

한반도 국가와 우리 한민족의 경우를 살펴보자. 대한민국이 수립되기 전의 조선왕조는 엄격한 신분제에 따라 차별이 정당화되는 국가였다. 영정조 시기 이후, 그리고 조선 후기에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보통 사람들의 다양한 저항이 이어졌다. 동학운동과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동학은 조선과 동아시아의 전통사상들과 신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천주교의 영향을 받았다. 이를 통해서 신분제를 타파하기 위한 사상적 기틀을 마련했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모든 사람과 사물에 하늘, 즉 신성神性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존재가 모든 존재를 하늘처럼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일제식민지 시기와 광복직후의 한반도 전쟁을 겪은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권위주의 정권, 군사독재정권에 맞서는 다양한 민주화 투쟁운동이 이어졌다. 한국 사람들은 200~300년에 가까운 나름의 역사과정을 거치고 1990년대 민주화 정부가 수립된 후에야 비로소 명목뿐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민주공화국이라 불릴 수 있는 체제하에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제도적으로 실현하게 됐다.

그런데 역사적으로는 사라진 신분제가 현대사회에서 다시 ‘유사신분제’로 부활하고 있다. 즉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사람됨의 차림새, 즉 인격에 따라서 상대방을 올려다보거나 얕보고 신분의 우위를 정하려는 풍조가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다. 여기서 인격은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연령, 성별, 지위, 자산, 명성, 소비취향 등 매우 다양한 형식으로 표현된다.

남보다 인격적으로 우위에 놓이기 위한 투쟁은 사회과학 용어로 흔히 ‘인정투쟁’이라 불리는 인격투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국인의 이런 호승심(비교 경쟁에서 이겨서 남보다 우위에 서고 싶은 마음)은 현대사회의 세계체제에서 한국사회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오는 주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은 해방과 전쟁 이후 매우 짧은 기간내에 국제사회에서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전된 ‘선진국’으로의 위치를 획득하고 높은 국격을 인정받게 됐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투쟁과 경쟁심리가 과도하다보니, 사람들이 사회 혹은 국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고통을 받고, 삶의 의지를 상실하는 일들조차 벌어지고 있다.

최봉영은 한국말 말차림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발생시킨 문화적 요인중에서 특히 언어사용과 언어생활의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즉, 한국말에 많이 드러나는 존비와 위계를 나타내는 호칭과 언어사용법 등이 이런 유사신분제 문화를 강화하거나 존속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봉영의 영향을 많이 받은 디자인 철학자 윤여경은 ‘평어사용운동’을 제안하기도 했다. 최봉영과 윤여경의 의견은 모두 의미있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글을 조금 더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싶다. 주로 근현대 역사에서 서구를 중심으로 한 인류와 한국사회가 신분제를 철폐하고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기울인 노력이 충분했던 것인지, 그 방향이 전적으로 옳은 것인지에 대한 나름의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내가 이런 의문을 가지게 된 이유중 하나는 최봉영의 한국말 말차림법이나 바탕치기에 드러나 있으며 윤여경이 이를 풀어서 말하는 좋은 생각들이 문제의 원인을 밝히고 해결하는데 더 잘 사용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은 비판이라기보다 내 나름의 보충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위에 간략히 정리한대로 최봉영은 근대 서구사회에서 제기된 ‘자유’와 ‘평등’, 그리고 시민사회를 기반으로 한 ‘데모크라시’, 즉 민주정 제도가 인류와 한국의 역사에서 명목상 신분제가 철폐된 사회를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설명은 한국사회, 특히 민주개혁진영에서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내용이다. 헤겔의 역사철학과 같이 인류 역사의 진보가 이런 식으로 이뤄져왔고, 앞으로도 이렇게 진행돼야 한다는 꿈과 이상이 존재한다. 그래서 많은 한국 사람들은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이웃 국가와 민족을 얕잡아보기도 한다. 그들 사회는 한국 사회가 성취한 자유와 평등의 수준을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또 데모크라시를 추구하지 않거나 제대로 추구하지 못해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처럼, 자유와 평등, 데모크라시의 역사와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거나 대체적으로 이에 반대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조차, 수사적으로 혹은 매우 좁거나 편향된 의미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남용하기도 한다.

나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와 한국사회가 성취해 온 데모크라시를 지지한다. 하지만, 우리가 일정한 수준으로 이러한 목표를 성취한 이후에는, 한국사회의 전통과 역사적 맥락에 기반하여, 이러한 가치들의 본래 목적과 그 현실적 타당성을 성찰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느낀다. 그러니 이를 기호화해서 맹목적으로 추구해 온 경향이 지금은 역설적으로 현재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일조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유사신분제의 온존과 강화를 촉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대체로 이런 가치를 가장 큰 정치적 신념으로 삼고 있는 자유주의 성향의 민주개혁진영, 그리고 소위 시민계급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서구사회의 투쟁과 혁명의 역사가 인류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그 결과로서의 현실세계는 여전히 실질적인 신분계급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이러한 이상적인 상태를 상대적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정치경제 구조가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민계급의 데모크라시와 공화정이든, 아니면 근현대의 부르조아와 시민계급이 성취한 현대적 민주공화국이든, 모두 그 밑의 경제 기반 구조에는 생산을 전담하는 실질적인 노예계급과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가 존재해 왔다. 나는 스스로를 좌파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대체적으로 좌파의 지구사적 정치경제구도 분석과 비판이 옳다고 믿는다.

현대사회에서의 상황을 이야기하자면 한국인들을 포함한 선진국 국민들은 아무래도 자국 네이션nation 내부의 계급모순이나 미국과의 모순 관계에 대해서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런 실질적 신분계급사회에 대해서 무감각할 수 밖에 없다. 선진국 국민들은 하위 수준의 노동과 자원을 공급하면서 저부가가치 생산을 도맡고 있는 소위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이들 선진국이 비용을 전가하는 생산형태와, 글로벌 사우스가 이 댓가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 등의 국가들이 금융자본주의를 통해서 다시 회수해 가는 방법(양털깎이)에 대해서, 그리고 선진국과 글로벌 사우스 양쪽 사회에서 모두 이런 금융시스템이 어떻게 부동산과 구조적으로 결합해서 파국이 오기전에는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뿌리깊은 모순을 만드는 지에 대해서 거의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사실 우리는 이런 모순을 이미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라리 똑똑한 (개미) 투자자가 됨으로써, 이런 구조에 편승하는 방법을 택하려고 한다. 한국이라는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가 이런 글로벌 경제구조를 스스로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또 글로벌 사우스에 직접 가서 살아본 사람은 매우 적고, 그냥 관광지를 방문하는 정도에 그칠뿐이니, 이렇게 일국을 넘어서는 구조적 모순에 둔감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생활속에서 실제로 깊이 오래 경험할 수 있는 세상 외에 쉽게 공감하지 못한다. 글이나 영상을 통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 전체 맥락이 배제되고, 중첩된 여러 층의 모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고, 특정한 요소가 창작자의 관점과 이념에 의해 필터링돼서 보여지는 만들어진 서사에 불과하다. 한계가 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외부인이 들여다 본다고 하더라도,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을 보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있을 뿐, 외부에서 주어진 모순과 내부에서 발생한 여러 모순들을 함께 균형감있게 들여다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은 다수의 글로벌 사우스 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특히 비수도권지역에서 하위 계층을 형성하고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노동을 떠맡아 수행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내에서 이런 비용전가의 실상이 재현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내에서는 동일 노동에 대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의 권리와 임금이 보장되고 이들의 노동 및 생활 환경이 한국 하층노동계급의 그것과 많이 다르지는 않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이런 문제를 한국의 계급 모순 이상으로 인식하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한국에 와있는 이들이 지역간 생산비용으로서의 임금 차익을 노린 수혜자라고만 여기기 십상일 것이다. 홍콩과 싱가폴에서 유행하는 동남아 출신의 보모 노동력을 한국으로 수입하자는 주장이 제기되는 것은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런 구조에 이미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모순을 나름의 경험을 통해서 명료하게 자각하게 된 것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나는 국제금융관련 업종에 수년간 종사한 경험이 있다. 산업구조와 그 작동방식을 깊이있게 이해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는 있었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곁에서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둘째로 미중간의 경제 갈등을 관찰하면서 주로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질서의 담론이 지배적인 한국 경제 뉴스나 한국인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과 중국내의 뉴스 및 전자의 경제 담론에 비판적인 각국 좌파 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보통 한국인들보다 후자를 많이 접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내가 중국에 거주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런 주장을 펼치는 중국의 정치경제학자 원톄쥔을 오랜 기간 주목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은 경제개혁개방 40년의 역사를 통해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 체제에 편입됐고, 그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재의 중국 경제가 가진 많은 모순은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지역의 경제발전국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부동산 문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발전의 댓가가 만만치 않기때문에, 중국은 한국을 비롯한 여타 국가들과 달리 수년전부터 미국주도의 경제질서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중국의 시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직 예단할 수 없지만, 미국이 긴장하고 있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그래서 미중 한쪽편에 일방적으로 서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관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을 단지 패권국가들이나 그 배후 정치세력간의 이권 다툼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서 어떤 정치경제상의 구조적 변화가 생길지 주목해야 한다. 애초에 변화를 가져올 희망이 없는 구조적 문제는 문제로 인식하지도 않게된다. 아니면 모순이 심화돼 이 시스템이 전면적으로 붕괴될 때를 기다리며 기우제를 지내는 듯한 판에 박힌 비판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런데, 최근의 중국사회와 경제를 관찰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할 지에 대한 약간의 기대와 강한 호기심이 생겼다. 

정리하자면, 한국내에서 명목상으로 평등한 시민사회가 형성됐다고 하더라도, 한국내 혹은 한국 바깥의 비한국인들의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에서의 생활과 노동이 전제가 된 것이라면 우리가 누리는 자유, 평등, 데모크라시와 이를 추구하기 위한 전제가 되는 현대화가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의 모든 사람이 지금 당장 완전히 같은 수준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거나 절대적인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주장은 아니다. 반대로 지금의 구조가 그런 방향으로의 발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살펴봐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화가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라면, 이를 지나치게 성급하게 혹은 맥락없이 ‘절대선’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이다.

둘째, 한국에서도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시민사회가 형성되긴 했지만, 서구적 맥락의 시민계급 형성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국에 살고 있을 때 이점을 명확하게 의식하지 못했는데, 중국에 와서 살면서 조금씩 그 문제를 이해하게 됐다. 경제가 발전해도 중국에 왜 시민사회가 형성되지 않는지 궁금하게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시민(공민)사회 형성을 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민계급의 맹아가 되는 중국의 (대)도시 중산층이나 젊은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도 이에 대해서 생각보다 크게 반발하지는 않는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선 중국내의 전통적 지식인이자 엘리트들인 신사紳士계급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것은 서구적 시민이나 지식인 계급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들도 존재한다. 기본적으로 신사계급은 왕조정부의 관료가 되어 통치에 직접 참여하거나 지역사회가 일정하게 자치를 유지하며 상부의 관료정부와 유기적이고 안정되게 결합해서 운영되는 것을 도울 목적으로 형성됐다. 원래 춘추전국시대에 사士는 성안에 사는 무사계급이었고, 이는 영주에게 고용된 유럽 봉건왕조의 기사들과 비슷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훗날 유가 지식인 계급으로 전환됐고, 송대에 이르러 완성된 유가관료제 사회에서는 세습 귀족이 아닌 중앙과 지역의 관료, 혹은 지역의 유지로서 황제와 함께 천하를 통치하는 엘리트 계급으로 거듭났다.

과거제도와 이를 준비하기 위한 교육제도가 이 관료선발과 인재양성의 핵심구조이다. 특히 명청대를 거치면서 평민들 혹은 농민들 누구나 과거제도에 응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혹은 이론적으로는 중국의 세습적 신분제도는 거의 사라지게 된다. 중국은 유가왕조정부가 종교나 상업집단보다 항상 상위의 권력을 점유했기 때문에, 세습이 가능한 자본가나 초월적 권능을 갖는 종교귀족의 계급은 형성되지 않았고, 오로지 왕조와 거대한 평민사회, 그리고 그 중간을 매개하며 신분이 세습되지 않는 신사계급만이 남게 된 것이다.

나는 중국의 공산당원과 체제내(體制內, 각급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원과 학교, 대학과 연구소를 포함한 사업단위라 불리는 각종 단체들, 다양한 형태의 국유기업, 관영기업의 임직원 등 준공무원들이 해당한다) 사람들을 현대판 신사계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입시와 공무원시험을 포함한 다양한 엘리트 선발 제도가 과거제도를 현대화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체제내 지식인들이나 언론인들이 상대적으로 보수적이고 체제수호적인 성향을 갖는 것이 더이상 그다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중국의 지식인과 평민들이 모두 혹은 항상 왕조 정부를 지지하거나 이에 복속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에는 늘 강호江湖라는 독립적인 민간사회가 존재해왔다. 상업이든 종교영역이든 혹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이든, 그리고 자치를 추구하거나 반역적인 평민들이든, 이런 전통은 늘 유지돼 왔다. 과거 천년이상 중국 국가의 중심축이 돼온 베이징과 상하이를 잇는 이외의 지역들에서는 심지어 이들이 지역 자치의 근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중심축과 거리가 멀고 나름의 문화가 발달해 온 지역에서 이들의 영향력이 유가 향신의 영향력을 뛰어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쓰촨성의 파오거袍哥와 거라오후이哥老會, 그리고 남방지역의 천지회天地會이다. 유명한 중국학 학자인 프라센지트 두아라 Prasenjit Duara는 신중국 수립이전, 비교적 왕조정부의 영향과 입김이 강한 화베이華北 지역(허베이河北 평야 지대와 산둥山東지역)의 필드조사자료를 연구하여 분석하고 향신과 강호의 인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마을 지역의 권력 구조를 ‘권력의 문화적 네트워크 Cultural nexus of power’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지역 사회의 명망가와 물질적 기반을 갖춘 권력자들이 가문의 이해관계와 민간종교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력을 드러내기도 하고, 정부의 기층관리 네트워크와 중첩하거나 대립하기도 한다.

다만 이들이 한 지역 단위를 뛰어넘어 전국적인 영향력을 갖는 조직과 기구를 만들려고 할 때, 항상 체제내의 관리를 받게 된다. 특히 비즈니스의 경우 전국적인 규모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앙정부의 지원과 협조를 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위챗의 텅쉰이나 알리바바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 중국의 모든 등록된 레거시 미디어는 정부와 공산당의 통제하에 있다. 중국의 인터넷에서 레거시 미디어 혹은 위챗을 포함한 SNS들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기 때문에 이런 통제하에 들어가게 된다. 즉, 이곳은 강호가 아니라 체제내에 속한다. 그래서 중국 정부가 마음대로 검열하고 삭제한다. 이런 강호의 영역을 처음부터 위로부터 관변화하여 국가차원의 어용단체로 만들어 버린 사례도 있다. 중국의 노동조합인 공회公會나 부녀협회婦女協會, 공청단共青團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평민, 신사, 강호로 이뤄지는 중국의 사회요소들과 중국 공산당 정부의 관계를 이해한 후에, 신해혁명, 공산주의 혁명과 그 이후의 매우 급진적인 사회적 변혁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달리 중국사회가 매우 전통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에서 서구적인 맥락의 시민사회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들의 역사발전 맥락과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물론 도시화와 산업화가 미시적으로 청년들의 사회구조 인식과 개인의 행동양식을 바꿔놓고 있다. 하지만 상부의 정치제도는 여전히 매우 안정적이어서 큰 변화가 임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의 신사가 체제수호적이라는 이유 때문만으로 중국의 정치가 안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평민엘리트들, 혹은 신사계급의 사람들도 언제든지 중앙정부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소위 ‘민심’이 이반되면 그럴 수 있다. 중국의 중앙정부가 두려워하는 민심은 상하이의 중산층 시민들의 그것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철저히 중위에 속하고 다수를 점하는 보통사람들의 심기를 읽으려고 노력한다. 마오쩌둥이 말한대로 공산당은 평소에는 고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격랑이 이는 민심의 바다에 떠있는 조각배에 불과하다. 2022년 오미크론이 급속히 번졌을 때, 4월달에 상하이를 무자비하게 봉쇄했던 중국의 중앙 정부가 11월말 광저우의 봉쇄 상황에서는 백기를 들었다. 광저우 하이주구의 농민공들, 그리고 광저우 보통사람들의 흉흉한 민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기적으로 여러차례 전국의 봉쇄가 어려움을 겪으면서 누적된 피로가 있었을 것이고, 일 년간 노인층과 농촌지역에서 백신접종률을 높였기 때문에 그런 결정이 가능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산당이 중시하는 여론이 누구의 것인지, 가늠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상하이의 “리버럴한 서구적 시민계급”은 중국 현대 역사에서 예외적인 존재들이다. 바깥으로 전달되는 그들의 목소리가 더 크긴 하지만, 중국 보통사람들이나 전체 엘리트 신사계급의 여론과 민심을 대표하지 못한다. 상하이의 정치 엘리트들은 오히려 베이징의 엘리트들과 협조적 관계이며, 함께 중국을 통치한다. 아니면 마치 남쪽에 위치한 인문 상업 중심국가인 송왕조가 북쪽의 무력 강대국 왕조인 요나 금에 조공을 바치며 평화를 유지한 것과 비슷한 구조가 내부화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 언론을 포함한 외부세계에서는 이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중국 정부는 이들이 run润(외국으로 이민을 가는 현상)하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지도 개의치도 않는다. 이들은 강호세계의 일부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강호의 고수나 리더는 아니다. 지켜야 할 가진 게 많고 두려움도 많다. 무엇보다 이들의 생각은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마음이나 생각과 잘 동조되지 못한다. 물론 중국정부가 이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상하이에 거주하는 소수의 외국인들이나 이들과 생각이 많이 동조돼 있는 중산층 시민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함으로써, 외부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다양성을 존중함으로써, 불필요한 충돌의 가능성을 줄일뿐 아니라, 자신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이해를 토대로 다시 한국사회를 돌아봤을 때, 현대 역사에서 한국이 중국과 다른 역사경로로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한국의 시민사회가 서구적 시민사회와 중국적인 전통사회의 면모들을 모두 가지고 있는지 깨닫게 됐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의 극과 극을 오가는 불안정한 정치 상황이 이런 배경에서 비롯한다고 믿는다. 30%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데모크라시를 지지하지 않고, 중도나 무당파 혹은 정치 저관여자층이라 불리는 30%에 가까운 유권자들은 정치제도와 그 운용에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절반이 넘는 유권자가 데모크라시에 역행하는 지도자를 선택한 후에,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목소리 높여 외치는 희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서구적 시민사회의 형성을 통해서 유사신분제 사회를 없애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다시 고민을 하게 됐다.

사실 조선은 중국의 전통사회와 달리 신분계급제를 해체하지 못했다. 중국의 신사계급에 해당하는 조선의 선비와 양반은 평민 누구나 노력에 의해서 그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양반 그중에서도 적자만이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일본 식민지 시절에도 뉴라이트의 주장과 달리 이러한 모순은 해소되지 못했다. 이 기간에 양반 귀족중 대지주는 일제 식민지 사회의 경제적 모순을 악화시키는데 일조했다. 또, 조선의 평민 엘리트에 해당하는 향리들은 일제 식민지 기회를 틈타서 관료 엘리트로 탈바꿈해서 대지주 못지않게 구조적 모순을 악화시켰다. 식민지 시기 대부분 농민인 평민(대다수는 자기 자신의 성도 갖고 있지 못했던 조선의 천민출신들)은 광복과 6.25전쟁, 그리고 전후 토지개혁에 이를 때까지(중국 대륙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했기 때문에, 토지개혁이 이뤄졌고, 미국은 공산주의의 전파를 염려하여 자신의 영향력하의 일본, 한국, 대만에서도 토지개혁을 추진했다.) 이런 모순 구조를 탈피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전통사회와 해방전 식민지의 과도기 사회에서 신분계급제를 해체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중국에 비해서 한국의 평민 혹은 시민들이 중앙정부와 권력자들에 대해서 큰 반감과 불신을 가지게 된 근저에는 이런 역사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업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나머지 30%에 해당하는 민주개혁세력으로 상징되는 시민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한국의 보통 유권자들의 반감도 이런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시민사회 엘리트들이 일정부분 유가 사대부의 언어와 아우라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정약용과 같이, 개혁적인 성향의 그중 일부는 지금의 강남좌파쯤에 해당할, 조선시기 중앙의 경화사족京華士族이든, 지방의 향촌사족이든 사대부는 항상 중앙정치만을 바라보고 살았다. 그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든 거대 역사발전의 대의명분만을 강조할뿐 지역 사람들의 살림을 돌보는 사람은 극소수였을 뿐이다. 이런 아쉬움을 정약용과 정약전의 사상적 분기라는 대안역사판타지로 재현한 것이 영화 <<자산어보>>이다. 지역의 보통 사람들, 즉 평민과 천민들의 살림에 밀착된 향반이나 중인출신들의 향리들, 혹은 평민지식인에 해당하는 서당 훈장 같은 로컬 엘리트들에게는 공공영역의 담론장에서 발언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시 서구적 시민사회의 논의로 돌아와서 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높게 추구하는 서구적 사고가 보편성을 갖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이다. 위에서는 좌파적 시각으로 경제적 모순구조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이번엔 존재론 차원에서 다시 비판해보고 싶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사회생태계안에서 우리의 자아를 정의하는 방식이 서구인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조금 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 사람들은 왜 자유를 갈구할까? 아니 왜 자유가 필요하다고 느낄까? 마찬가지로 왜 평등을 추구할까? 그것은 관계속에서 느끼게 된 구속의 감정이 공평하고 정의롭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원천적으로 완벽하게 독립적인 존재일 수 없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고 무리를 지어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관계와 이에 따른 구속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또 이 관계는 완벽하게 평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관계는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기적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그 관계를 단순히 추상적이나 이론적으로만 인식하는 게 아니라, 충분히 에너지와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수준으로 유지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완전한 자유와 평등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통하기도 한다. 우리의 관심과 에너지를 무한히 확장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유기적일 수 없는 추상적 관계망이나 완벽히 독립적인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

다른 방식으로 이를 설명해보자면 우리는 스스로의 자아를 늘 주변의 다른 존재나 환경과의 관계속에서 정의하거나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이렇게 추상적으로 독립된 자아自我와 자기 주변이나 부근과 유기적으로 통합된 형식의 자아를 구분해서 자기自己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칼 융은 자아와 자기 무의식, 혹은 집단 무의식을 모두 통합해서 안정된 자아를 ‘자기self’로 정의하기도 했는데, 어쩌면 비슷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통합적인 자기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이거나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항상 관계속에서 구속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구속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그 구속의 조건이 충분히 타당하고 공정하냐 하는 것이다. 이것이 타당하고 공정해서 만족스러운 상태를 우리는 평화라고 부른다. 단지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것이 평화가 아니다.

이러한 평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중의 하나는 관계에서의 관용일 것이다. 나와 다른 생각이나 양식을 가진 존재가 우리 주위에 있을 때 나와 다른 생명을 과도하게 해치는 것이 아니라면 그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서구적 인권개념의 기반이 된 천부인권은 절대신, 유일신과 같은 기독교 사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모호한 개념이다. 도대체 누가 어떤 권위와 논리에 기반해 누구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말인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인권에 대한 설명은 다른 방식으로 가능하다. 우리가 우주안의 생명의 관계망 안에서 서로에 대해서 다름을 관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다른 생명의 ‘다를’ 존재의 권리를 인정한다는 뜻과 통할 것이다.

또 보다 적극적으로 내 주위의 존재, 즉 생명들에 내재한 신성 혹은 하늘을 보고, ‘모실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동학지도자 최시형의 삼경사상에서 말하는 사람을 모시는 경인敬人과 경천敬天의 마음일 것이다. 최봉영은 경敬의 한국말 풀이가 ‘고마’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쉽게 풀자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감사와 존중의 마음이 더해진 것으로 이해가 된다. 조금 더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 윤여경의 설명을 빌어 보겠다.

”최봉영 선생님은 '고마움'은 '고마+음'이고, '고맙다'는 '고마+하다'이라고 말씀하셨다. 어찌되었던 '고마움'은 나와 함께하는 것들에 대해 묻고 따져서, 즉 곰곰히 생각해서 갖게 되는 마음이다. 나는 무엇때문에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면 가족들, 동료들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떠오르는데 곰곰히 더 생각하면 주변 사람들, 직장, 도시, 공기, 물, 지구, 우주 등등 내가 존재하는데 있어 참으로 많은 것들이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국 모든 것들에 대해 고마움을 갖게 된다. 그래서 '고마움'을 안다는 것은 나의 존재 가치를 아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선생님은 우울증은 '고마움'을 잃어버린 마음의 병이 아닐까 하셨다.

퇴계는 한자 '경敬'을 '고마 경'이라 풀었다. '고마'를 단순히 좋아하는 상태를 넘어 존중(尊)하고 공경(敬)하는 상태까지 나아가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나를 존재하게 해준 가장 고마운 대상은 역시 부모님이다. 나를 낳으신 부모님은 최초로 나를 있도록 해 주셨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상당기간 내 곁에서 나를 살려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중략)

나의 존재를 살려주는 힘을 갖고 있는 다른 존재들에 대해 묻고 곰곰히 따져 고마움을 가지면 행복해진다. 가령 '공기란 무엇인가?'라고 묻고 따지면 숨을 쉴 수 있다는 것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단순히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나를 살려주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해 곰곰히 묻고 따질수록 행복은 더해진다. 고마운 존재가 점점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생명들과의 관계속에서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라면 우리는 유사신분제를 많이 탈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른 생명이 나보다 세속적인 의미로 잘났든 못났든(재력, 학력과 같은 사회적 자본, 정치적 권력을 모두 포함해서), 국적과 민족이 어떠하든, 어떤 배경을 가진 사람이든 늘 모시는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할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모시기 위한 더욱 다양한 가치와 마음가짐들을 열거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개인의 수행차원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사회속에서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공공의 가치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논의를 더 확장하지 않겠다.

현실사회속에서 세속적인 계급이나 신분을 완전히 없앨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생산과 경제관계에서 비롯하는 권력의 차등에 초점을 맞추는 ‘계급’의 분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경제적인 차등이 존재하는 것을 억지로 평평하게 만들 수는 없다. 사람마다 태어난 배경과 능력의 차이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운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다만 정부와 사회의 재분배 기능을 이용해 사람들이 비교적 공평한 대우를 받도록 노력할 수 있을 뿐이다. 또, 어떤 이가 능력이 출중하고 많이 노력을 한다면 원하는 대로 계급간 이동이 가능하도록 공정한 게임의 룰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속하는 계급이 다르다고 해도 사회와 공동체의 동등한 성원으로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충분히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면, 촘촘하게 줄을 세워 신분을 나누고, 더 높은 신분을 성취하기 위해 과도하게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사라질 것이다. 동아시아인들의 과도한 명품사치재 소비욕구가 대표적인 유사신분제 표현이다. 중국에서는 최근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한 이후에 성장 속도가 완만해지거나 침체되고(이를 규모와 맥락에 맞는 성숙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 터인데, 경쟁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은 중국 경제가 망해가는 징조라고 평가하고 싶어한다.), 자국산 중저가 제품의 품질이 향상되고, 사회변동이 줄어들고, 계급이 고착화됨에 따라서 오히려 명품시장이 축소되기 시작하고 있다. 소비취향을 통해서 자기의 신분을 과도하게 높여서 드러내야할 필요보다는(흔히 ‘졸부’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행태이다), 실용적인 욕구를 충족하거나 자기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소비문화가 성숙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학을 사상적으로 그리고 실천적으로 계승한 현대 한국의 ‘생명평화운동’이 이런 바탕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나는 이해한다. 그런데, 실제로 이 사상을 생각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평화로운 상태에 도달한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남들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분들이 한국의 주류사회에 속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여전히 한국 사회가 놓인 여러가지 구조적 모순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우리의 가치 지향이 자유나 평등, 데모크라시 수준에 머물지 않고, 좀 더 우리의 역사적 맥락에 맞으면서 더욱 근본적으로 사람들과 모든 생명을 포괄하는 존재와 관계에 대한 성찰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런 성찰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의 도덕적 논의가 사람들간의 인정투쟁때문에 타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덕적 가치에 의한 사회적 판단이 매우 중요한 인정투쟁의 요소중 하나이다. 국내외의 많은 학자들이 한국인의 이런 도덕성 투쟁이 조선시대의 관료이자 지식인인 성리학자들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도덕성 투쟁이 타락했다고 말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서로를 비판하거나 비난할 때, 그 잣대가 일관되지 않거나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대체적으로 더 도덕적인 사람들조차도 자신들이 너무나 도덕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역사의 정의의 편에 서있다고 확신하는 바람에 진보를 위해서는 상대방을 반드시 제거해야할 악으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사람들이 도덕적 판단을 할 때, 겉으로 내세우는 도덕성뿐 아니라, 인정투쟁 속에서 상대방에게 품게된 깊은 정서적 원한과 원망이 더 근본적인 추동력이 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모든 가치판단이 의의를 상실하고 사회는 도덕적 아노미 상태에 빠지게 된다.

또, 문제의 인과관계를 뒤집어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나는 “윤석열과 김건희” 체제가 가진 문제점은 물론 그 자체가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 사람들이 자신의 격에 맞지 않는 위치에 가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된 과정 자체라고 생각한다. 즉, “대통령 윤석열과 영부인 김건희”는 우리 사회의 큰 구조적 문제의 결과이지,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앞에서 나는 30%의 유권자가 데모크라시를 지지하지 않고, 30%의 유권자는 이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는데, 이는 그들을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오히려 동아시아 사회의 역사적 맥락에서 이들이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 중국 사회의 예를 들었지만, 일본의 정치나 경제구조를 살펴봐도 역시 유사한 점을 목격할 수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도 훨씬 더 먼저 근현대화의 길을 걷고 데모크라시를 도입했지만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자민당 일당 독재에 가까운 국가이고, 많은 시민들이 중앙 정치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 또, 재벌기업과 같은 대형금융사와 대기업집단을 중심으로 한 경제의 거버넌스가 일반적인 서구의 자본주의 모델과도 다르다. 우리는 리버럴 데모크라시와 98년 IMF금융위기이후 우리에게 익숙해진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관점으로 일본의 경제와 정치 구조를 매우 비판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한국 바깥에서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엘리트들은 일본의 이런 사회 구조를 비교적 잘 이해하고 나름의 합리성을 인정하는 반면, 오히려 한국의 정치와 경제 구조를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중국사회에서는 한국 정치에 대해서 매우 수준 낮은 정치 독해법만이 횡행한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권의 치적을 보수 정권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복수극으로 해석하면서 유명 무협사극인 “랑야방琅琊榜”에 비유하기도 하고, 역대 대통령들이 암살되거나 구속 수감되고, 정치적으로 끊임없이 기소되는 상황을 역사적으로 분석하기보다 “청와대 괴담”으로 풀이한다. 이보다 조금 더 이성적인 설명이 판에 박힌 좌우양당 대립 구도인데 한국의 민주당을 좌파로 보는 것 자체가 매우 편향적인 해석이라는 것은 한국인 상당수 사람들에게는 이미 상식이 된 사실이다. 나머지 30% 유권자인 민주개혁 진영에서는 이게 모두 친일파 때문이라고 단칼에 자르듯 설명하고 싶겠지만 그러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친일파’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많은 2030유권자들이 그런 평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이 이웃나라인 일본이나 중국보다 데모크라시에 더욱 적합한 문화적 요인을 가지고 있다라는 주장이나 믿음은 이미 같은 민족인 북한의 존재만으로도 간단히 부정될 수 밖에 없다. 나는 얼마전 아내와 함께 한국 드라마 ‘무빙’을 정주행했는데, 미국식 수퍼히어로물이라는 소재를 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여러가지 동아시아적 맥락이나 가치관을 드러내는 점을 중국인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예상은 적중했지만 나 자신은 결말을 보고 밤잠을 설칠 수 밖에 없었다. 과거 영상물에서 오랜 기간 악마화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묘사된 북한 사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단지 영상물에서 표현된 과장된 모습뿐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 생겨났다.

북한은 좀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김씨 일가 왕조와, 평양의 엘리트 시민들과 같이 이 체제를 보위하는 10~20% 정도에 해당하는 귀족들, 그리고 의식주조차 제대로 해결못하는 나머지 노예들로 구성된 사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마치 조선왕조 시대를 방불하게 한다. 물론 미국을 비롯한 외부의 봉쇄가 이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현대화 지연의 주요한 요인중 하나이긴 하다. 하지만 왜 한편으로는 이렇게 낙후된 사회에서 좀처럼 내재적 변화의 조짐이 보이질 않는 것일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권위주의 정권인 혹은 서구사회로부터 전체주의라고까지 비판을 받는 중국 공산당은 사실 보통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그런데, 북한은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역사적으로 봐도 조선 말기에 북쪽에서는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후, 동학이 조선왕조를 전복할 기세를 보일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남쪽과 달리, 북쪽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역사학자 백승종은 당시 동학운동이 성장했던 사전 분위기를 만들었던 정감록 예언을 전파하는데 남하한 서북출신의 평민 지식인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지식인들을 다수 배출한 북쪽에서는 왜 동학의 전파가 더뎠던 것일까?

이런 질문을 역사학도이자 역사 서평가인 유찬근에게 던졌더니, 현재의 북한은 왕조국가라기보다는 신정국가에 가깝다는 견해를 밝혔는데, 일리가 있다고 느껴졌다. 유가왕조의 전통으로 볼 때도, 백성들의 기본적인 민생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왕조는 오랜 기간의 존속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체 사상을 들여다 본 적이 없지만 핵심 메시지는 마치 종교경전과 비슷한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에서 남북한이 분열된 것은 주변 강대국 세력들이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함께 개입한 것이 큰 이유였겠지만, 조선왕조 시기를 비롯한 일본 식민지 시절에도 남쪽과 북쪽의 지역 사회구조가 우리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여러가지 이유로 한민족의 문화적 특성이 현대 데모크라시의 빠른 수용과 발전에 알맞다는 주장에 나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한국의 정치제도에 대한 주제넘는 의견은 여기서 멈추기로 하겠다. 다만, 나는 자유, 평등과 같은 가치 그리고 데모크라시와 같은 제도를 지나치게 절대화한다면 한국 사회가 정치적 안정과 번영을 도모하거나 유사신분제를 탈피하는 것에 앞으로도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는 이웃 나라인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하면서 얻게 된 감각이다. 이 두 사회는 역시 많은 현대화의 과제들을 안고 있고, 이를 차츰 해결해 나가기 위해 각 나라의 사람들이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각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의 수준을 높여나가야 하고, 가능한 부분에서 최대한 데모크라시를 구현해야 한다. 즉, 보통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고 능력이 닿는 수준에서 주권자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어떤 층위에서든 권력을 적절하고 정의롭게 분산하여 국가 명칭에 걸맞는 공화주의를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역사와 문화의 연속성만으로 본다면 두 사회가 한국보다는 훨씬 안정적인 상태를 가지고 있고, 그들 사회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비교적 만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무엇보다 출생률 지표를 비교해 보면 그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유래가 없이 높은 한국의 자살률도 그런 추정의 타당성을 돕는다. 그 사회의 주어진 조건, 즉 관계의 구속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스스로 재생산을 포기한 사회는 그 사회의 성원들이 자기 생명을 덜 존중하고, 주위의 다른 생명에 대해서도 비슷한 감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말해서 “생명평화의 수준이 매우 낮은 사회”에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도덕적 가치’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 아닐까?

- 참고자료

* 최봉영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pfbid0hBnaK7TtrS7ej1XB1Dfqq94eiGB6SxyrhPqUHvBBFkEg4Wa2MQ2tsQR6NTpWe6Uzl&id=100043175420677
《한국사람에게 인격은 무엇을 말하는가》

* 윤여경
https://brunch.co.kr/@tigeryoonz/604

* 최봉영 한국말 말차림법 10강






김유익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 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