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11월 29일

42. 남양南洋의 한국인과 일대일로

- ‘생활 내러티브’가 사라진 채 ‘도구적 이성’으로만 가득찬 세계

 



우리 마을의 중국인 예술가 친구 두 명이 한 달 가까이 인도네시아 여행 중이다. 가끔씩 소식을 전하는데 여비가 넉넉치 않아서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와 에어 B&B에서 묵고 있는 모양이다. 이 독립 예술가들은 아시아와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열리는 아트북 페스티벌을 매개로 동류간의 교류 기회를 갖기도 한다. 아시아의 도시들에는 이웃 홍콩이나 토쿄도 포함된다. 이중 판화가인 친구 O는 마침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트북 페스티벌에 참가한 후기를 전해오기도 했다. 유일한 중국인 참가 매대였다고 하는데, 혹시 다른 외국인 참가자들도 있었냐고 물어보니 싱가폴에서 온 셀러와 아시아 배낭여행을 하며 아트북페어도 돌아보고 있는 미국인 셀러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 기업 틱톡의 주재원도 찾아왔는데 인스타(중국에는 샤오훙슈小紅書라는 앱이 있다)용 사진과 영상을 열심히 찍었지만 막상 책은 사지 않더란다. 예술가들 입장에서는 눈이 튀어 나올 정도로 높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인데도 ㅎㅎㅎ.

내가 사는 광저우廣州는 중국에서 ‘퉁쳐서’ 남양南洋이라고도 부르는 해양 동남아시아의 여러지역과도 인연이 깊다. 주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싱가포르, 필리핀 등을 가리킨다. 수백년전부터 화교 상인과 노동자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서 살았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이 동남아시아에 처음 왔을 때, 무역거래를 하고, 플랜테이션 경작을 하며, 지역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화교 주민들을 ‘마름’으로 고용했다. 토착 원주민들에 비해서, 부에 대한 열망이 강하고 근면한 화인들을 상대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역할 (tax farmer)을 이들에게 맡기기도 했다. 하지만 때로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이들 백인 지배자들이 화인들을 학살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작년에 광저우의 한 미술대학이 기획한 ‘범동남아 트리엔날레’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중국 남부와 동남아시아를 잇는 다양한 지역과 일부 서아시아나 일본의 민간예술단체들도 참여한 전시회였다. 광저우는 소위 일대일로(One Belt, One Road)에서 ‘원벨트’, 즉 해상실크로드의 기점 중 한곳이기 때문에 화교이민의 역사보다 훨씬 오래된 중국과 남양 교류사의 중심이기도 하다. 명청明清시기 유럽에서 온 상인들이 중국과 교역을 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를 거점으로 삼은 시점이 화교이민의 출발점과 겹친다면, 광저우는 이미 1,400년전 당唐나라 시기부터 중국과 페르시아, 아랍세계 등 서역과의 교역항으로서 번성한 곳이기 때문이다. 광둥廣東성의 동쪽 이웃인 푸졘福建성도 송宋나라 시절 번성했던 무역항 촨저우泉州를 중심으로 한 역사, 그리고 후대의 화교 이민사가 깊다. 특히 화교 이민사와 궤를 같이 하는 대만의 본성인本省人들 대부분도 푸젠성의 남부지역閩南 출신들이다.

그림1: 광저우미술학원이 주최한 제1회 범동남아 트리엔날레 전시회 (2023)

광저우는 근현대시기에도 남양과의 다양한 인연이 깊다. 예를 들어 많은 동남아시아의 공산주의자들이 광저우를 거점으로 수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호치민은 황푸黃埔군관학교에서 훗날 공산당의 지도자들이 되는 베트남의 청년 혁명가들을 교육했으며 장개석의 공산당 탄압으로 중국을 떠나게 될 때까지 수 년 간 중국인 아내와 결혼생활을 하기도 했다.

마을 친구 O가 인도네시아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는 앞서 언급한 ‘범동남아 트리엔날레’의 큐레이터인 L이 여름 휴가 기간에 트리엔날레에 참가했던 인도네시아 예술공동체들을 방문하고 와서 나눔한 내용이 인상깊었기 때문이다. O와 그의 동료들도 이 트리엔날레에 참여했었다. 보다 구체적인 계기는 족자카르타에 거주하는 중국인 청년 인류학자 친구 Z의 연고 덕이다. 문화기획자였던 Z는 이미 오래전 사망한 한 인도네시아 작가의 기록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다. 이 작가는 1965년 9월30일에 벌어진 인도네시아의 우파 쿠테타와 이틀간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는 공산주의자 대학살이후 중국으로 망명을 했다가 70년대 다시 네덜란드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Z는 이 작가의 기록을 추적하면서 중국을 거쳐 유럽으로 망명해 아직도 인도네시아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이들 정치망명객들을 방문하고 이들의 운명과 인도네시아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취재과정에서 인도네시아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을 포함해서 당시의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수많은 이들이 자료를 아낌없이 공유해줬다. 그들의 개방성과 호의에 잠시 당황했던 Z는 결국 자료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인도네시아어를 공부하게 됐고, 나중에 사귀게 된 인도네시아인 남자 친구와 함께 현재까지 4년째 족자카르타에 거주하고 있다. 지금은 베이징대에서 인류학 박사과정 논문을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중국 기업의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등지의 니켈탄광 개발사례가 연구 주제이다. Z는 취재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의 곡절때문에 자신이 만났던 사람과 역사가 단순한 취재거리로 남기보다는 공감의 대상이자 친구가 되기를 원했다. 그의 박사과정 연구는 그래서 자신이 취재하던 망명객들과 무관한 토픽이 아니라 그들이 경험했던 인도네시아 현대사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여겨진다.



최근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의 행태에 대해서 중국 내에서 다양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가장 주목한 뉴스는 물론 베이징에서 거행된 일대일로 10주년 서밋의 시점과 맞추어 개통된 인도네시아의 고속철이다. 중국의 기술과 자본이 주도한 프로젝트로서 현지 정부와 시민들의 환영을 받는 “일대일로의 성공적 진행”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현지 노동자와의 갈등도 해외 매체를 통해서 알려지고 있고, 현지에 파견된 중국 노동자들의 처우문제가 다른 중국 매체들에 심층보도되는 경우도 있다. 중국 노동자들이 보수가 많은 해외취업기회로 소개를 받고 현지에 갔는데, 여권도 압수당한 채 약속과 달리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한다거나 제대로 된 워킹비자를 받지 못해, 불법체류자 신세로 원치 않는 노동을 강요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경제 수준과 임금수준이 중국보다 높은 나라에 가서 이주 노동자로 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과 중국 기업의 해외투자붐에 편승해, 일대일로상의 저개발국가 사업현장으로 “인력이 송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정상적인 비즈니스 사업장인 인도네시아와 비교하자면, 필리핀, 캄보디아나 미얀마의 사례들은 더욱 열악하다. 과거 인터넷 도박업과 카지노를 운영하며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던 중국계 업자들과 사업가들 중 일부가(디즈니 드라마 ‘카지노’를 연상하면 된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등치고, 중국인은 중국인을 등쳐먹는다.) 팬데믹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자, 대거 보이스 피싱업으로 전환을 했다. 특히,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지배하는 미얀마 정부의 치외법권지역인 중국과의 접경지역 (미얀마 북부)에 공장 규모의 대규모 보이스피싱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고소득을 미끼로 젊은 중국인들을 유혹해서 단지에 가둬놓고 보이스 피싱 실적을 올리게 한다. 일종의 인신매매업이 되어버려 실적이 나쁜 이들은 다른 업체로 계속 팔려나간다. 이들은 인신구속상태에서 가족들에게 거액의 보상금을 받은 후에야 풀려나는 경우도 있는데, 보이스피싱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중국 정부가 최근에 (2023년 11월말 기준) 미얀마 정부와 공조하여 집중단속 끝에 삼 만여 명의 범죄자와 ‘인질(?)’들을 인도받기도 했다.

그림자가 어두운 만큼, 빛도 꽤 밝다. 인도네시아내에서 중국 업체들의 활약이 눈부실 정도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니켈 광산 채굴권을 주는 대신, 가공업과 전지 제조업 등의 설비투자가 함께 이뤄질 것을 요구했다. 현지에서의 인력 양성, 생산자본 생성, 일자리 만들기라는 다방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 기업들은 생산 설비의 투자와 함께 인도네시아 내에서 여러 분야의 업체들이 압도적인 브랜드 파워를 구축하고 있다. 핸드폰과 전기자동차 등이 대표적이다. 중국에서도 대도시보다 시골이나 중소도시에 대리점망을 뚫어 중저가폰 시장을 점령했던 오포oppo 브랜드는 인도네시아에서 거대한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중국처럼 인터넷 채널로 핸드폰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의 물류가 매우 낙후한 것이 사업성장의 장애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기업 출신들이 독립해서 택배회사를 만들었는데, 이 회사가 다시 인도네시아 1위 업체로 등극하고 역으로 중국에도 진출했다. 이 기업출신들이 이뿐 아니라 다양한 업종에 진출해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이밖에도 중국에서 성공한 중저가 밀크티 업체가 역시 인도네시아에서 세를 불리고 있는 것도 또다른 예이다.

이런 성공은 표면적으로 중국 업체들의 중저가 제품 전략이 먹힌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국에서 인정받는 가성비 높은 제품들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대중들의 수요를 자연스럽게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핸드폰, 자동차, 아니면 밀크티 조차도 모두 이에 해당된다. 마치 90년대와 2천년대 한국업체들이 중국 시장에서 인기를 끌던 것과도 비슷하다. 일본이나 서구의 제품이 고가에 해당하는 반면, 한국산 제품들이 가성비로 인정을 받아서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높힌 적이 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성공사례는 한국 업체의 성공과는 조금 결이 다른 측면도 눈에 띈다. 중국의 상류층이나 중산층이 아니라 도시의 보통 노동자와 소비자들, 혹은 농촌사람들의 생활과 소비수준이 여전히 동남아시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불과 오년 전 혹은 십여년 전의 중국 보통사람들의 생활수준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중국인들에게 동남아시아는 가까운 과거에 해당한다. 바꿔 이야기하자면 중국인 노동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생활할 때, 한국인과 달리 위화감을 적게 느끼게 된다. 선진국에 속하게 된 한국인들이 지금은 보통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과 대조된다.

한국도 중국 시장에서 유사한 이점을 누린 적이 있다. 일본기업과 비교하자면 그렇다. 90년대 중국에 진출한 한국의 비즈니스맨들이 중국 시장과 관료사회의 급행료 수준의 가벼운 부패와 같은 ‘후진적 관행’ 혹은 특유의 ‘권위주의’방식, 그리고 ‘접대문화’ 등에 적당히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 이미 선진국 관행에 의해 원칙을 중시하던 일본인들은 이런 점들을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이 훨씬 중국시장에 일찍 진출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저돌적인 공세와 이에 따른 급속한 성장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한국인과 한국기업은 그런 초기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한중 두 나라 사회나 관계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결국 중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혹은 바꿔말해 지속가능한 자신의 생태계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인도네시아나 동남아처럼 오랜 화교이민사가 있는 지역뿐 아니라 일대일로의 끝에 놓여 있는 아프리카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광저우로 돌아와보자. 광저우는 오랜 기간 중국의 ‘제3세계 수도’ 혹은 ‘초콜릿 도시’라고 불려왔다. 아프리카인 무역상들이 광저우에 장단기로 체류하면서 중국의 값싼 생필품과 의류등을 수입해서 아프리카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치부했다. 그런데, 팬데믹이 다시 상황을 일변시켰다. 중국의 봉쇄기간이 길어지면서 불법으로 체류하던 이들 아프리카인들 상당수가 광저우를 떠났다. 그런데 이번엔 중국 정부와 기업이 대신 아프리카에 직접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일대일로의 목적에 맞게 도로와 철도, 항만, 발전시설이나 자원과 관련한 인프라 건설이 많이 진행됐고, 국유기업들이 들어갔다. 그런데 자연히 부품이나 재료를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한 민간 투자도 함께 이뤄졌고, 이런 생산설비에 필요한 전력 등의 인프라 건설과 함께 맞물려서 다시 제조업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 원래 중국산 생필품을 수입해서 팔던 소매업체가 많았다면 지금은 이를 아프리카에서 직접 생산하려는 투자가 선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인종차별주의자’인 한국인들에 비해서 중국인들은 아프리카인들을 비롯한 제3세계 출신 주민들을 훨씬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대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인들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이 중국과 영어권 인터넷에서 적지 않은 파문으로 이어진 일이 많다. 특히, 중국인 노동자들이나 기층 상인들의 교육수준이 높지 않다보니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갖추지 못해서 더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교육수준이 높은 중국인 중산층의 경우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나는 광저우시의 외국인 업무를 담당하는 명문대 출신의 간부직 공무원을 사적인 인연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분은 이미 자녀가 외국유학을 마치고 유럽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광저우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에 대해서 노골적으로 차별적 발언을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제3세계 수도라는 명칭과 어울리지 않게 이들을 일종의 ‘골치거리’로만 받아들이는 시선이 역력했다.



그런데,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에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 언론은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이 현지 주민들의 반감을 초래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많이 보도한다. 대표적인 게 스리랑카의 항만 건설이다. 중국 차관의 덫에 빠진데다가 자국의 재정정책에 실패한 현지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중국 자본에 인프라의 장기 운영권을 부여하는 바람에 현지에서는 주권침탈에 대한 우려가 깊어진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내가 들어 본 제3의 소스를 통한 소식들은 다른 분위기를 전한다. 학술연구자들이나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현지를 방문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내용인즉슨, 아프리카 등의 현지인들이 오랜 기간 현지에 머물러온 서구 자본이나 원조단체에 비해서 중국 자본과 중국 사람들을 더 환영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위에 기술한 점이 중요하다. 과거 서구 자본이 주로 1차 산업, 즉 천연자원과 농업 생산물 들을 아프리카에서 자국으로 수입하는 것에 그친 반면, 중국인들은 아프리카에 제조업 투자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제조업 투자를 위해서는 선행적으로 전력생산이나 물류와 같은 인프라에도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현지인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발전’의 기회가 확보되는 것이다. 서구인들이 주도하던 국제개발은행들이 이와 같은 인프라 투자 심사에 매우 소극적으로 임하면서 투자와 개발이 매우 더디게 진전되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한다.

이게 왜 가능했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 이것은 중국인들이 서구인들보다 더 선량하고 정의로와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과거 서구 자본이 산업을 이전하기 시작했을 때, 아프리카 보다 더 투자에 유리한 지역은 상대적으로 인적 자원의 수준이 높고 인프라 개발에 공을 들인 동아시아 국가들이었다. 이제 중국이 자국보다 생산원가를 줄일 수 있는 지역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일대일로 국가들을 선택하게 되고, 아프리카도 그 대상이 되고 있다. 마침 인도네시아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자원을 가진 국가들은 1차 산업뿐 아니라 자국 내 2차 산업의 성장을 위해서 생산 자본의 투자와 기술의 공여를 요구한다. 이렇게 상류로부터 하류로 자연스러운 기술과 자본의 흐름이 이어지면서 중국인들이 아프리카에 뿌리를 내리고 아프리카인들은 이를 환영하게 되는 ‘윈윈’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된 것이다.

선진국-중진국-후진국으로의 순차적 자본의 흐름은 이주하는 노동자나 기술자, 그리고 상인들의 생활수준의 차이와도 관계가 있다. 아프리카에 거주하는 서구인들이 현지의 아프리카인과 근접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하인들 여럿을 거느린 ‘콜로니얼풍’ (디지털 노마드의 시대에는 엑스팻expat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이말은 원래 ‘출국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미국’에서 나와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을 의미한다)의 생활을 즐기면서 현지의 상류층 정도를 상대하는 중상류사회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현지의 보통사람들과 융화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기대하기 힘들다. 이중에 구호단체 직원이나 학술목적의 연구자들이 현지의 보통사람들과 좀더 가까이에서 어울렸을 수 있지만 이들이 현지인을 대하는 태도와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에서 위를 내려다보는’居高臨下’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들의 실제 생활과 논리를 이해하기 힘들고 그들의 상황에 공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제시되는 해결방안도 한계를 갖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야생동물이 많이 서식하는 어떤 지역에서 수력발전을 위한 대형댐을 건설하려고 할 때, 야생동물 서식지 보호라는 가치와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생산을 현대화하기 위해 필요한 전력의 생산이라는 가치를 저울질한다면, 판단의 기준이 사람들의 생활과 환경에 대한 입체적인 디테일을 살피기 보다는 단순히 ‘생태주의’와 ‘발전주의’의 대립이라는 도식적 틀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예전에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해서 한국인 인류학자 P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연구팀에 속한 중국을 연구하는 한 영국인 연구자 T에 대해서 ‘뒷담화’를 했다. P는 T의 전문성을 높이 사면서도 그의 연구방법을 그다지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과학자가 실험체를 대하듯 거리를 두고 대하는 태도가 너무 냉정하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연구방법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대상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는 것은 당연히 금기시된다. 그렇다면, 글의 처음에 언급했던 중국인 인류학자 Z나 한국인 P의 정서적 몰입과 공감에 대한 요구는 잘못된 것일까? 비슷한 이야기를 논픽션 글쓰기 방식에 대해서 설명하는 중국인 작가 량홍 LIANG Hong의 글에서 본 적이 있다. 서구의 논픽션 글쓰기가 항상 거리두기를 요구하는 것이 자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또다른 중국인 인류학자가 샹뱌오 XIANG Biao가 제시한 방법론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대상을 관찰할 때는 그 대상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그 내부논리와 관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전체적 그림을 도경圖景이라고 부른다. 도경을 이해하면 현실의 문제뿐 아니라 미래의 리스크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제 분석을 할 때가 되면 연구 대상과 거리를 둬야 한다. 까마득한 산위의 정상이 아니라 적당히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다시 멀찌감치 대상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이해한 도경을 정리한다. 이런식으로 연구 결과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게 되고,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냥 훈수꾼의 위치에 남을 때는 소위 ‘선진사례’라 불리는 판에 박힌 분석 결과와 솔루션밖에 제시할 수 없는 것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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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중관계속에 협착돼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국가의 외교정책뿐 아니라 산업정책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연히 민간인들의 삶과 활동속에서 이런 대외관계들도 변수가 된다. 미국이나 중국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역시 비슷한 입장에 처해있는 다른 나라들과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그리고 북방정책들이 이런 고민들을 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레거시 미디어 그리고 유튜브 방송할 것 없이, 이런 국가들의 경제와 사회동향, 그리고 문화의 영역까지 정보를 제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통해 학습한다. 아마 해외펀드를 비롯한 금융시장에 참여하는 개미투자자들이 많아진 것이 결정적인 이유일 수 있다. 광저우에 거주하는 나는 남양의 소식에도 관심이 많다. 그래서 한국인들의 이 지역에 대한 관심과 중국인들의 관심을 함께 들여다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많이 알게 됐다.

지역 전문가나 현지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을 제외한 보통의 한국인들이 이 지역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는 적지 않게 위화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한국언론이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을 비판하는 관점과 매우 비슷한 감정 때문이다. 대상국가와 그 나라의 국민들, 그리고 문화에 대한 관심이 경제논리에 과도하게 편중돼 있는 것이 불편하다. 경제논리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자를 하거나 무역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원래 경제적 동기에서 출발한 사람과 물자의 이동 필요 때문에 사람들은 국경을 넘나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사람들이 근거리에서 생활하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게 됐다. 심지어 선교의 열정과 같은 종교적 동기도 사람들의 이동을 촉진했다.

그런데, 한국인들이 이들 나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어쩐지 그 다음 단계로 잘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나는 받고 있다. 나는 이것이 사람과 사람이 얼키고 설키는 ‘생활 내러티브’의 부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웃집에 사는 외국인 A와 음식을 나눠 먹거나 잡담을 나누면서 가족 이야기를 하고 자기 고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억을 쌓아 나가는 것은 유튜브 경제 채널을 돌려보면서 내게 필요한 가공된 정보를 쏙쏙 빼먹는 것과는 다른 경험이다.

지금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vlog가 많은 인기를 끄는데,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지역으로 이민을 가거나 유학을 가는 것과 같은 장기 체류의 경험을 쌓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생활 상향의 욕구는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다. 남양을 비롯한 개발 도상국에서의 경험쌓기는 생활보다는 이국풍 관광체험에 치우친 것도 이해할만 하다. 그래서 아무래도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이 이 지역을 대하는 태도가 비교될 수 밖에 없다. 중국인들의 콘텐츠 목록에서는 전자와 후자의 경우를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대로 상대적인 생활격차가 적기 때문에 위화감을 덜 느끼면서 세상을 인식하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중국인들의 이 지역에서의 생활 내러티브는 더구나 매우 오래된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화교이민사가 있다. 수백년간 사람들의 생활속에 형성된 언어와 문화 공유, 융합 그리고 창발의 역사가 있고, 지금 일대일로라는 국가적 캠페인 때문이든 아니면 개개인의 경제적 필요에 따른 이유 때문이든 그들은 새로운 생활의 내러티브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현지의 비즈니스 생태계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지인들의 필요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잘 이해하고 있고,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가 돼있기 때문이다.

꼭 이들 지역에서 한중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경쟁상태를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뭔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올라와 있는 것 같은 도저한 느낌을 받게 된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객관적 사실이고, 중국인들은 워낙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지역들과 인연을 쌓아 온 것도 역사적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국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이들 지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한국이 애시당초 중국대륙을 거친 후에야 이들 세계에 도달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우리가 단순히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요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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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망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한국인들이 남양을 비롯한 국가에 가서 생활할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한국에는 이미 수많은 이 지역 사람들이 들어와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이 이들 지역의 사람들과 생활 내러티브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이미 매우 가까운 거리에 들어와 있다. 같은 목적을 위해, 뒤틀어진 한중관계의 한 이면을 뼈아픈 실패경험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나는 한중관계가 지금과 같은 문제에 처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한국인들이 조선족 동포들과 좋은 관계 맺기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좋은 관계는 단순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요구나 “동포애적 민족감정”에 대한 호소때문에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좋은 이웃’을 만들기 위한 당연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30년간 그들과 만들어낸 생활 내러티브가 어떤 것이었냐는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답을 우리는 이미 잘알고 있다. 조선족 동포들을 열등한 집단, 범죄집단처럼 취급한 수많은 내러티브에 대한 그들의 항의가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20여년전에 같은 내러티브의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던 것이 “전라도 지역 사람”들이고 동시대에 비슷하거나 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 탈북자들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한국 기업과 상인들의 중국에서의 초기 성공의 원인 중 하나도 분명히 조선족 동포의 존재와 관계가 있었다. 한국은 한국자본과 기술에 대한 중국의 수요 외에 조선족 동포라는 패스트트랙을 잘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언어적 한계를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늘 한결 같았다. ‘경제적 이성’과 “아래로 내려다보는” 관점에서 한걸음도 진전하지 못했다. 그들을 우리가 중국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 혹은 국내에서의 값싼 노동력으로만 바라보면서, 역으로 그들이 한국인들을 돈벌이 상대로만 여긴다고 비난해왔다. 짧지 않은 근현대사와 트랜스내셔널한 문화에 대한 탐구가 다채로운 내러티브로 전개되지 못하고 어처구니 없는 “스테레오타입 빌런”만을 만들어 냈다. 따지고 보면 일본사회가 오랜 기간 재일교포들을 천민 취급해 온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자승자박이다.

나는 한중관계의 재검토에 대한 출발점이 한국인이 조선족 동포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같은 관점을 남양지역 혹은 소위 일대일로와 같이 한국과 인연이 적지 않은 글로벌 사우스 나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PC가 아니라 경제적 이성과 함께 하는 자연스런 생활내러티브의 생산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내가 굳이 ‘정치적 올바름’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논의가 ‘도구적 이성’과 PC로 극단화하는 현상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급작스럽게 이민정책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는 것은 분명히 경제적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동시에 ‘정치공동체’와 ‘시민성’을 논하기 시작하는 것은 지나치게 성급하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나는 과거에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경제적 이성’을 우선하는 사고방식에 반사적으로 도덕적인 반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진보적 가치관이 현실의 디테일을 무시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본다. 두가지 의미에서 그렇다. 첫째, 한국 사회로 들어온 ‘외국인’들은 우리 ‘정치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어할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일자리와 기본적인 생활의 기반을 충족시키는 것이 우선할 것이다. 그들에게 사회적 발언권을 포함한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려는 노력은 그럴 의지와 능력이 있는 당사자들과 함께 천천히 논의돼야 마땅하다. 둘째, 우리 사회 혹은 조금 더 국지적인 공동체에서 이들을 받아들이는 한국인들, 즉 원주민들의 상황과 생각, 정서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양쪽 모두를 ‘계몽’하려는 의지가 앞서다 보면,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논의와 고려는 장기 의제로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겁긴 한다. 수도권 거주가 일종의 신분자본으로 고착화되고 있는 한국의 실정에서 이 사람들이 다시 지방주민, 제조업과 농업 종사자, 그리고 ‘외노자’라는 복수의 신분차별구조에 노출되고, 보통 한국인의 이웃으로 함께 생활 내러티브를 만들어갈 가능성 자체가 줄어드는 문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보수나 진보의 ‘정치적 연대’가 아닌 이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사회에 만연한 타자에 대한 경계와 적대감이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억제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예전에 미얀마 친구들과의 인연에 대한 ‘나와 우리’ 김현아 작가의 글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있다. 미얀마 군부 쿠테타로 한참 한국과 미얀마의 민주주의 연대에 대한 감정이 고양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정의롭지 못한 미얀마의 군부에 대한 미얀마 시민들과 한국인들의 분노에 대체적으로 공감했지만 그들의 고통이 마음속 깊이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는 많은 미얀마인들이 돈을 벌거나 공부를 하기 위해 와있고, 심지어 내 지인의 친구들중에는 정치적 목적의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미얀마인들은 한국의 광주사태 경험을 자신들이 처한 문제해결에 활용하고 싶어한다고 들었고 그것은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할 좋은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공감했던 것은 김현아 작가의 사연이었다. 김현아 작가는 미얀마에서 왔던 ‘활동가 친구’들을 여럿 알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시아 사람들의 지역적 연대를 주사업으로 하는 NGO ‘나와 우리’의 활동공간에 자주 놀러왔고, 함께 밥을 해먹고 라면을 끓여먹을 정도로 친숙한 사이였다고 한다. 나중에 일부는 미얀마로 귀국했는데, 쿠테타 진행의 와중에 김현아 작가는 그 친구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었다. 특히 미얀마의 마을과 시민들의 거주지가 정부군의 공격으로 파괴되는 영상을 보면서, 근심이 깊었다. “내 친구의 마을과 집이 불타고 있어!” 지금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이어지면서 전세계 사람들이 그들의 비극에 가슴 아파한다. 하지만 영상에 노출되는 불과 몇 분 이상 유지될 감정이 아니다. 그래도 그들이 나와 함께 다정하게 라면을 끓여먹던 친구라면 사뭇 다른 느낌을 얻게 될 것이다.

우연히 얼마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이 시작되던 시점에 팔레스타인에 머물던 한 한국인 친구는 무사히 귀국한 이후에도 그곳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친구들을 크게 걱정하며 자기가 직접 들은 자세한 사연들을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에서 한국을 찾아 온 수많은 친구들과 함께 많이 어울리며 고향 음식도 해먹고 라면도 같이 끓여 먹어야 한다. 그러게 울고 웃으며 시간과 공간속에 ‘생활 내러티브’를 쌓아나갈 수있는데, 그러면 이 나라들에 대해서 “보고 느끼는 것이 전과 같지 아니할 것이다.”



끝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해서 한마디를 보태고 싶다. 일본의 전 수상 하토야마 유키오가 이번에 베이징서 열린 일대일로 서밋에 참가해서 발제를 했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고 일본이 이에 참가하지 못해서 매우 아쉽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중국 정부가 일대일로 10주년 관련 성과 보고서를 출간했는데( ”시진핑이 일대일로를 말하다” ) 5개 국어(아랍,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 일본)로 번역이 됐고, 그중 일본어가 포함돼있다. 일본정부는 다른 G7국가나 서방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고위급 인사가 이번 회의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재야의 정치 거물이 얼굴을 내밀고 일본 정부의 작금의 정책이나 방침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치지형이 상당히 다원화되어 있고, 정파적 이익과 무관하게 장기적인 안목의 국가 혹은 사회의 비전과 전략이 살아있을 뿐더러 그걸 이웃국가나 국제사회에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정치권뿐 아니라 언론과 경제계, 그리고 학술계에서조차 이 행사를 철저히 외면했는데, 미중대립구도, 혹은 서방대 비서방의 갈등구도 속에서 벌어진 일이니 정부의 입장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독립적 시각에서 일대일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내용을 한국의 공론장에서 소수의견으로조차 들을 수 없는 것은 많이 아쉬운 일이다.

물론 하토야마 유키오는 오래전 수상 재임시에도 “우애에 기반한 동아시아 공동체 비전”의 제시자로 유명했던 사람이고, 퇴임후에도 그의 행보는 매우 일관돼 있다. 다수 유권자들의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리버럴의 정치적 의견을 어느 정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다. 국제정치에 관심이 있는 중국의 (평균 이상의) 엘리트들은 이런 점을 꽤 잘 이해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치에 대한 이해수준은 매우 낮은 편이다. 한중관계가 상호간의 깊은 이해를 통해 발전하기 힘든 이유중 하나이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필요한 일들이 있다. 지금은 여야의 첨예한 대립구도와 미중갈등에 종속된 현 정부의 입장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겠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음 정권에서라도 국가원로로서 하토야마와 비슷한 역할을 해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가 나에게는 있다.

이번 일대일로 서밋에는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의 정치 리더들이 다수 참여했고, 칠레나 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 국가, 그리고 러시아의 푸틴조차 얼굴을 내밀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자리에 참석함으로써 비서방 국가들 중 상당수와 외교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중국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들이 깔아 놓은 판에 무임승차자free rider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실제 한국 정부가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한 적극적 지지와 참여의사를 표명하지 않더라도 고위급 관료나 정치가가 능동적으로 이 행사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중국에서는 감사히 여길 일이다. 물론 국제관계나 외교정치의 문외한으로서 그냥 아마츄어적인 나의 견해일뿐이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미국을 대체하는 헤게모니를 쟁취하기 위한 공격적 확장전략이라고 보는 시각이 국내에 많지만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공업화 이후 식량과 에너지를 자급할 수 없는 중국이 만들고 있는 수세적 ‘라이프라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압도적 해군력을 가진 미국의 해로봉쇄가 가능한 ‘일대’와 달리 육상의 ‘일로’는 중국이 가까스로 지켜낼 수 있는 마지막 생명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또다른 목적은 생산자본과잉, 금융자본과잉 상태인 중국이 해외에 돈을 빌려주는 동시에 인프라를 건설해주고 과잉된 자본거품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특히 해상로에 비해서 운송비용이 높은 육로임에도 불구하고 ‘일로’를 성공시키려는 중국의 의지는 경제효율화나 발전이라기 보다는 안정성 확보 목적에 방점이 찍혀 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이다.

일로에 놓여있는 국가들 특히, 중앙아시아 5개국의 입장도 과연 중국의 일대일로가 자신들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판단할 때, 전자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실크로드상의 이 국가들은 고대에는 동서문명의 교차지점이라는 지정학적 이점 덕에 문명적,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하지만 해상항로가 더 활발해진 송대 이후 이런 이점은 사라졌다. 현대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로 초기 공업화를 이뤘지만, 독립 후에는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이렇다 할 동력을 얻지 못했다. 그래서 자원개발과 산업화를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겠다는 중국의 제안이 딱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것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나 투르크 민족주의에 경도돼 신장 등의 문제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실제 진행상황에서는 중국의 ‘나긋나긋한’ 태도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일대일로의 종착점인 아프리카나 유럽에서, 다시 대서양 건너편에 위치한 중남미 국가들이 이 판에 명함을 내미는 것이나 중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환영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기도 한다. 마치 미국의 뒷마당을 위협하는 행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정학과 국제관계의 문외한인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서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면 한다.

그림2: 중국에서 열린 서비스 교역 국제 박람회의 주빈들은 서방 국가가 아니라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이다. 이들 중에는 일대일로뿐 아니라 중남미 국가들도 다수 포함돼 있다. 도미니카 공화국 주중대사의 CCTV인터뷰 화면




참고문헌 및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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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你有没有想过,流亡意味着什么?|接力访问042 曾嘉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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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八年后,印尼人民的高铁梦终于实现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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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기차 배터리 공급망이 인도네시아와 중국 노동자들에게 낳은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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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特稿|困在印尼苏拉威西岛的中国工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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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东南亚碎片:难以铲除的网诈产业和回不了家的“裸命”劳工丨涟漪效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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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익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 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