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4년 3월 4일
45. 싱거워진 “춘절의 맛”
(Dall-e created)
“年味越来越淡了 해가 갈수록 춘절맛(녠웨이年味)이 싱거워져요.” 이렇게 직역을 하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눈치빠른 한국인들은 “해가 갈수록 설 명절 분위기가 나질 않아요”라고 바로 알아 들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미 수십년째 겪고 있는 일이니까. 특히 올해 중국 인터넷과 매체에서 꽤 주목을 받은 화젯거리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부터 변화의 조짐을 약간 실감했다. 올해는 특이하게도 마을 친구들중 많은 이들이 춘절 귀향을 포기하는 현상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설이 지난 지 며칠 후에야 뒤늦게 고향을 찾는다든가, 한달 전에 이미 고향에 다녀왔기 때문에 굳이 설쇠러 (궈녠過年) 갈 필요가 없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 2020년 이전에는 어김없이 춘절 기간에 귀향을 하던 이들이다. 원래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아내는 정반대로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가벼운 논쟁을 하기도 했다. 경제난, 구직난 속에서 청년들이 안정감을 얻기 위해 오히려 가정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그러다 보니 새로운 춘절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도 일리는 있다고 인정했다.
아내의 주장처럼 여전히 대부분의 마을 신주민들 그러니까, 외지인들은 설을 쇠기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올해도 수억명의 중국인들이 귀향을 위해 장거리 교통수단을 이용했는데, 중국에서는 이를 춘윈春運이라고 부른다. 중국 정부가 매우 신경을 써서 다양한 분야의 정책을 준비해야 하는 이벤트이다. 올해 춘윈은 1월26일부터 시작됐다. 설이 2월10일 토요일이었는데 2주전의 금요일 오후부터 귀향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올해 중국 정부가 지정한 공식적인 설 연휴는 8일간이었지만, 중국인들의 실질적인 설 연휴는 유엔샤오지에元宵節라 부르는 정월 대보름까지 이어진다. 그러니까, 꼬박 한달간 연휴가 지속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한달이나 되는 긴 시간 휴식을 취하는 중국 사람들이 부럽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건 농경 사회 문화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기 때문에 생긴 관습이니,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좀 특이한 관행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사회 복리 후생의 강화와 여행 및 레저문화의 확산으로 부유한 유럽 사람들처럼 여름 휴가를 두달씩 보낸다든가, 학생들이 방학을 즐기는 것을 유사한 사례로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실제로 춘절에 이렇게 한달씩 오프off-duty하는 사람들은 대개 일년365일 쉼없이 가게를 여는 시장 상인들이나 작은 식당 경영자들과 같은 자영업자들, 비슷한 패턴으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과 같은 기층 육체 노동자들, 혹은 프리랜서 중에서 경제적 압력이 덜한 사람들이 많다. 도시 생활을 하는 평범한 보통 직장인들이라면 현실적으로 자기 연차 휴가를 더해 2주 정도 쉬는 것이 최대치이다. 역시 2주 정도 이어지는 서구인들의 크리스마스 휴가랑 비슷하다.
또 귀향해서 한달씩 오프하는 사람들도 현실적으로는 고향에 돌아갔을 때 나름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중년 이상의 기혼 여성들은 집안 대청소에 참가 하고 음식 마련하는데 손을 보태야 한다. 농촌에서 노동 능력을 거의 상실한 고령의 노부모만 고향에 남아 있는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물론 남성들도 부엌일에 크게 한몫하고 바깥 식당에서 매식으로 명절 연회를 즐기는 문화도 잘 조성돼 있어서, 한국처럼 여성들이 일방적으로 명절 제수음식 마련에 동원되는 스트레스가 명절을 기피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아니다.
과거 동아시아 농민들에게 일주일에 하루이틀 쉼을 갖는 생활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의 안식일이나 서구인들의 주일 쉼을 갖는 기독교적 전통이 우리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겨울철 농한기나 각종 명절이 쉼을 갖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중국은 근년의 급격한 현대화와 도시화에도 불구하고 농경사회 전통문화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한국으로 치자면 다른 나라에 가있는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조건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예전에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주 오랜 기간 번역에 어려움을 겪던 단어가 한가지 있다. 바로 축제 즉 festival이란 말이다. 중국어로는 명절활동節日活動, 경축활동慶祝活動이란 단어가 표준적인 번역이다. 아니면 무슨무슨 이벤트 축제라는 의미로 XX節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표현은 어쩐지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축제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서 나는 상당한 인지 부조화의 곤란을 겪었다. 물론 이건 내 개인적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즉, 부계가 서울 토박이이고, 모계는 전라도 출신이지만 가까운 친척 모두 서울에 거주하던 특성 때문에, 나는 한 번도 귀성 경험을 가진 적이 없고, 고향 혹은 시골에 내려가 전통 명절 축제와 “설날 혹은 추석”을 진하게 맛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내 기억 속 축제는 TV로 보는 이국적인 일본의 마츠리祭り나 브라질의 삼바 카니발 Brazilian Carnival (중국어에는 카니발을 음차한 자녠화嘉年华라는 단어가 간혹 상업적 이벤트 축제 제목으로 쓰이기는 한다.), 혹은 학교 운동회나 문화제의 이미지에 가까왔다. 이는 내 머리속에서 다시 8~90년대 이후 서울 시내에서 볼 수 있는 상업적 혹은 정치적 축제, 즉 상당히 임의적이고 인위적인 문화 이벤트로 축제의 이미지를 국한시켰다. 내게는 전통문화와 축제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이미지는 기껏해야 80년대 군사정권이 기획했던 국풍 이벤트 혹은 실은 시골에서의 장례행사를 소재로 다뤘던 임권택 감독의 96년작 영화 ‘축제’ 정도에 불과했다.
사진1: 1996년 임권택 감독의 작품 <축제>, 장례식을 교류, 욕망과 모순의 노출, 갈등 해소와 화합의 장인 ‘축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같은 해에 <학생부군신위>라는 장례식을 소재로 한 다른 한국 영화가 개봉하기도 했다.
나중에 올림픽 다큐멘터리 제목으로 쓰인 셩후이盛會를 발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 어휘는 올림픽이라는, 지역적으로는 임시적이면서도 큰 틀에서는 현대적이고 공식적인 이벤트에 사용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역시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XX축제라는 구어적 표현과는 어감이 달랐다. 그런데 더 많은 독서와 관찰을 통해 실은 셩후이 대신 오히려 먀오후이廟會라는 단어가 중국인들의 일상적 삶에서는 축제에 더 걸맞은 어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먀오후이는 중국 각 지역과 커뮤니티의 중심지 격 사당이나 사원인 스먀오寺廟 앞의 거리에 벌어지는 축제 장터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장터와 공연, 의례가 벌어지는 것은 당연히 명절 시기이고 가장 큰 명절은 바로 춘절인 것이다(지역에 따라서 먀오후이와는 별도의 큰 축제/장터 판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광둥의 대표적 춘절 축제 장터인 flower market花市이 있다.) 그래서 나는 왜 축제가 왜 명절 혹은 절기 활동節日活動으로 번역되는 것이 맞는지 다시 이해하게 됐고, 번역 상의 인지부조화가 마침내 해소됐다! 따지고 보면 어린 나에게 이국적 문화 이벤트로 비추이던 일본의 마츠리나 브라질의 삼바 축제야말로 현지인들에게는 일년 중 정해진 날짜에 열리는 전통 명절 행사가 아니던가?
이 기간에 많은 회사나 가게들이 문을 닫거나 영업 시간을 줄인다. 또, 정말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는 공식 연휴기간을 대비해 음식물 등을 비축해 둔다. 물론 녠훠年貨라 부르는 선물 등을 장만하기도 한다. 정월초하루부터 3~4일간 가족, 친지, 은사, 상사 등에게 새해 인사와 세배(빠이녠拜年)를 다닐 때 필요하다. 견과류나 과일, 건강식품, 달달한 간식 등을 많이 사는 편인데, 반대로 자기집으로 빠이녠을 오는 손님 맞이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고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 자신만을 위해 준비하는 “심심풀이 땅콩”이나 “길티 플레져 Guilty Pleasure”에 해당하는 간식들도 많다. 이를 테면 감자 칩 같은 것들인데, 평소에 몸매나 건강 관리 때문에 선뜻 손을 못대던 이런 음식들을 맘껏 먹으며 “밀린 영화나 드라마 보기 숙제”를 하기 위해 “카우치 포테이토 Couch Potato”가 되는 것에 스스로 면죄부를 주는 시기가 바로 춘절이다.
이렇게 평소에 처리하지 못하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더 중요한 방법중 하나는 불꽃煙花과 폭죽鞭炮놀이이다. 내가 악명 높은 중국의 폭죽놀이를 처음 경험한 것은 2007년 베이징에 거주하던 시절이다. 중국은 대도시에서 폭죽과 불꽃 놀이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던 베이징의 주거지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다. 대보름까지 이어지던 휴가기간에 산둥山東지역으로 홀로 여행을 갔는데 칭다오青島의 한 호텔에서 밤부터 새벽녘까지 밤잠을 설쳤다. 처음엔 혼비백산을 하고, 나중엔 베개로 귀를 틀어 막고, 중국인들의 ‘악취미’를 저주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광저우廣州 근교의 마을은 원칙적으로 이 행위들이 금지돼 있지만, 도심 밀집거주지와는 달리 실질적으로는 거의 단속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년 내내 절기마다 혹은 결혼식이나 개업식같은 개인들의 경사에 폭죽을 사용하기 때문에, 지금은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시내에 거주하는 광저우 시민들이 일부러 우리 마을을 찾아와서 폭죽을 터뜨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명절인 춘절 연휴와 단오절 기간에는 거의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나는 결혼 전에는, 중국인들의 이 ‘악취미’를 참기는 해도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는데, 아내와 몇몇 지인들이 폭죽과 불꽃놀이를 녠웨이年味 즉 춘절 분위기의 가장 강렬한 비쥬얼과 사운드의 요소로 회고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듣고나서야 중국인들이 왜 그렇게 이 놀이에 집착하는 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경험의 ‘각인효과’인 것이다.
사진2: 춘절 아침의 골목 풍경, 밤새 터뜨린 붉은 폭죽 잔해가 가득하다. 이 붉은 종이 쓰레기는 재물을 상징하기 때문에 바로 청소하지 않고 한동안 방치하거나 한곳에 쓸어 모아 둔다.
올해는 중국 정부가 제한적으로 도시에서도 이를 허용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는 도심 거주지에서도, 옥상 같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를 골라서, 적지 않은 이들이 불꽃놀이를 즐겼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한쪽 눈은 감고 한쪽 눈은 뜬다 睜一眼鏡, 閉一眼鏡”라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속된 말로 ‘유도리’가 작동한 것이다. 아내는 중국인들이 정부의 공식적 커뮤니케이션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원래 이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A를 얘기해도 문자 그대로 A라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A’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물론 “회색지대에서 노니는” 리스크는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
한국 언론에도 얼어붙은 중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고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중국 정부가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구체적인 수치를 들며 논증하길 폭죽과 불꽃놀이 산업 규모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중국의 폭죽과 불꽃놀이 산업 규모가 큰 것도 맞고, 춘절에 그 대부분의 소비가 일어나는 것도 옳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폭죽과 불꽃놀이를 허용한 것은 특정 산업을 진흥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춘절의 맛”, 즉 “설분위기”를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더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부연하자면, 중국 후난湖南성의 류양瀏陽시는 유서깊은 폭죽과 불꽃놀이 생산지이다. 전세계 폭죽과 불꽃놀이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는 통계치가 있을 정도이다. 이곳에서는 시내 중심의 강변에서 매주 주말 불꽃놀이 축제가 벌어진다. 불꽃놀이 애호가인 아내가 꼭 가보고 싶어하는 곳인데, 광저우에서 그리 멀지는 않으니 올해는 주말을 빌어 한번 가볼 생각이다.)
중국 정부가 “춘절의 맛”을 고취시키려는 것에는 복합적인 의도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안정’이다. 한국언론이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경제난 속에 흉흉한 민심을 다잡기 위해서는 많은 중국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친지, 이웃과 교류하면서 그 품안에서 편안함과 안정감을 느끼길 원한다. 여전히 중국 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인 ‘가국천하家國天下’에 따르자면 가족과 고향에서 느끼 는 안정감은 국가에 대한 신뢰로 연결되기 마련이다. 사회복리 수준이 아직 불충분한 “경제 중진국”의 입장에서 이런 “사회적 안전망”이 주는 심리적 효과는 결코 적지 않다. 예를 들어 98년 IMF 경제 위기 이후 국가 제도 바깥의 사회적 안전망이 붕괴된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심각한 병리현상들을 중국 정부는 충분히 관찰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파생적으로 ‘소비진작’이 있다. 마음이 안정되면 아무래도 지갑을 더 크게 열게 마련이다. 흥미있는 것은, 이번 설에 정부가 주도한 지역의 문화행사가 많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점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 폭죽을 터뜨리고 불꽃놀이를 벌이면 소비가 진작되나? 춘절 소비는 어느 시점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원래 GDP로 계상해야 할 춘절 소비는 실질적으로는 춘절이전에 이미 대부분 진행된다. 제수용품을 마련하고, 설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설연휴 이전이고, 홍바오紅包를 채우는 세뱃돈(야수이첸壓歲錢)으로 사용하기 위한 신권은 모두 설 이전에 은행에서 인출해 놓아야 한다. 그러니까, 막상 춘절의 맛을 느끼고 있는 기간에는 원래 대규모의 소비가 일어날 수 없다.
하지만 중국도 춘절의 풍속이 바뀌고 있다. 고향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집에 앉아 있거나 몇백 미터 거리안의 이웃과 친지들만을 방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인근 관광지를 찾는다. 또,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이나 친족의 집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편의를 위해 아예 근처 호텔에 묵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결정적으로 관광지를 찾았을 때 문화 이벤트, 춘절 축제가 필요한데, 모두가 쉬어야 할 춘절 기간에 영업을 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은 많지 않다. 특근 보너스를 준다고 해도 아마 상당히 많은 금액을 지불해야 할 터이니, 어지간한 매출이 아니라면 수지가 맞을지 의문이다. 그래서 당원과 지역 공무원들이 주도하고 관리하는 각종 전통문화 이벤트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춘절 기간에도 아침 식사를 하며 CCTV의 신문연파新聞聯播를 모니터링했는데 일주일 내내 각 지역의 춘절 전통문화 축제를 소개하는 것과 시진핑 주석의 민족정신과 전통문화를 찬양하는 커멘트 일색이었다. 아내는 공무원들이 춘절 기간 쉬지도 못하고 일한다면서 애처롭다고 혀를 찼다. 춘절 연휴 기간 실질적인 소비경제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사진3: 춘절 연휴, 귀향대신 국내외 여행 휴가를 택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다양한 춘절 전통 문화행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부터 정부의 주도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의 의식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추동하고 있는 “설분위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하겠다. 원래 얘기하고 싶은 “춘절의 맛”이 싱거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중국의 젊은이들, 즉 2030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대부분의 중국 2030은 여전히 귀향을 한다. 그런데 주로 대도시에서 일하거나 대학교에 다니는 이들 청년들이 고향인 농촌이나 중소도시에 돌아가면 모여드는 곳이 농촌의 읍내에 해당하는 향진鄉鎮,그리고 군청 소재지에 해당하는 현성縣城이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상업지구의 맥도날드, KFC, 극장이 있는 쇼핑몰, 그리고 프렌차이즈 카페 등이라고 한다. 이런 장소는 현지 거주 인력을 고용해서 설연휴 기간에도 영업을 계속하기때문에 자연스러운 선택지가 된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대도시의 “익숙한 분위기”속으로 들어와야만 “안전함”을 느끼는 청년들이 자기 집이나 친구, 친척집보다는 이런 장소를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덧붙이자면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2030을 중심으로 중국의 커피 소비 인구가 폭발적으로 성장을 했는데, 여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스타벅스가 아니라 10위안 내외의 중저가 커피를 제공하는 로컬 브랜드인 Luckin 루이싱瑞幸 커피와 맥도날드, KFC 등이다. 2023년 기준 중국 전역에 일만개가 넘는 점포를 보유하고 있는 루이싱은 대도시뿐 아니라 현성에도 점포를 가지고 있다. 이들 청년들은 가족, 친척과 오랜만에 정을 나누기보다는 (친칭親情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차라리 낯선 이들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있는 고향안 “대도시의 공기”속으로 회귀한 것이다.
그리고 도입부에 설명한 것처럼 내 주위에는 춘절 기간에 귀향하지 않은 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들 중에는 태국 등지로 여행을 떠나 설을 맞이한 이들도 있다. 이번 춘철 기간 많은 중국인들이 고향 대신 국내 관광지, 혹은 해외로 여행을 나섰다. 한국에서는 아마 2천년을 전후해서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꽤 일상화된 풍경이다. 많은 이들이 중국인들에게 비자를 면제해주기 시작한 동남아시아 특히 태국, 말레이지아, 싱가폴 등을 목적지로 골랐지만 일본도 여전히 인기있는 선택지였다. 이보다는 한참 적은 숫자이지만 한국을 찾은 중국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인들의 춘절 해외여행과 관련해서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이 있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쓴소리다. 202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중국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지지해서는 안된다는” 해괴한 방침(?)이 나돌았다. 이것은 정부의 공식입장 같은 것은 아니었는데, 각급 학교 등의 내부 통신 등에서 이런 방침이 새어 나왔다. 무엇보다 이념과는 별 관계가 없어야 하는 온오프라인 쇼핑몰에서 크리스마스 마케팅 활동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나의 순전한 뇌피셜로 이것은 공산당 내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공산당 내의 커뮤니케이션은 외부로 노출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규모가 있는 민간 비즈니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공식적 조직에는 당지부가 존재하는 중국 사회의 특성상, 만일 공산당이 이런 방침을 정했다면, 심지어 온오프라인 쇼핑몰이나 각급학교에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런 과도하고 불필요한 “이념적 방침”이 취해진 것은 경기가 나빠서 국내 소비를 진작해야 한다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 발등찍기라고 생각한다. 혹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크리스마스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아마도 서구인들이 귀향을 하고 가족 간의 회합을 갖는 크리스마스를 그들은 서구인들의 춘절 정도로 상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서구와 다른 발전 경로를 걷기로 선택한 “중국식 현대화”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크리스마스에 쏟을 열정이나 소비 여력을 아껴뒀다가 춘절 분위기를 고양하는데 사용되기를 기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비서구지역의 크리스마스 분위기, 중국식으로 빗대어 말하자면 “크리스마스의 맛”이 매우 순수한 상업적 성격, 소비적 성격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는 춘절과는 다른 의미로 소비를 촉진할 매우 좋은 기회인 것이다. 멀리 갈 것이 없다. 원래 도시 전체가 거대한 쇼핑몰과 같던 이웃 도시 홍콩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들뜨는 12월부터 설연휴가 끝나는 2월말까지 무려 석달간 전세계의 쇼핑몰로 변한다. 홍콩에 머물던 20년전 내가 경험했던 “크리스마스의 맛”이다. 나는 그때 사뒀던 옷들을 지금도 꽤 가지고 있고, 여전히 착용하고 있다.
춘절의 해외 여행을 이야기하다가 “크리스마스의 맛”을 언급하면서 공산당을 비판한 것은 이유가 있다. 내 짐작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젖어 소비를 하고 싶었던 중국인들, 특히 상하이의 중산층 시민들은 춘절에 중국에서 소비를 하는 대신 아마 해외여행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공산당 고위 간부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효과를 가져온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것은 통계적, 실증적으로 입증된 사실은 아니고 나의 뇌피셜일 뿐이다.
올해 왜 하필이면 적지 않은 청년들이 춘절 춘윈을 포기하는 현상이 빚어졌을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고학력 엘리트들 혹은 예술가와 문화산업 종사자들, 지식인들, 그 중에서도 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다. 이웃중에 청년이 아니라 나같은 장년의 ‘소설가’가 있다. 그는 정치범으로 2년간 감옥 생활을 한 적도 있는 사람이다. 그와 나, 그리고 몇몇 청년들이 연초 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춘절 귀향 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잘라 말했다. “나는 춘절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지 이미 십수 년이 넘었어. 중국 민간 사회의 가장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으로 기어들어가기 싫었으니까.”
중국 청년들이 귀향과 명절 친족 모임을 꺼리는 이유는 한국과 그리 다르지 않다. 학업, 결혼, 자녀 출생, 임금이나 사업을 포함한 금전적 상황의 상호비교, 그리고 “사회의 평균적 상태와 표준”을 따르기 원하는 윗세대들의 한결같은 바람과 잔소리…. 동아시아 친족-이웃-동료-학우 네트워크가 가하는 무형의 정신적 폭력과 그에 따른 그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은 완전히 일치한다! 이미 도시화, 현대화 속에서 자라났으며 한국 못지 않은 경쟁압력에 시달리는 중국의 2030 역시 이 숨막히는 불편한 공기를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뚜안친斷親”이라 불리는 거슬리는 가족, 친족과의 과감한 교류단절이 매체의 주요 키워드가 됐고, “올해는 용캐 춘절 밥상머리에서 부모님과 말다툼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이 친구들과의 수다에서 자신의 심리적 기교 성숙을 과시할 수 있는 화제가 된다. 옆에 앉아 있던 청년 두명이 크게 공감을 표시했다.
내가 웃으면서 소설가 친구의 발언에 화답했다. “자넨 역시 중국 사회의 선구적인 자유주의자야”. 한국에서도 수십년전 혹은 최소 20년전부터 벌어졌던 일이라고 이야기해줬다. 그는 전위적인 자유주의자인만큼 일찌감치 “서구적 인간관계 재편”을 시전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 씁쓸한 보충설명도 해줬다. “그래도 중국에서는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이 춘절 귀향을 하쟎아. 왜냐하면 친족 관계가 여전히 사회적 안전망의 구실을 하기는 하니까. 감정적으로 싫긴 해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까, 친족 네트워크가 유지될 거야. 하지만 한국은 어림도 없어. 친인척은 고사하고 부모-자식간에도 경제적, 문화적 갈등이 심한데다가, 자식이 노부모를 모시는 경우도 드무니까. 노부모가 손자 손녀를 봐주는 것도 꺼리게 됐고.”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삼대 이상의 대가족관계는 이미 와해됐고, 핵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도 냉랭한 경우가 많아. 그래서 친족을 만나면 스트레스는 여전히 있지만, 실제로 도움은 받을 수 없다보니, 정말로 뚜안친이 일반적인 관행이 되어버린 것이지. 또, 젊은 사람들은 결혼을 하지 않으니, 가족이란 것 자체가 사라지는 분위기야.”
자유주의자로서의 신념을 과시하던 그가 꼬리를 내렸다. “그렇지, 중국에선 여전히 친족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긴 하지.”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수다스러운 동네의 이발사 친구랑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는 일도 바쁘고 표를 못구해서 춘절 당일에야 귀향을 한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은 설을 맞기 전에 집안 대청소를 하고, 이발을 꼭 해야하는 습관이 있다. 예전에는 옷을 새로 장만했다고 하니 우리 설빔과 같은 개념이다.) “고향 가봐야 뭐하겠어? 친족들 만나도 별로 반갑지도 않은데. 친칭親情 사라진 지 오래야. 10여년전 내가 처음 개업을 할 때 얘기인데, 점포 인테리어를 하고 딱 1,000위안이 모자랐어. 수만위안도 아니고 고작 천위안이야. 그런데 넉넉한 친척에게 부탁을 했더니, 그걸 안 빌려주더라고. 인색하긴. 쯧….”
춘절 가족 모임에서 만난 아내의 친척에게 내가 춘절과 관련된 글을 준비하고 있다고 얘기해주고, 중국에서도 청년들이 춘절 귀향과 친족 모임을 꺼리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에서 꽤 오래전부터 현대화, 도시화 그리고 서구화와 함께 벌어지던 현상이라고 부연설명을 해줬다. “또 오랜 기간 양력설을 쇠다가 음력설로 회귀한 것도 빠른 설문화 쇠퇴에 영향이 없지 않아요. 중국에서도 오랜 기간 공휴일로 인정하지 않던 추석中秋節을 다시 연휴로 만들었지만, 월병을 까먹는 휴일 정도의 의미 이상을 갖지는 못하쟎아요.” 그는 내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가볍게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서구인들도 크리스마스에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 모임을 하던데요. 10여년전 이탈리아에서 일년 정도 머물 때 경험을 좀 해봤어요. 특히 남유럽은 가족 중심의 분위기가 확연하고요.” 과거에 단기간 유학경험이 있던 그의 주장이다.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큰 차이가 있음을 설명해줬다. “남유럽이 특히 가족주의적이긴 하지만, 어쨌든 서구인들은 개인주의 문화가 충분히 성숙한 가운데, 가족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그러니, 가족들이 함께 모여도 서로의 생활에 전혀 간섭하지 않고, 가십거리로 삼거나 인생 훈계를 하려들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족들이 모여도 큰 부담이 되지 않고, ‘쿨’하게 리유니언reunion을 즐길 수 있겠죠. 미국인과 결혼한 제 여동생 가족도 매년 남편의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과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더군요. 가족 대이동이 물리적으로 부담스럽긴 해도, 동아시아인들과 같은 식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도 나의 답변에 수긍했다.
나는 관련된 글들을 찾아 읽다가 베이징과 상하이에 거주하는 젊은 힙스터 언론인들이 “춘절의 맛”에 대해 방담을 하는 기사를 접했다(아래 참고 글). 지금 내가 서술하고 있는 내용들에 대해서 흥미로운 대화가 진행된다. 그중에 중국 춘절 문화와 풍경을 다룬 영화 두편에 대한 언급이 있었는데, 그 중 한편은 2021년작 <길상여의吉祥如意>로 나도 꽤 인상깊게 봤던 작품이다. 유명한 희극 연기자인 감독이 자신의 고향마을로 돌아가, 진짜 친족들을 배우로 기용해서 연기를 시켰다. 연기가 너무 생생해서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특히,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누가 돌봐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두고, 십수년만에 귀향한 주인공 딸과 친척들이 실랑이를 하는 부분의 현실감에 압도됐다. 이 작품은 둥베이東北가 배경이었는데, 앞에서 언급한 이웃 소설가가 바로 이 둥베이 지역 출신이다. 둥베이 지역에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기도 하지만, 둥베이 지역 중국인들의 문화에 한국인과 비슷한 성정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언급한 또다른 영화인 1991년작 <설쇠기過年>을 찾아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 영화는 사실 배경이 앞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둥베이 지역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특정 지역명을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소개하는 방담자들도 북방지역이라고만 이야기하지 둥베이라고 콕집어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이 벌이는 행태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젊잖지 못하기때문이다. 특정 지역을 문화적으로 비판하거나 차별하는 담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의도적으로 경계했을 것이다. 춘절을 맞아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에 배우자, 그리고 약혼자들과 함께 모인 네 형제자매의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는 금전, 치정 문제를 놓고 적나라한 갈등이 일다가 결국 가족간에 대판 싸움이 벌어져, 춘절 밥상 (녠예판年夜飯이라 불리는데 춘절 전날 저녁에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을 뒤엎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사진4: 1991년작 중국 영화 <過年> ‘화기애매’하게 시작된 가족 회식이 돈문제 때문에 밥상 뒤엎기로 귀결된다.
둥베이 지역 경제 쇠락과 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과 모순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나도 관심을 가지고 문학작품이나 영상에 표현된 내용을 주목하기도 했고, 서평을 쓴 적도 있다. 이런 상황은 주로 국영기업에서의 대대적인 정리해고가 벌어진 90년대 후반 이후의 일로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90년대 초반의 상황을 보니 경제적 사정이 여전히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개혁개방후의 바람을 타고 모두들 기회를 좇아 들뜬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그런데, 등장인물들이 물질적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연기 표현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현타’가 찾아 왔다. 92년 한중 수교 직후, 연변 조선족 자치구나 지린 吉林성을 찾아왔던 한국 사람들이 만난 중국인들 혹은 조선족 동포들의 첫 인상이 어떻게 형성됐을 지 짐작이 갔다. 특히, 한국 사회는 “부자 되세요”라는 BC카드 광고가 나왔던 2000년 이전까지 금전적 욕망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보수적 유교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연극적 과장이 없지 않았겠지만, 어느 정도 당시 둥베이 지역의 분위기를 잘 설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둥베이에 이런 문화가 존재했는지 궁금해져서, 추측도 하고 공부도 좀 해보고 있는데 더 깊이 살펴보고 나중에 다른 지면을 통해 따로 설명하는 것이 나을듯하다. 어쨌든 이런 이미지는 특정한 시기,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것이다. 이런 특수한 경험이 대표성을 띄고 한국인들의 현대 조선족 동포와 중국인 전반에 관한 스테레오타입 이미지 (즉, 돈만 밝히고 예의 없는 “속물 중국인”)로 굳어진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지역 출신의 방담자들이 30년도 더 된 이 영화를 현대 춘절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아마 여과없이 드러나는 사람들의 의도와 관계 때문일 것이다. 체면이나 유교적 예의때문에 은유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어차피 내가 중국인 소설가 친구에게 설명한 대로 가족, 혹은 친족간의 관계에도 결국 이방인들을 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용대비 수익이라는 경제적 계산이 자리잡게 마련이다. 그것이 문화적 요소들, 아니면 어떤 가치나 의미와 결합되어 중층적 구조속에 감춰질 지언정 바닥에 놓인 본질적 공리功利주의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지역과 민족, 국가에 관계없이 우리 인간 모두에게 공통된 사항이다.
나는 예전에 다른 글에서 중국의 진짜 도시화가 시작된 것은 2000년대 들어서이고, 그래서 최초로 도시화한 세대는 96년생 이후, 즉 지금의 20세대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2020년이 돼 그 20세대들이 사회 초년생이 되는 시기가 왔으니 중국 사회라고 가족, 친족 관계의 변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춘절의 맛”도 싱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2020년이 아니라 하필이면 2024년에 갑자기 이 변화가 강렬하게 피부에 와닿게 된 것일까? 내가 짐작하기에 그것은 팬데믹 봉쇄와 관련이 있다. 중국은 2021년, 2022년 팬데믹 봉쇄 때문에 귀향하지 말고 자기가 사는 거주지에서 춘절을 보낼 것을 정부에서 강력히 권했다. 특히, 농촌지역으로 귀향할 경우, 조부모 노인들이 코로나에 감염될 것을 크게 염려했다. 그리고 2022년에는 오미크론이 크게 유행하면서 일년 내내 상하이 등의 대도시와 중국 전역에서 심각한 봉쇄상황이 벌어졌다. 마침내 2022년 연말에 그 봉쇄가 한꺼번에 해제됐다. 원래 하고 싶지 않던 일도, 남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2023년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모두가 춘절 귀향을 택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으니, 보고싶던 (?) 가족과 고향으로 달려간 것이다. 전지구적인 위기와 재난 상황에서 모두가 공동체와 가족이 제공하는 안정감을 그리워했다. 그로부터 일년 후인 2024년에 갑자기 고향에 돌아가 춘절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한 청년들이 급격히 증가한 것은 아마도 이런 특수한 상황이 야기한 ‘시간 지연’과 커다란 낙차 때문일 것이다. 2020년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 서서히 증가했다면 쉽게 감지하지 못했을 변화이다.
과연 “춘절의 맛”을 계속 진하게 유지하고 싶어하는 중국 정부의 의도나 아직은 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보통 중국 사람들의 생활습관과 문화는 계속 유지될수 있을까?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중국의 2030세대이다. 출생률이 계속 떨어지고 해외 이민 희망자들이 늘어나는 중국의 대도시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한국사회를 닮아간다. 하지만 중국의 향촌사회와 문화를 유지하거나 재건하기 위해 중국 정부와 지식인들이 기울이는 노력도 만만치는 않다. 향촌건설운동이나 향촌진흥정책이 그러하다. 시진핑 정부는 향촌 출신 청년들이 모두 대도시로 떠나기보다는 고향과 멀지 않은 신형 중소도시 新型城鎮에 자리잡기를 바라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향진이나 현성이 도시화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 현단위의 자족적 경제 縣域經濟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시도되고 있기도 하다. 연초 중국 매체중 하나인 ‘관찰자망觀察者網’이 기획한 <2024 중국 경제 전문가 제언> 프로그램에서 첫 대담 참가자인 향촌진흥 정책 해설의 권위자 원톄쥔溫鐵軍이 풀어주는 말이다. 그의 희망섞인 기대와 현실에 대한 비판은 “중국식 현대화”나 “부동산 금융자본주의”와 “달러패권”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식 경제패러다임”의 전환과도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특히 후자에 대해서는 한국의 경제전문가들이나 투자자들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식 현대화가 어떻게 새로운 평형점을 찾게 될지 가늠하는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바로 서서히 변화해 가는 “춘절의 맛”의 농담濃淡에 있다.
후기
작년 설에는 유독 중국과 한국, 베트남과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간의 Lunar New Year 명칭과 원조 논쟁이 거셌다. 특히 서구사회에서 LNY냐 Chinese New Year냐라는 영문명을 놓고 옥신각신 다퉜다. 미주와 유럽 국가들이 한국과 베트남 커뮤니티를 존중해서 LNY를 강조하거나 한국의 설날Seollal, 베트남의 뗏Tet 명칭을 그냥 사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Korean Lunar New Year, Seollal 같은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대영박물관의 한국 설문화 소개 이벤트와 뉴진스 멤버의 설인사가 각각 중국과 한국 네티즌들의 큰 반발을 샀다.
올해도 주로 미주 국가에서 이런 논란들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한국계 미국인 디자이너가 중국 설 풍속을 디자인 도안 (홍바오와 금귤나무)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어렸을 적 설기억을 연상하며 만들었다고 설명한 내용이 일부 중국계 미국인들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내가 짐작하기엔 고의로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 정확한 한국의 설풍속을 모르는 젊은 디자이너가 같은 아시안 커뮤니티인 중국인들의 춘절 풍속을 자신의 어릴적 기억과 뒤섞었던 모양이다. 문화혼종 현상이 빚은 해프님에 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번 설에 다시 큰 논란이 불거지지는 않았다. 아마 굳이 문화적 기원의 공통성과 정통성을 놓고 다투기 보다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기 때문 아닐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인 LNY를 사용하려고 고집하느니 아예 Spring festival, Selloal, Tet 이렇게 각자 부르고 싶은대로 부르고 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농경사회도 아닌데 음력에서 기원했음을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물론, 다시 사이가 좋아지고 “우리끼리 뭉치자”라는 분위기가 혹시라도 생긴다면, 다시 공통기원을 강조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든 중국이든, 설날이든 춘절이든 갈수록 그 맛이 싱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인용한 방담기사를 보면, 참가자 중 한명은 매년 춘절에 자신이 대학원 공부를 한 대만의 타이페이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그런데 같은 중화권이지만, 이미 도시화와 현대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타이페이의 “춘절의 맛”은 대륙에 비해서 싱겁기 이를데 없다고 한다. 이를테면 이웃이 키우는 개와 고양이를 놀래키는 것이 신경쓰여서 폭죽과 불꽃놀이를 함부로 즐기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사실 대륙에서도 이미 숫적으로만 따지면 애묘, 애견족들이 타이페이보다 적지 않겠지만,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도시화된 사회적 놈Norm과 어릴적 기억속에 각인된 춘절의 이미지에는 대륙과 타이완 사회에 이미 큰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끝으로 흥겨운 영상 하나를 공유하면서 긴 글을 마친다. 챠오샨潮汕 지역에서 유명한 잉거英歌라는 군무이다. 수호전의 캐릭터를 차용했는데 화려하고 박력이 넘쳐서 근년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마치 경극 배우들이 단체로 거리로 쏟아져 나와 펄쩍 펄쩍 뛰어다니는 느낌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4RLLUKd_2E
올해 런던에서 춘절에 이 무용을 공연한 것이 중국내에서 큰 화제가 됐다. 아마 논란을 불러일켰던 작년 대영박물관의 설날 이벤트가 한국 무용 소개행사였다는 것을 의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잉궈英國’ 런던의 중국인들은 CNY 종주국임을 내세우기 위해 기존의 라이언 댄스보다 더 화려하고 규모가 큰 이런 새로운 비쥬얼과 사운드의 ‘잉거英歌’가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ㅎ
* 참고 자료
- 当年轻人决定整顿春节:先把“班味”带回家 https://mp.weixin.qq.com/s/I6jTx00gmAcedUQdAcyyFg
- 如果过年不是合家欢,那它究竟是什么 | 编辑部聊天室 https://www.jiemian.com/article/10797905.html
- 当“过年吵架”上了热搜,妈妈今年却没有骂我丨记者过年 https://www.infzm.com/wap/#/content/266237
- 上海高校教授言论爆火:“断亲”,是为了保护下一代中国孩子 https://mp.weixin.qq.com/s?__biz=MjM5MDI5OTkyOA==&mid=2665826253&idx=1&sn=100d8ca129ca9a79c205af793eecfa9b&chksm=bd5705ba8a208cac0feb5990476feea1225735b02bc95b6b386a3ab7e9f0ba892147852ab1b8#rd
- 40. 미시생활세계의 ‘혐중’은 농촌에 대한 혐오다 https://thetomorrow.cargo.site/40
- 温铁军(上):投资人脑子里没这些概念,谈什么资本下乡 https://www.youtube.com/watch?si=3SOfRqHMnZ9zr0qH&v=gFNpEx3QikI&feature=youtu.be
- 为什么浏阳能成为全球最大的烟花鞭炮生产基地? https://mp.weixin.qq.com/s?__biz=MjM5MDg1NjA2NA==&mid=2650769891&idx=1&sn=a5c256876db1a25eafd1854ac50fc79d&chksm=beb54f0c89c2c61a63208dee5e43145ab09514d644bf386e616bc1be37c482a07492fca360c5#rd
- 春节到英国“炸街”,三百年潮汕英歌舞如何频频出海? https://www.infzm.com/wap/#/content/266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