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5월 24일

17. 탈탄소 주택과 그린 리모델링





나의 서울생활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단연 ‘집’이다. 나를 서울에서 밀어낸 여러 요인들 중 하나도 단연 ‘집’이다. 한국 영화 ‘기생충’은 집을 배경으로 두 가족의 비극을 그린 영화다. 그런 한국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을 휩쓸 때, –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기 직전 – 정작 아카데미 대상을 받은 영화는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마드랜드(Nomadland)’라는 영화였다. 그 영화는 자본주의 최첨단에 서 있는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불안한 고용과 주거문제를 다룬다. 영화는 사회복지가 거의 전무한 사회 속 인간 소외와 자발적인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주제나 분위기가 나의 취향인 탓에 나는 굳이 돈을 주고 영화를 다운 받아 반복하여 보았고, 급기야 원작인 책을 사서 보았다. 책에는 나의 눈길을 끄는 ‘어스십(Earthship : 우주선(spaceship)에 대비되는 말로 ‘지구선’이라는 뜻[1])’에 대한 다음과 같은 소개가 있다.

“린다는 어스십을 짓고 싶었다. 어스십이란 깡통이나 유리병 같은 버려진 물질을 이용해 만든 수동형 태양열 주택으로, 흙으로 채운 타이어들이 하중을 견디는 벽 역할을 했다. 1970년대부터 이런 집들을 만지작거리던 뉴멕시코의 급진적 건축가 마이클 레이놀즈가 발명한 어스십은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공공설비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주거를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타이어벽은 배터리처럼 작용하는데, 낮 동안 남쪽을 향해 길게 늘어선 창문들을 통해 태양열을 흡수했다가, 밤이 되면 열을 방출해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비와 눈이 녹은 물은 지붕에서 물탱크로 흘러 들어가고, 이 물은 필터로 걸러진 다음, 씻고 마시고, 실내 정원의 과일과 채소들에게 주고, 변기 물을 내리는 데 재사용된다. 전기는 태양전지판,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풍력발전기에 의해 공급된다.”

어스십은 오프 그리드[2] (off-grid)의 한 형태로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가장 극단적인 탈탄소 주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말대로 그 모든 실용주의적인 면모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소재를 가지고 우주선 같은 모양으로 집을 짓다니, – 현대 한국사회의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달리 – 개인의 개성을 발휘할 소지도 충분해 보였다. 덩달아 나는 한동안 나만의 집을 꿈꾸며 열심히 애청했던 EBS 건축탐구 ‘집’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패시브하우스’를 떠올렸다. 패시브하우스[3] (Passive House)란 열 손실을 줄여 열회수환기장치와 최소한의 에너지로 환기와 난방을 하는 집이다. 한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고 실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은, 집이 보온병과 같은 역할을 하며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일반 주택보다 단열 성능이 뛰어난 자재로 집을 짓고, 창문이나 지붕처럼 틈새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곳에 대한 철저한 기밀작업을 거쳐 완공한다. 한낮에 남향 창으로 들어온 일사 에너지를 가둬 밤까지 계속 온도를 유지하고, 보일러는 온수를 이용할 때만 사용한다. 방송에 따르면 같은 면적의 일반 집에 비해 에너지 사용을 88%나 절약했다.

한편 그린 리모델링[4]은 주택의 전면적 개조를 동반한다. ① 고효율 조명 시스템 및 플러그인 장치를 마련하고, ② 건물을 대기환경과 외기냉각, 태양열 난방, 자연 조명등을 활용 및 개조, 에너지 저장 능력이 큰 건물로 만들고, ③ 공조시스템 효율을 극대화하고, ④ 전력을 추가로 공급해줄 태양광 패널을 지붕에 설치하고, ⑤ 여기에 전력저장장치까지 통합 설치한다. 미국은 기존 공공임대주택을 일차 타깃으로 그린 리모델링을 적용하고, 영국은 신규 주택 건축 시 엄격한 탄소 제로 주택 표준을 도입, 에너지 효율이 낮은 기존 주택 약 270만 채를 그린 리모델링하여 탈탄소화와 주거복지를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고 한다.

환경을 생각하며 살 만한 도시를 꿈꿨던 이스라엘 건축가 모쉐 사프디를 그린리모델링의 한 사례로 소개하고 싶다. (물론 혹자는 그의 작업이 그린 리모델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앞의 두가지 사례는 주로 도시 외곽에 위치하거나 단독 주택으로 집을 지어 탄소를 줄이는 주거형태라면, 모쉐 사프디가 제안하는 방식은 도시와 고층건물을 인정하고 그린 리모델링으로 그것들과 환경을 연계하는 방식이다. 나는 그를 2014년 그의 테드톡 (TedTalk) 강연[5]에서 – 물론 인터넷에서 – 처음 만났다. 그의 첫 시도는 도시 중산층을 위한 아파트라도 집집마다 정원이 있고, 단독주택처럼 복도는 없지만 짚 앞에 각각의 거리가 있고,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조립식으로 짓는다는 것이었다. 50년 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예언처럼 기획했던 프로젝트는 대중화에 실패했지만, 그가 의도한 바는 의미 있었고 나중에 실험을 통해 거듭 발전하게 된다.

그는 작고 건축비용이 저렴한 경제형 모델인 세포막형태로 집을 설계하고, 태양이나 자연과 연계된 채광을 이용, 공간을 쪼개 건물 표면을 개방하여 외부와 더 많이 접촉할 수 있도록 했다. 투과성과 개방성을 중시했다. 곳곳에서 빛이 투과되도록 하고 건축물의 모든 층에 공동정원과 열린 공간이 있고, 야외와 실내를 산책로와 공원으로 연결하고 가장 꼭대기층에는 하늘정원이 있다. 가령 싱가포르의 경우 꼭대기층에 하늘정원은 물론 중산층 주민을 위한 조깅코스와 음식점, 세계에서 가장 긴 수영장까지 설치했다. 그는 우리에게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도시의 벽이나 장애물이 되지 않고 어떻게 도시를 짓고 공공영역을 설계하는데 기초가 되는지, 더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는 도시를 떠나든 도시에 살든 공공영역에서부터 탈탄소 주택과 그린 리모델링을 위한 표준을 도입, 공공임대주택 뿐 아니라 부동산 좋아하는 국민들도 신경 쓸 만한 재건축, 재개발에도 우선 적용해보는 것은 어떨까?


[1] <노마드랜드> 제시카 부르더, 2021년, 65쪽

[2]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공공 설비를 사용하지 않는, 태양광 발전 설비가 전력회사와 연결되지 않고 기능하는 독립형의

[3] https://www.quee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5320 2020.01.07. 이주영

[4] <기후위기와 불평등에 맞선 그린뉴딜> 김병권, 책숲 2020년, 146쪽

[5] https://www.ted.com/talks/moshe_safdie_how_to_reinvent_the_apartment_building?language=ko



차유노
대학에서 법을 전공한 후 현장에서의 실천적 운동에 매진. 주로 빈민운동과 환경운동에서 활동. 현재, 조그만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지역운동을 통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노력 중.


함께살기
한국사회의 구성원들 간 삶의 질의 격차가 심화되고 있고 사회경제적 변화들이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탈바꿈을 요구하는 지금, 정치공동체의 조직, 구성, 운영에 대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함. 상대적 자율성과 적응의 원리를 내재하여 내외적 환경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온 복지국가는 여전히 매력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음. 이에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안착되지 않은 복지국가를 최신의 버전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심층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을 동시에 고려해, 제안하고자 함. 특히 다양한 분야의 현장에서 활동중인 분들의 살아 있는 방안들을 제안하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