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운주의 생명의 경계에게
2023년 12월 11일
5. 거꾸로 매달려 있을 동박새에게

박대용M. 2015.03.18. 동백과동박새[Photograph]. http://www.indica.or.kr/xe/Birds/4602504
안녕 동박새야. 네가 좋아하는 동백의 계절이 왔어. 어릴 때 외할머니댁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에서 자주 보던 너의 이름을 안 건 2년 전이야. 20년동안 너는 그저 나에게 ‘새’였지. 너를 더 감각하게 된 건, 부산 가덕도에 지어지는 신공항 건설 반대 운동을 하면서였어. 기후위기 시대에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졸속 진행되는 대규모 토건 사업에 대한 반발심에서 시작되었던 이 활동이 많은 것을 나에게 안겨주었지. 그저 부산의 드라이브 코스 추천 섬 정도로만 가덕도를 감각하던 나였어. 이제 이 곳은 낙동강 하구와 함께 누군가의 터전이라는 걸 알아.
신공항 시민 반대 행동, 습지와 새들의 친구, 그린 트러스트, 부산 녹색 연합 등 다양한 단체 내 활동가 분들과 함께 다니며 다양한 이들을 만났어. 주기적으로 가덕도 어부들의 창고를 털러온다는 수달의 흔적을 보기도 했고, 항구에서는 몇 백 마리의 갈매기가 요람에 안 긴 듯 앞바다에 쉬는 모습을 보기도 했어. 이른 새벽, 공기가 따뜻해지면 올라오는 기류에 한껏 몸을 싣는, 새매, 솔개와 같은 맹금들부터 기러기, 오리들, 고니와 같은 겨울 철새들도 봤어. 비행장이 지어진다면 절토될 산, 국수봉에 밤늦게 올라가 반딧불이들을 보기도 했지. 40년 전쯤만 해도 논밭길 어디서나 보였다던 반딧불이를 나는 태어나 처음 봤었어. 황색 꽁무니 빛을 내기 때문에 늦반딧불이로 추정하는데, 유생기에 수서 곤충[1]을 주식으로 삼는대. 이 존재는 곧 주위에 물길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단 설명을 함께 걷던 선생님께 들었었어. 누군가의 ‘몸’을 이해하는 것은 곧 그이의 ‘집’을 헤아리는 것이구나. 새까만 밤수음 속에서 비탈진 산길을 곤두세워 걸으며 우리가 얼마나 다르게 생겼는지 온몸으로 느꼈어.

진관우 그림 인스타 @animals_in_korean
존재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일들은 이뿐만 아니었어. 푸슈욱- 푸슈욱-. 배의 시동을 끄고 가만히 앉아 맨들한 등을 한껏 굴리는 상괭이의 숨소리를 듣기도 했지. 파도 소리만 들릴 줄 알았던 바다 한가운데서 나와 다른 이의 숨소리를 듣는 일은 참 생경하더라. 맞아, 우리는 너무 다른 몸들을 가졌어도 모두 숨탄 것들이지. 문득 바다가 숨을 닮았단 생각은 그 때 처음 해본 거 같아. 밀물과 썰물. 들숨과 날숨. 가덕도 내 생태조사는 다양하게 이루어졌지만, 법적공방을 할 때는 토건 사업 전 사전타당성평가,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에 맞서 싸우는 현실인 만큼 상괭이와 같은 멸종위기종 위주의 동물들이 내세워지더라.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멸종위기동물들을 더 마음에 새기며 함께 활동했었어. 문득 이런 의문이 들더라. 멸종 위기종을 지정하여 보호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토건 및 개발에 맞서는 환경운동에서 멸종위기종 동물들을 잘 내세우는데, 우린 이걸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할까? 멸종위기 동물이란 계급이 건설 현장 내에서는 골칫덩이로 여겨져, 처음부터 그 존재를 지우기 위해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거짓 작성을 하는 일이 허다하는 점, 어쩌다 멸종위기동물이 발견되면 보여주기식 대체 서식지를 조성하여, 누군가는 당연히 배제되는 사업을 재개하기에 환경운동가들은 멸종위기 동물이 아닌, 멸종위기 식물을 찾는다는 점. 피해를 본 건설 노동자들은 멸종위기동물을 보호하려는 환경운동가들과 싸우게 되고, 비난은 건설 현장 노동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점. 이것들이 이야기해주는 사회적 함의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됐어.
이 실마리를 일라이 클레어의 책 『망명과 자긍심』에서 찾고 있어. 일라이 클레어의 아버지는 “두 가지 타당한 요구가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둘 중 어느 쪽도 충분히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해. 이어 벌목사업으로 먹고 사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난, 뇌병변 장애 퀴어인 스스로에 대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가지. 어린 시절 주로 배웠던 것들은 ‘나무와 연어는 끝없이 재생가능한 상품’이라는 것이었대. 그 뒤, 벌목업 개벌이 일상이었던 현실과 아무 의심 없이 헌신했던 것들로부터 충분히 멀어져 개벌 벌목이 범죄라고 생각하게 될만큼 산산이 찢겨나가는 세상을 충분히 느꼈지만, 동시에 여전히 개벌이 완료된 국유림의 끝자락에 살던 어린아이기도 한 그가 “벌목 노동자를 구하고, 점박이올빼미를 죽여라”라는 문구를 보게 되지. 그는 이 문구에 대해서 “벌목노동자를 구하고, 올빼미를 구하고, 벌목업 경영자를 죽여라”라고 바꾸었으면 언론인들이 어떤 이야기를 썼을지 반문을 던져.
아참. 저 문구가 어떤 맥락인지 전혀 와닿지 않을 수 있겠다. 미국의 북부점박이올빼미는 갈색 깃털의 작은 새로, 태평양 북서부 원시림에 무리를 이루지 않고 살아가. 올빼미들은 더 이상 사람의 손을 타지 않는 2차림에서 사는데, 한쌍 올빼미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당히 큰 면적의 원시림이 필요하다 해. 서식지가 점점 줄어들수록 고통받는 걸 지켜본 환경운동가들이 1990년 점박이올빼미를 멸종 위기종으로 공표하고, 올빼미와 함께 북서부 원시림도 보호하잔 조치를 내렸대. 이 사건은 큰 파장을 들고 오는데, 벌목 노동자들이 그 뒤 “벌목 노동자를 구하고, 점박이 올뺴미를 죽여라”란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대. 여기에 대해서 언론들은 공범, 혹은 환경규제로 인한 희생자 두 얼굴로 그려지기 바빴다지.
가덕도 산자락 안에 숨어 피어있는, 100년도 더 된 부산시 기념물 동백숲엔 너희가 있겠지. 동백꽃이 수분하기 위해서는 너희가 필수적이지만, 아쉽게도 멸종위기종이 아닌 너희는 동백숲만큼이나 주목받지 못하며. 의연히 너희의 몸이 원하는만큼 거꾸로 매달려있기도, 꿀을 마시기도 할 모습들을 떠올려. 동박새야. 나는 너를 알아오기까지, 가덕도의 어부와 해녀, 굴 종패[1] 작업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다양한 동식물들을 거쳤어. 이 관계망의 땅에 산을 절토해 바다를 매립하고 4조가 넘는 돈을 투자해야만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현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나라가 국책사업을 한다하면 하는거지.. 우리가 힘이 어딨어. 보상이라도 잘 받았으면 좋겠어.”
가덕도 주민들이 했던 말이 바다의 윤슬처럼 내 마음에서 꺼졌다 켜졌다 반복해. 물론 가덕도에는 앞으로 오를 땅값에 투자하기 위해, 가건물들이 몇 년 사이로 즐비하게 들어섰었어. 나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반대 운동을 하면서도, 정말 내가 뭘 반대하는지 모르겠다는, 어떤 가치를 잘 좇고 있는지 혼란스럽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 수도권 중심주의에 대한 박탈감, 지방 소멸에 대한 위기, 생태 파괴, 기후위기, 지역주민의 피해, 항공산업의 지속가능성, 정치 유지를 위한 민주적 절차 무시, 단절된 몸들과 땅 등 다양한 문제들을 다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맹목적으로 믿는 전망에 대한 가치가 어디에서부터 나왔을까. 우린 어떤 편향을 가지고 있을까. 우리가 정말 풀어야 할 숙제는 뭘까. 그저 신공항 건설 찬반을 넘어서서 말이야.
자꾸만 고민이 되어서 이 글을 쓰기까지도 머리가 아팠어. 내가 다니고 보며 쓴 이 편지에, 무수한 질문들에 대답을 제대로 한 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이 감정을 뒤로 하고 내가 좇을 곳을 적어두려고 해. 너희들 중 저너머 바다를 건너온 친구들이 있다면 묻고 싶어. 네가 여기에 날아오기까지 바라본 세상은 어떻냐고. 너희들의 자연은 무엇이니? 겨울을 버티고 봄을 나고 알을 낳기 위해 이 땅에 오게 된 이유가 뭐야? 너에게 겨울과 봄의 의미는 무엇이고, 환상을 뒤로 하고 정직하게 봄을 맞는 방법이 무엇인지. 언젠가 이 질문들에 답을 알 수 있길 바라며, 널 보며 떠오른 시 한 구절을 남기고 이만 편지를 줄이려해.
동백꽃 찾아 한 숨 안 쉬고 날아온 동박새,
봄은 산보다 바다가 먼저라고 일렀을까
사정없이 일어서는 봄은
파도 끝에 매달려온다고 일렀을까
동백, 그대 젊은 붉은 절망 앞에서 – 김금용
봄은 산보다 바다가 먼저라고 일렀을까
사정없이 일어서는 봄은
파도 끝에 매달려온다고 일렀을까
동백, 그대 젊은 붉은 절망 앞에서 – 김금용
2023.12.03.
운주 씀
운주 씀
[1] 수서 곤충 : 생활사의 전부 또는 그 일부를 수중에서 생활하는 곤충류를 총칭하는 것으로, 바다에서 생활하는 몇 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하천이나 호소 등 내륙의 수역에서 생활한다. 이들 수서 곤충은 원래 다른 육상 곤충과 같이 육상 생활을 하던 곤충 종류가 2차적으로 다시 수중 생활을 하게 된 것으로 생활 방법이 변화된 환경에 알맞게 적응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2] 씨를 받기 위하여 기르는 조개. 가덕도에서는 굴을 종패하기 위해 가리비 껍질을 사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