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2년 9월 1일

5. 탄생은 쉽고 갓생은 어려워

- 『슈퍼유전자』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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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알고 싶을 때 유전자를 검사합니다

지난 서평 <신의 뇌세포>은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를 다루었다. ‘뇌에서 발생하는 다수의 마음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방식 그리고 주변 세계와 통합할 수 있는 생리적 가능성에 대해서 살폈다. 나는 저자가 제시한 ‘두뇌 회담’을 매일 명상을 하는 습관에 적용했다. 특히 자기 직전 심신을 이완할 때 그 방법을 애용한다. 명상은 훌륭한 생각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흐름을 고요하게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것. 하지만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도 어느 날은 유난히 머리 속이 부산하다. 그럴 때는 내 ‘시스템 1’의 자아에게 ‘시스템 4’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 수고했어. 이제는 멈추고 쉬어도 괜찮아. 정말 고마워. 사랑해.

나는 ‘나를 알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강해서 유전자에게도 말을 걸었다. ‘나’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려준다는 과학기술의 도움을 통해. 처음에는 유전자 검사로 나의 선조를 추적해준다는 외국 회사의 제품을 구입하려고 했다. 몇 달을 기다려서 해당 제품이 반값으로 할인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문을 넣었다. 하지만 수령지가 한국이라는 이유로 구매는 취소되었다. 생체검사 및 건강 관련 법 제도가 미국과 다르기 때문으로 추측한다. ‘깊은 자아’, 자신을 이루는 복수의 관계자들을 파악하여 포용하고자 하는 나의 자아는 실망했다. ‘나의 그들’ 중 대륙을 이동한 조상들의 이주경로와 내 속에 흐르는 이른바 ‘핏줄’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다. 국내에서 모바일 앱으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 업체가 유전자 검사 키트를 무료로 제공한 것이다. 모든 이용자에게 배부하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만큼 회사는 유전자를 활용한 사업이 미래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깊은 자아’를 운운하기 이전에 ‘무병장수를 원하는’ 개체적 자아의 욕구가 ‘유전자 수준에서’ 상품화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은 유리 플라스크에 침을 뱉고 연구소로 보낸 결과는 신기하고도 짜증났다. 비만과 관련된 나쁜 유전자를 나는 다량 보유하고 있었다. 식욕은 많을 것이고, 체지방률도 많을 것이며, 운동을 통한 체중감량은 어려울 것이라고···.

신유전학의 위로

지금까지 말한 것은 눈부시게 발전한 유전학이 우리에게 선사한 일종의 혜택이라 할 수 있다. 2003년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가 인체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한 이후, 나와 같은 일반 소비자까지 자신의 유전 정보를 검사할 수 있는 ‘DTC(Directed to Customer)’의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2015년에는 ‘인간 후성유전자 게놈 프로젝트’가 후성유전적 표지(epigenetic marks)[1]들의 수백만개 목록을 만들었다. 이러한 ‘후성유전학’ 혹은 ‘신유전학’은 우리에게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쁜 유전자란 없다. 그리고 (유전자를 포함하여 유전 정보를 함유하는 광범위한 신체 요소를 뜻하는) 유전체는 매순간 상황에 적응한다.

실제로 나의 사례는 두 유전학을 모두 적용해야 설명할 수 있는 듯 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통통해서 귀여운 생김새의 아이였고 청소년 시기부터 점점 살이 빠지더니 지금까지 마른 편으로 체형이 고정되었다. ‘체중 조절에 불리한’ 유전자는 다들 어디로 갔나~? 그렇다고 내가 ‘피 나는 노력’을 하고 이에 따른 ‘인간승리’를 한 것은 아니다. 성향에 따라 운동은 거의 안 하면서 생활을 했고, 남들만큼 자극적인 음식 먹기를 좋아했다. 신유전학은 이에 대해 내가 가진 유전자가 다양한 표지들에 의해 다르게 활성화된 결과라고 설명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유전적인 차원에 변형을 가하고 후성적인 요인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인간은 ‘슈퍼 보유자’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유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다. 23개 염색체를 구성하는 유전자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대신 그것을 더 미세한 단위에서 조절하며 다르게 활성화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몸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마이크로 RNA’를 발생시키고 면역세포의 수명을 조절하는 ‘텔로미어’의 길이를 단축시킨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명상은 텔로미어를 조정하는 ‘텔로머레이스’의 생산을 촉진하고, 운동은 지방세포의 DNA가 신진대사를 촉발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성인이 된 이후 명상을 하고 운동을 즐기는 나는 청소년 때와는 또 다른 유전체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출처 : 알라딘

이처럼 인간은 경험을 유전자 단위로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의 장 속에 거주하는 ‘뇌의 무게와 맞먹는’ 미생물 군집은 우리가 ‘정원을 관리하듯’ 매끼를 정성껏 먹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후성유전자의 발견은 우리가 매순간을 알차고 이롭게 살아가도록 주문한다. 언제나 최선을 취하는 삶, 그것은 자신을 유지하는 ‘항상성’과 주변에 적응하여 변화하는 ‘복잡성’을 가진 세포의 두 지혜를 따르는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5백 조개 세포 공동체에서 발현되는 ‘의식적 지성’은 본인들의 유전자가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 고로 인간은 진화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슈퍼 유전자’의 개체, ‘슈퍼 보유자’ 생물이다.

21세기 생물학적 실존주의

베이식의 노래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려워>의 노랫말은 가수들의 의도와는 다른 맥락에서 실존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20세기 초의 근엄하고 진지한 그 사상은 인간이란 존재를 안타깝게 여겼다.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지만 이미 태어나서 세상에 던져졌기 때문이다. 사상가들은 진정으로 의미 있는 실존적 삶을 위한 방법들을 제시했는데, 예를 들어 마르틴 하이데거는 일상을 되는 대로 살아가면서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그가 말한 ‘존재의 역사성’은 우리의 DNA 안에 새겨져있다. (인간의 역사가 신체의 분자적 차원에서 어류, 고세균류까지 뿌리가 거슬러 올라감은 다음 번 『내 안의 물고기』 서평을 참고할 것).

또한 21세기 신생물학이 밝혀내고 있는 것은, 현생이 유전자를 실시간으로 편집하여 미래세대에게 전달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수십 세대가 지나더라도 인간은 기후위기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흡수하는 폐를 가질 수 없다. 그런 것은 유전자 ‘편집’ 혹은 ‘합성’으로 접근해야 겨우 상상이 가능한 영역이다. 하지만 몇 세대 이내로 전달되는 소소한 변화만 하더라도 실존하는 당사자의 삶의 질과 결은 달라진다. 예컨대 특정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 돌연변이는 그 중 5%만이 실제로 발현된다고 한다. 나머지 절대 다수는 자식 세대에게 전해지더라도 양육 과정과 그들의 생활 여하에 따라 조절되고 비껴갈 수 있는 것이다.

최초의 생물 이후부터 집필되어 저장된 ‘생물학 백과사전’은 지구의 역사를 담고 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그 역사의 집필에 참여하는 공저자이다. 지금의 내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기적의 연속이었으리라. 하지만 일단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한 나는 영원히 이어질 미래를 담당할 ‘순간’을 짊어지고 있다. 그 힘과 책임을 감안하면 ‘탄생은 쉽고 갓생(God生)은 어렵다.’



[1] 유전자에 작용하여 특정 유전 정보가 활성화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촉진하는 생체물질들. 책에 비유하면 본문을 강조하는 ‘책갈피’ 혹은 ‘밑줄’에 해당한다.






배선우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