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생명, 생각, 생활, 생산
2023년 6월 15일
5. Out of Time
– 인간과 생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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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nterest)
개인과 사회의 교차성을 인식한다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공간과 시간을 다시 보는 것과 같다. 이는 내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그리고 누구인지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나의 감각을 되살리는 작업과도 연결된다. 여기에는 사람과의 관계를 넘어서 자연과의 재연결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오늘은 내가 경험했던 교차성과 연결성 작업을 소개하려 한다.
교차성과 연결성을 다루는 작업은 자신을 인식하고 정체성을 찾아보는 여정과도 같다. 이는 평화학의 가장 첫 걸음인 ‘나로부터 시작하기’의 과정으로, 시각적 작업, 언어적 작업, 행동 작업 등 다양한 방식의 작업이 얽혀서 전개된다. 이를 통해 나오는 결과물들은 나에게서 점층적으로 확대되는 공동체와 사회의 모습을 보게 한다. 따라서 나를 보는 작업은 결국 나와 다른 존재의 관계성을 인식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작업은 단순히 자기 기록 또는 연구에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인지작업이 끝난 뒤, 작업을 한 개인이 모여 게더링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같이 참여하는 사람들의 비폭력적 개입이 일어나도록 한다. 이러한 참여적 개입으로 사회적 전환의 긍정적인 부분을 일으키고 갈등 전환을 연습하는 것 역시 이 작업의 이유 중 하나이다.
내가 학교에서 한 작업에서 우리는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질문으로 이를 시작했다. 여기에서 구체적인 시작점은 나의 이름이었다. 내 이름이 가진 의미를 뜯어보는 것, 그리고 그 이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돌아보는 것에서 우리는 자신과 연결된 사회적 배경과 내가 태어난 곳의 역사적 배경을 알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나의 이름에서 성은 아버지의 성씨를 따른다. 이는 가부장제 하에 남성의 성씨를 남기고, 여성의 성씨를 지워온 한국의 역사를 보여준다. 필리핀에서 온 친구는 자신의 첫번째 이름이 외할머니로부터, 중간 이름이 카톨릭 문화로부터 왔음을 이야기했다. 여기에는 필리핀이 겪은 서구에 의한 식민지배의 흔적이 담겨있었다. 인도에서 온 친구는 자신의 이름 중 하나는 할아버지에게서, 하나는 신의 이름에서 왔다고 했다. 이 친구의 이야기에는 과거 서구에서 이주한 인도 이민자의 역사가 담겨있었다.
이렇게 ‘나의 이름’ 밑에 존재하는 역사적 • 문화적 배경 등을 살핀 다음 우리는 ‘내가 태어난 공간’에 대한 연결-재연결작업을 했다. 연결 작업은 그 공간에 어떤 자연과 사물이 존재했는지, 그것이 나와 어떻게 연결된 관계인지를 살핀 뒤 그것을 그림, 메시지, 글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표현한 것을 ‘우리 안에서 나의 공간성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스스로 생각하여 붙인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친구는 자신이 태어난 곳은 산악지대에 작은 도시이며 호수가 옆에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중간에서 아래 부분에 붙였는데 이는 지도상 아프리카 대륙의 위치를 따랐다고 했다. 이라크에서 온 친구는 자신을 서쪽 끝에 붙이며 중동 및 아시아 지역에서 자신이 서쪽 끝에 있어서 그러했음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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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각자의 연결 작업이 끝나면 다같이 논의를 한다. 서로 간의 의견을 공유하고 위치를 재연결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연결하는 공간이 무엇일지 고민 끝에 ‘물’을 키워드로 삼았다. 누군가는 바다 근처에 위치했고, 누군가는 섬에 살았고, 누군가는 호수 근처에서 태어났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강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했다. 물의 형태는 다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물이 각자의 삶에 중요함을 느꼈다.
산 역시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였다. 티벳에서 온 친구는 자신을 산악민족이라 생각하며 산의 영적인 기운을 믿었다. 러시아에서 온 친구에게 산은 거대한 경계였는데 러시아 내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이 산맥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공간의 특성과 자연과의 연결성을 고려하여 우리는 각자의 위치성을 조율하고 재연결했다. 그 결과 높은 산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이 위쪽에 놓이고 그것을 기점으로 물과 산맥의 흐름에 따라 서로를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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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자연에 의해 다시 연결된 것을 보며 우리는 좀더 구체적인 연결성과 교차성을 개인적 •문화적 • 사회적 • 정치적 측면에서 찾아보았다. 독일에서 온 친구는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었을 때의 영향을 아직 받고 있는 독일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이를 한국의 분단 상황과 연결하며 동시성을 말했다. 또한, 도시화된 한국과 그 안에 조형물처럼 있는 자연에 대해 말했을 때 필리핀에서 온 친구는 이와 연결하여 식민지배 이후 아시아의 개발과 필리핀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가 지닌 배경과 겪은 경험에 대해 세밀하고 다층적인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었다.
이 작업이 나에게 또한 사람들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갈등이 서로의 무지에 의해 더 심화되고, 서로를 아는 것이 갈등을 전환하는 것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감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기는 곳에 가보면 각자는 서로를 비판하고 헐뜯기에 여념이 없다. 또한, 상대에 대해 진심으로 알고자 하는 마음 없이 사실이라는 명목으로 한정된 정보를 그 사람 자체라고 판단한다. 이를 통한 힘겨루기가 계속되면 갈등은 깊어지고 폭력으로 이어진다.
평화를 고민한다는 것은 상대를 깊고 세밀하게 들여다본다는 것과 같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 경험, 그리고 배경 등 다양한 측면을 가진 존재로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갈등을 전환하는 시작점이다. 이는 폭력을 감소시키고 전쟁과 같은 극단적 폭력 상황을 방지하게 한다. 나아가 이는 자연에게도 마찬가지다. 생태적 감수성 또는 감각이라는 것은 인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대로의 자연 안에서 존재를 가만히 바라보고, 느껴보고, 함께 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인간 중심적인 세상에서 벗어나 생태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앞서 말했듯 이러한 갈등 전환은 자기자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타 존재와의 공존은 서로 간의 깊은 연결로 인해 가능하다. 그리고 후에 끊임없는 관찰과 재연결 작업이 요구된다. 이는 나 역시 나를 알아야 함을 의미한다. 타 존재와의 연결을 위해 모두가 자신에 대해 깊게 들여다보고 내면의 평화를 찾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를 통해 내가 가진 여러 층위의 배경을 이해하고 관련된 교차성을 발견해 나가는 것이 오만, 자기 합리화, 우울 등과 같은 내면과 외면의 폭력적 상황을 전환하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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